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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동학혁명기념탑 성금으로 건립

▲ 조광환 동학역사문화연구소 부소장
지난4일 전북일보에 실린 이종민 교수의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란 제하의 글을 보고 안타까움과 아쉬운 마음이다. 처음엔 과거에 그랬듯이 또 시작하는구나 하는 마음과 이전투구의 모습으로 비쳐질까봐 그냥 넘어갈까 했지만 사실관계가 잘못된 글이 언론을 통해 또 다른 왜곡과 그로 인한 확대 재생산이 될까 우려되어 몇 자 적어본다.

 

"정읍 조소마을의 전봉준 장군의 고택에 다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장군의 초상이 있다. (…) 저런 눈으로 어떻게 완고한 봉건질서를 깨트리려 했단 말인가?" 운운하는 글은 보는 사람 시각차이라 굳이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황토현기념탑(정확한 명칭은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박정희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다.

 

탑 건립은 1963년 당시 전북일보 기자였던 이치백씨가 서울대 역사학과 김상기 박사를 취재하면서 거론되었으며 가람 이병기 선생을 건립위원장으로 선출하여 민간주도로 건립추진위가 구성되어 건립비용은 각계각층의 성금을 통해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대선이 있었기에 정략적 계산에 따라 공화당에서 일부 성금을 냈으며 1963년 10월 3일 개막식에 박정희가 참석하여 기념사를 했다는 이유로 마치 박정희에 의해 조성된 것처럼 표현한다면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시대적 상황과 이런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탑을 건립한 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왜곡하고 욕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부족하여 기념관을 하필 그곳(황토현)에 덩실 세운 것도 그렇다. 그곳에서 혁명정신과 무관한 사람들이 임원(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랍시고…."라고 하였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임원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 임원들을 어떤 절차를 통해서 누가 정하였고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또 현재 임원 구성원 중 전주와 고창사람들은 있어도 정읍 사람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는지. 오히려 정읍 사람들은 기득권 주장은커녕 토사구팽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언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조그만 고을의 일로 기리려는 왜곡을 했단 말인가. "동학농민혁명이 어느 특정지역의 전유물일수는 없다느니, 그 역사적 의의를 지역일로 축소시키려는 음모가 치열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느니 운운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마치 공론인 것처럼 주장 하면서 뒤틀린 역사관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데 정읍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우리만의 것이다'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있으면 그 근거를 제시해주길 바란다.

 

이 기회를 통해 분명히 말해두건대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인 항쟁이었으며 세계 혁명사에도 우뚝 설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전국화ㆍ세계화되기를 바라며 또 노력할 것이다. 다만 그대들이 무관심했던 험한 시절에 정읍에서 우리의 선배들이 감옥까지 가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고자 했던 것만큼은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말로는 인정한다느니 하면서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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