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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미국인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며칠 전 과천시 공무원 네 분이 필자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벌링턴시와 자매결연을 맺기 위하여 오셨다. 앞으로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한국의 고등학생, 지도교사 등이 내년 1월부터 벌링턴에 오게 될 예정이다. 앞으로 국제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타 도시들도 과천처럼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미국인과의 접촉이 더 활발해 질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인과 미국인이 어떻게 다른가 필자가 평소에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 본다.첫째는 친절이다. 대체로 미국인은 사람을 마주치면 동네에서든 일하는 곳에서든 모르는 경우에도 웃는 얼굴로 지나가거나 또는 "하이"라는 말을 던진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 건넨다. 특히 작은 도시로 갈수록, 또한 북부보다 남부에서 그렇다. 미국인이 친절하다고 해서 한국에서 생각하는 친한 친구의 개념으로 이해했다가는 나중에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친절은 이 사람들의 몸에 밴 습관이고 문화이지, 상대방에 대하여 큰 호감을 갖고 있다는 표시는 아니며, 또한 호감을 갖고 있다 해도 공과 사는 분명하게 선을 긋기 때문에 웬만한 청탁은 들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실망하기 쉽다.둘째는 프라이버시다. 이곳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호기심이 있겠지만 물어보는 것을 꺼린다. 특히 결혼관계나 재산관계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는 것은 실례다. 한국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는 집이 얼마나 큰지, 가격이 얼만지 스스럼없이 묻는 경우가 있다.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언제 할 것인지 묻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여행이나 취미, 영화나 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다.셋째, 초대의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는 손님을 초대했을 때 음식을 얼마나 잘 차렸는지, 접대한 술이 얼마나 고급인지, 또한 손님들은 얼마짜리 선물을 마련해야 하는지 등에 신경을 많이 쓴다. 미국의 경우는 초대 받았을 때, 맨손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주인도 거기에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이다. 미국 사람들은 모여서 시간을 같이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 자체를 즐기며, 무엇을 얼마나 잘 차렸는가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넷째, 초대에 대한 답례가 다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을 만날 때 과도할 정도로 대접을 하거나 선물을 하면서, 상대방도 그만큼의 대우를 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하더라도 보통 감사 카드로 마음을 전하는 정도이지, 한국 사람처럼 받은 것을 기억하고 똑같은 수준으로 돌려주는 것은 드물다.다섯째, 미국에서는 모든 일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즉, 작게 시작해서 문제점을 고치며, 좋은 점은 더 강화하면서 점차 크게 만든다. 벤처기업이 좋은 예이고, 취미생활을 위한 문화 조직도 마찬가지다. 도시간의 문화 교류에서도 미국 측은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점차 확대할 것을 바라지만, 한국측은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길 원하는 경향이 있다.여섯째, 미국은 자발적인 활동을 중시한다. 미국의 경우는 자매결연을 맺을 때, 문화교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국제 교류에 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민간위원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계획 및 준비는 물론 파견단 구성까지 스스로 한다. 시청의 관료들은 필요에 따라 도와주지만, 교류와 관련해서 직접 나서거나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은 시의 사업으로 시작하면서 학부모나 지역유지들이 문화교류에 앞장서기 힘들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 반영이 미미하다.각 국가의 역사와 문화가 다르므로 나라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물론 다르다. 어느 쪽의 사고방식이 옳고 그른가를 가릴 수는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공연한 오해를 하지 않으면서 더 쉽게 소통하고, 지향하는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병수 (미국 엘론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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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2 23:02

[금요칼럼] 브레이빅의 가족

어린 아이들 머리통에다 총을 겨눠 쏘아죽여 놓고도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는 놈. "사람은 죽였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라고 내뱉었다는 녀석. 신문을 보니 그에게 극우민족주의자, 정신병자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심드렁하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며 넘어갔다. 먼 나라의 사건들은 대개 그렇게 지나간다. 이 땅에서도 힘겹고 다급한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까닭이다.얼마 뒤 그 아비라는 사람이 "그를 내 아들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살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문득 숨이 막혔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서구문화와,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문화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짓을 했기로서니 제 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야 한다고 차갑게 내뱉은 아비를 보면서, 잔인한 서양사회의 속살을 엿본 듯했다.동양의 전통사회는 달랐다. 춘추시대 중국 땅에 제 아비가 이웃집 양을 훔친 것을 관가에 고발한 자식이 있었다. 그 나라 임금이 자랑스레 '우리 백성들은 이렇게 정직하다' 라며 공자에게 뻐겼다. 공자가 이를 두고, "우리 동네의 정직함은 아비가 자식의 허물을 감춰주고, 자식이 아비의 죄를 숨겨주는 데 있소이다"라고 답했다는 고사가 그 예다.(〈논어>)서양에서는 고독한 개개인들이 모여 계약을 통해 사회를 이룬다고 본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人間)이란 말에서 보듯 '사람의 사이', 즉 관계를 사람다움의 핵심으로 여긴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차마 아비가 제 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야 한다'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자식이 없는 아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문득 범죄자가 준비해두었다는 성명서 속에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라는 대목이 눈에 밟힌다. 또 "그의 글 속에는 깊은 고독감을 찾아볼 수 있다"라는 분석들에도 눈길이 간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을 그리워했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가부장이 온 가족을 지배하는 봉건적 가족주의를 흠모한 것이 아니라 (이젠 동아시아에도 해체되고 있긴 하지만) '가화만사성'이라, 부모의 자애와 자식의 효행이 빚어내는 가정의 화목을 그리워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지금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를 두둔하려거나, 죄의 탓을 제 아비에게 돌리려함이 아니다. 다만 그의 성장과정에 있었을 지독한 고독과 단절된 환경에 주목할 따름이다. 스웨덴의 한국인 교수 최연혁에 따르면 "북유럽에는 범인인 브레이빅처럼 이혼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전체 아동의 15%에 이를 정도로 가족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가족해체의 증가가 아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결핍, 소외아동들의 정서불안을 낳아 '제2의 브레이빅'을 양산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라던 지적에 공감한다.지금 이 땅에서도 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지난 겨울, 이혼 가정에서 성장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홀로 굶어죽었던 것은 그 한 상징이다. 이웃 일본에는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하는 직장(直葬)이 대도시에서는 30%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도 23%에 달하였고, 홀로 죽어가는 '고독사' 역시 꼬리를 물고 있다. 서로에게 이웃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예로부터 환과독고(鰥寡獨孤)라, 홀아비 홀어미 독거노인, 그리고 고아는 국가가 거둬야할 최우선 복지대상이었다. 이게 맹자의 말이니 2300년 전의 일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도 정치의 급선무는 언제나 가족의 보전이었다. 반면 지금 이 땅은 가족에 대해 무관심하다. 국가나 국민이나 모두 가족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듯하다. 허나 가족은 자연적인 제도가 아니다. 가꾸고 보살펴야 겨우 살아남는 인공적인 공동체다. 전쟁과 기근, 경제적 위기에 가장 쉽게 파괴되는 것이 가족이었다.지금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사태는 국가가 보장하는 물질적 복지만으로는 인간 개개인의 고독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여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질곡으로 여기고서 탈출하려 했던 가족이, 실은 돈으로는 환산하지 못할 큰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배병삼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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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5 23:02

