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아버님께서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항상 보따리에 뭔가를 싸서 우리 3형제 중 한 명에게 할아버지 댁으로 심부름을 보내셨다.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은 20리가 채 안 되는 거리였다.
보따리에는 과일이 담겨 있기도 하고, 집에서 해 놓은 음식이나 떡이 있을 때도 있었다. 평소에도 나의 아버님은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어 살뜰히 챙기는 모습으로 부모님 공경을 몸소 보여 주셨고, 또 우리 형제들에게도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가르치셨다.
그 시절만 해도 이러한 가족간의 유대감과 헌신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언론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은 가족 공동체라는 가치관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알린다.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2019’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아시아에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급증했다. 가족 구성원간의 패륜적인 폭력 범죄도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위기 가정을 넘어 가족 해체, 가족 붕괴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예측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암울한 현실의 이면에는 기존의 곪아 있던 사회 문제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특히, 지난 3년간 이어진 코로나19로 인해 소득 불안정과 취업난, 양육 부담 등은 가족간의 불화를 더욱 크게 키우는 씨앗이 되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들을 잘 풀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보다는 더욱 범위를 넓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속해 있는 다양한 세대별 맞춤형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먼저,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될 2030 세대가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첫 단추는 정착의 토대를 탄탄히 다지는 것이듯, 청년 세대들도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야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가정을 튼튼하게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 걱정 없는 실질적인 주거 정책부터 청년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창업 생태계 조성까지 종합적인 지원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임신, 출산, 양육 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특히, 맞벌이 부부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촘촘한 육아·돌봄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야 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취약계층 역시 육아에 관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모두가 공평한 양육 여건을 누리게 해야 한다.
또한, 중장년 세대가 활기찬 노후를 준비하고 영위할 수 있도록 든든히 받쳐주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 2막에 대한 걱정 없이 자치단체에서 개인의 역량에 맞는 사회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노년기 소득을 보장해 준다면 가정 내 고립을 막고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되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거센 풍파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씨앗이 땅 깊숙이 뿌리를 내려 자리 잡기 위해서는 풍부한 영양분을 내줄 수 있는 비옥한 땅이 기본 요소이며, 잘 자리 잡은 나무들이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룬다.
우리 익산시도 다양한 세대를 거뜬히 품을 만큼 비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위기가 닥쳐와도 익산 시민의 소중한 가정을 지켜낼 수 있는 자양분 같은 지원책을 끊임없이 발굴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다시 끈끈했던 가족의 정을 회복하고 ‘시민이 행복한 품격도시’가 실현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희망해 본다.
/정헌율 익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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