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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선작 - 노숙

이영종

열차와 멧돼지가 우연히 부딪쳐 죽을 일은 흔치 않으므로

 

호남선 개태사역 부근에서 멧돼지 한 마리가

 

열차에 뛰어들었다는 기사를 나는 믿기로 했다

 

 

오늘밤 내가 떨지 않기 위해 덮을 일간지 몇 장도

 

실은 숲에 사는 나무를 얇게 저며 만든 것

 

활자처럼 빽빽하게 개체수를 늘려온 멧돼지를 탓할 수는 없다

 

 

동면에 들어간 나무뿌리를 주둥이로 캐다가

 

홀쭉해지는 새끼들의 아랫배를 혀로 핥다가

 

밤 열차를 타면 도토리 몇 자루

 

등에 지고 올 수 있으리라 멧돼지는 믿었던 것이다

 

 

사고가 난 지점은 옛날에 간이역이 서 있던 자리

 

화물칸이라도 얻어 타려고 했을까

 

멧돼지는 오랫동안 예민한 후각으로 역무원의 깃발 냄새를 맡아왔던 것일까

 

 

역무원의 깃발이 사라진 최초의 지점에

 

고속철도가 놓였을 것이고 밝은 귀 환해지도록 기적소리 들으며

 

멧돼지는 침목에 몸 비벼 승차 지점을 표시해 두었으리라

 

콧김으로 눈발 헤쳐 숲길을 철길까지 끌고 오느라

 

다리는 더욱 굵고 짧아졌으리라

 

 

등에 태우고 개울을 건네줄 새끼도 없고

 

돌아갈 숲도 없는 나는 오랜만에 새 신문지를 바꿔 덮으며

 

그때 그 역 근방에서 떼를 지어 서성거렸다는

 

멧돼지 십여 마리의 발소리를 믿기로 했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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