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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전북여행] “힐링되는 역사여행 고창 무장읍성으로 떠나볼까?”
[뚜벅뚜벅 전북여행] “힐링되는 역사여행 고창 무장읍성으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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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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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행을 하기 딱인 곳. 자연 속에서 힐링하기 좋은 곳을 소개합니다.
그냥 걷기에도 무리가 없고 너른 공간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듯 고창 무장읍성 여행 어떠세요?
무장읍성은 조선시대의 성곽이자 동학농민운동 당시 고부 봉기로 군수 조병갑을 몰아내고 해산한 후 보복하듯 이어진 관군들의 횡포에 정읍, 부안, 고창 일대의 농민군과 동학세력이 무장읍성에 모여 거사를 시작한 역사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제가 떠난 무장읍성으로의 여정을 함께 해요.

 

과거의 모습이 보존된 곳

무장읍성은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 있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성곽인데요.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고려시대까지 무송과 장사의 두 고을이었던 것을 효과적인 왜구의 방비를 위해 1417년에 합하여 두 고을의 첫 자를 떼어 `무장`이라고 하였다고 하네요. 전라도 여러 고을의 장정과 승려가 동원되어 성벽을 쌓고 성 위에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만들고 옹성을 갖춘 남문과 동. 북문을 세웠다고 해요.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하여 무장진을 삼을 때 두 고을 중간 지점인 이곳을 읍치의 중심지로 삼고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요. `무장읍지`에는 `병마사 김저래가 승려와 백성 2만여 명을 동원하여 축성하였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읍성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진무루라는 2층 누각으로 지어져 있는 건물이었는데요. 이곳은 무장읍성이 복원되기 전 무장초등학교의 교문이었다고 하네요.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은 이런 멋진 교문을 드나드니 자랑스러웠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무루를 들어서면서 우측으로 바라보니 관광안내소가 있네요. 우선 그쪽으로 직진해봤습니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고창여행에 도움되는 책자를 안내받아 얻었어요. 무장현 관아와 읍성에 관한 페이지를 보며 발걸음을 옮겨보네요.

무장읍성 관광안내소에는 문화관광해설사님이 상주해 계셔서 해설해 주신다고 하니 필요하신 분은 문의하세요.

진무루를 먼저 들러보았습니다. 진무루의 단청은 색조가 참 아름다웠는데요. 청룡과 황룡이 나뉘어 그려있더라고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텐데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겠죠?

진무루와 연결된 곳인데요. 옹성위에서 멀리 시야를 두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와 골목골목을 살펴보게 되는데 읍성 둘러보고 근처 카페에서 무장읍성이 보이는 자리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여행의 여운을 느껴봐도 좋겠더라고요.

역시나 완만한 잔디언덕에 오래된 수목들이 멋스럽다 했었는데 이곳은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했던 촬영지였네요.

무장읍성의 연못에는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지만, 울타리가 있어 가깝게 다가가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그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겨봤어요. 무장읍성 연못은 2015년 발굴조사에서 우물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직사각형의 형태로 자연석 석축으로 쌓아 만들어 연못 중앙부에 사각형의 섬이 있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사상에 따라 원래 원형이었던 것이 후대에 와 변형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하네요. 연지 중앙부에는 정자의 기초로 보이는 초석이 발견되었고 연못 안과 밖을 연결하는 나무다리의 흔적도 확인되었다고 해요. 지금의 모습은 발굴조서 결과를 토대로 2017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연못은 사두봉 전설에 나오는 용소이며 예로부터 이곳에서 용이 뿜는 김이 안개처럼 솟아 나와 고을을 뒤덮으면 경기도 좋고 그 기운으로 고을 사람들이 부귀를 누리게 되고 많은 인걸이 배출되어 무장현의 세가 매우 드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을의 걱정과 근심을 막기 위해 뱀의 머리에 해당하는 사두봉을 깎아 연못을 메웠고 이로 인해 무장에서 인물이 나지 않을 것을 염려해 사두봉 높이만큼의 느티타무를 심고 개구리 연못을 만들어 고을이 계속해서 번영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라 하네요.

관광안내소 뒤쪽에 있는 읍취루는 무장현 관아에 딸린 누각인데 이곳은 관청손님을 맞고 연회를 했던 곳이라 하네요. 누각으로 올라서면 시원스런 바람이 오가면서 바로 앞에 연못과 성곽이 눈에 들어옵니다. 편안하게 머무르면 좋을 장소였습니다.

 

현재에서 역사를 되새기다

무장객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조선시대 때 무장에 내려온 관리나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본관에는 궐(闕) 자를 새긴 나무패가 있는데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과 지방 관리들은 이 패에 경의를 표하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도 이곳에 모여 축하의식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선조 14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본관, 좌익현, 우익현 그리고 몇 개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좌우 건물의 지붕이 본관보다 낮은데 그 이유는 격을 낮추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객사 뒤쪽으로 돌아가면 건물과는 떨어져 위치한 굴뚝도 볼 수 있고 객사로 오르는 계단에는 눈에 띄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부조가 있었는데요. 특히 섬세하게 표현된 꽃 화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객사 마루는 누구나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었는데요. 눈앞에 펼쳐지는 마을의 풍경과 바로 앞 오래된 수목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시원스럽게 감상할 수 있어 너른 공간에서 여유를 가지는 이 시간이 힐링이구나 싶어 매우 좋았습니다.

객사 옆쪽에는 수십 개의 송덕비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선정을 편 원님과 공덕이 있는 분들의 비인데요. 각처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여기 모아 놓은 거라고 합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해 글자가 뚜렷하지 않은 것들도 있고 특히 이 중 쇠로 만든 철비는 조선조 후기의 몇 개 안 남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읍지에 김유희 현감비도 철비로 나오는데 일본 강점기에 군수용으로 뽑아간 듯하다고 하네요. 그리고 현감비의 아래 장식된 거북이 머리가 비틀어져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이는 백성들이 비를 세워 주면서 미운 구석이 있어서 일부러 그랬다네요. 정말 그런지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보세요!

