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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와 자생력의 딜레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을 기본적인 원리로 가지고 간다. 그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강자와 약자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경쟁속에서 살아난 사람은 무엇이든 보상을 받고 더 성장한다. 그러다보니 더 우월한 지위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쌓아가기 수월하다. 최근 어떠한 일을 할 때 흔치 않게 들리는 말이 지역 업체인지 아닌지 물어본다. 이전에는 수도권과 지역으로 많이 비교를 했다면 최근에는 전라북도 지역내에서도 더 세분화 하여 관내로 분리한다. 지역의 경우 시장 자체에서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 소비자를 직접 만나서 수익을 내는 B2C보다는 기관을 상대로 하는 B2G 혹은 기업이나 단체를 상대로 하는 B2B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일반 사업의 경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문화예술은 소비의 특성상 지원금 없이 자생력을 갖기란 아주 힘들다. 결국 정부 지자체에 의존성이 크다보니 어떠한 일을 하기위한 다툼이 자생력과 경쟁력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자체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여 지역의 구성원이 자생력을 갖고 경쟁력을 키울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은 제한적이고 하려는 사람이 많다보면 당연히 우리 지역 안에서도 경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발생한다. 객관적 지표로 나오지 못하는 일들은 현실에서는 그 외적인 요소가 판단의 명분이 되는경우가 더 많다. 결국 지역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여기에서 힘의 논리라는 권력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대내외적인 명분과 인지도 등 복합적인 것을 말한다. 지역에서는 어떠한일을 하는데 있어서 누구를 알고가 정말 중요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한다. 비단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고 어디라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비슷할거라고 생각이 든다.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실력을 키우고 노력을 하자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역의 특성상 수도권 타 지역과 비교하여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만 할수있는 환경은 힘들다. 지역의 민간 기업이나 단체들은 어쩔수 없는 B2G가 차선의 선택일수도 있다. 예를들어 문화예술단체는 연초 정부나 지자체 지원사업 선정에 따라서 일년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때 여러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존폐를 생각할만큼 힘들다. 그만큼 지역에서는 지자체의 권한의 쓰임이 정말 중요하다. 생계가 달린만큼 대부분 경쟁력을 키워 자생력을 키우기보다 권한의 선택안에 들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살기위한 선택이 지역의 경쟁력을 키우는것보다 뒷전이 되고만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겠지만 권한을 가진사람이 기회의 공정이라는 것을 넘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의지도 어느정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순수하게 실력과 경쟁력을 키워 성장할 생각만 하지 권한의 선택에 들기위해 지원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 정책을 잘 분석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이러한 노력이 무너지면 다시 경쟁력보다 그 외적인 관계에 더 신경을 쓰며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는 악순환의 반복이 된다. 지역 관내 업체 및 단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외부적인 관계를 잘하는 것을 명분으로만 삼을게 아니라 누구나 도전하고 노력하면 성공할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져야 발전하는 지역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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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8 13:55

속인대서 속을까? 내 아이는 죽었어도 봄은 다시 올 텐데

조선시대 시인 홍세태(洪世泰1653~1725)의 「유감(有感)」이라는 시에는 자식을 잃어버린 후에 맞은 어느 봄날의 허전함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전에는 우리 아이와 옆집 아이가 함께 놀았었는데, 오늘은 옆집 애만 홀로 왔구나. 봄바람에 꽃다운 풀, 고운 꽃들, 어느새 또 못가에 가득건만(昔與隣兒戲, 隣兒今獨來. 東風芳草色, 忽復滿池臺).” 세월은 가고 산 사람이라서 살다보면 이태원에서 죽은 자식도 더러 한두 시간 씩은 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과 꽃이 새 생명으로 다시 피어나는 어느 봄날 불현듯 ‘내 자식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부모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를 막지 못해서 내 자식이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해야 하는 부모는 그 원통함을 어떻게 삭일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는 주최 측이 없는 자발적 집회에 대한 통제 매뉴얼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크게 터지고 말았다는 점을 설령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부 윗선’사람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주최 측’, ‘매뉴얼’ 이런 거 따지기 전에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한다.”는 큰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리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행정안전부도, 서울시도, 서울시 지방경찰청도 아무런 예방조치를 안 했다는 점에서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억울하고, 국민들은 머리가 쭈뼛거릴 만큼 화가 치미는 것이다. 그럼에도 총체적 책임을 져야할 ‘윗선’은 여전히 ‘주최 측이 없는 자발적 집회’라는 점을 면책의 구실로 삼으면서 참사가 터진 후에 대응을 제대로 못한 사람들에게만 엄정수사와 과학수사의 자를 들이대고 있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인 사마광은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린다 해서 다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감동은 진실에서 나온다. 남을 속이려 들면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먼저 알아차린다.”라고 했다. 국가 애도기간에 슬픔에 겨워 매일같이 조문한 사람도 있을 테고, 지금도 이태원 현장을 찾아 헌화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진심어린 조문은 유가족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런데 사람은 왼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면서 오른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기가 쉽지 않다(人莫能左書方而右書圓也-한비자). 동그라미든 네모든 하나를 택해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그려야 감동을 주는 그림이 나온다. 누구라도 책임을 면하고자 이중의 마음으로 그저 조문을 위한 조문을 한 사람이 없었기를 바란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보는 사람이 없다 해서 하나라도 속이려 들지 말라. 다른 날, 곁에 있었던 돌이 말을 할까봐 걱정하게 될 테니(莫爲無人欺一物, 他時須慮石能言).”라고 했다. 우리가 한 거짓말을 돌(石)이 들어뒀다가 나중에 폭로할 수도 있으니 아예 거짓말 할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 참사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솔직함이 민심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다. 정직한 사과가 용서받는 최선의 길이다. 엄청난 참사의 근본 원인을 꼬리자르기로 속인대서 국민이 과연 속을까? 내 아이 죽은 자리에 봄이 오면 그 분노, 그 한이 다시 살아날 텐데…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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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1 18:39

김장의 문화적 가치

필자는 계절보다 절기의 흐름을 믿는 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다양한 이상기후 속에서도 절기만큼은 ‘웬만하면’ 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나 신기하리만큼 우리 삶의 방식이나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에서 절기는 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 24절기 중 입동(立冬)이 지났다. 올해 달력도 달랑 한 페이지만을 남겨두고 있으며, 어느덧 겨울에 들어섬을 알리는 입동. 가을은 완연히 깊었으며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홀가분한 모습이다. 이 입동이라는 절기에 들어맞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입동이 지나면 김장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에 들어서기 전 배추나 무 같은 뿌리채소는 맛이 좋다. 더 추워지기 전에 곳간을 든든히 채우고, 우리 내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 될 김치를 준비했던 시간. 김치를 만드는 무수한 역사를 거치며 자연히 알게 된 삶의 지혜를 나타내는 속담일 것이다. 늦가을에 한꺼번에 많은 양의 배추나 무 등을 김치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김장’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행위이자 일정 기간이며 한국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문화이다. 그래서 판소리라는 노래 자체보다 ‘판’이라는 개념의 문화에 흥미가 있는 소리꾼인 나는 ‘김장’이 가지는 문화에 집중한다.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채소에 절임을 하여 저장하는 음식인 김치를 담그는 행위는 어떤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세계적 문화유산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야말로 한국의 특정 계절에 행해지는 독특한 문화 형태를 띠기 때문일 것이다. 김장철에는 가족, 이웃, 친구 할 것 없이 손을 보탠다. 다양한 공정이 필요한 작업이며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므로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중노동을 하는 명절과도 같겠지만 예로부터 김장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일하고 만들어가는 단합의 연례행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안 마다의 고유한 김치는 마을의 이웃 식탁으로 전해지고 모두가 서로의 김치를 맛보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지금이야 1인 가구의 형태도 많고 가족 규모도 축소되었으며 시중에 판매되는 공장식 김치도 많아지고, 김치를 만들 줄 아는 사람도 적어졌다. 하지만 김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김장하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김장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을 걸쳐 나타나는 사회적 생활관습이 아니던가. 단순히 김치를 만드는 행위를 넘어 가족만의 전통과 풍습을 이어나가며 함께하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정서적 유대감 속에 우리 사회는 김장철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김장은 나눔이다. 먹거리와 맛에 대한 나눔이며 힘든 노동을 나누는 품앗이이다. 김치를 함께 만들고 나누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김치 맛을 통해 지역의 색깔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더 작게는 가정마다 가지는 다양한 맛과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김장을 앞두고 사회의 더 다양한 모습에서 나눔을 가질 필요를 느낀다. 그것에 가장 큰 나눔은 공감이다. 서로의 힘듦을 공감하여 나누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의 결핍을 공감하여 채우고자 하는 마음. 더 나아가 각자만의 맛과 멋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너그러움. 김치를 만드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김장이라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고유 관습으로 지속되길 희망한다.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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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4 14:17

