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박지원 국민의당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12월 1일 오전 9시 반쯤이었다. 추대표는 ‘아침에 김무성 전새누리당 대표를 만났는데 9일에도 탄핵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 당장 탄핵 발의서류를 보낼 테니 국민의당의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비박계가 7일까지 기다려달라고 하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어제 야 3당 대표회담에서 임기단축 협상은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적절한 때를 기다리려 했을 뿐
국민의당은 2일 탄핵안을 처리하게 되면 100%로 부결되고, 그럴 경우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서 1일 탄핵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탄핵안은 발의가 아니라 가결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사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민주당은 ‘국민의당이 탄핵발의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국민은 이를 우리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문자 공세가 시작됐다. 대변인으로서, 우리당은 탄핵발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결 확률을 높이기 위해 9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그사이 국민의당은 탄핵 반대당, 새누리당 2중대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전화번호까지 유포됐다. 문자 때문에 업무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박지원 위원장이나 안철수 전대표의 경우, 점심 시간에만 무려 2천통 가까운 문자 폭탄이 투하되었다.
나에게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쏟아지는 문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자폭탄은 카톡 폭탄으로 진화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직접 전화를 걸어와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카톡 단체 방에 의원들을 집단 초대해 갖가지 질문을 하고 입장 표명을 강요하기도 했다. 전화번호가 공개되다 보니 별의별 카톡이 다 왔다.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심야에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않고 전화를 끊거나, 두세 번 신호를 울리는 방식으로 의원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중에는 예의 있게 의견을 보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막말이나, 반 협박조의 언사을 구사하고, 기분 나쁜 그림 등을 보냈다. 내가 어느 당 소속인지조차 모르면서 비난부터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례한 문자에는 무대응으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문자에는 일일이 답변을 했다. 참 힘든 일이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였다.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국민의당은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했던 정당이다. 그러면서도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 시라도 빨리 탄핵을 하라는 국민적 분노 앞에서는 어떤 이유나 변명도 소용이 없었다.
공직자의 엄중함을 다시 느끼다
다행이 지난 3일 주말 촛불 집회는 230만명이라는 사상 최다 시위 인파를 기록했고, 이에 놀란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투표 참여로 돌아왔다. 국민의당이 옳았고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번 집단 문자 세례가 괴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선출직 공직자의 엄중함을 새삼 느꼈다.
처음에 느꼈던 억울함이 이제 조금은 더 이해하는 마음으로 되었다. 일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의 개입이 느껴져 불쾌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감내할 만큼 맷집도 생겼다. 가끔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에서는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름 모를 장삼이사들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정치인의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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