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0-09-21 20:58 (월)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4)옥정호에 잠긴 서러운 고향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4)옥정호에 잠긴 서러운 고향
  • 기고
  • 승인 2020.09.10 20:1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양요정과 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옥정호 전경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양요정과 고지도 1872년 지방지도, 옥정호 전경

“고향이란 말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요. 저 옥정호 안에 내 고향이 있어요. 어릴 적 추억이 생생한 모든 게 수장되면서 고향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지요. 그 심정을 말도 다 못혀요. 여기 호수를 내려다보는 양요정도 14대조 할아버지가 지은 건데, 우리처럼 섬진댐을 만들면서 산날 동쪽 끝트리 물속 자리에서 수몰되기 전에 옮겨온 거요.” 임실군 운암면 간좌터라 불렸던 고향을 떠나 인근마을에 정착한 최종춘(1938년생)은 선조가 지은 정자인 양요정을 어루만지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양요정(兩樂亭)’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에서 요의 2자를 따온 것으로 정자를 지은 양요당 최응숙의 호이기도 하다. 최응숙은 성균관 진사로 임진왜란 의주파천 당시 선조를 호위한 공신이었으나, 당파싸움을 피해 낙향하여 운암에 살면서 물좋고 산좋은 위치에 양요정을 지었다. 이후 고향을 떠난 수몰민과 같은 신세가 된 양요정은 옥정호를 내려다보는 곳으로 1965년 옮겨져 자리하게 되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7호가 되었다.

옥빛 우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옥정호(玉井湖)는 인근 지명인 옥정리에서 유래했다. 일설에는 조선 중기에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머지않아 이곳이 맑은 호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고도 하며 섬진강댐 준공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운암호로 불린 이름을 옥정호라 칭하라는 지시에 따라 개칭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옥정호는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신평면과 정읍시 산내면 4개 면의 마을을 품고 있다. 면소재지가 있던 잿마을을 비롯하여 간좌터, 구석물, 어리골, 용소, 도마터 등의 일부는 정겨운 이름만을 남긴 채 꿈속에서나 찾아갈 수 있는 마을이 되었다. 옥정호는 운암호, 칠보댐, 갈담저수지, 섬진저수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곳으로 지금의 섬진강댐이 품은 인공호수이다. 인공호수가 된 기원은 일제강점기 인근의 곡창지대에 농업용수를 위해 축조된 ‘운암제(雲巖堤)’이다.

곡창지대가 있어 대표 수탈지역이었던 동진강 유역은 강바닥이 얕고 상류와 하류의 지형적 높이 차이가 커 물을 충분히 가둬둘 수 없었기 때문에 늘 수자원이 부족했다. 1924년 심한 가뭄이 들자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 쪽으로 돌려 농업용수로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승인하에 동진수리조합을 설립하고 1925년 운암제 축조에 나섰다. 이후 1927년 완공하여 이듬해부터 저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이 수몰되어 타향을 떠도는 수몰민이자 실향민이 생겼다.

당시의 수몰로 600여 호가 피해를 입고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했다. 피해주민들이 결성한 상조회와 동진수리조합 간의 충돌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준공이 되었고, 당시 식량 증대만을 부각하며 홍보한 기록과 문제를 제기한 기사들만 남아있다.

그렇게 건설된 운암제 물은 일대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었고 남는 수자원을 이용하고자 1931년 정읍 산외면 종산리에 주관사가 바뀌어 운암수력발전소를 준공했다. 일제의 대륙침략 전쟁으로 부족해진 식량과 군수물자의 증산을 위해 남한 최초의 유역변경식 다목적댐을 만든 것이다. 섬진강의 물을 수력발전에 이용하기 위하여 이후 확장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인 1944년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재차 중단되었다가,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 의하여 운암제 아래 섬진강댐을 1961년 착공하여 1965년 12월에 완공된다.
 

망향비와 섬진강다목적댐 준공식 사진.
망향비와 섬진강다목적댐 준공식 사진.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여 구경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로써 전력자원이 빈약한 호남지방의 주요 동력원이 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시설을 갖추게 되어 치수와 이수를 어우르는 다목적댐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수몰지구가 확장되면서 운암면 용운리 외안날과 운정리 수암마을들은 배가 아니면 다닐 수 없는 뭍섬 마을이 되었으며 이주민의 수는 2786세대 1만9851명로 늘어났다. 수몰민 이주는 자유이주와 현지잔류, 3개 지구의 집단이주로 1962년부터 4년에 걸쳐 실시되었다.

3개 지구의 집단이주는 부안의 계화도 간척지와 동진 폐유지, 안성의 반월 폐염전에 이주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당시 집단이주 예정지의 개답공사가 댐 준공 후 10년이 훌쩍 넘은 뒤에야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수몰민의 상당수가 이주 예정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타향을 떠돌다 귀향하여 댐 인근 지역에 재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경제발전이 우선이었던 정부가 수몰민의 정착을 살뜰하게 살피지 못했고, 더욱이 일제강점기 때 잘못 측량된 자료를 토대로 재정착지를 마련해준 탓에 댐 인근의 터가 1968년 대홍수로 다시 물바다가 되는 시련까지 겪었다. 이들 수몰민들이 타지와 고향인근에서 정착하는 과정 중에 겪은 고생은 말할 수 없었고, 그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가을빛이 물들어가는 옥정호와 아름답게 어우러진 양요정 앞에는 “희로애락 함께 하던 이웃들과 뿔뿔이 흩어지는데 설움은 삼켜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멈출 수 없었다”라는 수몰민의 애환이 새겨진 망향비가 망향탑과 함께 세워져 있다. 그 사라진 흔적을 가슴에 새기는 망향의 슬픔이 서럽고 애잔하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달라질 명절을 맞게 되는 우리의 추석도 어떤 회한을 남기게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수해를 입은 곳에 따스한 손길을 전해주어 아픔과 고충을 덜어주고 위로를 건네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강상구 2020-09-11 11:56:56
잘 읽었습니다.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지가 전국에 많이 있는데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현지 주민들은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군사정권시절에는 정부에서 추진하면서 보상도 제대로 못받고 이의제기가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요. 저희 고향에도 주암댐을 건설하면서 아예 고향을 떠난 사람도 있답니다. 벌초철이나 명절에는 배를 타고 댐 건너편 산소를 가는 경우도 있지요.. 저희 선산은 다행히 산중턱에 새로 도로를 건설하여 접근이 가능하지만 전답은 수몰되었지요 ............

최순자 2020-09-11 10:18:09
옥정호가 섬진댐땜에 생간게 아니었네요. 그 안에 있는 실향 수몰민의 고향을 생각하니 마음도 아프고 이번 추석도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