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타향에서]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Second alt text
곽영길 전북도민회중앙회장

얼마 전 경주를 여행하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화려한 유적의 규모가 아니었다. 시티 관광버스 안내원의 태도와 열정이었다. 그는 단순히 정해진 멘트를 읽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경주의 지리와 역사, 통일신라의 형성과 쇠락, 왕릉 하나하나의 의미를 마치 고등학교 역사 교사, 아니 그 이상의 전문성을 지닌 사람처럼 풀어냈다.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고, 버스 안은 짧은 이동 시간에도 유쾌한 역사 교실이 되었다. 설명이 끝날 때마다 감탄이 흘러나왔고, 일부 관광객은 “이런 안내라면 다시 경주에 오고 싶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관광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의 품격이 완성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경주는 면적이 넓고 자원이 많은 도시다. 서울의 두 배에 이르는 공간, 전주보다 훨씬 큰 도시 규모는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관광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불국사 인근의 오래된 숙박시설이 문을 닫는 현실 속에서도 경주는 멈추지 않고 관광의 질을 끌어올리고 있다. 석굴암과 다보탑, 왕릉과 고분군에 현대 조명 기술과 디지털 해설을 접목해 과거를 현재의 체험으로 바꾸고 있다.

특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첨성대는 그 상징성을 새롭게 해석한 대표 사례다. 매우 단순하고 자그마한 구조물이지만,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를 입혀 야간 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낮에 보는 유적이 지식이라면 밤에 만나는 첨성대는 감동이다. 경주는 역사를 박제하지 않고 살아 있는 콘텐츠로 되살려 세대와 국경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것이 관광 도시가 갖춰야 할 시대 감각이다.

전라북도는 어떤가. 우리는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전주 시티 관광’에 머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전북의 역사와 문화는 전주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김제의 지평선과 농경문화, 익산의 백제 유산, 완주의 자연과 생태, 임실의 치즈 산업과 생활문화는 모두 전주와 연결된 자산이다. 여기에 전주와 김제 사이의 모악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 문화, 모악산 일대에 공존하는 기독교와 천주교 유산, 증산도와 동학 전통까지 더해지면 이 지역은 대한민국 영성 철학의 보고라 할 만하다. 이 보석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지 못한 것이 우리의 한계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통합 전주 마케팅, 더 나아가 통합 전북 관광 전략이다. 관광은 점이 아니라 선이고, 선이 이어져야 길이 된다. 길이 만들어질 때 체류 시간이 늘고 지역 경제도 살아난다. 특히 익산·김제·정읍·전주를 잇는 KTX 접근성은 젊은 MZ 세대를 야간 관광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이다. 여기에 AI 기술과 글로컬라이제이션의 관점이 더해져야 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세계인이 이해할 언어로 풀어내는 상상력, 과거를 현재의 체험으로 바꾸는 기술이 필요하다.

나아가 익산의 백제 문화유산과 전주의 후백제 역사 스토리를 결합한다면 전주는 단순히 조선시대의 역사 도시에 머무르지 않는다.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반도 정신문화의 흐름을 보여 주는 상징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관광은 풍경을 소비하는 산업이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게 하는 산업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전북은 자원이 없어서 뒤처진 곳이 아니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마음이 발목을 잡아 왔다. 경주가 보여 준 자긍심과 준비된 사람의 힘을 전주와 전북은 겸허히 배워야 한다. 관광은 지역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 자신감과 품격이 담길 때 사람은 다시 그곳을 찾는다.

/곽영길 전북도민회중앙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경제일반전북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12기 수료식 성황

경제일반[건축신문고] 건축사가 만드는 작지만 큰 변화, 도시 주차의 미래

문학·출판어린 마음을 다독이는 동화, 백명숙 첫 동화집 ‘대단한 소심이’

문학·출판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최소한의 문학’ 발간

문학·출판[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황석영 ‘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