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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동학 '인내천' 사상 詩세계에 옮겨놓은 시인을 추모하며

오남구 시전집 '노자의 벌레' 출간

'봄이 오는데…… 왜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서 봄을 기다립니다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텅 빈 거울 속에서 앉아 있습니다 (중략) 낯선 사내는 하루종일 거울 속에 갇혀서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거울 밖은 봄이 오는데.'(시'낯선 사람' 중에서)

 

죽음을 앞둔 인생은 더이상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와 같다. 지난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남구 시인은 '봉인하듯' 시전집 원고를 만들어놓고 눈을 감았다. 출간된 시전집「노자의 벌레」(글나무)는 1975년 첫 시집 「동진강 월령」부터 마지막 시집 「빈자리 X」, 눈을 감기 전까지 펜을 놓지 않고 썼던 시들이 모두어졌다.

 

'간밤 봄비에 쑥쑥 자란 쑥, 어느새 내 공포 두려움이 쑥쑥 자란 쑥, 지팡이를 놓고 쑥을 뜯는다. 땅에서 쑥쑥 솟아오는 울음! 쑥을 뜯는다.'(시'쑥국') 시인은'카메라 기법'을 통해 생의 마지막 국면에 다다랐다는 두려움이 산야의 쑥이 되어 돋아난다고 했다. 마지막 투병 생활 속에서도 날마다 새롭게 시를 벼리어내는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의 시세계는 탈관념, 빈자리의 미학으로 요약된다. 시인은 '약수터에서 수운을 만나다','다시 백산에 가면','봉황각','다시 손병희' 등을 통해 동학의 세계를 접목시킨다. 나와 우주를 하나의 생명체로 연결시키는 동학의 한울 사상. 사람도, 짐승도, 초목도, 바위도 그 근본에서 평등하며 그들 각자는 내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방만호씨는 "시인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시의 세계에 옮겨 놓기 위해 무던히 애썼고, 사물을 투명하게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탈관념, 빈자리의 시는 방법론적 귀결"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시가 투명하고 선명한 것도 자연이 인간에 의해 더렵혀지기 전 원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숲이 눈이 푸르도록 아름답다 / 푸른 단어들이 지나간다 / 거기에는 무수한 삶의 흔들림이 있다 / (중략) 숲이 된다. 사람의 숲, / 숲이 떠도는 나를 껴안는다 / 나의 핏속에서 싱싱한 새들이 날아간다' (「파고다 공원 - 딸아 시를 말하자 13」 중에서)

 

부안 출생인 그는 1973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동진강 월령」,「딸아 시를 말하자」, 「첫 나비, 아름다운 의미의 비행」 등과 시선집「동학시」, 시론집 「이상의 디지털리즘」 등을 펴낸 바 있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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