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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선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중동포’이다

적지 않은 뒷얘기를 남기고 2022년 북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났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우리는 지난 3월 4일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 고유의 한복과 춤이 중국 소수민족의 옷과 춤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연출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한복 침탈 공정’이라며 발끈했지만, 중국 측은 오히려 혐한을 부추기며 그들의 소행을 정당화했다. 중국은 약 93%의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는데 소수민족이 국토 면적의 50~6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내몽고와 신강(新疆:위구르), 서장(西藏·티베트)의 면적이 크고 인구가 많다. 중국이 그들의 소수민족으로 치부하는 ‘조선족’이란 길림(吉林)·요녕(遼寧)·흑룡강(黑龍江) 등 동북 3성에 주로 사는 우리 한민족을 말한다. 과연 이들이 중국의 소수민족일까? 결코 아니다. 그들은 중국의 소수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중동포’다. 내몽고는 1368년 원(元)나라가 망하면서 진즉에 중국에 복속됐다. 신강은 위구르족이 오랜 역사를 이어왔지만, 1884년 청나라가 새로운 강역(疆域)이라는 뜻에서 신강성(新疆省)을 설치하면서 중국에 흡수되었다. 서장(西藏)도 티베트족이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이어왔지만 1253년 원나라에 정복당했다. 원나라 멸망 후 잠시 독립을 유지했으나 청나라 때 다시 복속 당했고, 1951년에 지금의 중국이 점령했다. 따라서 위구르인과 티베트족에겐 모국이 따로 있지 않다. 이에 비해, 동북 3성 지역은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을 뿐 아니라,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다수의 한민족이 살았다. 특히 간도(間島) 지역은 조선말까지 조선의 영토였다. 이런 바탕 위에서 일제 강점기에 탄압을 피해 한반도의 조선인들이 간도 등 만주 지역으로 이주했다. 당시 이주한 한민족이 지금 중국 정부가 말하는 조선족의 대부분이다. 이들 한민족은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족처럼 청나라 이전에 그들의 나라 전체가 중국에 복속된 경우가 아니다. 그들의 모국 ‘대한민국’이 현재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가운데 생활 근거지만 지금의 중국 영토에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한민국의 해외교포로서 ‘재중동포’이지 결코 중국의 소수민족이 될 수 없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때 중국 측이 조선족이라고 칭하자 우리도 덩달아 조선족이라고 칭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당시 중국 정부를 향해 ‘조선족’이 아니라, ‘재중 한국동포’임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했다. 자랑스러운 모국 대한민국이 건재하기에 ‘재일동포’가 있고, ‘재미동포’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줏대 없이 ‘조선족’이라고 부화뇌동하자 중국은 ‘조선족=중국 소수민족’→‘조선족=대한민국의 한민족’→‘대한민국의 한민족=중국 소수민족’→‘대한민국=중국 변방 국가’라는 논리를 세웠다. 이런 논리로 중국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통째로 왜곡하고 심지어는 ‘속국’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바탕 위에서 한복과 한국 춤은 중국 소수민족의 옷과 춤이기 때문에 바로 중국의 전통의상이고 중국의 춤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중동포’라는 말 대신 ‘조선족’이라고 칭한 말 한마디가 가져온 뼈아픈 결과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는 중국을 향해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이 아니라, ‘한국의 재중동포’임을 분명히 밝히고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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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21 14:06