전북 아동문학 형성기의 특성

한국 아동문학 100주년을 맞으면서 ‘전북 아동문학 특성’을 살피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 아동문학의 문학적 특성은 지역 아동문학과 통합되어 해석될 때 더욱 풍성해지고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북 아동문학에 관한 연구와 조명은 아주 미비한 실정이다, 1996년 <한국일보>(4월24) 한국의 예맥(藝脈) 한국 아동문학의 계보와 2013년 한국아동문화연구센터의 한국동화동시 선집, 2022년 《시와 동화》 『한국 아동문학가 100인 작가 작품론』 단행본 3권(강정규 엮음)을 참고해보면 전북의 아동문학가로는 김경중, 김여울, 김자연, 김향이, 목일신, 박상재, 윤이현, 이준관, 이준섭, 이준연, 진복희, 최균희, 최명표, 한상순, 한윤이, 허호석 등이 거론되었다. 아동문학은 독자 수용 측면에서 아동과 성인을 수용하는 장르로 동요, 동시, 동화(아동⸱청소년소설 포함), 평론, 동극을 총칭한다. 전북의 아동문학 시기 구분은 크게 형성기(1920-1970), 성장기(1971-2000), 발전기(2001년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전북 아동문학 형성기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북 아동문학 형성은 한국 아동문학 형성과정처럼 1920년대 다양한 계몽적 문화 운동과 사회 예술 활동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문화를 경시하는 경향이 짙었다. 위기감을 느낀 민족해방 운동가들은 민족공동체 의식을 부여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소년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전북에서도 소년 운동회의 지도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곽복산과 고용준. 목일신 등이 <김제 소년회>, <김제 소년연맹>, <김제 독서회> 등을 통해 아동문학의 효용적 측면을 부각하고 《어린이》 잡지와 <동아일보> 등 신문 매체에 시와 동요, 동화, 평론 등을 발표하였다. 전북 아동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은 김완동(동화)과 목일신(동시)을 들 수 있다. 1930년 김완동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구원의 나팔 소리」,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약자의 승리」를 당선시키는 쾌거를 이룬다. 그의 「구원의 나팔 소리」는 식민지 주민의 고통을 우회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유고 동시집으로 1965년 『반딧불』을 남겼지만, 문학적 활동이 아주 짧아 아쉬움을 던져 준다. 목일신은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시골」을 당선시키면서 전북 아동 문단에 동시⸱ 동요의 싹을 피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 「누가 누가 잠자나」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한 조국의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작품을 생산해 내지는 못했다. 1940년대 일제 강점기 전북의 아동문학은 주로 동시를 중심으로 교육적 측면에서 아동문화 운동으로 이어진다. 1946년에 김목량, 김수사, 김영만, 백양촌 등이 <아동문화연구회>를 조직하고 《파랑새》라는 아동 잡지를 창간하였다. 여기에 발표된 작품은 동요와 동시가 주를 이루었는데 내용은 교육성이 강했다. 이후 《파랑새》는 4호로 폐간되었다. 뒤를 이어 1948년 강영호, 강정희, 김성덕, 김화삼, 백양촌, 주영택 등이 <전북 봉선화 동요회>를 조성하여 동요 창작을 선도하였다. 1950년대 전북 아동문학은 침체 상태로 접어든다. 1953년 김완동을 주축으로 <전북 어린이 신문>이 창간되면서 그동안 간헐적인 잡지 운행과 동인지 발간에만 머물렀던 전북 아동문학의 맥을 잇는다. 해방 후에는 김해강, 신석정 등이 전북 아동문학가의 문단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196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인형이 가져온 편지」를 당선시킨 이준연의 등장은 그동안 동시와 동요로만 맥을 이어 오던 전북 아동문학에 동화 창작의 시발점이 되고 동인지 발간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거꾸로 나라 임금님」, 「종이 위에 지은 집」, 「밤에 온 눈사람」,「춤추는 허수아비」, 「새로 쓴 우리 꽃 이야기」 등 토속적인 소재로 우리가 지켜야 할 뿌리를 찾는 동화를 썼다. /김자연 전북작가회의 회장·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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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7 14:00

규모의 경쟁 넘어 상생의 길로

전라북도 14개 시군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개최 된다. 특히 코로나19에서 어느정도 심리적 자유를 찾아가는 시기와 맞물려 그동안 움추렸던 마음을 위로하고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관광 관련 직종 모두 오랜만에 특수를 누리고 있다. 가지각색의 지역 축제와 행사들도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지역안에서의 공급 대비 인적 물적 수요를 맞추기 힘들정도의 상황이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단기 인력 조차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가을 한시기에 이루어지는 너무나 많은 행사도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인건비 상승, 지역 인구 감소 등의 다양한 사회적 현실도 진행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세금이 투입되는 행사는 예산이 정해져있다. 그리고 그냥 예산을 소비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여기에 맞는 명분과 실적도 요구 된다. 당연히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는만큼 냉철한 피드백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예산 투입 대비 큰 효과를 내는 효율성 문제도 중요하다. 축제의 예를 들어보면 같은 예산으로 행사 규모도 크고 더 유명한 연예인을 부르는지도 경쟁이 되고 있다. 가장 쉽게 눈에 보여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사실 많은 관광객 방문을 유도할수 있는 보증된 방법이기도 하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방문하여 그 지역 안에서 돈을 쓰게 하여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되는 선순환 구조와 브랜드 가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눈에 바로 보이는 실적이 평가의 중심이 되면서 왜 축제와 행사를 하는지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의 고민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평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물가나 인건비 상승률 등 사회적 현상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민간의 영역도 공공의 영역도 마찬가지 이다. 주어진 환경은 무시한채 눈에 보이는 실적만 쫒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가 무리함에 지칠수가 있다. 예산은 한정적인데 규모의 경쟁만 중심이 되다보면 결국은 그 속에 연결된 많은 수많은 직업군의 사람들의 희생이 요구가 될 수밖에 없고, 희생의 요구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상품을 제공할수 없게 된다. 예산이 늘어나고 커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세금도 한정적이기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크고 좋은 TV 스크린이 있다고 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볼수 있는게 아니라 좋은 콘텐츠를 먼저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작년에는 버스킹 공연 10회 했는데 같은 예산에 이번에는 100번 했다가 좋은 평가를 받는게 아니라 축제나 행사의 가치를 찾고 그 속을 채워 나간다면 1번만 공연을 했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고 더 큰 가치를 얻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느 한쪽이 맞다 틀리다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고 더 큰 실적을 이뤄 냈다면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예를들어 IP나 스토리 텔링 등 콘텐츠와 브랜딩을 고민하는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수 있듯이 무조건 규모의 경쟁이라는 최고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문화예술관광의 생산자나 소비자 입장에서 모두가 상생할수 있는 방향을 한번쯤은 돌아봤으면 한다. 더 작은 예산으로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더 많이, 더 화려하게 할까의 고민에 벗어나서 이제는 어떻게 더 알차게 꽉 채울까를 먼저 고민한다면 축제나 행사도 더욱 가치있고, 오늘뿐만아니라 미래를 아우를수 있는 모두가 행복한 축제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시대적 요구와 4차산업시대 전환기속 문화 소비의 방법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최대한 저렴하게 비즈니스를 진행 해서 예산을 뛰어 넘는 실적에 대한 박수 받기에 앞서 축제나 행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평가도 한번쯤은 중요하게 다루어지기를 바란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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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31 14:10

강하면 약한 자를 쳐도 된다고?

