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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 나를 불러주는 친절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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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동트기 전 맨 먼저 나를 불러주는 친구가 있다. 이른 새벽,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첫사랑 연인을 만날 때처럼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린다. 어둠을 가르며 천변을 천천히 걷는 나를 불러주는 친절한 나무가 있어서다.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한 꺼풀씩 벗겨주는 버드나무, 반려목이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 위태롭게 자란 나무는 그 자리에서 날 불렀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우듬지에서 들렸다. 그 옆엔 잘려 나간 그루터기에서 파릇파릇 싹이 돋아 안타깝지만 예쁘다. 봄을 업고 얼굴을 내민 용기에서 아름다움이 보인다. 발걸음이 느려져도 속삭이는 반려목은 “괜찮아, 힘내”라는 말로 기울어져 가는 나의 어깨를 부둥켜안아 주니까 고맙다. 

바람에 휘어진 나무껍질엔 강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물 쪽으로 가지들이 늘어져 있는 나무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오직 한결같은 모습에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행여 강물이 거꾸로 흐르지 않을지 강물만 바라보고 있다. 한결같은 모습에서 신뢰심을 준다. 그래서 사랑한다.

매일 천변을 걸을 때마다 어김없이 손을 흔들어 주는 버들가지. 나의 반려목도 잘려 나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전주천 개발사업에 또 잘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벌목 사업이 홍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방송에서 들었기 때문에 불안하다. 

강가에 심은 나무들은 비가 오면 빗물을 땅에 머금어 오히려 홍수 피해를 막아준다. 그런데도 뽑혀 나간 나무는 지게차에 잘게 부서진 가지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잘려진 나무의 생명은 전주천의 산 역사이며 내 발걸음 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봄이 파릇파릇 강물을 물들이고 있을 때면 얄미운 뻐꾸기가 울어댈 나무를 찾을 것이다. 갯버들은 뽀얀 털을 가득 달고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살랑 흔든다고 버들강아지라고 부른다. 20여 년 넘게 자란 나무가 베어지면 그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은 어디로 갈까? 

사람도 쓸모가 없다고 느낄 때 나무처럼 뽑혀 버려질 것이다. 점점 낡아지는 사람과 동행하기 위해 나무의 이름을 기억해 둘 일이다. 그리고 나무의 변화에 관심을 둔다. 

사계절 변화와 나무껍질의 변화까지도 기억해 둔다. 생동감이 있는 봄의 모습,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왕성한 성장, 누구에겐가 열매를 나눌 정성이 담긴 나눔의 풍성함은 가을이다. 겨울엔 눈이 가지에 쌓이지 않아도 바라만 보아도 고요함이 있다. 나무껍질을 만지작거리면 나무의 기쁨과 어려움을 감지한다. 

나무를 가슴에 품는다. 그냥 지나가면서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눈으로 인지할 때마다 대화를 나누면 어떨까. 나무가 치유되기보다 내 마음의 아픔이 위로받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인 나무의 왕성한 피톤치드로 나의 고독한 마음을 치유할 거라고 믿는다.

나무의 속마음은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간밤에 술에 취한 젊은이가 발로 등허리를 때렸다든가, 장애 노인이 혼자서 터벅터벅 걷다가 중심을 잃고 쓸어져 겨우 반려목을 붙잡고 일어서서 눈물 자국을 나이테에 새겼을지도 모른다. 비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려도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 주는 나무에서 나의 삶은 희망이 싹튼다.

전주천에 반려목인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초록 잎과 꽃이 세상을 아름답게 유혹할 때 난 웅크렸던 사랑을 애기똥풀에도 나눌 생각이다.

△이소애 수필가는 정읍 출생으로 1960년 ‘황토’ 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전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보랏빛 연가> 외 시, 수상 집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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