[금요칼럼] 보이지 않는 도시들

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칼비노(1923~1985)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a invisibili)'이라는 책이 있다. 1972년에 초간된 이 소설이 나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관념을 크게 전환하도록 만든 책이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 중에 들렀던 도시들을 쿠빌라이칸에게 묘사하며 들려주는 내용으로 된 이 작은 책은 그 소제목의 구성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체 아홉 개의 장으로 나누어 첫째 장과 마지막 장에 각각 열 개의 도시, 나머지 일곱 장에는 각기 다섯 개의 도시를 넣어 전체 쉰 다섯의 도시를 설명하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소제목에는 도시, 기억, 욕망, 싸인, 이름, 망자, 하늘 같은 단어들을 반복시키면서 숫자들을 거꾸로 붙여, 목록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흥미를 유발시킨다.책의 곳곳에는 우리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상상과 성찰로 이끄는 내용이 즐비하다. 인상 깊은 몇 가지 문장들을 발췌하면, '자이라'라는 도시를 설명하면서 이 도시에 있는 높은 탑이나 형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하며,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단호히 얘기한다. 즉 도시의 가치가 위대한 건축물 몇몇에 있는 게 아니라 "거리의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 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황제에게 강조하며 설명한다. 도시의 인상을 이야기 할 때 거들떠 보지 않는 우리의 작은 일상에, 실은 도시의 가장 큰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대개 그 도시에 있는 상징적 시설물들을 통해 얻는 인상인데,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민의 삶과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사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으며, 서울시가 자랑하는 서울 숲이나 한강 르네상스 시설을 이용한 적도 없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소개되어 있는 그러한 풍경은 이탈로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순전히 이미지며 환영일 뿐이다.도시는 건축물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도시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구성된 사회다. 그래서 누구나 거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도시계획의 사명이라면, 그 공간은 건축물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있다. 건물의 내부는 개인이나 일부 집단을 위한 시설일 뿐이며, 도시민이나 방문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 도로나 광장공원 등이 도시에서 더욱 요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채워져 있는 부분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그 비어있는 부분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잘 인식되지 않지만, 우리의 도시적 삶과 공동체는 그런 공간에서 결정적으로 형성된다. 이를 두고 이탈로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라고 했다.그렇다면 도시를 만들거나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비움의 공간을 설정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계획도에서는 비어져 있는 공간은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모든 부분은 현란한 색깔로 채워져야 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도로는 일정한 폭의 붉은 선이어야 하며 이를 표현한 그림은 20년 혹은 50년 후 목표연도의 환상적 미래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을 도시의 청사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목표가 실제로 완성되어진 도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다 허황된 가정이었고 거짓이기 일쑤였다. 미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며 많은 부분을 비워 남겨 놓는 일이 더 솔직한 계획이었을 게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적 삶이며, 그 삶은 바로 우리 동네 골목 안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풍경이어서, 이 풍경을 만드는 일이 도시의 목적이라는 것을 이탈로칼비노는 누누이 이야기하며 우리의 잘못된 도시관을 바로잡을 것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이 더운 여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도시를 발견하며 우리 삶을 사유하는 즐거움을 누리실 것이다./ 승효상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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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9 23:02

[금요칼럼] 도시 브랜드와 글로벌 경쟁력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국가브랜드 선언을 하고 이듬해 초 국가브랜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간 다양한 활동으로 국민들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오는 8월말엔 국가브랜드 종합박람회가 열려 세계에 자랑할 브랜드 상품과 박세리, 김연아 등 한국을 빛낸 인물들이 총망라될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국가브랜드가 올라가면 국가 신인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올라가 이로인한 국부(國富) 창출이 엄청나다.얼마 전 밤잠을 설치게 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의 성공은 우리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고 국가브랜드에도 큰 공헌을 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초대형 국제 행사들이 줄줄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니 우리의 저력에 자긍심마저 느껴진다.최근 중국은 조선족 아리랑을 등재한다하여 우리를 황당하게 했다. 이들은 벌써 6~7년 전 부터 면밀하게 작업을 해왔고 아리랑뿐 아니라 혼례 풍습 등 여러 세속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는 말한다. 바야흐로 눈에 보이는 영토만 전쟁이 아니다. 연성(軟性) 국토인 '문화영토' 확보를 위한 싸움이 더 치열할지 모른다.우리 경제와 외교력이 크게 신장한 만큼 국가브랜드위원회 혼자서만 한국을 알릴 것이 아니라 지자체도 도시 브랜드 위원회를 결성해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면 어떨까. 사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곧바로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은 못된다. 아리랑 가락을 피리로 부는 것도 좋지만 오보에나 클라리넷으로 알릴 수 있다면 전파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물놀이 역시 한국 악기이지만 세계의 누구도 연주하지 않는다. 세계 공통 문법은 오케스트라, 오페라, 합창, 발레다. 이들이 우리 것을 즐겨 연주할 때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과연 우리가 어떤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그런데 우리 산업에서는 오랜 기간의 수입을 통해 자동차, 조선, 스마트폰 등 그야말로 세계 브랜드의 상품들이 크게 늘어났다. 전자제품만 해도 소니를 부러워했던 시절이 오래전에 지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유독 예술계만큼은 전통과 현대가 서로 동떨어진 듯 서양 예술의 재현에만 너무 많은 시간과 기회를 뺏기고 있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우리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을 눈씻고 볼 수가 없고 오페라도 국민들에게 관심을 끌고 지속적인 공연이 가능한 레퍼토리가 어디 있는가.이제는 모든 예술 분야가 어떻게 하느냐 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때이므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것을 뛰어넘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 고장의 토산품이나 자연경관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포츠에서처럼 누구나 참여하고 공인하고 함께 즐기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옹고집으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라 외치기만 하고 전통의 재발견, 재해석으로 가공하지 않은 채 묻어만 둔다면 아리랑에 이어 많은 것을 뺏기게 된다.스포츠와 문화가 세상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키워드다. 그래서 21세기 총성없는 전쟁의 시대라 말하지 않는가. 결국 브랜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체라면 우리보다 상품을 사주는 입장에 대한 배려의 시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일전에 읽은 천재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의 '여럿이 한 호흡'은 모두의 성공을 위한 협력 기술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야 말로 대통령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호흡으로' 성공한 명작(名作)이 아닐까.도시 발전을 위해 지역 경계를 허물고 유연한 네트워크를 결성해 눈을 부릅뜨고 도시 경쟁력을 위해 브랜드 싸움을 펼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음악평론가 탁계석 회장은 경희대 음악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 한국음악협회 부회장과 국립극장세종문화회관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문화포럼 위원경기도 문화예술전문위원한류문화산업포럼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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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2 23:02

[금요칼럼] 대학교육, 값 뿐만 아니라 질도 보자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로 모든 국민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이미 무역, 경제 분야에서 세계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문화면에서의 한류열풍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 국민이 힘을 합해 노력해야 할 다음 영역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학교육 개선이 아닌가 싶다.최근에 한 세계대학평가기관에서 나온 대학평가를 보면 서울대가 50위를 기록하고, 대부분 상위대학들이 100위권 안팎을 차지한데 그치고 있다. 이것이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단면을 보여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첫째,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건실한 대학이 많이 존재해야 한다. 한국 휴대전화가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폭넓은 내수시장이 필요했듯이, 노벨상을 타거나 세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즉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수한 대학이 많이 있어야 한다.대학은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정보산업에 필요한 인력 창출에 도움이 된다. 과거에는 제조업이 고용창출에 효자노릇을 했지만, 21세기에는 신기술의 도입으로 제조업에서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대학이 지식정보산업에 종사할 인력을 더 많이 키워야 함을 의미한다.대학 수의 증가로 필요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필요한 학력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 까지 인력을 수입하는 경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짜 문제는 고학력이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대학 4년동안 전공 공부 무시하고 고시합격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만 매달렸다면 이것은 급변하는 미래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이나 자격증의 보호아래 경쟁이 없는 무풍지대에서 안일을 도모하는 졸업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둘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배움에 대한 욕망이 큰 한국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축복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문물을 빠른 시일내에 배워서 물질적 경제 성장을 짧은 시일내에 이뤘다. 한국이 이제는 지식산업에서 한 수 가르칠 입장이 되려면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토론과 비평을 통한 스스로 깨닫는 교육을 하려면 먼저 교수 1인이 담당하는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셋째, 이런 조건을 갖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에서처럼 대학의 간부들이 자신이 이끄는 대학의 비전을 제시하고 뜻있는 이들을 감동시켜 기부금을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사회공헌 가능성을 감안하면 정부의 재정지원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조건 등록금의 반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학생이 처해 있는 상황과, 대학이 창의력있는 대학생을 키우려고 노력을 하느냐가 참작되어야 한다.넷째, 학생의 상황과 대학의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조를 해야 한다. 보조 심사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소요가 있기 때문에 전원 50%라는 획일적인 해결책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사분란한 독재주의 보다는 시끌벅적한 민주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올바른 선택이라면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런 과정을 자꾸 거침으로써 국민 모두가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다양성을 수용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대학에 혜택을 주는 경우에도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명령하기 보다는 큰 테두리를 주고 각 대학이 이 안에서 각자 특성과 비전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정부는 이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대한민국은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국민이 대다수이므로 지금까지 많은 국제적인 쾌거를 달성했던 것처럼 대학교육 발전에서도 조만간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이병수 교수는 서울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워싱턴 포스트 닷컴 해외국내 데스크, 국제주관성 학회(ISSSS)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소재 엘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병수(미국 엘론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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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5 23:02