“마땅히 잘라야 할 때 자르지 않으면 도리어 자르지 않은 것이 만드는 혼란을 받게 된다(當斷不斷, 反受其亂).”라는 말이 있다. 『사기』 「춘신군열전」, 『한서』 「곽광전」 등 여러 역사서에 나오는 말이다. 끝내 용서를 빌지 않는 악은 단호하게 잘라내야 함을 천명한 말이다. 수년 전만 해도 친일파로 지목받는 사람들은 자신 혹은 조상의 친일행각이 드러날 까봐 ‘쉬쉬’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예 드러내 놓고 “그래, 나 친일파다. 어쩔래? 친일이 뭐가 나쁜데?”라고 대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당의 대표 격인 인물도 일본 우익들 주장과 똑 같은 발언을 해 놓고선 “그게 왜 식민사관이냐?”며 도리어 언성을 높였다.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이 아니라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는 주장에 담긴 문제를 그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조선이 내부적으로 부패가 많았고 힘이 없었던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침략이 정당화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화해도 된다는 논리를 인정하면 세상은 완전히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가 되고 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도 정당해지고, 힘만 가진 일부 악덕 검·판사가 힘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도 공평하고 정당한 일이 되며,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폭력도 당연한 일이 된다.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당의 대표는 자신이 한 말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내가 뭘?”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고수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물론, 을사늑약과 한일병탄 때에도 우리는 일본과 죽기로 싸웠다. 다만 부패한 기득권은 싸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도망치거나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런 부패한 기득권의 편을 들기라도 하려는 듯이 죽기로 항거한 의병들과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애국지사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는 말을 하니 분통이 터진다. 광복되었을 때 분명하게 잘라냈어야 할 친일파들을 잘라내지 않은 탓에 도리어 그들이 야기하는 난(亂)을 당하며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우리의 근대화를 도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잘 살게 되었다.”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날로 퍼지고 있다. 일제의 엄청난 수탈은 잊은 채, ‘편리한 수탈’을 위해 그들이 건설한 철도와 항만시설 등을 거론하며 그들에게 감사하자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인터넷을 타고 퍼지는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친일파면 어때?”라고 오히려 되묻는 뻔뻔한 사람들의 득세와, “겁도 없이 검찰을 무서워하지 않다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위세로 인해 엄청난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되면서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의는 빛을 잃고 다만 패거리지어 힘을 행사하려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다. 마땅히 잘라내야 할 것은 잘라내지 않은 후유증이다. 『한비자(韓非子)』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국가의 안위는 힘의 강약에 달린 게 아니라, 시비를 분명히 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국민이 깨어나 새로운 ‘국민문화’의 힘으로 나라를 구해야 할 때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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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4 13:18

더늠을 인정하는 사회로

판소리 용어 중 ‘더늠’이라는 개념이 있다. 얼마 전 끝난 2022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주제 또한 <더늠>이었다. 그렇다면 이 ‘더늠’은 어떤 의미일까? ‘더늠’은 ‘더 넣다’ 혹은 ‘새롭게 만들어 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판소리에 소리꾼의 특별한 역량과 색깔을 바탕으로 새롭게 작곡되거나 구성을 이뤄내는 것. 소리꾼 개인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음악적 표현인 셈이다. 판소리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해 온 것도 ‘더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제자가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도제식 교육의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던 ‘더늠’의 개념은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렸다. 스승의 소리와 똑같이 흉내 내는 것, ‘거울 소리’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미덕인 소리판에서 어쩌면 그다음 단계의 예술적 행위를 개척해 나가는 다른 차원의 세계일 것이다. 유명한 더늠으로 꼽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김창환 명창의 <제비노정기>랄지, 이동백 명창의 <새타령>, 임방울 명창의 <쑥대머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더늠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바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판소리 또한 당시의 대중음악으로서 관객의 사랑과 인기로 유지, 발전해 온 장르다. 판소리꾼이 부르는 특정 대목이 더늠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적이면서 가창자의 유일무이한 개성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독창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독특한 음악’이 대중성과 연결되는 지점은 꽤나 어렵고 까다롭다. 수많은 대중을 만족시키고 다양한 관객의 기호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은 매우 다채롭고 빠른 호흡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는 필수적 요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예술성을 색깔로 삼아 오래도록 유지하는 힘은 ‘인기’라는 흥행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구전심수라는 전승 방법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승의 소리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결국 본인을 발견하게 된 어떠한 지점은 아니었을까. 멋지고 아름다운 옷일지라도 나의 체형이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옷이 있다. 힘을 주어 치장을 해도 별 볼 일 없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저 나에게 맞는 옷을 입었을 뿐인데 칭찬 일색인 날이 있다. 더늠도 그렇게 발견하게 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호쾌하고 신명나는 대목보다는 애원성이 짙은 이별가 한 대목이 참 듣기 좋은 소리꾼이 있다. 어울리는 대목, 성음에 맞는 소리 옷을 입은 격이다. 물론 여기서 전제는 다양한 케이스를 실험하고 관찰해야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노래를 분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도 있는 학습과 깊이 있는 고민들이 더늠을 가진 소리꾼으로 성장시킨다. 판소리는 현재 다섯 바탕의 소리를 전통이라 부르고 있다. 이전에는 열두 바탕도 있었으며 더 이전에는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의 소리가 존재했을 것이다. 판소리는 삶의 모든 지점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담아낸다. 판노래가 아닌 판소리라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그만큼 우주 삼라만상을 담아내는 큰 그릇의 음악 아니던가. 왜 더 많은 더늠들이 자유롭지 못하며, 왜 더 다양한 소리꾼의 취향이 대중 앞에 나오지 못하는가. 우리 사회는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 모든 지점의 청춘과 젊음을 갈망한다. 창작이 이뤄지지 않은 전통은 있을 수 없다. 더 다양한 ‘더늠’을 인정하는 예술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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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7 14:22

