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인구절벽에 몰려있다. 하지만 그 위태로운 절벽에서의 위기의식은 지역에 따라 온도 차가 크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심각한 불균형 속에서 지방의 몰락을 부추기는 수도권 신도시 정책은 흔들림이 없다. 올 봄 나라를 뜨겁게 했던 신도시 땅 투기 사건도 수도권 확장 정책을 바꾸지 못했다. 정부는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도 서울의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도권 신도시 주택공급 정책에 집중했다. 우리 사회 정의와 공정성이 무너진 데 대한 국민적 울분은 부동산 투기 적폐 문제로 한정해 무마했다.
역대 정부가 균형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불균형만 키웠다. 수도권 위주의 국가 운영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현 정권에서는 균형발전이라는 말뿐인 구호조차 듣기 힘들었다. 수도권이 지방의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돼 구멍을 넓히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그나마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로 간신히 공동체를 지켜온 농촌사회는 이제 생존의 한계점에 다가와 있다. 사람과 재화가 한곳으로 몰리는 수도권 공화국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지방 도시의 현실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더욱 강한 블랙홀이 되고 있는 수도권 집중현상과 지역 불균형은 풀지 못한 숙제’라고 밝혔다.
이 같은 불균형은 사회 곳곳에서 풀어내야 할 숙제를 남긴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진다’고 하는 일명 ‘벚꽃엔딩’은 농담이 아닌 지방대의 현실이 됐다. 농어촌지역 상당수 학교는 학생이 지나치게 적어 제대로 된 교육과정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과소규모 학교는 인공지능(AI) 교실 등 교육부가 역점 추진하고 이는 미래교육기반 조성사업에서도 밀려날 수 있다. 또 지방 소도시의 고교에서는 심각한 학생 모집난이 되풀이된다. 이맘 때쯤이면 교사들까지 신입생 유치전에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다. 고교 학점제 시행을 앞두고 도·농 교육격차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교육여건 격차는 도·농 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지방 도시 내에서도 원도심과 신도심의 사정이 크게 엇갈린다. 과거 거대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 전락한 원도심 학교들은 농어촌학교처럼 통폐합을 걱정해야 할 신세가 됐다. 반면 신도시 지역은 과밀학급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학교 신설이 어렵게 되자 교육청은 원도심의 작은 학교를 신도시로 옮기는 신설 대체 이전 형식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있다. 근본 대책을 찾지 못한 교육청의 미봉책으로 인해 교육 인프라마저 빼앗기지 않으려는 원도심과 학급 과밀을 호소하는 신도시 주민들 간에 학교 배치를 놓고 갈등의 소지도 있다.
학교 소멸이 지역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이제는 급격한 인구감소로 지역이 붕괴하면서 학교의 자연 소멸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이 눈앞에 왔다. 그간의 다양한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농어촌과 원도심의 과소규모 학교는 늘어만 갔고, 신도시의 학교 신설 민원은 증폭됐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인구정책이 추진됐고, 지방자치단체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백약이 무효’라면 이제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수도권 과밀을 수도권 확장으로, 그리고 교육여건의 불균형을 적자생존의 원리로 해결할 계획이 아니라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처방을 검토해야 한다. 많이 아프더라도 염증 부위를 도려내 그 원인을 좀 더 냉철하게 분석해서 처방을 내려야 할 때다. 수도권 중심의 국가 운영 기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 수도권의 자기장을 줄여 지방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대선시국에서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지방분권형 개헌’, 그리고 지역사회 공론화 과정을 통한 ‘적정규모 학교 육성’ 제안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행여 기존의 원칙이나 이념의 틀에 갇혀 미래사회 공존의 길을 찾는 다양한 논의와 제안을 백안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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