[금요칼럼] 영웅과 달인

〈장자>에는 포정이라는 도살의 달인이 나온다. 19년 동안 소를 잡았더니 칼날이 닳지 않는 경지에 올랐단다. 임금이 그의 소 잡는 장면을 보고서 문득 '놀라운 기술이로다!'라며 찬탄하였더니, 의연히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올시다!'라고 응수했다는 사람. 2300년 세월이 흐른 오늘 다시 읽어도 통쾌하다.허나 포정의 자부심을 염려하는 눈길도 있어왔다. 소를 잘 해체하는 기술에 '도'라는 영예를 부여할 수 있다면, 사람을 잘 죽이는 기술 역시 '도'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전국시대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뜻 모르는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가는 것을 앙민(殃民), 곧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 짓이라고 한다. 단 한번 전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도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맹자>)장자에게 '도'란 기술적 차원에서 이른 말이다. 이 사상을 일본이 이어받았다. 기술마다 도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이다. 검도, 유도, 다도, 궁도 등등. 바둑의 수승한 경지를 기성(碁聖)이라 칭하고, 에도시대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신(劍神)으로 추앙받는다.반면 맹자에게 '도'란 윤리와 도덕의 범주에 속한다. '도'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정의를 실천할 때 얻는 이름이지 고작 절륜한 기술에 붙이는 명칭일 수 없었다. 맹자의 사상은 조선이 이어받는다. 개인행동이든 나라의 정책이든 '의불의'가 판단 기준이었다. 이 속에서 의병과 의사(義士)가 나올 수 있었다.최근 KBS에서 방영된 백선엽 장군의 이력을 두고 시비가 분분하다. 그가 625동란에서 거둔 전공은 혁혁하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전군을 통솔하는 참모총장에 오를 정도였다. 그를 두고 명예원수라는 영예를 부여하자는 일각의 주장도 그의 전공만 놓고 보면 수긍이 간다. 그의 무공을 덮을만한 군인은 현대사를 털어 없을 듯하다.그런데 그의 출발은 일제하 직업군인을 기르는 봉천군관학교에서였다. 더욱이 그는 잔학한 살해를 일삼은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그는 여기서의 활동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 일본에서 간행된 자서전에서다."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도특설대에서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토벌에 임하였다." (〈간도특설대의 비밀>, 1993년)지금 민족주의를 잣대로 그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제나 지금이나 군인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하다는 점을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동포에게 총을 겨눈 사실에 대해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명령을 받으면 복종하고 집행하는 자가 군인일 따름이라는 것. 그가 기술주의 교육, '일본식 도'의 가치를 훈련받았던 사람임에 주목해야 하리라.그러나 이 지점에서 맹자는 질문한다. 그런가? 군인은 명령을 집행하기만 하는 기계인가? 그가 총을 겨눈 사람들 속에 자기 동생이 있었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살해했을까? 혹은 그와 동년배로서 학병을 탈출해 독립군에 투신한 장준하와 김준엽은 고작 탈영병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맹자는 이렇게 말한 터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맹자의 눈에 간도특설대의 유능한 중위가 대한민국의 뛰어난 장군이 되었다고 해서, 영웅일 수는 없다.일본은 유교국가인 적이 없었다. 그곳은 사무라이의 나라였고, 사무라이는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자였다. 명령대로 처리하느냐 못하느냐, 기술의 수준에 따라 보상이 다를 뿐이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다. 선비는 군주의 명령이든, 국가의 정책이든 스스로 그 정당성을 질문하고, 정당하면 목숨조차 바치는 사람이었다. 백선엽은 일본식 '달인'일는지 몰라도 조선식 영웅은 아니다.*배병삼 교수(영산대 자유전공학부)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도회(儒道會) 부설 한문연수원에서 수학했고 한국사상사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글세대가 본 논어」, 「삼국통일과 한국통일」(공저), 「한국정치의 재성찰―전근대성근대성탈근대성」(공저) 등이 있다./ 배병삼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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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08 23:02

[금요칼럼] 나는 돈 대학생이다

강의실에서 만나던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등록금 인하를 소리치고 있는 이 여름, 대학 교수라는 자리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자괴감이 밀려드는 때는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던 날, 이른 아침 교정에 들어선 나는 학교 박물관 벽을 온통 가리듯이 걸려 있는 북한의 인공기를 보았었다. 왜, 누가 여기에 오늘 이 깃발을 거는가. 그때의 자괴감이라니. 그러나 이 여름에 느끼는 자괴감은 그때와는 또 다르다.내 과목을 수강하는 꽤 많은 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값 등록금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나선 제자 가운데는 윤호도 있었다.지나간 겨울, 윤호가 모 재단으로부터 등록금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추천서를 써 준 나에게 휴대전화로 장학증서를 찍어 보여 주면서 '엄마가 막 울고 난리 났어요.'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던 윤호, 바로 그 윤호가 광화문에서 열리는 등록금 인하 시위를 다녀온 것이다.대학생들이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사 표출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이 사라진 지 몇 년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른 봄 개나리꽃이 필 때나 반짝하다가 마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놓고 '개나리 시위'라는 이름까지 붙은 요즈음이다. 윤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교정에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그 푸름 속에서 그가 하는 말이 마른 나뭇잎처럼 아프게 가슴에 쌓였다.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는 해도 그는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가서 새벽 2시까지 독서실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 강의가 없을 때는 또 '스마트폰 어플 운영'이라는, 휴대전화에 TV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일을 시간제로 한다. 하루 다섯 시간 밖에 잠을 못 자는 생활인 것이다.자신은 등록금 걱정만은 안 해도 되게 장학금을 받지만 그 장학금은 '나 혼자만을 생각하라고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그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건 사회를 생각하라고 내게 쥐어진 것이잖아요. 등록금 문제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힘겨워 하던 나였고, 현재 휴학하고 휴대폰을 팔고 있는 절친한 친구만 세 명이나 돼요.' 자신을 그곳으로 이끈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었나 싶었다는 말을 이어가면서 그가 가만히 말하는 것이었다.'그때 그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체 게바라.'이번 학기 교양강의에서 다룬 테마의 하나가 체 게바라의 생애와 혁명관이었다. 반값 등록금 시위 현장에서 강의시간에 나왔던 체 게바라의 얼굴을 떠올렸다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이면서 남미가 겪고 있는 제국주의의 횡포와 자본주의의 착취에 대한 절망과 분노 속에 쿠바 게릴라혁명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 쿠바에서의 혁명에 성공한 후 그는 쿠바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의 자리에 오르지만 그 모든 지위와 기득권을 버린 채 또 다시 혁명의 길을 걷다가 끝내는 볼리비아에서 생포되어 죽음을 맞는다.쿠바를 떠나며 어린 자식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체 게바라는 혼자의 삶이 아닌 시대와 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우리들 하나하나가 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특히, 세계의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행해지고 있을 모든 불의를 너희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그날 광화문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도 많았다고 했다. '대학생이라면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나가 있어야 하니까 대신 형누나동생들이 모인 거예요. 발언을 하러 무대에 올라갔던 중3 여학생이 수줍어하면서, 언니는 알바 가서 못 오고 제가 대신 왔어요 해서 다들 함성을 질렀답니다.'그날 광화문 시위장에 울려 퍼졌다는 노래는 서글프도록 자조적이다. '나는 돈 대학생이다. 나는 없고 돈만 있는, 돈 돈 돈 세상. 알바가 내 목을 조여 오는 세상아, 내가 바라는 건 살아있는 나 나 나.'도대체 이런 현실을 정책 담당자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른들의 진정한 대답이 메아리쳐야 할 때다./ 한수산(소설가세종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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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01 23:02

[금요칼럼] 반값 등록금 논란과 백년대계

반값 등록금 논란으로 전국이 시끄럽다. 지난 6월10일 서울 광화문 거리는 수만 명의 대학생과 청년 그리고 시민들이 나서서 반값 등록금 시위를 벌였으며 이들은 매주 금요일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는 날까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그러나 여기에 대해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려면 정부 보조를 통해 세원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국민의 세금을 올리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그런데 대학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므로 국민 모두가 반값 등록금을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반값 등록금이 논란이 된 것은 현 정부의 선거공약 때문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서 물리적으로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이야기였다고 말해 논란에 모호함을 더해주고 있다.그러면 한국의 등록금 실태는 어떠한가. 2010년 4년제 일반대학 기준 연평균 등록금 국립 444만원, 사립 754만원이다.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등록금 부담률이 소득 대비 1/10인 반면, 한국은 학생 대부분이 국민소득의 1/3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어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보면 우리나라 대학등록금 부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소득 하위 10% 가구의 경우 연간소득 대비 등록금 비중은 97.9%에 달한다.이렇게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대부분의 대학들(사립대학)이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보조금 또는 지원금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반값 등록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예산을 재구성(책정된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하거나 정부 예산을 늘리는(세금을 더 거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모두 쉬운 방법이 아니다.그러나 이번 반값 등록금 문제가 부각된 이유를 다른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점점 높아져가는 청년실업률 그리고 빈부격차 등으로 사회적 불만들이 다른 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과거 대학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출세를 좌지우지하는 관문과 같았다. 대학 진학여부가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에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이제 80%가 넘었다. 이것을 두고 한편에서는 고등(대학)교육의 인플레이션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의 반영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높은 교육열이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대학도 못나온 주제에, 또는 대학이라도 나와야'와 같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반값 등록금을 야기시킨 근본적인 문제는 반값 등록금이 현실화된다 하여도 결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선거철에 대비해서인지 여야가 한목소리로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다고 대동소이한 안을 내놓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세계 최고의 경쟁력 그리고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의 성공비결을 교육개혁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핀란드 교육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교육개혁은 40년간 이루어졌으며, 수차례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교육개혁을 이끈 수장(사민당의 에르키 아호 국가교육청장)은 바뀌지 않고 오랫동안(1972~1992년) 교육개혁을 이끌었다. 교육정책은 백년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반값 등록금으로 불거진 우리사회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처방을 시급하게 내리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보며 국민들이 납득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백년을 내다보며 만들어야 한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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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4 23:02