아동문학 감수성 수업

전라북도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9월 19일부터 10월 7일까지 민주주의, 인권, 생태, 평화, 문화 감수성을 위한 특별한 수업이 있었다. 전북 교육청과 전북의 아동문학가들 15명이 연계해 아동문학(동화와 동시)을 활용한 수업 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수업 목적은 길어진 비대면에 의한 초등학생들의 갈등 해결을 아동문학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도내 66개 학급에 작가 1인씩 분담해서 찾아가는 수업 형태였다. 교과서 수록 작가, 교과 연계, 민주시민 감수성 주제 도서 작가가 우선 선정되었다. 학생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 시민의 가치를 내면화시켜 보자는 것인데 상당히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해 마스크를 쓴 채 비대면으로 수업받은 것이 3학년이다. 친구들과 소통하고 웃고 떠드는 자유도 누려보지 못한 학년인지라 비대면의 고통과 상처가 제일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3학년을 아동문학 감수성 수업 대상으로 삼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 작가를 반기는 아이들의 눈빛이 작년에 만났던 아이들의 눈빛보다 한층 밝아 보여 내심 안도감을 느꼈다. 장기간 비대면 수업으로 문해력이 약해져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봐 내심 염려하였다. 하지만 게임과 퀴즈 형식의 문학 활동 수업에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민주시민의 가치 실현을 위해 작가가 선택한 수업 주제는 갈등과 차별이었다. 동화집 『초코파이』에서 아이들 선호도가 높았던 동화 「짜장밥의 소원암호」를 통해서다. 짜장밥을 좋아해 장차 유명한 식당을 차리는 게 꿈인 민영이가 공부 잘하는 언니와 비교당하는 부분에서는 차별의 문제를 다루었다.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세 개나 먹었는데도 배탈이 나지 않았던 민영이의 태도를 통해 갈등과 소통에 관해 이야기했다. 공부 잘하는 형이나 언니, 동생과 비교당한 이야기, 친구들이 너는 왜 키가 작냐? 얼굴이 못생겼다, 몸이 약하다 등 아이들은 갈등과 차별에 대한 경험을 마음껏 쏟아냈다. 아동문학 감수성 수업의 효과이리라. 색종이에 자기만의 소원암호를 적고 변신해볼 대상을 적게 했더니 뜻밖에 “엄마와 아빠”가 많이 나왔다. 이유는 엄마 아빠에게도 똑같이 잔소리를 해주고 싶다는 거다. 아이들이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차 꿈이 뭐냐는 질문에는 영상 시대 아이들답게 크리에이터가 1위, 소방관, 웹툰 작가, 연예인, 게임머, 교사 순이었다. 다만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진행하는 까닭에 목소리가 작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친구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조금 산만하고 답답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안타까웠다. 민주 시민을 위한 감수성 수업이 끝나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아이들이 우르르 다가와 작가의 품에 안겼다. 그동안 관심과 사랑이 목말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준 우리 아이들! 앞으로도 아동문학 작품을 통해 위로받기를 희망한다. 마스크를 벗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또래 친구들 이야기를 정확히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자연 전북작가회의 회장·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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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0 17:36

코로나19의 경험을 미래를 위한 준비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는 사람도 늘어나고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처음 방역수칙 위반 대한 민감함과 피로도도 줄어들어 확진자라고해서 대역죄인 취급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위드 코로나 시기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파도 바로 회복은 힘들겠지만 심적으로나마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각 지역마다 수많은 축제와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공연장이나 영화관에도 서서히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도 그동안 움추렸던 본능을 다시 찾는다는 보상심리의 보복여행이라는 말도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2019년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에 정부나 지자체도 처음 겪는일이라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 이를 극복하기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특히 문화관광시장의 경우는 소비의 측면이 강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위축된 소비시장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서는 문화관광에 관련한 직업군의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직을 한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심지어 새로운 직업을 겪으면서 더 큰 세상을 봤다며 속시원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힘든 삶속에서 버티려는 사람들은 대체방안으로 비대면 공연 및 행사, 랜선여행, VR투어, 메타버스 등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사실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서로 숨소리를 느끼고 부딪혀야 매력을 느낄수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런 방식이 좋아서가 아니라 살기위한 선택으로 여러 가지 대안과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공연이나 행사의 경우는 취소가 지속되자 유투브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소통하는 비대면 방식을 찾았다. 처음에는 부정적 의견들이 주를 이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접적인 경험도 생각보다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예를들어 공연이나 행사의 경우 오히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소비 방식 두가지를 열어놓고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공연이나 행사는 어떻게하면 관객과 더 가까이 그리고 소통하며 함께 즐길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만 반대로 오히려 어떻게 하면 서로 떨어지고 분리되서 접촉을 최소화할까라는 고민들을 했다. 투명한 돔 안에서 공연을 한다던지 건물의 밖에서 한다던지 최대한 사람과 사람간 벽을 세우고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진행했다. 심지어 노래를 하는 가수들도 마스크를 쓰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관광의 경우에도 미디어를 통해서 느끼고 즐기는 랜선 여행 상품도 많이 생겨났다. 여행이라함은 본래 실제 떠나서 먹고 즐기며 힐링하는게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랜선여행이라하여 간접적 경험을 통해서 대리 만족에 가치를 만들었다. 심지어 서로 소통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았다. 코로나가 아직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에는 이러한 문화 관련 시장의 소비방식이 변할거다라는 의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적어졌다. 오히려 다시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대로 코로나 시기 많은 관심을 받았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시작해야할 것 같았던 메타버스와 같은 시장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에 문화와 예술 그리고 관광의 새로운 소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가능성을 봤고 만족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긍정적으로는 4차산업시대 새로운 시장에 대한 예측을 해볼수 있는 경험의 자산이 축적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려운 시기속에서도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잘 버티며 이겨냈다. 그 덕분에 미래에 대한 경험도 미리 했다. 이제는 위기속에서의 경험을 잊지 말고 시대적 요구를 부정하기보다는 앞으로 마주칠 4차산업시대를 잘 준비하여 어려움이 다가와도 잘 이겨낼수 있는 경쟁력을 갖기를 바란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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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3 13:59

혼을 그린 화가 채용신

조선 말기로부터 항일시대에 활동한 천재화가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1850-1941)의 그림 전시가 9월 22일에 개막하여 10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전주 KBS갤러리와 미술관 솔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석지 채용신의 주특기인 초상화 뿐 아니라, 화조도 병풍도 출품되어 채용신의 그림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채용신은 ‘천재화가’이다. 스승을 두고 배워 그린 게 아니라 스스로 타고난 재주를 발휘하여 그렸기 때문에 천재화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채용신은 조선 말기 망국의 시기에 초정밀묘사로 머리카락 한 올, 옷 주름 한 자락도 놓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너무 잘 그린 최고의 초상화가이다. 채용신은 선대가 벼슬을 찾아 고향 전주를 떠났기 때문에 서울 삼천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직을 맡기도 하고 군수도 역임했으나 1906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선대의 고향인 전북으로 내려와 익산, 김제 등지에 거주하며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1910년대에는 항일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인물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절명시 4수를 남긴 채 자결한 매천 황현, 일제에게 끌려가 대마도에서 순국한 면암 최익현, 의병장 기우만의 초상 등을 이 시기에 그렸다. 고종황제의 어진을 그린 것도 이 무렵이다. ‘초상화’는 근대 이후에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인물화를 주로 칭하는 말이다. 전통적 용어는 ‘사조(寫照)’, ‘상(像)’, ‘화상(畫像)’, ‘영상(影像)’등이며 이런 초상화를 세로두루마리(족자) 형태로 표구해 놓은 것을 ‘영정(影幀: ※幀그림족자 정)’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비춰서(반영하여) 그린다’는 뜻인 ‘사조(寫照)’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초상화는 고도의 정밀묘사를 강조했으므로 “털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似便是他人)”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화상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공신이나 성현을 추모하며 그들의 덕행을 거울삼기 위해 그려 걸기 시작하면서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화상은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학과목 시험인 과거제도는 당나라 때에야 시행되었고, 그 이전에는 오늘날의 면접과 같은 시험을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찰거(察擧)제도를 사용했다. 찰거제도 아래서 오랜 세월 인물을 관찰하고 소행을 확인한 과정을 정리한 통계자료가 바로 관상학이다. 관상학에서는 특별히 눈을 중시했다. 눈을 통해 그 사람의 정신이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상을 그릴 때에도 무엇보다 눈을 중시했다. 중국의 화성(畫聖:그림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개지(顧愷之)는 사람의 외형을 다 그려 놓고서도 그 사람의 정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싶으면 수년 동안 눈동자를 그리지 않고 유보했다. 그는 “몸체와 얼굴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은 그림의 진수가 아니다.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정신을 그대로 그려야만’ 제대로 그린 그림인데 그 관건은 바로 눈동자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전신사조傳神寫照)’는 인물화뿐 아니라, 동양의 모든 그림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채용신은 ‘일호불사 변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 관점과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정신으로 혼을 그린 전북과 세계의 천재화가이다. 10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석지 채용신」 전시 관람을 간곡히 권한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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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6 13:46

