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라북도를 첨단, 생명, 문화의 거점지역으로 육성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국가통치권자의 발언이니 그 무게감은 굳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책사업에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준비돼 있지 않으면 실효(實效)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이다.
산업의 하드웨어가 시설과 장비라면 소프트웨어는 사람이다. 전라북도가 첨단, 생명, 문화 산업의 거점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우수한 인력을 대학이 양성해내야 한다. 작금의 지역대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와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른 대학들은 저마다 특성화를 내세워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자체와 대학, 산업체가 힘을 모아 ‘산학관커플링사업’을 십 년 이상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고, 글로컬사업, 지방대학혁신사업,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사업, 평생교육사업 등 정부의 주요 국책사업 공모에 전북의 대학들이 선정되어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도전의 필요조건이 위기이고, 혁신의 충분조건이 도전이라면 이미 전북의 대학들은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지하고 한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첨단, 생명, 문화는 전라북도의 대학들이 내세우고 있는 특성화 영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첨단산업(탄소, 2차전지, 수소 등)은 전북대학교와 군산대학교, 우석대학교가 앞장서고 있으며, 생명산업은 원광대학교, 문화산업은 전주대학교가 강점을 갖고 있다. 지역소멸이 국가적 난제로 떠오른 이때 지역의 대학들이 한정된 입학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나눗셈이 아니라 함께 상생하고 공진하는 곱셈의 교육공학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의 특성화 전략을 산업 중심으로 최적화하고 교육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최대한의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라북도 고등교육의 삼분지계를 제안한다. 전북대학교는 첨단산업을, 원광대학교는 생명산업을, 전주대학교는 문화산업을 각각 대학의 미래가치로 내세우고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해 연합대학의 형태로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중복되는 학과는 과감하게 거점대학과의 학점 교류와 공유캠퍼스를 통해 해소하고, 연합대학에 참여하는 학과 학생들에게는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인증하는 ‘지역인재’졸업장을 수여하며,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하는 인재매칭시스템을 지자체와 대학, 산업체가 함께 운영한다면 전라북도는 대한민국 어느 지역보다도 가장 선진적인 고등교육의 메카가 될 수 있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물론 교육 정책은 넓게 멀리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21세기에는 자칫 큰 그림만 그리다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교육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현실에 충실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때 명분과 당위가 선다. 대학도, 고등교육도 근대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지역소멸의 거친 파고를 극복할 수 없다. 전북의 미래는 지역대학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고등교육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대통령의 의지와 국가 정책의 방향성이 세워졌다면 이제는 지역대학들이 과감하게 화답할 때이다.
/이용욱(전주대학교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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