송덕비 옆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서니 그늘도 시원하였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보니 그 또한 시야가 상쾌해짐을 느끼게 합니다. 사진으로 담고 싶은 하늘의 풍경이었습니다.

연못이야기에서 사두봉을 언급했었는데요. 사두봉은 북쪽 성벽에서 읍성 중앙 쪽을 향해 남쪽으로 뻗어 오다 객사 뒤쪽에서 우뚝 멈춘 구릉인 곳을 말한다고 합니다. 사두봉에 얽힌 전설은 바로 성내리 사두봉과 느티나무의 이야기인데요.
무장현은 동북방으로 황새의 형태인 한제산이, 읍성 안에는 큰 뱀의 형태인 사두봉이, 읍성 남쪽 남산이 개구리의 형국을 이루고 있어 황새와 뱀 그리고 개구리가 가까이에 먹이를 둔 셈이어서 늘 기근이 없이 날로 번창해 왔다고 하는데 매번 안진머리 장날이면 젊은이가 한 사람씩 죽어가는 묘한 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해요. 어느 날 시주를 얻으러 온 도승이 나타나서는 황새가 뱀을,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니 살인이 그칠 새가 없을테니 사두봉을 깎아내려야만 황새와 개구리만 남아 싸움이 없고 살인이 그칠 것이라 했지만 사두봉을 깎아내리면 예전처럼 번창하는 기운이 없어질 것을 염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감은 도승의 말처럼 사두봉을 깎아내리고 사두봉 좌우측 용소를 메워버리니 후에 장날 사람 죽는 일은 없어졌지만, 무장의 기운이 없어질 것을 걱정했는데 지나던 도사가 일러주기를 사두봉에 나무를 심어 그 나무가 예전사두봉 높이만큼 자라게 하고 개구리 연못을 만들면 뱀의 먹이가 생기게 되어 무장고을을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예언에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개구리 연못 자리는 지금의 무장장터이고 객사 주변의 나무들은 그때 심은 거라 하네요. 객사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느티나무에 그런 사연이 있다니 나무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무장객사 옆길을 사이에 두고 작은 연못이 있고 정자 주변에 연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곳도 복원된 곳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요.
무장읍성내에는 객사 뒤편 사두봉을 중심으로 뱀의 눈처럼 좌. 우에 2개의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읍성철폐령때문에 성곽이 헐리고 읍성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메워지고 2004년까지 무장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사용되어 왔었는데 2009년 연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위치와 형태가 확인되어 운동장의 흙을 걷어내고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연못 복원 후에 이곳에 물이 고이자 100여 년간 잠들어 있었던 연꽃의 씨가 발아하여 놀랍게도 그 모습을 드러냈고 부들과 부레옥잠 등 수 많은 수생식물도 살아났다고 하네요. 연못이 복원으로 연꽃이 다시 피어나고 생물들이 살아나는 것이 무장지역의 아픈 역사 속에서도 잠들어 있다가 다시 소생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기억을 간직한 이 연못에 작은 돛단배가 바람에 둥실 흔들거리는데 한낮 더위를 그 풍경에 잠시 잊게 되네요. 여기서 쉬었다 갈까요? 여기 앉아서 책을 읽거나 시 한 수 읊고 싶은 풍경이었습니다.

무장동헌쪽에서 바라보는 풍경인데요. 이 길은 제가 좋아하는 길이랍니다. 느티나무의 푸름과 파란 하늘과 굽이진 멋스러운 길입니다.

무장동헌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조선시대의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아의 중심건물인데요. 1914년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무장현 동헌으로 사용됐었다고 하네요. 조선 명종 20년에 건립되어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무장수비보병대 사무실로, 광복 후에는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대변해 주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많이 변형되어 있던 것을 1989년 고증을 거쳐서 원형으로 복원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하네요. 삼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취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요.
동헌의 당호인 취백당의 `취`자는 소나무처럼 푸른 기상을, `백`자는 모래처럼 희고 결백한 정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뜻은 이곳에서 정무를 보는 현감들이 소나무처럼 무르름을 간직하고 모래처럼 청백하게 정무를 펼치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해요.

동헌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또 한 번 휴식을 취해보면서 하늘도 보고 하는데요. 역시 이곳도 탁 트인 시야가 한여름 오후의 더위를 살짝 식혀주는 것 같았습니다.

무장읍성의 성곽 따라 산책을 하시는 주민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곳을 누구나 쉽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읍성과 마을 사이로 멋스러운 소나무를 곁에 두고 걷는 것은 평온해지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걸음을 옮겨 사창지라는 곳에 도착했는데요.
사창은 백성들로부터 걷은 세금을 관리하는 일종의 창고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전쟁 중에는 군량미를 보관하는 중요한 군사 요충시설이었고 무장읍성의 사창터는 지금 현재 건물은 복원되지 않았으나 2015년 발굴조사로 드러난 건축물 기초유구를 중심으로 2017년에 지금의 형태로 정비되었다고 해요.

여행하게 되면 작게나마 어떤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요. 이번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적이었던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게 된 현실에서 스스로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보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지요. 여기 어때요? 역사의 한 공간에서 자연과 호흡하고 느끼며 걸음걸음 역사를 돌아보며 함께 걷는 여정이었던 귀한 시간을 보내 보는 것 말입니다. 사회적 거리도 동참하면서 답답했던 공간에서 잠시 벗어나 힐링의 장소로 떠나 보는 것~추천드립니다.
​/글·사진 = 권미선(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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