대한민국 공연예술제 그리고 진안

2022년 대한민국공연예술제가 올 10월 1일 진안에서 다시 한번 열리게 된다. 이름부터 거창한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초공연예술행사의 지원을 통해 우수한 공연예술의 발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연예술 기반 구축과 국민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하는 권위 있는 예술제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제가 전라북도 진안군의 버려져 가는 용담호 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예술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진안 의 굽이 굽이 길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써니Plant는 2016년부터 진안의 유휴공간을 발굴하여 공연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키는 ‘진안공간사랑프로젝트’를 7회째 기획해 오고있다. 이 사업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진안댄스미디어공연예술제>가 2021년도 대한민국공연예술제 긴급지원사업 선정에 이어 2022년도 정식 공모사업에 전라도 최초 무용 장르 우수공연예술제에 선정이 된 것이다. 그것이 이 예술제의 가장 큰 강점이었고 주목해야 할 주제이다. “예술가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 예술제의 모티브는 공간과 사람이라고 김선이 예술감독은 말한다. 모든 공간에는 개인과 시대의 역사가 새겨져 있고, 그 역사를 바탕으로 공간들은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거나 소멸해 간다고. 도시재생 계획에 의해 유휴공간을 문화적으로 재생하려는 도시와 달리 농촌 지역은 재활용이 가능한 유휴공간이 철거되고 신축 건물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흐름에 내몰린 지역 자원으로서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용담호 미술관을 공연예술제로 재구성하여 시범적인 운영을 시도함으로써 문화예술 소외지역의 공연예술 공간으로 활성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역의 예술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지역 고유의 특색이 담긴 공연예술제를 통해 지방소멸 위기와 농산어촌 지역의 인구감소 및 유출에 따라 생기는 유휴공간 문제 해결의 전국적인 사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또한 크다. 지역의 버려진 공간에 대한 예술가의 시선과 예술적 접근이 결국 예술제로 연결되었다. 필자는 이번 사례를 보며 작은 도시, 지방이 가지는 지역성 혹은 ‘촌스러움’은 한계가 아닌 색깔있는 문화로서 사회 전반에 뚜렷한 의미와 힘을 가지고 작용할 수 있다는 가치를 발견했다. 물론 여기에서 전제는 지역에 살고 있는 예술가의 지역 문제에 대한 애정과 예술가적 상상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술은 천편일률적인 것을 지양한다. 어떻게 하면 다른 아름다움, 비교할 수 없는 혹은 대체될 수 없는 지점으로 갈 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그래서 진안이 가지는 독특한 지역적 가치와 역사 그리고 예술가의 움직임이 만나 새로운 사회 작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가 지역을 이탈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힘. 예술적 접근으로 버려져 가는 마을을 아름답게 바꿔 가는 과정. 서서히 스며들어 오래도록 건강한 문화를 뿌리내리는 가치. 이것이 진안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공연예술제가 빛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잔잔한 용담 호수에 윤슬이 비친다. 아름다운 문화의 물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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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9 13:26

아, 대면 추석

대면으로 맞은 추석이다. 그동안 거리 두기로 빼앗겼다 다시 찾은 추석이라 그런지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심정일까.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은 흩어져있던 가족이 모여 추수 감사의 제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요로운 날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는 반월을 상징하는 송편을 먹으며 소원을 띄우는 날이기도 하다. 추석을 명절로 지내기 시작한 것은 신라 때부터라고 한다.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길쌈놀이인 가배(嘉俳)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한가위 한 달 전 전국의 여인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베를 짰다. 그동안 짠 베를 전부 모아 상대편보다 더 많이, 더 고운 베를 내놓은 편이 이기는 것이다. 가배라는 베 짜기 명칭을 이후 한가위로 불렀는데 여기서 한은 “크다”, 가위는 “가운데”라는 옛말이다. 즉, 한가위 추석은 부족함을 크게 꽉 채우는 명절이다. 일상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위로와 감사, 이웃 간의 따스한 정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우리 고유의 추석 풍경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각지에 흩어졌던 혈연들이 모여 조상의 제의에 참여하고 정을 나누기보다 개별적 시간에 더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추석이 뭐냐고 물으면 “학교 가지 않는 날”,“그냥 쉬는 날”이라는 대답이 나온다고 한다. 달라진 의식구조 속에서 명절에 대한 변화를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명절은 “그냥 쉬는 날” 그 이상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그림 동화를 통해 새삼 추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이억배), 『추석에도 세배할래요』(김홍신, 임영주), 『달이네 추석 맞이』(선자은), 『분홍 토끼의 추억』(김미혜), 『추석 전날 밤에』(천미진) 등은 전통적인 추석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중 『솔이네 추석 이야기』는 30-40년 전 우리의 추석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솔이 가족은 할머니 집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버스 정류장에서 긴 줄을 선다. 겨우 버스를 올라탔지만, 도로는 꽉 막혀 더디 간다. 어렵게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 음식 냄새가 풍기고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차례를 지낸 후 성묘에 다녀와 할머니가 싸준 추석 음식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밤늦게야 솔이네 가족은 집에 도착했다. 교통이 꽉 막히고 고향 가기가 힘들어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이동이 이루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따뜻한 정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감사와 나눔의 미덕, 고마운 덕담과 격려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소외감과 외로움, 불안감을 호소하고, 사람 사이 소통의 어려움이 많아진 것도 가족 간의 단절, 공동체 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이후 대면으로 맞은 소중한 추석이다. 추석에는 우리 전통을 지키면서도 과하지 않는 추석맞이로 힘들었던 어제를 다독이고 위로가 넘치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간소한 상차림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반갑고 기다려지는 추석이 되기 위한 성숙한 의식이 앞서야 할 것이다. /김자연 전북작가회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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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2 14:36

꼰대문화와 지역 경쟁력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꼰대인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꼰대라는 말은 노인이나 기성세대를 비하하는 은어였지만 지금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통틀어 비하하는 말로 쓰인다.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옛날에는 사랑이나 미덕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이러한 문화가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거나 단순히 의견을 주장하는 것마저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꼰대에서 벗어난 사람일수록 후배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듣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인품까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보니 오히려 서로 소통이 줄어들고 가식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오히려 꼰대문화가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단순히 나의 자유의지를 침범하면 그 불편함을 저격하는 표현의 무기로 쓰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선배와 후배, 사장과 직원 등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관계에서는 자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예를들어 하나의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협력하여 일을 진행하고 대부분 리더 한 명이 지시한다. 큰 꿈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수도권에서는 수많은 경쟁 속에서 지시에 대해서 스스로 성장의 과정이라 받아들이고 이겨내려고 노력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지역은 같은 상황에도 오히려 부탁하듯 진행하는 과정을 자주 봤다. 업무를 지시하는 리더는 더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게 아니라 대체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꼰대가 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하게 돼버린 거 같다. 조금 억지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꼰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지역 경쟁력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성공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지역에 일할 수 있는 청년들이 떠나면서 많은 회사가 고충을 겪고 있다. 경쟁력 있는 인재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직원들에게 잘 맞춰줘서 동기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익이 불안한 대부분의 문화예술 관련 직종의 회사나 단체들은 직원을 고용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필요한 시기에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 인력을 찾기 위해 매번 고생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는 공연같은 경우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인력을 잡기 위해 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적 사고방식과 조언이나 소통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어떠한 일을 진행할 때 리더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불편함을 바로 꼰대라고 이야기 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존중하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꼰대라는것도 좋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소멸위기 속에서 경쟁력을 향상을 위해 서로가 노력해야 하는 시기에 와전된 꼰대문화의 무분별한 쓰임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고민해봤다. 지역 인구감소가 일할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었고, 오히려 인재를 잡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비지니스 경쟁력을 향상하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꼰대가 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재미있는 생각들이 해봤다. 꼰대문화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나쁘다 생각할 게 아니라 전체를 보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게 서로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방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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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5 14:33

뭣이 급허고 중헌디?

