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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발견] 혈연의 성벽 넘어, 연대와 돌봄의 ‘가족구성권’을 묻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운영위원 성정숙 인터뷰 
240개 법령에 갇힌 ‘제도 밖 가족’... 박탈된 시민권과 돌봄의 사각지대 직시
정상가족 신화 깬 ‘생활동반자법’ 제안, “전북 인구 위기 넘어 환대 공동체로 나가야”

성정숙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운영위원(사회복지연구소 물결 공동대표)/사진=성정숙 위원 제공 

전통적인 4인 핵가족 모델의 해체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통계청 자료가 증명하듯 이미 우리 사회의 가장 주된 가구형태는 1인 가구로 재편되었으며 전북 역시 인구 위기 속에서 가족의 정의가 빠르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다르게 우리 사회의 규범과 제도는 여전히 혼인과 혈연이라는 협소한 ‘정상가족’의 성벽 안에 갇혀 현실과의 괴리와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을 키우고 있다.

가족은 더 이상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이름표가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실천으로서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고 어떤 형태의 관계라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즉 ‘가족구성권’은 현대 시민이 누려야 할 가장 본질적인 사회권이자 존엄의 문제다. 지난 20여 년간 이 권리의 실체를 연구해온 성정숙(56)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운영위원(사회복지연구소 물결 공동대표)과 최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상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시민권의 사각지대와 우리가 직시해야 할 가족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 형태의 다양성인가, 권리의 평등인가

정부와 지자체가 최근 ‘가족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등을 아우르며 포용적인 정책을 펴는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여전히 견고한 위계가 작동한다. 성정숙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현재의 가족다양성 담론은 이성애결혼과 혈연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유지하며 오히려 친밀성의 다양한 관계들을 ‘취약가족’으로 대상화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정책현장에서 다양성가족은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위기가족’으로 목록화 되어 시혜적 서비스의 대상으로만 열거될 뿐이다.

성 위원은 “가족구성권은 단순히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는 인정 투쟁이 아니라 국가가 은폐하고 낙인화한 다양한 관계성에 주목하여 시민적 유대와 결속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토대"라고 설명한다. 가족을 형태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민의 자격을 얻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깃발/사진=성정숙 위원 제공 

△240개 법령이 가로막은 ‘돌봄의 권리’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가족을 언급하는 조항은 무려 240여개에 달한다. 민법 제779조와 건강가정기본법이 규정하는 ‘혼인, 혈연, 입양’의 틀은 이 모든 법령의 기준점이 된다. 성 위원은 “이 협소한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권리없음’의 비시민으로 격하된다”며 그 실질적인 고통을 증언했다.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십년을 함께 산 동반자가 응급상황에서 보호자로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고, 상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시신을 인도받거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현실은 일상적인 차별이다.  그는 “권리 없음은 단지 혜택을 못 받는 차원을 넘어 구체적으로 겪는 고통과 분노, 좌절이다”라며 “일상적으로 세세하게 체험하게 되는 불편함과 불안감이며 핵심적으로는 명백한 사회적 경제 불평등”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상가족 프레임은 제도 밖의 사람들의 삶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과 생존의 몫을 사적인 가족의 영역, 특히 여성의 희생으로 전가하는 억압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 가족책임주의라는 비극의 굴레

성 위원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가족주의’가 빈곤층에게 더욱 잔혹한 굴레로 작용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표적이다. 국가가 시민의 생존권을 직접 책임지기 보다 가족을 경유하여 집행하려다 보니, 연락이 끊긴 혈연조차 ‘간주부양비’라는 명목으로 수급자격을 박탈하는 근거가 된다. 과거 송파 세 모녀 사건부터 최근 수원 세 모녀 사건까지 이어진 비극들은 결코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성 위원은 “가족에게 생존과 복지가 제도적으로 전가되고 가족이 운명공동체로서 강조될수록 가족이 함께 동반자살하거나 자신의 돌봄 몫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나 부모를 살해하는 비극적 상황을 막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가족구성권 담론이 국가의 책무를 사적인 가족의 영역에서 공적인 사회의 영역으로 되찾아오는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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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구성권연구소 2024년 여름 운영워크샵 /사진=성정숙 위원 제공 

△‘생활동반자법’, 서로 돌보는 사회를 위한 안전망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생활동반자등록법’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이 법은 성적 지향이나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함께 살며 돌봄을 수행하는 관계를 법적으로 승인하려는 시도다. 단순히 동성혼 법제화 논의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유대를 맺고 서로 돌보는 시민들의 다채로운 관계를 인정함으로써 생애 과정에서 연결과 유대를 의미화하고 확장하는 제도적 완비”라고 정의했다. 비혼 동거와 노년의 상호 돌봄 관계, 친구 간의 주거 공동체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돌봄 관계들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적 조건들을 충분히 확보할 때 비로소 무연고 사회로의 진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지역, ‘가족’을 넘어 ‘환대’의 공동체로

성 위원은 전북지역 사회가 직면한 인구 위기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조언을 건넸다. 혼인률과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늘리겠다는 식의 과거 인구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위기 현상으로만 명명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관계와 친밀성의 실천을 어떻게 인정하고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지역사회의 문화적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전형적인 가족과 효(孝)만 예찬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옥죄는 가족으로부터 멀어질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며 “가족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이웃과 같이 돌봄을 나누는 ‘가족 너머의 관계’ 에 대한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가족규범에 기대어 화목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서로를 돌보자는 제안이다. 인구감소를 정상가족을 재호명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북에 정착하는 이주민들이 어떤 형태의 가구로 살아가든 지역공동체의 주민으로서 환대하고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공유하는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전북이 다양한 방식의 상호의존과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환대의 조건들을 만들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곳에 정주하며 새로운 삶을 일궈나갈 것“이라고 제언했다.

가족구성권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혈연의 성벽을 허물고 연대와 돌봄의 손을 잡는 사회. 성정숙 위원이 말하는 ‘가족의 재발견’은 바로 그 평등한 유대와 새로운 시민적 연합의 시작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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