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가뜩이나 시를 읽지 않는 세상, 그걸 노래로라도 만들어서 함께 부르자고 하는 데 더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한 개그맨이 열 몇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은 부부한테 각각 똑같은 질문 몇 가지를 던지더니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결혼한 날짜도 똑같고, 함께 살아온 세월도 똑같고, 집 주소도 똑같고, 아이들 이름도 똑같은 걸 보니 두 분이야말로 천생연분이네요.” 억지스럽긴 해도 그런대로 개그 한 토막은 된다 싶었다.
시(詩)와 음악도 그와 비슷한 사이지 싶다. 리듬이 바탕을 이룬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아니, 이 둘은 애시당초 혼인하듯 함께 출발했다는 게 옳다. 우리 문학사를 보면 오늘날의 시는 시가(詩歌) 양식으로 애창되었다. 향가가 그랬고, 시조 또한 그랬다. 이따금 듣는 시조창(時調唱)은 맛깔스러운 구석이 있다. 널리 애창되는 우리 가곡(歌曲)들 또한 시와 음악의 ‘천생연분’ 같은 결합으로 생겨났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가곡 <동심초> 의 가사는 중국 당나라의 설도라는 여류시인이 지은 한시(漢詩)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하는데, 시의 정서와 곡조가 참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들을 때마다 애잔한 감흥에 젖게 한다. 정지용의 <향수> 는 오랜 세월의 억류기간을 거친 뒤 대중가요의 가사로 거듭나서 일반인에 널리 알려졌다. 고향을 그리는 시인의 아련한 심사가 노래의 전편에 아름다운 선율로 녹아 있어서 이 또한 더할 나위없다. 향수> 동심초>
이렇듯 한 편의 시 작품과 음악의 조화로운 만남은 잘 맺어진 부부처럼 보기도 듣기도 부르기도 좋다. 그런데 다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그게 문제다. 시와 음악이 한 집안 태생인 건 분명해 보이지만, 하나로 묶여 있으면서도 서로를 등지고 각각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걸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루가 멀다하고 삐걱대는 부부 사이 같다고나 할까.
과거와 달리 시는 이제 더 이상 노래로 존재하지 않는다. 활자화되어 읽히고, 그런 읽음을 통해 독자 저마다의 독특한 감흥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바로 시 양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가 만들어내는 감흥은 그것을 찬찬이 읽은 독자의 수와 비례한다. 시는 오로지 읽는 이의 자유로운 정서와 만났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그뿐이다. 가미(加味)도 제약도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이 가해져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따금 시와 음악을 한 곳에 억지로 묶어놓자고 드니 그게 문제다. 서로 죽고 못 살아서 묶어주어도 문제거늘, 하물며 정략결혼시키듯 둘의 성격이나 취향까지 깡그리 무시하고 칭칭 동여매놓으니 영락없는 개발의 편자 꼴이다. 곡을 붙이다 보니 정서는 하나로 제한되고, 결국 그 시는 더 많은 상상력을 자아낼 수 없는, 단지 어설픈 노래 한 곡의 노랫말로 전락해서 억울하게도 꽃다운 나이에 요절해버리고 마는 꼴이다. 기왕에 시를 가져다 곡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 거라면 그 시의 정서를 제대로 살려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시낭송이라는 것도 가끔 듣다 보면 이따금 소름이 돋는 경우가 있다. 감흥 때문이 아니라 저게 아닌데 싶어서다. 그건 필경 낭송자의 감정 과잉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겨레 칠천오백만 국민시인인 소월의 <진달래꽃> 에 붙여진 곡은 부조화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로큰 롤 밴드 반주에 곁들여진 여가수의 째질 듯한 음색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진달래꽃>
시가 좋아서 그걸 가져다 노래로 만들라치면 그 시가 갖고 있는 보편적 정서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게 자신 없으면 차라리 시집 속에 그대로 두는지. 화단에 피어 있는 장미꽃이 하도 아름다워서 그걸 곁에 두고 보자고 꺾어서 방안에 들여놓으면 며칠 못 가 시들어 버린다. 장미꽃이야 또 피우면 된다고 하지만, 밤을 꼬박 새우며 피어난 그 꽃을 제대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더 많은 이들의 아쉬움은 어떡하라고.
가뜩이나 시를 읽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걸 노래로라도 만들어서 함께 부르자고 하는 데 더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물론, 시인도 아닌 것이, 작곡이 뭔지도 모르는 것이, 마구 풀어낸 생각의 일단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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