‘만5세 입학’이라는 졸속 정책으로 자리를 내놓은 박순애 전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의 자유자재 서울대 복귀가 ‘그들’만이 누리는 신이(神異)한 능력(?)으로 느껴져 씁쓸하다. ‘만5세 입학’이 그다지도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을까? 정책 제시의 즉흥성과 졸렬성도 문제지만, 교육부장관이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 화가 난다. 지금 우리 교육은 상당부분 ‘헛짓’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책 안의 글자는 읽지만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시험문제를 받고서도 묻는 내용을 모르는 상황이 속출하기 때문에 ‘헛짓’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한’이 ‘심심한(甚深:매우 깊은)’인 줄을 모르고서 왜 사과를 ‘심심하게(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없게)’ 하느냐고 따지고, “네 처지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자 ‘십분’이 ‘십분(十分)’ 즉 ‘100%’라는 뜻인 줄을 모르는 학생은 “왜 이해를 10분(minute)만 하고 마느냐?”고 시비를 건다. 상당수의 초등학생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국’이 ‘나라 국(國)’자 임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외우기만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OECD의 「국제 성인 문해력(文解力:문장을 이해하는 능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문맹률은 75%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라고 한다. 영상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책을 읽는 기회도 줄고 독서의 필요성도 절실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문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문해력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헛짓’을 하고 있다. 국어 중에 한자어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자교육을 금지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학생과 국민들이 한글로 쓴 글자를 읽기만 할 뿐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한자를 알면 안중근의사를 지칭하는 ‘안의사’를 ‘안과 의사’라고 하는 일은 없을 테고, ‘금일’을 금요일로 혼동하지도 않을 것이며, 병역이 ‘兵役(군인으로 일하는 것)’임을 배웠다면 코로나로 인한 격리휴가의 이유를 ‘병역’으로 택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미 군정시대에 시작하여 사실상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글전용’ 때문이다. 한자어가 대부분인 국어 교육을 한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듯이 ‘속뜻’은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일찍이 최현배가 주장한대로 단어를 현시적(눈에 보이는 대로), 평판적(판에 찍힌 대로)으로 읽게만 하고 있으니 글자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자가 영어보다 어렵지 않음에도 한자는 어렵다는 말을 세뇌하듯이 반복하니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한자를 기피하고 있다. 수 만개의 단어를 일일이 외워야 하는 영어에 비해 한자는 낱글자 1000자만 알아도 학습(學習), 학생(學生) 등처럼 수만 개의 단어를 조합하여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214개 부수(部首)만 익히면 대부분 한자의 뜻을 짐작할 수도 있고 글자꼴을 쉽게 익힐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소리글자 한글과 뜻글자 한자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한글전용’이라는 잘못된 어문정책으로 인해 문해력이 형편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를 우선 생각하여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고 질을 높이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뭣이 급하고 또 중한지’를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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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9 13:44

문화를 만드는 도시의 생김새

사람이 나고 자란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푸른 쪽빛 바다를 품은 곳, 광활한 들판이 펼쳐진 곳, 굽이굽이 깊은 산골 속에 들어앉은 곳. 우리는 이렇듯 참 다양한 환경에서 같은 해를 바라보고 일어나 같은 달을 머리에 이고 눕는다. 하지만 과연 같은가. 만경 들녘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유독 크고 열렬하다. 우주의 기운이 김제에 모여들기라도 하듯 벼를 가까이서 익히고 부안 바다로 수줍게 저문다. 부귀에서 운해를 뚫고 올라온 해는 산을 가뿐히 넘는다. 해가 뜨고 나면 인삼 그득한 밭에 물안개가 살랑이며 내려앉고, 확실히 서쪽보다 동쪽 진안의 아침은 빠르다. 자연은 어느 마을엔 이른 아침을, 어느 마을엔 깊은 밤을 공평한 듯 기울여 나누어준다. 그래서 마을마다 그리고 도시마다 ‘다른 삶’ 들이 생겨난다. 판소리도 동쪽과 서쪽이 다르다. 지리적으로는 섬진강을 기준으로 호남의 동쪽과 서쪽의 판소리를 구분 지어 둔 개념인데, 더 깊게 들어가자면 이렇게 단순한 지리적 특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음악적 논리가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호남의 갖은 양념과 풍족한 식재료. 그리고 남도의 볕과 사계절. 이것은 우리의 식문화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듯 역사적으로 줄곧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동편제, 서편제와 같은 판소리 개념의 문제는 아니며, 전라도의 맛에 관한 것도 아니다. 지역의 환경이 예술과 예술가 그리고 나아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시의 생김새가 입고 먹고 사는 곳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 저마다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처럼 도시도 각자의 얼굴을 띄고서 말이다. 도시의 생김새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적 감수성에 큰 영향을 준다. 나는 이것을 문화적 사투리라고 부르고 싶다. 사투리야말로 다양한 관점에서 큰 쓸모를 갖는다. 언어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야말로 지역의 문화를 담아내는 총체이지 않은가. 이러한 사투리와 문화적 사투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지역이 가지는 환경에서 비롯된다. 작은 천, 좁은 골목, 낮은 지붕들. 비록 큰 쓸모가 없어 보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켜켜이 세월이라는 역사를 쌓아온 것들 말이다. 전국의 다양한 한옥마을을 제치고 사람들이 전주의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는 그곳이 전주의 생김새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고 화려한 빌딩 속 도시가 아닌 작고 소담한 담장 넘어 전주 시민들이 그들만의 생활 모습을 가지고 생생히 살아가는 곳. 이렇듯 도시의 생김새가 특별할수록, 그곳의 문화가 다양할수록 사람들은 큰 관심과 흥미를 갖는다. 무분별한 개발은 더 이상 인류에게 큰 효용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개발을 멈추고 뒤를 잠시 돌아볼 시간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편리한 시대도 없었다. 이미 우리는 지나치게 편리하고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의 생김새를 유행하는 무엇인가처럼 성형하는 관점은 매우 위험하다. 전주는 서울이 될 수 없다. 될 필요도 없다. 그 도시만이 가지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읽어내고 그것을 우리가 사는 지금 모습에 반영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야말로 맛과 멋의 고장이라 불리는, 문화로 풍부한 전라북도 곳곳의 생김새는 아닐까. /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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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2 18:37