[금요칼럼] DMZ 국제다큐영화제를 준비하며

지난 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배우 유지태를 소개한 김에 영화제 얘기를 한 번 더 해보려 한다. 내가 집행위원장을 맡아 이끌고는 있지만 영화제의 방향과 주제, 그리고 상영되는 영화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되풀이해서 말을 나누어도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지난 2회 영화제 때의 일이다. 〈저 달이 차기 전에>라는 작품이 상영되고 감독과 관객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파업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현 정부 들어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이 다룬 소재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다. 실무진들이 상영작들을 정해 보고했을 때 이 작품뿐만 아니라 용산사태를 다룬 작품까지, 정부와 경기도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는 영화들이 여러 편이어서 솔직히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영화제가 경기도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나로서는 당연한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 관객과의 대화를 지켜보고 나서 나의 걱정은 순전한 기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대부분 어른들의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던 중간에 한 남자 고교생이 손을 들고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하지만 지나치게 노동자의 입장만 대변한 것은 아닌가? 사측의 입장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 질문 하나에, 그리고 그 질문에 반응하는 다른 관객들의 모습에 나는 내가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원칙이 여전히 올바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지원을 아끼지 않되 내용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문화 행위로서의 영화 창작과 그 행위의 결과물이 소개되는 장으로서의 영화제, 이 모두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이는 영화제 시작 전 이미 경기도와 공유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한 사회의 문화가 융성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사회의 주류 질서는 잘 갖추어진 기존의 체계에 흠집을 내고 틈입해 들어오는 비판의 목소리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항원과 항체가 만나 다투는 과정에서 한 유기체가 더 건강한 체질로 발전하듯,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쌍용차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사회의 주류 의견에 대한 반론이고, 이 어린 관객의 질문은 그 반론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제기이다. 다양한 시선이 거리낌 없이 주장되고 이들이 한데 어울려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고 문화 진흥의 밑바탕이 된다. 내가 영화제라는 장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민주주의는 나의 주장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먹고 자란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주장을 스스럼없이 펼치는 과정에서 사회는 성숙하고 문화는 풍성해지는 것이다. 나와 다른 시선을 부정하는 순간 사회는 뼈만 남고 문화는 시들어간다. 건전하고 정당한 시선은 누군가가 규정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견이 충돌하며 수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던가.내친김에 올해 DMZ영화제의 홍보영상 - 보통 '트레일러'라고 불린다 - 을 맡은 일본의 세계적 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이야기를 덧붙여볼까 한다. 영화 〈KT>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카모토 감독은 처음 제안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지만, 제작비가 10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은 중요하고 DMZ영화제의 의미를 잘 알기에 원래대로 제작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100만원은 100만 엔(한화 약 천만 원)을 잘못 전해 들어서 생긴 오해이지만, 사실 천만 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기는 하다. 사카모토 감독이 한국을 방문한 뒤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이다." 어림없는 제작비로도 기꺼이 영상제작을 수락한 것이 그지없이 고맙기도 하거니와, 그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시 한 번 DMZ영화제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이제 정확히 100일이 남은 영화제를 생각하며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조재현(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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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7 23:02

[금요칼럼] 부동산 공동체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도시라고 한다. 인류의 문화에 어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도시가 담당했다고 하는 이 말의 전제에는, 도시는 자연적으로 태동된 게 아니라 인공적인 것이며 또한 언제든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도시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잉여생산물의 교환설이 유력하다. 자기 집에서 경작하고 재배한 생산물의 양이 자급자족 수치를 넘게 되자, 다른 필요한 물자와 바꿀 목적으로 조성된 장소가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도시의 역사는 약 일만 년으로 추정하는데, 이스라엘의 제리코(BC 9000년경)나 터키의 챠탈휘크(BC 7000년경)에서 발굴된 공동 주거지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이다. 이 일만 년의 도시역사 중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 인류의 10%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도시집중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오늘날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2050년이 되면 4분의 3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도시를 의미하는 영어에는 시티(city)와 어반(urban)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같이 도시를 뜻하지만 그 내용이 사뭇 다르다. 그리스어 civtas에 근거하는 시티는 일종의 사회적 성격이 강한 반면, urbs에 어원을 가진 어반은 그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물리적 환경을 의미한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모여 공동체적 목적을 공유하는 어떤 사회와 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구성이 합쳐서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는 시티는 소프트웨어고 어반은 하드웨어다. 그런데 이 건물들의 집합인 어반은 만들기가 쉬운 반면에, 시티는 대단히 어렵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각개의 특출한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규칙에 합의하고 공유해야 하는데, 이를 이루기가 여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우리의 세종시가 그 좋은 예다. 아직도 여러 문제가 잔존해 있지만, 세종시가 왜 그렇게 뜨거운 이슈가 되어 국론을 사분오열 시켰을까. 정파적 이해의 논리가 다분히 있긴 하여도, 아마도 우리의 도시 만들기 역사상 최초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종시의 인구 40만은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리 큰 숫자가 못 된다. 50만 명의 분당을 불과 4, 5년 만에 만들었으며, 일산이나 평촌이나 산본 같은 수 십만 명이 사는 도시를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뚝딱뚝딱 만들어 온 게 우리의 실력이다. 이제는 자고 일어나면 전 국토에 걸쳐 거대 규모의 신도시가 신기루처럼 솟아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이런 천편일률적 신도시들이,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한 결과로 건설된다면, 이 속도는 완벽히 불가능한 것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니 이 논리로 따지면, 이들 신도시들은 죄다 물리적 환경만 구축한 '어반'일 뿐이며 우리가 살고자 하는 '시티'에 대한 합의가 전혀 없이 그냥 주어진 것이다.문제는, 물리적 환경뿐인 이런 '어반'에서 사람이 살게 되면서 그 '어반'이 가정한 어떤 사회적 모습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 가정된 사회라는 게, 불행하게도 이미 서구에서 실패로 끝났던 마스터플랜-통계적 숫자를 근거로 평균적 인간을 목표한, 계급적이고 분파적이며 효율과 기능만이 중시되는 거주적 기계로서의 도시이니, 거주자들은 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공동체 속에 삶을 살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딜 가도 똑같은 우리 시대의 신도시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말이어서, 지방의 정체성 찾기란 지극히 난망한 일이다.도대체 지난 수십 년간 전 국토에 걸쳐 유행처럼 건설된 그 한 가지 사회의 정체는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바로 부동산 공동체이다. 자기 스스로의 사회적 인간상을 형성하는 기반인 거주를 늘 돈으로 환산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동산으로 파악하여 이를 획득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고 내몰리는 유목민적 삶을 살게 하는 그런 도시가 부동산 공동체의 사회이다. 그런 떠돌이들의 사회에 문화가 정착될 리가 만무하다. 물물교환의 성격을 나타내는 도시의 어원에 집착하여 부동산만 교환하는 이 땅 우리의 도시가, 일만 년 전의 제리코나 차탈휘크 보다 더 못난 도시라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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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0 23:02

