삶에 뿌리 내린 대표 서정시 100편 엮어…섬세한 언어로 조탁한 '일상의 향연'
"누가 내게 대표작이 무엇인가고 물으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벌써 대표작을 말할 만한 때에 이르렀는가, 내게 과연 대표작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며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황망하고 쓸쓸하다."
시인 이향아. 그는 "대표작은 독자들이 선정해야 한다"면서도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대표작을 쓰겠다는 각오"로 임한다. 누군가 다시 태어나도 시를 쓰겠는가 물었을 때, "쓰겠다고 말하려니 시에게 염치가 없고, 쓰지 않겠다고 하려니 내 자존심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는 시인은 한 편 한 편을 쉽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등단 이후 일관되게 한국 서정시의 본령을 지켜온 이향아 시인이 시선집 「아지랑이가 있는 집」(도서출판 시월)을 출간했다.
지난해 열일곱번째 시집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를 냈지만, 시선집에는 1970년 첫 시집 「황제여」 부터 2007년 「흐름」까지 열여섯권의 시집 가운데 시인이 고른 100편이 담겼다.
수록된 시들은 주제와 성향에 의해 네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세월이 흘러도 순수하고 유연한 시심과 인간과 사물에 기울이는 끈끈한 애정은 여전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일상의 삶에 뿌리 내리고 있는 서정은 공허하거나 나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참신한 언어 감각과 탁월한 조사법으로 주목을 받아온 시인은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비범한 시각으로 형상화하는 탁월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수필가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아 '현대수필가 100인선'에 포함됐으며, 시인으로는 드물게 고등학교 작문교과서에 수필 '너와나의 모국어'가, 중학교 교과서에 수필 'J는 누구인가'가 수록됐다.
1938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1945년 가족이 군산에 정착하면서 줄곧 군산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1982년 호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명돼 2003년 정년퇴직했다. 현재는 호남대 명예교수. 시문학상(1987), 전라남도 문화상(1995), 윤동주문학상(1998), 한국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아지랑이가 있는 집」은 천년을 가는 한지에 인쇄한 영구보존본으로 제책한 특수양장 수제본 활판시집이다. 시선집을 간행한 도서출판 시월은 디지털 문화 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활판 인쇄시설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활판인쇄출판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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