시원한 그림책

찜통 같은 여름에는 시원한 그림책이 제격이다. 『파도야 놀자』,『여름이 온다』,『달샤베트』,『수박수영장』,『3초 다이빙』,『팥빙수의 전설』은 제목만 봐도 시원하다. 요즘 그림책 열기가 뜨겁다. 그림책이란 그림으로 내용을 알 수 있게 만든 책을 말한다. 이러한 그림책은 크게 그림만 있는 그림책, 글과 그림이 섞여 있는 그림책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그림동화는 후자를 가리킨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그림책 열풍을 일으킨 것은 백희나와 이수지이다. 2020년 백희나는 한국인 최초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2021년 볼로냐 라가치 스페셜멘션(우수상) 수상에 이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의 수상은 그림책에 관한 관심을 폭발시켰다. 그가 받은 상은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콜롬비아 보고타 국제도서전에서는 한국의 그림책 시장을 소개하며 이수지와 백희나를 아주 비중 있게 다뤘다. 한국의 그림책 또한 수많은 국가에 번역 소개되었다. 현재 비중 있는 출판사 공모전에 그림책이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대중적 관심과 사랑이 크다는 걸 반증한다. 색과 선, 놀이로 상징되는 이수지의『파도야 놀자』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상상 놀이 그림책이다. 그의『여름이 온다』는 음악과 그림, 이야기를 결합한 생명력 있는 그림책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아이들의 귀로 듣고 이미지로 표현했다. 음악에서 느꼈던 감흥과 아이들의 여름날 물놀이를 절묘하게 접목한다. 음악에서 표현된 자연 속 여름과 아이들 실생활에 다가온 여름 그 접점에 싱그러운 이미지 놀이가 시작된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멋지게 깨뜨린 작가다. 그의 그림책은 그림자, 파도, 선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며 현실과 환상 세계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만든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에는 문방구와 놀이터, 목욕탕과 골목, 지붕 위, 건물에서 바라본 전경 등 한국의 친근한 풍경이 소환된다. 그의 그림책에서는 아프거나 외롭거나 혼자 남은 어린 주인공에게 놀라운 선물을 준다. 『달샤베트』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무더운 여름밤, 에어컨과 선풍기와 냉장고가 뿜어내는 열기에 달이 똑똑똑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반장 할머니는 큰 고무 대야에 달 물을 받아 달샤베트를 만든다. 더위로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달샤베트를 하나씩 나눠 준다. 달샤베트를 먹은 이웃들은 더위를 잊고 곤히 잠들 수 있었다. 올해는 더욱 시원한 달샤베트를 먹고 싶다. 그림책은 작은 미술관이다. 작은 미술관에는 단순함과 반복성, 상상력과 어떤 것과도 연결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 수박수영장에 가볼 수 있는 여유도 준다. 그림책이 주는 놀라운 힘이다. 우리 전주에도 삼례문화예술촌에 그림책 미술관이 있다. 또 2022년 5월에는 전주에서 제1회 국제그림책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제 그림책은 아이에서 100세 어른에게도 읽히고 사랑받는 장르가 되었다. 정서적인 허기를 느낄 때, 더위를 피하고 싶을 때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그림책이 쏟아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K 팝, K 영화에 이어 K 그림책이 전 세계를 주름잡을 날도 기대해 본다. /김자연 전북작가회의회장·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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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5 14:10

지역소멸위기 문화정책과 리더쉽

우리나라 큰 기업의 수장이 21세기에는 탁월한 한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가 열린다고 이야기 했었다. 다양한 가치를 현실적 수치로 계산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는 어느 혼자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함께 즐기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질때 큰 시너지를 낼수 있다. 요즘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들이 소멸이라는 큰 이슈를 가지고 다양한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실제로 지역이 사라지는 소멸이라는 말의 어원적 의미보다는 인구가 줄어서 마을에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통폐합되는 과정들의 포괄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소멸 위기를 벗어나고자 각 지역마다 문화관광산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소멸기금이라는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예산을 세웠을 뿐이지 누구도 정답을 모른다. 결국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전문성있는 몇몇 리더들의 의견에 따라 명분을 확보하고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문화 정책들은 소수의 전문성있는 의견이라고 해서 더 뛰어나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현장에 부딪히고 땀흘리는 관련 직종의 사람들의 의견에 전문성을 더했을 때 지역의 지속성있는 문화가 형성되고 이게 관광산업까지 이어질수 있다. 전문성을 가진 리더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던 각 분야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시작은 자신감으로 시작하지만 결론은 과정의 중요성에 만족을 하는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업과 같이 누군가의 자발적 투자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국민과 도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예산이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고 반성하는 자세들이 필요하다. 시도와 과정의 가치를 폄훼하는게 아니라 만족을 하기보다는 반성을 통해 좋은 결과를 위해 나아가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예산투입이 실적을 내기 위한 단기적 성과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속성을 가질수 있도록 추진해 나갔으면 한다. 전세계적으로 인구가 적고 낙후된 지역일수록 문화 관광 도시를 통해서 지역의 경쟁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곳이 많다. 우리도 문화와 예술을 통해 경쟁력 있는 관광도시를 추진해왔지만 결국 반복하여 숲만 그릴뿐 나무를 만들지 못했다. 현재 대부분 지역의 한계상 문화예술, 관광이 지방소멸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경쟁력있는 무기라는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정부는 지방소멸대응기금 매년 1조원을 편성하여 10년간 광역에 25%, 기초에75%를 배분하고 인구감소지역에 95% 관심지역에 5%를 지원한다. 전라북도내 11개 시군에 2년간 560억원이 지원된다고 한다. 이에 지방소멸기금투자계획 수립을 위한 인구감소 대응 추진단을 구성하여 일자리경제산업, 도시인프라환경, 농업농촌해양, 의료건강다문화, 문화관광체류인구, 교육등 크게 6개분야로 나누어 투자사업을 발굴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방 소멸위기속에서 무엇보다 문화관광시장 방향이 더욱 중요하고, 더불어 포용의 리더쉽이 필요할때다. 지방소멸기금이라는 예산을 기회로 문화예술,관광관련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함께 고민하며 위기를 이겨낼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낙중 카피바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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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8 14:23

금산사 회랑(回廊)은 바다로 이어져 있고

도솔암이 장엄하단 말 옛날부터 들었는데/ 봉래산의 조용한 모습 이제야 보네/ 천 걸음 되는 회랑은 물 불어난 바다로 이어져있고/ 백 층 누각은 물위에 뜬 뭇 봉우리를 감싸고 있네/ 세상을 잊은 해오라기는 종소리 속에서 잠들었고/ 불법을 듣던 용은 탑 그림자 사이에 서려 있네/ 난간마루에 걸터앉아 있자니 해질 녘 어부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물결은 비로 쓴 듯이 잔잔하며 달은 활처럼 굽은 모양으로 떠오르네.(舊聞兜率莊嚴勝, 今見蓬萊氣像閑. 千步回廊延漲海, 百層飛閣擁浮山. 忘機鷺宿鍾聲裏, 聽法龍蟠塔影間. 雄跨軒前漁唱晩, 練波如掃月如彎.) 고려 말 문호였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선생이 김제의 「금산사」를 제목으로 삼아 쓴 시이다. 시 안에 놀랄 만한 구절이 있다. “천 걸음이나 되는 회랑은 물 불어난 바다로 이어져있고”라는 구절과 “난간마루에 앉아 있자니 해질 녘 어부들의 노래 소리 들리며”, “비단 물결은 비로 쓸어 놓은 듯 잔잔하다”라는 구절이다. 김제 금산사의 회랑이 바다로 이어져 있고, 금산사 난간마루에 앉아서 어부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발아래로 바다 물결을 바라보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금산사는 고려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하니 이 시를 통해 고려 말까지만 해도 금산사 코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포은(浦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선생도 금산사 앞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시를 남겼다. 푸른 물결 사이로 금산사의 모습이 완연하네/ 산 아래 조각배에 몸을 맡겨 이곳으로 돌아왔더니/ 눈 아래로 금산사의 참모습이 다 펼쳐 있으니 /다리 힘들여 더 올라야 할 게 뭐있으랴.(金山宛在碧波間, 山下扁舟信往還. 眼底已窮眞面目, 不須脚力更登攀.) 이 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더니 금산사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고 읊고 있다. 역시 금산사 앞이 바다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최근 연구자들 사이에 김제 벽골제(碧骨堤)를 두고 ‘인공으로 판 저수지 둑’이라는 주장과 ‘바닷물을 막은 방조제’라는 주장이 나뉘고 있다고 한다. 앞서 살펴본 이제현, 정몽주 두 선현의 시를 통해 고려 말의 상황을 유추해 본다면 벽골제는 인공 저수지 둑이 아니라 바닷물을 막은 방조제일 가능성이 많다. 금산사 코앞까지 바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부안군 주산면은 한자로 ‘舟山(주산)’이라고 쓴다. ‘배를 대었던 산’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이름이다. ‘배매산’이라는 산도 있으니 ‘배를 매어 둔 산’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평야인 주산면이 옛날에는 배가 드나드는 해안이었던 것이다. 이제현, 정몽주 두 선현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고려말기만 해도 주산면으로부터 김제 원평 들을 지나 금산사에 이르는 지역이 바다로 이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전국에 금산사라는 이름의 절이 여럿 있다. 그 중에는 인천과 부산 등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 자리한 금산사도 있다. 그러나 이들 금산사는 최근에 세워진 신흥사찰이다. 이제현, 정몽주 두 선현이 시로 읊은 금산사는 당연히 김제의 금산사이다. 선현이 남긴 한시 두 수가 김제 벽골제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와 한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글전용’정책에 대한 재검토와 한자교육 강화를 추진해야 할 때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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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1 13:45