[금요칼럼] 완전 개맛이다

토요일 오후, 학교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였다. 옆자리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던 여고생 가운데 하나가 킬킬거리며 소리쳤다. '와, 완전 개맛이다.' 음식을 놓고 개맛이라니. 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그런 소리쯤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개맛이라고 외친 여학생은 황홀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게 아닌가.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에서 개라는 말이 일으키고 있는 이변의 하나다. 이들이 쓰는 은어(隱語) '개맛'을 '개 같은 맛' '못 먹을 맛' 정도로 알아들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다. 정말 너무 맛있을 때 내지르게 되는 탄성의 하나가 '개맛'이기 때문이다.은어가 만들어지는 원칙에는 기존 어휘를 대치, 첨가, 삭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저 옛날 군대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골병들기 십상이라는 뜻에서 공병대를 '골병대'라고 불렀던 것은 대치된 것이고, 이마빡을 '마빡'이라고 하는 것은 삭제의 경우가 된다. 그 가운데는 순서를 바꾸는 치환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도 있다. 가짜를 '짜가'라고 하는 게 그것이다.이렇듯 은어는 그 형성부터가 구성원이나 또래집단 이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도록 그들만의 강한 유대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언어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은어는 자기들만의 깊은 소속감 속에 비밀을 유지하고 친밀감을 더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그러나 '개맛'의 경우는 특이하다. 통상 우리말에서 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그 원형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열등하다는 뜻이 된다. 복숭아는 좋은 과일이지만 개복숭아는 먹어 볼 것도 없는 과일이다. '개 싸대듯' 한다고 하면 쓸데없이 함부로 쏘다니는 게 되고, 사람 알기를 '개 콧구멍으로 안다'고 하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경우다. 어디 그뿐인가. '개고생'이라고 하면 고생의 정도가 극심한 경우이고, 사람을 함부로 치고 때릴 때 '개 패듯'하거나 '개 잡듯'한다고 한다.이렇듯 개라는 접사가 붙으면 상황은 나쁜 쪽으로 돌변한다. 그런데 바로 이 개가 놀랍게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연 다른 의미로, 그것도 최악에서 지고지선의 최고로 변해 버린 것이다. '개'라는 말의 화려한 비상이 아닐 수 없다.언어는 살아 있는 것이다. 생성소멸을 거듭하며 동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강압으로 통제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개'의 경우는 특이하다. 은어의 어떤 발생 배경과도 다른 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의식의 전도랄까, 언어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의 도치까지 와 닿은 이 언어파괴의 극단적인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대학가에서 학생들 사이에 쓰이는 은어도 만만치 않다. 다만 그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한결 빨라져 가고 있다. 소위 일류대학을 두고 '스카이(SKY)'라고 하던 것도 그렇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지칭하던 이 말은 어느 새 사라졌다. 다만 여전히 신학기가 되면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면서 학생들은 '쌔큰한 신입생 환영'이라고 써 붙인다. 새큰하다면 섹시하면서도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을 의미한다. 교수에게도 '선생님은 레알 넘사벽 센스의 킹왕짱 오빠 같아요.' 할 정도로 은어가 난무하니 말하면 무엇하랴.(이걸 번역하면, 선생님은 정말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센스를 가진 최고의 오빠 같아요 정도가 될까.)프랑스에 사는 회교도들이 음절의 앞뒤를 뒤집어 말하는 것을 베를랑(verlan)이라고 한다. 카페(cafe)를 페카(feca)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절을 뒤집는 베를랑을 넘어서 우리 젊은이들은 이제 의미를 뒤집는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어느 날 우리 사회에서 '개놈'이라고 하면 정말 바람직하고 모범이 되는 남성을 의미하는 말이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어느 날 어머니가 결혼을 앞 둔 딸과 함께 사윗감을 놓고 이런 말을 나누게 된다 상상하자면,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다.'저 남자애 정말 사위삼고 싶은 개자식이로구나.'/ 한수산(소설가세종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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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3 23:02

[금요칼럼] 김정은 방중 오보와 지피지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일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일제히 보도하였다. 이러한 오보는 연합뉴스가 이날 오전 9시14분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 소식을 긴급 타전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정부 당국 그리고 북한 전문가들도 오보가 오보를 낳는 집단 오보를 만드는데 한몫 하였다.연합뉴스의 보도가 있은 후 방중 주체가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문의가 정부 당국에 몰리자,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동안의 정황으로 봐서 오늘 새벽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안다. 단독 방문인지, 김정일과 같이 갔는 지는 좀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은 혼자 간 것으로 보이며 방문지는 베이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은 방중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러자 대부분의 언론은 김정은 방중 소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김정은 방중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해준 것은 북한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김정은이 지난 2010년 9월,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되었음을 기정 사실화하고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후계자 구도를 안착시키기 위해서 중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의 방중이 빠른 시일 내에 있을 것으로 분석, 예견하여 왔다.그러나 9시간 지난 그날 오후 5시 중국 헤이룽장성의 무단장 시내 호텔에 김정일이 머물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김정은 단독 방중 보도는 사실이 아닌 오보가 되었다.사실과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임을 상기할 때 이러한 집단적 오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오보가 북한 관련해서는 유독 많고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오보가 난무하는 한 북한의 실체는 더욱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며 올바른 대북정책을 세울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왜 북한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오보와 황색저널리즘 (yellow journalism)에 가까운 보도가 난무하는 것일까? 북한의 폐쇄성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보도가 대중에게 나가기 전 더욱 신중하게 정황을 파악하고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 대한 정황은 무엇인가?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고 벌써 오래 전부터 공언해왔다. 이들은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상정치, 군사 그리고 경제의 세 가지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데 사상정치 그리고 군사의 고지는 이미 점령되었으며 경제의 고지만 남겨두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경제 고지라고 하는 것은 결국 경제개발을 의미하는 것이며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고 있는 북한의 실정에서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필수사항이다. 또한 북한의 경제개발은 중국의 동북지역 개발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과 협력을 하여야 한다.2012년이 7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정지어야 하며 유일 지도체제라는 북한의 정치체제를 고려할 때 김정일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직접 확정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중의 주역은 김정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이번 김정은 단독 방중의 오보는 정부의 정보부재 또는 취약한 정보력 때문이기 보다는 북한을 그리고 동북아 정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언론과 정부 당국,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북한 전문가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모공편(謀攻篇)에서 손자는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하였으며 적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라고 하였다. 그러나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과 동북아 정세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대응하여 대북 그리고 동북아 외교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 지피지기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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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7 23:02

[금요칼럼] 아름다운 청년 유지태

김동호(부산영화제명예집행위원장), 이순재, 안성기, 임권택 감독, 이준익 감독, 김동원 감독 박정자, 손숙, 최불암, 김덕수(사물놀이), 송승환, 성악가 김동규, 윤도현, 이한위, 김지수, 박시연, 김제동, 이인혜, 이하늬, 바비킴, 강산에, 적우, 오지혜, 정태우, 유지태, 오광록, 하지원, 유승호 등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내가 경기공연영상위원회와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 그리고 경기도문화의전당 일을 할 때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적극 참여해 주고 지지해주었다. 이를 두고 문화예술계의 훌륭한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건 나의 인맥이라며 나를 추켜올리며 칭찬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이 분들 중 친분이 두터운 분도 있으나 일을 하면서 처음 만난 분도 계시며 그런 분들에게 행사의 취지와 진정성을 보여주고 이해시키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을 뿐더러 나 역시도 많은 발품을 팔아야했다. 그 중에 문화예술 연예계 선후배 중 나를 지속적으로 감동 시키는 한 후배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작년 제2회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경기도 파주상공회 조찬모임 후 직원들과 영화제 트레일러(영화제를 알리는 홍보영상) 연출을 논의하다가 유지태라는 이름이 나왔다. 아침 이른 시간이고 내가 아는 유지태는 항상 예의가 바르지만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일처리 또한 깔끔하고 정확한 친구여서 쉽게 수락하지 않을 텐데 하는 맘으로 후배지만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바로 전화가 왔다. 영화제에 대해선 이미 사전 지식이 있어 설명은 필요 없었다. 결론은 트레일러 감독 제안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다는 얘기였다.사실 영화제 트레일러는 주로 감독들이 연출해왔고 적은 제작비이기에 스텝들마저도 의미를 갖고 봉사하다시피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 관례인데 영화배우가 단편영화 연출경험이 있긴 하지만 적잖은 시간과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작업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도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작년 8월 파주 DMZ 부근 햇볕을 피할 수도 없는 폭염 속에 30명의 스텝과 연출에 열중하는 유지태를 보며 또 한번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올해 들어 제3회 영화제를 준비하며 영화제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집행부 조직을 보강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유지태와 정상진이라는 두 친구를 부집행위원장으로 위촉했다. 그런데 현재 조직규정에서는 두 사람에게 어떤 대우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말이 부집행위원장이지 사실은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 자원봉사자인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본인 돈을 쓰면서 일을 한다. 매주 월요일이면 부천 사무실에 와서 영화제 주간회의를 참여하고 밥도 산다. 그것도 소고기로~. 거기다가 캐나다 토론토 출장은 당연히 이코노미석이다. 190cm 가까이 나가는 신장임에도 아무런 불평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날아가서 프로그래밍까지 하고 돌아왔다. 또 내가 시간이 안 되면 개막 장소 섭외하러 군부대도 쫓아간다.최근 일이다. 내가 좀 하는 일이 많아 종종 집에서 심야 회의를 하는데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더니 위안 부할머니 한분이 돌아가셔서 양평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밤 12시 쯤 도착해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거다. 너무 고마워 아끼는 와인을 큰 맘 먹고 꺼내 마시며 회의를 하는데 피곤한지 눈을 지그시 감고 얘기를 듣다가 입을 연다. "저는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는 정말 훌륭한 영화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지속해 나가면서 세계적인 영화제가 될 거라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너무 과분한 역할을 맡았다는 겸손까지.(사실 그 부분에선 선배들에게 혼도 났다.) 지금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는 유지태라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인해 더욱 뜨겁다. 그러나 사실 그 뜨거움의 원천은 나도 유지태도 아니란 걸 우리는 안다. 우리를 이렇게 열정으로 일하게 만든 건 우리가 원하는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유일에 분단국가, 그 안의 DMZ가 우리를 뜨겁게 만든다.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의 정신은 평화, 생명, 소통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 이념과 정치를 뛰어넘는 영화제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건강하고 젊은 영화제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다만 이 건강한 울림이 비단 영화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 지금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조재현(경기도문화의 전당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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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0 23:02

