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아름다운 어우러짐…
남자가 휠체어 앞머리를 들어 한 바퀴 돈다. 남자가 허리를 숙이자 여자는 그의 등에 누워 한쪽 다리를 하늘로 곧게 뻗는다.
10일 오후 7시. 전라북도체육회관 1층 장애인전용체육센터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추는 장애인 댄스스포츠(일명 휠체어 댄스·wheelchair dance) 연습이 한창이었다.
남자는 뇌성마비 1급인 송호천 씨(32), 여자는 전주예고 무용과 3학년 조성미 양이다. '사랑의 춤'이라 불리는 룸바(rumba)를 췄던 이들은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자이브(jive) 종목 동메달리스트. 송 씨의 상체 근육이 보디빌더 같다.
초등학교 때 스포츠댄스에 입문, 2009년부터 송 씨와 호흡을 맞춰 온 조성미 양은 "동작 하나를 완성하는 데 (비장애인과 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작품이 완성됐을 때는 훨씬 뿌듯하다"고 말했다.
"쿵…."
신윤식 씨(44·지체장애 1급)의 휠체어가 뒤로 넘어졌다. 휠체어 앞을 들고 제자리에서 도는 윌리 턴(willy turn)을 하다가 중심을 잃은 것.
신 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일어나 파트너 손보은 양(우석대 실용무용지도학과 1학년)과 투우사와 케이프(cape)를 본뜬 파소 도블레(paso doble)를 췄다. 손보은 양은 "춤출 때는 장애나 나이 차이는 전혀 못 느낀다"고 말했다.
29세 때 추락 사고를 당하기 전 전국 단위 합기도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했다는 신 씨는 2009년 취미 삼아 장애인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다. "음치·몸치·박치 등 치란 치는 죄다 가지고 있다"는 그는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전 차차차 종목에 출전했다가 낭패를 봤단다. "음악이 이렇게 큰데도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조금 추다가 멍하게 있었죠."
그는 "이제는 공연을 해도 끝까지 마친다"며 멋쩍게 웃었다.
강성오 씨(41·지체장애 1급)와 윤미란 씨(우석대 실용무용지도학과 1학년)는 삼바(samba) 리듬에 몸을 맡겼다. "2009년 재활 겸 운동으로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다"는 강 씨는 "지금은 몸에 근육도 붙고, 심폐 기능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옆으로 가세요. 헤어지세요."
같은 시각 다른 쪽에선 장애인 댄스스포츠 전북 대표팀 이슬 감독(29)이 지적장애 청소년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날은 전북장애인체육회가 지난 5월부터 장애 청소년들을 위해 매주 한 차례씩 열고 있는 생활체육(댄스스포츠) 강습일.
이보라(전주솔내고 2학년), 박아름(전주중앙중 1학년), 박민주(전주서중 2학년), 오세기(전주용소중 3학년·이상 다운 증후군), 노상호(전주생명과학고 1학년), 차윤영(전주생명과학고 1학년·이상 자폐성장애 2급), 김란(전주솔내고 1학년·지적장애 3급) 등은 이슬 감독이 입으로 '원, 투, 쓰리, 포' 박자를 세며 앞에서 동작을 보여줄 때는 곧잘 따라 하다가도, 커플(couple)별로 지도에 나서면 금세 딴짓하기 일쑤였다.
문화방송 '댄싱 위드 더 스타'에 나오는 스타들만큼은 아니지만, 진지한 표정과 팔을 뻗는 품이 제법 그럴싸했다.
이슬 감독은 "아무래도 전문 용어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며 "가령 엉덩이를 서로 부딪치는 힙 범프(hip bump)를 '엉덩이'라고만 부르는 식"이라고 말했다.
한 켠에서 아들(노운호)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던 임은희 씨(44)는 "자폐성장애이다 보니 주의력도 없고,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하는 것도 벅차 했다"며 "스텝을 반복적으로 익히고, 파트너와 손을 잡고 눈을 맞추다 보니 이제는 집중력도 생기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넉 달 전부터 댄스스포츠 국가대표 상비군인 노태훈 씨(26)와 호흡을 맞춰 온 전북장애인체육회 손운자 부회장(53·지체장애 1급)도 이날 노 씨와 함께 왈츠를 췄다.
장애인 테니스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손 부회장은 알통이 밴 자신의 팔뚝을 만지면서 "테니스는 (언뜻) 우악스러운데, 댄스스포츠는 부드럽고 여성스러워서 (하다 보니) 몸도 유연해지고,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고 댄스스포츠 예찬론을 폈다.
지난 2006년 전북에 장애인 댄스스포츠를 처음 소개하고, 그동안 무료로 이 종목을 보급해 온 김태완 전북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부회장(43·우석대 실용무용지도학과 객원교수)은 "현재는 전국장애인체전에 나가는 선수들조차 일주일에 두 번밖에 장애인전용센터를 빌려서 연습하는 실정"이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언제라도 장애인 댄스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아카데미)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