경험의 힘

소리꾼으로 살아가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됐어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주에서 자랐기 때문에요.’라고 대답한다. 모든 전주 사람이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판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전주 사람이라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엄마 손을 잡고 풍남문 근처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의 판소리를 보러 갔다. 그리고 다음 해 가장 친했던 학교 친구 중 한 명이 아쟁이라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도 국악을 해야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학교의 방과후 수업으로 처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선 건 지금의 스승님을 만나서부터다. 지역에서 소리꾼 선생님을 소개받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20여 년을 판소리를 해오게 됐다. 나에겐 판소리가, 그리고 국악이 낯설고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여느 동네마다 있는 피아노 학원과 같았다. 자주 접할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배울 수 있는 음악. ‘판소리는 익숙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이 어른이 된 나를 지금껏 이 길에 있게 했다. 대학 2학년. 판소리만 할 줄 알던 내가 제대로 된 창극을 처음 접했던 건 주호종 연출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선생님께서 소리꾼으로 다니던 국립창극단을 나와 창극 연출가로서 대학교에 출강을 하기 시작하셨던 해다. 나는 운이 좋았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이십대 초반의 소리꾼들과 자신의 작업을 마음껏 하게 된 소리꾼 출신 연출가와의 만남이었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하자고 하는 작품은 모두 했다. 선생님과 함께 창극을 만드는 작업이 신나고 재밌었다. 얼마나 재밌었던지 밤새는 줄도 날이 가는 줄도 몰랐다. 창극실에서의 순간들이 행복했다. 춘향이도 심청이도 오롯이 다 자신의 몫이던 소리꾼들이 모심는 농부들 속 한 명이 되어도 용왕님 옆에서 파초선을 부치는 수궁 선녀가 되어도, 온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저마다 뿌듯한 존재감이 있었다. 작업을 완성해가는 과정들 속에 충만했다. 오로지 무대만을 바라보고 무대만이 전부인 줄 알던 지난날 들의 내가 무대로 가는 길과 숱한 연습의 시간 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과정인지를 깨달았다. 커튼콜의 인사를 위해 달려가는 장면 장면이 창극이면서도 인생 같았다. 이렇듯 창극의 세계를 발견하는 재미로 나날이 새로웠다. 그때 그 ‘경험’으로 지금의 나는 판소리를 극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호종 연출님은 연출가 이전의 소리꾼으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 어린 학생 소리꾼들을 보듬으셨다. 그 그늘 안에서 모두 차근히 성장했다. 그래서 오늘날 창극 배우가 되기도, 창극 연출가가 되기도 하였다. 부모님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지 않으셨지만 매일 아침 차려주신 아침밥을 마주하며 ‘이게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게 하셨다. 판소리 스승님은 나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으셨지만 토해내듯 울부짖는 춘향의 이별가로 ‘이게 바로 소리구나’ 하고 깨닫게 하셨다. 연출님은 나에게 연기를 가르치지 않으셨다. 대사 한마디, 서로가 함께하는 연습의 가치 속에 삶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게 하셨다. 훌륭한 스승은 이렇듯 경험하게 한다. 예술적 경험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혹은 그 자체로 이끄는지 내가 이렇듯 내 인생을 걸고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경험’의 힘은 무섭다. 인생 자체를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데리고 간다. 창극이라는 어쩌면 다른 이의 삶을 표현하는 예술을 만들어가며 결국 내 인생을 발견하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술적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정서적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를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에 경험 제공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故주호종 창극연출님의 1주기를 추모하며. /송봉금 소리꾼․동문창창 대표 △송봉금 대표는 모던판소리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전북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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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5 14:03

도서관 여행

도서관이 그저 책을 읽거나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란 인식은 이제 옛말이다. 전주의 시립도서관들이 지역문화공동체의 중심이자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6월 초 전주 덕진공원 연화정 도서관이 개관했을 때 그곳을 찾았다. 올해 들어 일곱 번째 도서관 여행이었다. 한옥의 고풍스러운 건축미를 잘 살린 연화정은 ㄱ자 형태의 단층 건물로 연화당과 문화 공간 쉼터인 연화루로 나뉘어 있다. 마침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연화루에서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작가의 초청 강의가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웠다. 달라진 도서관을 찾는 것은 설렘과 놀라움 그 자체였다. 카페처럼 아름다운 곳, 모든 공간이 열려있는 중화산동 꽃심 도서관은 전주를 대표하는 도서관으로 손색이 없었다. 화산체육공원과 어우러진 이곳은 창밖을 보며 사색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곳에서 열린 국제 그림책 전시전에서 자연과 생명, 평화를 사랑하는 다시마 세이조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팝나무 철길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한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 도서관을 찾았을 때는 마침 황금빛 색채 화가 클림트 레플리카 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 빙글빙글 생명의 나무에 스티커를 붙이며 동심 속으로 풍덩 빠지는 즐거움이라니! 개방형 창의성을 표방한 금암도서관 1층 책 놀이터에는 푹신푹신 매트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2층 지식 마루에서는 여럿이 책 모임을 할 수 있는데, 하이라이트는 3층이다. 나무로 꾸민 옥상 테라스에 서면 전주 시내뿐 아니라 모악산도 볼 수 있어 가슴까지 뻥 뚫렸다. 송천도서관은 가족 중심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캠핑하듯 책 놀이를 즐길 수 있고 2층에서는 책과 책 사이를 오가는 유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특히 이곳에는 카메라와 편집·송출 컴퓨터, 크로마키 스크린, 음향믹서, TV 등 각종 방송 장비가 구비 되어 있어 미디어 창작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만하다. 책 마중 여행자도서관은 여행자를 위한 휴식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전주에 관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낡은 책을 재생한 리커버북, 정기 간행물 등이 비치되어 있는데 다양한 형태의 미술 자료집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외 학산 숲속 시립도서관은 시와 자연을 조화시킨 특화된 장소로,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하나 되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주 시청 로비의 책 기둥 도서관은 독서 생태계 상생을 위한 큐레이션을 표방한다. 주제에 맞는 책을 선별해 안내하는 것이 특징인데, 내 삶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통찰의 기회가 되었다. 이렇듯 각각의 도서관마다 책 진열과 소품 하나에도 담당자들의 정성과 수고를 느낄 수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감성을 깨우고 다양한 생활문화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지역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다. 앞으로도 몇몇 도서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개장한다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즐거움을 얻는 카페 같은 도서관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건 분명 커다란 축복이고 자랑거리다. 앞으로 전주의 도서관이 시민에게 더 친밀하고 문화 충족의 여행 장소가 되도록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많이 준비해주길 기대해 본다. /김자연 전북작가회의 회장 △김자연 회장은 동화창작연구소 대표로 있으며 <동화마중> 발행인, 아동문학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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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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