[금요칼럼] 랜드마크 콤플렉스

서양에서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의 원형을 추적하다 보면 거의 로마제국의 흔적, 특히 군단 주둔지를 발견하게 된다. 파리의 원도심인 시테섬, 런던 시가의 발상지인 시티, 비엔나의 빈도보나나 프랑크푸르트의 뢰머광장 등이 다 그렇다. 이들은 레기오(Regio)라고 부른 로마 군단의 캠프를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들인데, 그 당시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지방을 뜻하는 Region이라는 단어도 그래서 생겼다. 카스트라라고 부른 이 캠프는, 로마에서 오는 길을 연장시킨 카르도라는 길에 데쿠마누스라는 길을 직교시킨 후, 그 교차점에 포럼을 놓고 그 정면에 사령부, 그 주변에 인슐라라는 군막사를 설치하여 담장을 두르는 게 표준적 배치였다. 캠프라는 것은 원래 표준적 설계에 따라 평평한 곳을 찾아 설치하는 임시시설이다. 따라서 자연발생적 촌락이나 특별히 방어용으로 세운 곳을 제외하면 서양의 계획도시들은 애초부터 평지 위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중세에는 봉건 영주의 거주지를 중심에 놓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싼 방사형의 도시가 이상도시라는 이름으로 유행처럼 유럽의 방방곡곡에 세워졌는데, 그 도면들을 보면 전부 기하학적 구성이어서 이를 손쉽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또한 반드시 평지를 찾아야 했다. 운하를 뚫어 강물을 끌어낸 후 해자를 만들고 성벽을 쌓은 다음 주변과는 섬처럼 단절된 요새를 만들었으니, 이는 자연과 주변을 배척하는 도시였다.근세에 들어와서도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신도시들은 그 기반을 여전히 평지에 둔다. 이 평지의 도시가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시각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세우는 게 랜드마크라는 인공구조물이다. 케빈린치라는 도시계획가는 도시를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 중 랜드마크를 가장 중요한 도시시설로 거론했으며, 그 모양이 주변과 분별되고 대립될수록 더욱 강한 이미지를 갖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서양의 도시에는 주변을 압도하는 많은 기념물과 기념탑이 있어왔고 크고 높을수록 그 상징적 가치는 더 커졌다.그러나 우리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은 달랐다. 예를 들어,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질 때, 서울이 가지고 있는 산세와 물길 등 지형적 형상이 우선적 요소였으니 이미 서울은 아름다운 자연적 랜드마크를 가진 도시였다. 집들은 이 산세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양지바른 땅 위에 작은 단위로 지어져서 이루는 집합적 아름다움이 서울에 짓는 건축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서로 어울렸고 서로를 존중하는 풍경을 이루었다.서울만이 아니었다. 전국토의 70%가 산인 우리의 땅에 지은 지방의 마을들이 모두 그러했다. 평지는 쌀농사를 위한 경작지여야 했으므로 마을은 배산임수라는 전통적 조성방식을 좇아 산자락 아래 양지바른 곳을 찾아 만들어졌다. 그 배산임수 자체가 랜드마크였다. 지형과 물길이 다 다르듯, 지형을 따라 지은 우리의 마을들은 다 다른 랜드마크를 가졌으며 그것으로 독특한 마을의 이미지를 형성했던 것이다.그러나 지난 1960~70년대 이후 온 나라가 경제개발의 격랑에 휩싸여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말이 서양화(Westernization)와 동일한 말로 간주되었을 때, 개발의 광풍에 휩싸인 우리의 국토는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은 메우며 서양의 평지도시를 추종하여 개조되었다. 당연히 자연과 부조화하였고 주변과 부조화하였으며 우리의 삶과도 유리되어 끝내 우리의 도시는 갈등과 분쟁의 용광로가 되고 말았다. 산과 물과 건축이 어울려 마치 아름다운 산수화 같았던 우리의 옛 마을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은 것이다.그러나 여기서 멈추질 않았다. 민선의 지방자치시대에 이르러 지방도시들은 가시적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랜드마크 심기를 지금도 사생결단하듯 외친다. 심지어는, 우리의 산하풍경과 전혀 다른 사막 위에 세운 두바이까지 벤치마킹하며 세계 최고, 세계 최초 같은 선정적 구호를 내세워 우리 땅의 생리와 인문적 역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으니, 가히 랜드마크 콤플렉스에 걸린 것 아닌가. 한탕주의 같은 이런 천박한 개발이 끝난 후 우리가 빚은 이 부조화한 풍경을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필시, 우리의 산하와 고유한 풍경을 파괴한 반달리즘의 세대로 우리를 규정할까 두렵다./ 승효상 (건축가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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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13 23:02

[금요칼럼] 꽃은 피고, 지고

지난 5월 초하루였다. 황사가 뒤섞인 빗발이 적시고 가는 4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소설가 김용성은 이승을 떠나 땅에 묻혔다. 세월의 격차가 있어 캠퍼스에서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는 나에게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선배셨다.그날 아침 조촐한 영결식장에서 그를 보내며, 이토록 추모의 절절함이 넘치는 영결식장에 앉았던 기억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약력이, 조사가 이어지는 내내 장내에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참 훌륭하게 사셨구나, 뒤늦게 깨닫듯이 그런 마음이 들었다. 봄비 속에 그의 부음을 듣고 나서부터의 며칠, 선배를 보내면서 내내 생각했다.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더니, 이제는 드디어 가까웠던 선배의 영면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데까지 때가 왔는가 싶었다.한 작가의 영면을 맞아 그의 문학적 향기를 반추하며 그 가치를 되짚어 주는 기능이 점차 사라져가는 오늘의 언론풍토도 아쉬웠다. 줄기찬 산문정신으로 50여년 소설의 외길을 걸어온 그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생각보다 허술했기 때문이다. 연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 홍성원 선생을 그렇게 보냈듯이. 남은 우리가 기려야 할 것은, 한 작가가 그의 시대에 남겨 놓고 가는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가 맡아낸 사회적 역할이다. 한 작가가 해낸 문학적 성취나 사회적 역할과는 무관하게 '인기'에 따라 지나치다 싶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요즈음의 언론풍토, 그러나 그것 또한 품격의 의연함을 잃어만 가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던가.그가 1961년 장편소설 '잃은 자와 찾은 자'로 등단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한 청년의 이 화려한 데뷔는 실로 어린 소년에게 아름답기 그지없는 충격이었다. 그의 여러 역작 가운데는 '군대 조직 내의 비인간적인 폭력 구조를 통해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을 비판'했다는 평을 듣는 '리빠똥 장군'이 있다. 이 리빠똥이라는 이름은 그 후 여러 작품으로 패러디된다. '리빠똥 사장'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그가 70년대초 '리빠똥 사장'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할 때였다. 세태를 풍자하면서 날카로운 현실비판과 풍자를 담았던 이 소설은 화제의 대상이 되었고 세간의 폭넓은 관심과 인기를 모았다. 그 무렵 전국의 이곳저곳에 리빠똥이라는 이름의 술집이 여기저기 생겨났던 사실이 그 소설의 화제성을 말해 주며, 작가 김용성의 현실인식을 보여준다.이 소설제목에서 따온 '리빠똥'이라는 상호를 단 가게들이 지금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딱하게도, 그 가운데는 치킨집도 있다. 그런 간판 앞을 지날 때마다 리빠똥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리빠똥이란, 오직 잇속과 시류를 따라 똥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인간군상을 가리키는 작가 김용성이 만들어낸 조어다. 차마 똥파리 사장, 똥파리 장군이라고 격조 없는 날짜배기 이름을 붙일 수 없어서 작가는 이 말을 거꾸로 써서 리빠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어쩌자구 똥파리 치킨 집이라고 간판을 다는지, 그 사장님은 리빠똥을 요즘 아이들의 은어처럼 '간지작살 나는' 외래어쯤으로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영결식을 마치고 남한강가의 서재로 돌아오니, 며칠 전까지도 하얗게 흐드러졌던 매화꽃은 지고 없었다. 흩뿌리고 간 눈발처럼 희디희게 꽃잎이 깔려 있는 뜰에서 매화는 또 새잎을 틔우며 어느 새 또 다른 봄을 만들고 있었다. 살아가는 일, 그 또한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기다리지 않아도 그날은 온다. 약속하지 않아도 그날은 온다. 죽음이 갈라놓는 헤어짐은 자연이다. 발버둥치고 피하려 한다고 해도 자연은 그렇게 어긋남이 없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자연의 선은 곡선이라는 철학으로 일관했듯,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할, 우리는 다만 그 자연 속의 하나일 뿐이다.꽃은 피고, 진다. 떠나보낸 김용성 선배가 어제 내린 봄비의 진실이 되어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떠나야 할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차가운 진실을. 그 자연의 엄격함을./ 한수산 (소설가세종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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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06 23:02

