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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금요수필]노들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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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광호

KBS에서 저녁에 방영되는 '일꾼의 탄생' 프로그램을 보았다.

가수 진성이 팀장이 되어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의 삶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84세 배옥희 할머니네 '밭 고추 따기'에 이어 '큰아들 산소 벌초'까지 했다. 

벌초를 하면서 사연을 들어보니, 남편이 사망하여 홀로 지냈는데, 아들도 20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저세상으로 갔다는 것이다. 벌초를 마친 뒤 할머니는 남편 먼저 떠나보내고 의지하며 살던 아들이 묻힌 묘지를 보면서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의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갑자기 돌아가신 형님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32년 전 작은형이 12월 31일 전주 오목대 육교 밑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엔 어머니께 알리지 않고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눈치로 알았다. 작은아들의 사망을 접한 어머니는 한동안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저 먼 산만 바라보다 자리에 눕곤 하셨는데 언제부턴가 적적할 때는 혼자 흥얼거렸다. 무슨 노래인지는 몰라도 가끔 들은 기억이 났다. 어머니는 몸이 둔한 편이시어 즐거울 때도 춤은 추지 못하고 그저 좋아하며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로 푸셨다.

해마다 고향 은천마을에서는 8.15 광복이면 마을 숲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즐겁게 보냈다. 그때면 우리 가족도 그들과 함께했는데 어머니는 '노들강변'이란 민요를 즐겨 부르셨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나 매어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번이나 건너갔나/에헤야 백사장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 싣고서 가거라/

 

어머니는 가끔 "무정세월 한허리 칭칭 동여..."를 가물가물 부르는 것을 엿들었다.

평소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무상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노래를 부르며 위안으로 삼으셨으리라. 세월은 인생사와 아랑곳하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가니 남편도 작은아들도 잃어 더욱 신세를 한탄하면서 부터다.

등굽은 소나무 한 그루를 지키는 건 세월의 매정한 바람뿐이었으리라.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아들과 며느리는 직장 생활하느라 없으면 혼자 늘 집을 지켰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지난 추석, 산소에 성묘하고 작은형님의 묘소를 보니 마음이 짠하고 그날따라 더욱 어머니가 생각났다. 고향 집 뒷마루에 앉아 마이산 쪽만 바라보시며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 늘 누워서 말씀도 잘 안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소환되었다.

지난 6월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야외에서 송가인 콘서트가 있었다. 모처럼 큰아들이 예매 해주었다. 당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마음 졸였는데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무사히 콘서트를 즐겼다. 타령 노래를 부를 때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유일한 노래 <노들 강변>이 생각나 내 마음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셨더라면 함께 모시고 왔을 텐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 가난에 허덕이며 늦둥이 자식을 낳고 자식을 위해 헌신만 하셨던 내 어머니다. 늦가을 어느 날 어머니와 이별한 뒤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해마다 사계절은 뚜렷하여 봄에는 새움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열매 맺으며 가을이면 단풍 들고 겨울이면 '노들강변'이 소슬바람과 함께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하광호 수필가는 진안 출생으로 ‘표현’, ‘한국산문’에서 수필, ‘문예사조’ 시를 통해 등단했다. 옥조근정훈장, 진안읍민의장 애향장을 수상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회, 표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작가회, 진안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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