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책의 향기] 불우한 생활, 동화로 승화한 권정생

'강아지똥'·'몽실언니'작가 유고 시집 '삼베치마'출간

동화 '강아지똥'과 '몽실언니' 등을 쓰신 권정생 선생은 평생 불우하게 살다 가셨다. 1937년에 일본에서 태어난 선생님은 어린 시절 거리청소부를 하던 아버지가 쓰레기더미에서 가져온 책을 읽으며 글을 익혔다고 한다. '이솝이야기', '그림동화집' 같은 책들이었다. 해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으나 먹고 살기 바쁜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어린 권정생은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점원 노릇을 하면서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키웠다. 열여섯 살에 집을 나가 객지를 떠돌며 일을 했고, 6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결핵균이 들어와 있었다.

 

선생님은 책을 내고 받은 인세를 자신을 위해 허투루 쓰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예금통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인세를 굶주리고 있는 북쪽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분은 우리 가까이에 계셨던 성자였다.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뵌 게 1984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안동에서 방위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말수가 적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그 목소리가 회초리처럼 맵고 단호했다.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흥청거리는 자리는 가능한 한 피하셨다.

 

2007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향 가는 길에 몇 번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두세 평쯤 되는 선생님의 방은 딱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잠자리,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쌓인 책, 조그마한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소반 하나, 그리고 식기와 반찬 그릇들이 오밀조밀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모든 생활이 그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선생님이 바깥에 나가실 때만 고무신 한 켤레가 따라 나섰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유언을 받들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재단 사무실 옆에는 선생님의 유품전시관이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여기 전시해 놓은 유품들을 살피던 중에 빛이 바랜 동시묶음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이 직접 펜으로 동시를 쓰고, 삽화를 그리고, '삼베치마'라는 큼직한 글씨로 제목을 달고, 아홉 마디로 알뜰하게 부를 나누고, 떨어지지 않게 풀을 붙여 제본까지 한 동시집이었다. 유품의 목록을 정리하다가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삼베치마'의 맨 끝에는 '1964년 1월 10일 묶음'이라는 발간 날짜가 또렷하게 적혀 있다. 1964년 청년 권정생의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이 해는 선생님의 일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 때일까? 방황을 거듭하다가 고향집에 돌아온 지 6년 만에 선생님은 교회학교 교사로 정식 임명된다. 건강을 완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경책을 벗 삼아 꾸준히 철야기도를 하고 얼마 동안의 행복을 느낀다. 고향에 정착해 가까스로 생활의 안정을 되찾은 시기로 짐작된다. 혼자 써놓은 글을 발표할 지면은커녕 보여줄 사람도 옆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집을 묶어보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1969년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모집에 '강아지똥'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삼베치마'는 그보다 5년이 앞선 시점에 나온 동시집이 되는 셈인데, 그야말로 권정생 문학의 시원이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밖에 없던 그 동시집을 이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정식으로 출간된 것이다. 우리 아동문학사에 중요한 무게를 더할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의 불우함을 책읽기로 이겨내고 그것을 동시로 꾹꾹 눌러쓴 한 작가의 정신이 거기에 오롯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화정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건설·부동산“매물이 없어요”···전주시 일대 ‘깡통전세’ 기승

법원·검찰지인 살해하려고 한 50대 ‘징역 6년’

법원·검찰근무지 상습적으로 이탈한 사회복무요원 ‘집행유예'

순창순창군 귀농·귀촌 유치정책으로 농촌 활력 이끈다

군산새만금 기업성장센터 발목잡던 소송전 해소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