[금요칼럼] 원칙주의와 외교의 유연성

중국의 삼국지에서 촉나라의 멸망은 형주의 상실로부터 시작된다. 형주는 삼국의 교차로 역할을 하면서 삼국의 중점, 중심의 역할을 하는 땅이었으며 촉에게 형주의 중요성은 제갈공명의 저 유명한 삼분천하(三分天下) 전략에도 나타난다.제갈공명은 삼고초려로 자신을 모시러 온 유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군께서 익주와 형주를 걸터 타고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지키고, 밖으로 손권과 동맹을 맺고 안으로 정사에 힘을 쓰다, 천하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상장에게 형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완성과 낙양으로 향하게 하고,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군사를 모아 진천으로 나간다면 대업은 이루어질 것입니다."적벽대전의 수공으로 백하에서 조조군을 대파한 이후 유비는 형주에 본거지를 두고 익주를 공략하였다. 그러나 익주에서 군사 방통이 전사하는 등 고전하는 유비를 구원하러 제갈량이 장비, 조운 등의 장수들과 출병하자 관우 혼자 형주를 방비하게 되었다.형주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특히 외교가 매우 중요한 방어수단이다. 삼국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하고 있었던 당시 정세는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유연성이다.그러나 관우는 무신(武神)의 반열에 오른 영웅호걸이었으나 원칙주의자였다. 공명도 이점이 우려되어 서천으로 출병하기 전 관우에게 글귀를 하나 적어주고 갔는데 '북거조조(北拒曺操) 동화손권(東和孫權), 즉 북으로는 조조에 맞서고 동으로는 손권과 화친하라' 는 내용이다. 이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손권의 혼사제의를 '범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주겠느냐'며 사신으로 온 제갈근을 내쫓았다.관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번성의 조인을 공격했는데 관우의 번성 공격은 온전히 독자적인 군사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번성공격의 실패는 부사인과 미방의 배반도 한몫 하였는데 원래 관우는 부하 부사인과 미방을 선봉으로 삼아 번성공격을 계획하지만 부사인과 미방이 실수로 술을 마시다 불을 내어 군량과 마초가 모두 타 버리자 관우는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내 혹독하게 처벌을 하며 후방에 남겨두었다. 관우의 원칙주의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중국과 미국 양국은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재개 프로세서를 갖는 것에 대한 합의를 보고 북한과 한국을 설득하여 6자회담을 재개하려 하고 있다. 현존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단계적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10년 미국 핵권리장전'을 오바마 독트린으로 설정하고 있는 미국에게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과제이다. 국민소득을 4배로 올리고 보다 균등한 사회건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소강사회 (小康社會) 건설'을 2025년까지 완성한다는 국가적 목표와 이를 위해 야심차게 동북 4성을 개발하려 하는 중국에게 한반도 안정은 '소강사회 건설'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이런 연유로 지난 1월에 워싱턴에서 열린 G2 중미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 회담에서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모종의 합의를 보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의 일환으로 중국은 북한을 설득하고 미국은 한국을 설득하여, 즉 힐러리 국무장관의 방한을 통해 그리고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을 통해 3단계 재개 프로세서에 시동을 걸고 있다.한국은 원칙적으로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죄하는 것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 걸고 있기 때문에 3단계 프로세서는 첫 단계부터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있는 현실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라 할만하다.그러나 삼국지 관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외교는 원칙을 고집하기 보다는 유연하여야만 국익을 지키고 극대화 할 수 있다. 북한의 진정성은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되기보다는 남북대화를 통해서 검증하여야 할 것이다. 대화의 단절은 서로간의 더 큰 오해와 곡해 그리고 불신만을 낳을 것이며, 한국의 국익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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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9 23:02

[금요칼럼] 산동네 꼬마 특공대

초등학교 가기 전 놀이터가 없는 산동네 아이들은 오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서 논다. 노는 것도 아이들 놀이라기 보단 산에서 유격 훈련하는 꼬마특공대 모습이다. 내가 살던 산동네를 내려오면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있고 대학교 담장은 철조망과 철사로 만든 가시덤불로 되어 있어 지금의 비무장지대 철조망 딱 그 모양이다.오후 3~4시가 되면 대학교 운동장이 한산해지는 것과 동시에 산동네 꼬마특공대는 길이 잘난 철조망 루트로 넘어가 대학교 운동장을 접수한다. 그러다 일몰시간이 다가오면 순찰 도는 경비아저씨가 호각을 불며 꼬마 특공대를 쫓아낸다. 특공대 중에 발 빠르기로 유명한 나는 거의 일착으로 철조망을 넘어 탈출한다. 그런데 가끔 담타는 게 익숙치 못한 아이는 자기 키보다 4~5배 되는 철조망 가시덤불에 걸려 상처가 나고 울기도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그 때 달려오는 경비아저씨는 혹시라도 아이가 떨어질까 봐 "천천히 내려가! 조심해!" 소리를 지르시지만 아이에게 그 소리는 자기를 걱정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호통치는 고함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당시엔 왜 그리 경비아저씨의 호각소리와 제복이 무서웠을까? 그래도 대학교 경비아저씨는 우리를 쫓아내는 게 목적이지 우리를 꼭 붙잡아야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베테랑 꼬마특공대인 나는 알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 많은 나는 우리 특공대원들을 모아놓고 혜화동에 위치한 혜화유치원을 접수하자고 제안한다. 당시 유치원은 상위 5% 가정만 다녔을 때다. 어쩜 0.5%일 수도 있다. 정예요원 3명만 혜화유치원으로 향한다. 대학철조망처럼 높진 않았으나 담이 벽돌담이라 넘기가 녹록하지는 않았다. 난 제일 먼저 담을 넘어 진입한다. 나머지 둘도 무사히 진입, 조용히 들어가 주위를 살피고 놀이시설을 조심스레 하나둘씩 타보며 맘껏 즐긴다.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어둠이 운동장에 내린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시야에 경비로 보이는 아저씨 두 명이 잰걸음으로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냅다 달려 담벼락에 일착으로 올라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대학교 운동장 경비 아저씨와는 완전 다르다. 우리 세 명을 무릎 꿇린 경비아저씨는 머리를 쥐어 박으며 거친 말투로 혼을 낸다. 얼마 전 담 넘어 들어와 물건을 훔쳐간 게 우리들이라고, 차림새나 산동네 사는 거로 봐서 그럴 수 있다는 거다.우리는 단순히 놀고 싶어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한 친구가 급기야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놀러오겠습니다"라며 소리내서 우는 게 아닌가? 다시는 안 놀러오겠다고 하는 친구의 서러운 울음에 나와 나머지 친구마저 같이 울었다. 그 자리는 그렇게 정리가 됐던 것 같다.지금은 어디를 가도 놀이시설이 여유롭게 자리하고 있다. 예전 내가 겪은 이런 사연은 이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있고, 특히 부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버림받거나 내팽개쳐진 불행한 처지의 아이들은 여전히 많을 것이다.5월 어린이날을 맞아 주변을 둘러봐야 할 것 같아 예전 나의 유년기를 잠시 떠올려 봤다.언제나 그렇듯 다가오는 5월에도 여기저기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는 소외된 어린이들에게는 어린이를 위한 5월이 오히려 가장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갑자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도 4월30일부터 시작하는 어린이 전문 예술축제를 위해 세계 최고의 그림책(동화) 작가 앤서니브라운 원화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 교육과 체험행사 등 어린이 천국을 만들기 위한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돈이 없어도 광장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어려운 어린이를 배려한 무료 프로그램도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특별히 형편이 어려운 상황 때문에 마음 다치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보고 마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조재현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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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2 23:02

[금요칼럼] 마스터플랜의 망령

1972년 7월1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1층짜리 서른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단지를 폭파하여 철거시킨 일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전쟁 영웅의 이름을 따 '프루이트 이고'라고 부르며, 새 시대 새로운 주거를 목표로 1955년에 지은 이 단지는 가장 좋은 삶터로 평가되어 여러 건축상까지 받았던 바 있었다. 그러나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천편일률적 공간이 갖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그 속의 공공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하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강간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창궐하게 되었고, 흑백간의 주민갈등까지 유발하여 이 주거단지는 도시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공포스러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17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시범죄의 온상이 된 이곳을 주정부는 폭파로 청산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가 챨스 젱크스는 이 날은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날이라고 기록하였다.모더니즘은 19세기말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세기말의 위기에 몰린 사회가 퇴폐와 향락에 이끌리며 문화가 퇴행하던 시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꿈꾼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찾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은 전통적 양식과 역사적 관습에 억눌린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키고 합리적 가치를 최선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좋은 제품의 대량공급을 목표하며 통계에 근거하여 찾은 표준화라는 방식은 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고, 사물을 조직화하고 환경을 체계화하며 수요와 공급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의 구성원리였다.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도시를 예를 들면, 땅을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칠해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눠서 차등하였고, 도로는 도로의 폭과 속도를 제한하며 서열화하고,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전체를 나누며 계급적으로 만든 도시계획을 과학적 합리라고 신봉하였다. 심지어는 오래 살았던 동네마저 이 도시계획도를 들이대며 재개발하였으니, 이게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던 것이다.특히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도시가 개발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전세계 방방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표준적 평면을 가진 집단화된 아파트들, 통계에 의거한 공공시설의 획일적 배분, 빠른 통행만을 우기는 교통계획, 직선화된 길, 각종 주의 표식 등, 어느새 공동체는 사라지고 각 부분의 적절한 배분을 중요시하는 집합체만 남는 도시가 양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급조된 환경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 프루이트 이고 주거단지가 폭파되어 사라진 것이다. 모더니즘이 20세기의 유일한 시대정신이라고 믿었던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마스터플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다.모더니즘과 마스터플랜이 간과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가치였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파악하고자 했으며 개체의 다양성을 묵과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소성을 무시하였고, 그 역사적 맥락과 자연적 환경을 외면했던 것이다.문제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데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하루의 계획을 조리 있게 짠다고 해도 수시로 마음이 바뀔 수 있으며, 선과 악을 머리 속에 아무리 구별해도 우리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그 혼돈의 와중에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모든 땅은 얼마나 다 다른가.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며, 생태와 주변이 부분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살아온 역사가 다 다르다. 그 다 다른 땅을 똑 같은 도형과 무늬로 뒤덮으며 한 가지 삶을 강요한 그 마스터플랜의 방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했다. 어쩌면, 기후변화나 사회의 갈등과 분쟁 등,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재앙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사회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은 마스터플랜의 망령으로 인한 결과 아닌가.바야흐로 서양에서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존중하며 오히려 비움을 그리고, 자연과 화해하는 나눔을 그리는 데, 우리의 이 땅에서는 이미 폐기된 마스터플랜의 망령에 사로잡혀 비움과 나눔이 가득했던 우리의 정겨운 옛 도시와 아름다운 산하를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표준도면으로 여전히 난도질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프루이트 이고'의 폭파가 떠 오른다./ 승효상 (건축가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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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15 23:02

[금요칼럼] 일본침몰인가, 모더니즘의 침몰인가

일흔이 가까운 일본인 친구는 그날 신쥬쿠의 고층빌딩에서 지진을 만났다고 했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서 버리는 바람에 친구는 45층을 걸어서 내려와야 했고, 교통편이 사라진 암흑의 거리를 다시 4시간 동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책꽂이가 모두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된 집으로 돌아온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나는 더 묻지 못했다.911테러에 빗대어 일본인 스스로 '311 쇼크'라고 하는 일본 동북부의 대재앙으로부터 한 달여, 그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많은 겸허함을 가르쳤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했던가. 그러나 일본인이 겪어내고 있는 참담함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했던 것은 다만 절망과 무력감만은 아니었다.그 가운데 하나가, 재해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인류의 진화'를 말하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제목으로 '간바레 닙폰(힘내라 일본)'을 뽑으며 일본을 격려하는 인류애를 보여주었다. 대혼란 속에서 폭동도 약탈도 없이 보여준 인본인의 자제력과 침착한 대응은 일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모습들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와 유형을 보여주는 감동으로 세계 속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지난 세기 인류가 한결같이 추구했던 가치는 모더니즘의 가치들이었다. 19세기의 구습에서 벗어나 문명과 보편성을 인류가 공유하자면서 시작된 모더니즘은 능률의 극대화를 미덕으로 펄럭이며 도시화기계화를 통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이룩해 냈다. 물질을 가치의 척도로 생각하는 생활의 편의와 그것을 통한 행복에의 추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의 근대화도 다르지 않았다. 서구화가 바로 현대화라는 물결 속에서 지역문화나 고유문화는 터부시될 수밖에 없었다. 모더니즘의 가치와 미덕 속에서 흙벽의 초가집은 척결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과거의 삶과 도식은 비판과 심문의 대상이 되었고 현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조금 더 우회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상정하고 있던 여러 발전모델 가운데는 '일본처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미 일본이 하지 않았는가. 일본이 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전제를 깔고 우리는 얼마나 일본의 발전모델들을 따라잡기에 허둥댔던가.그러나 지금 일본의 대재앙은 모더니즘이 지향해온 모든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통렬하게 성찰의 말을 건네고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불행하게도 거기에는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었다고 믿었던 일본의 초라한 실상도 있다.잘못하다간 일본이 침몰해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본인 자신에게서 나오고 있다. 국가를 이끌어갈 주체적인 동력을 잃은 정치권에 대한 탄식만이 아니다. 너무나도 재건의 움직임이 지지부진하니 무엇을 하건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보인다. 심지어 소비를 부추기면서 '외식도 좋고 충동구매도 좋다. 차라리 사재기라도 하자'고 외치는 신문칼럼마저 보인다.그 가운데는 동물원 공짜관람도 있다. 그 동안 문을 닫고 있던 우에노 동물원을 비롯한 네 개 동물원이 4월 1일부터 다시 문을 열면서 '지진 피해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무료입장을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나 지진피해자요' 하면서 동물원에 들어와 공짜로 호랑이 구경이라도 하라는 말인데, 저 대재앙 속에서 이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석탄이나 기름 같이 자연으로부터 얻어낸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그 대체수단으로 부상한 것이 원자력이다. 그러나 원전이 안전성에 있어서 결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자성을 일깨우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는 '삼척 핵발전소 백지화'와 같은 원전유치를 둘러싼 갈등이 일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탄을 개발하며 '맨하탄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오펜하이머 박사는 '원자탄은 평화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졌다.'고 했다.이웃의 불행에서 찾아야 하는 교훈들은 더 가슴 아프다. 그러나 반면교사로서, 일본의 재앙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쓰나미처럼 많다./ 한수산(소설가세종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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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08 23:02

[금요칼럼] 일본 대지진과 북한 핵개발

지난 3월11일 오후 2시경 일본 동북부지역에서 일어난 강도 9의 대지진은 바로 이웃인 우리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어 이어진 원전폭발로 인해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돼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저부(底部)가 녹아버리는 멜트다운(meltdown)과 방사능 누출 위험은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이러한 사고는 안전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한다는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강도 9와 같은 사상 초유의 지진에 과연 안전할 수 있는 원전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지만,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 뒤 미국의 기술 지원 제안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거부했다는 것과 폭발 직후 프랑스의 붕산 제공 의사에 답변이 없던 일본 정부가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나서야 한국과 프랑스 정부에 붕산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자세 그리고 초기대응의 실패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이것을 리더십의 부재로도 설명할 수도 있지만 안전에 대한 준비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만심이 초기대응의 실패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 대지진 그리고 원전폭발에 대해 세계 각국 특히, 전통적으로 일본과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에서도 도움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인류애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총 전기생산량의 약 40%를 원자력 발전에서 얻고 있어 남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이번 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지만 석유고갈시대에 아직 그 어느 나라도 확실한 대체에너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는 잠시 주춤하겠지만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은 이번 지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전을 가동하는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난번 구소련의 체로노빌 사태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주변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이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국제적 협의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필수적이다.이것은 북한과 같은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단지 원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이다. 북한이 원전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전력 이외에 원자력 발전에서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핵 물질을 무기화해 미국과의 대결에서 유리한 협상카드로 사용하려는 것과, 원자력 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이 북한에 다량으로 매장돼 있어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이 이를 전력 발전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문제는 북한이 수세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고립적인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는데 있다. 북한이 한국과 그리고 국제사회와 지금처럼 협의나 협력 없이 원전 건설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원전은 이번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같은 자연 대재앙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지난 1985년의 체르노빌 사태를 초래한 인재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이 지금과 같은 냉전과 불안전하고 위험한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악화된다면 핵을 무기화 단계로 가고 있는 북한과의 핵전쟁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일본 동북부 대지진 이후 북한은 백두산 화산에 관한 공동조사를 한국 측에 제안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민간차원의 공동조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발표했고 29일 첫 모임을 가졌다. 백두산 화산폭발에 대한 우려는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그리고 주변국 모두의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 역시 마찬가지이며 정치적인 사항으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하며, 6자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이다. 한국은 북한 원자력개발의 방관자가 아니라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백두산 화산에 관한 공동조사가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되어 남북정상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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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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