오수바우

일제강점기, 상당히 이름을 날렸던 명창 가운데 ‘오수바우’란 분이 있다. 오수암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흥보가>를 잘 불렀다. 특히 그가 부른 ‘제비노정기’는 당대 제일가는 기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양의 한 부자가 오수암 선생을 초청하여 <흥보가> 판을 벌렸다. 평양 부자는 예술가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판을 벌리는 것으로 교양인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집에서 소리판을 벌이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 판을 즐기게 했다는 점에서 예술 후원자 대열에 충분히 끼어들었다. 보통 명창을 불러 소리판을 열어주려면 개런티로 1년 먹을 쌀을 주었다고 하니, 이 부자의 예술애호는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오수암의 <흥보가> 판이 무르익었다. 가난하지만 착한 흥보는 자기집 처마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제비가 안쓰러워, 다리를 묶어서 하늘로 날려 보낸다. 제비는 따뜻한 남쪽 나라 강남으로 돌아가 겨울을 지낸 다음, 이듬해 봄에 박씨를 입에 물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제비노정기’는 강남에서 출발한 제비가 중국의 명승지를 두루 거쳐서 압록강을 지나고, 평양과 한양을 통과하여 흥보 집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노래다. 제비가 날아가는 속도만큼이나 노랫말도 빠르게 연행되지만, 그 급한 행로의 끝에 남원 흥보집에 이르러서는 속도를 늦춰 너울거리면서 선회한다. 흥보가 반가워서 제비를 향하여 노래한다. “이리 오너라, 내 제비.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 이리 오너라, 내 제비.” <흥보가> 가운데 가장 격정적이면서 시원한 대목 ‘제비노정기’는 이 대목에서 마무리되면서 소리꾼은 큰 박수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다. 명창 오수암의 ‘제비노정기’가 “이리 오너라, 내 제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이 평양 갑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양반은 갑자기 화를 벌컥 내더니 담뱃대를 휘두르면서 당대의 광대 오수암에게 달려들었다.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소리에 취해있던 오수암은 졸지에 갑부의 담뱃대에 머리를 맞아 피가 철철 흘렀다. 이 평양 갑부가 왜 이리 분기탱천하여 당대의 명창 오수암에게 분노를 터뜨렸을까? 부자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렇게 교양머리 없이 화를 낸 이유는 무엇인가? 상황은 잠시 후에 밝혀졌다. 평양 갑부 애첩 이름이 ‘제비’였다. 자신의 애첩을, 이 한갓 광대놈이 손짓하며, “이리 오너라 내 제비,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고 추파를 던지고 농락하는 모양이, 잠시 판소리를 들으면서 낮잠을 즐기던 노인의 귓전에 들리던 순간, 분을 못이겨 담뱃대를 날렸던 것이다. ‘이런 고얀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광대라고 대접하여 초대하고, 소리판 벌려 주고, 따뜻한 밥도 먹이고 든든히 케라를 주어 보내려 했는데······’. 부유층이 예술을 애호하고 예술가를 후원하는 전통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부자들의 예술애호와 예술가 후원은 교양과 품격의 상징이었다. 이웃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예술가의 생계에 도움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교양 있는 부자들은 예술가를 후원한다. 부자들은 예술가를 후원할 뿐 아니라 문화예술재단을 만들기도 한다. 부자들이 예술의 애호가가 되는 일과, 예술가의 후원자가 되는 것은 아름답고도 멋진 일이다. 다만, 부자들이 화를 내지 않게 예술가는 조심해야 한다. 예술가는 원래 눈치가 빠르지만, 정말 느닷없이 화를 내는 부자들을 당할 재간은 없으니까. /유영대 국악방송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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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4 13:45

기후변화에 대한 그린세대의 이유 있는 외침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일반 사람들은 자주 들으면서도 지금 현재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으로 지나쳐버리기 쉬운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이 말은 바로 오늘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기후 변화를 느끼며 살고 있다. 겨울에도 눈이 오질 않고 봄, 가을은 느낄 겨를이 없고, 여름에서 곧바로 겨울로 변하는 시대가 이미 되어 버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얼음과 눈이 녹고 토양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건조한 조건에서 산불이 예년에 비해 자주 발생하는 것을 보고 있다. 인위적 온실가스 증가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 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정량적으로 맨 처음 제시한 사람은 스웨덴의 노벨화학상 수상자였던 스반테 아레니우스이며, 그의 이론은 현대의 기후변화 과학의 태동을 여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현재 지구는 온난화로 인해 세계 여러 곳에서 자연 재해가 일상이 되고 있고, 우리 모두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인 과제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린세대라 함은 환경 보호 운동에 적극 나서는 10대 후반-30대 초반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변화를 피부로 느낀 첫 세대로 환경문제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SNS와 개인 동영상을 통해 적극적인 환경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안이함과 달리 기후위기의 결과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세대들이기에 각성은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 고 외치고 있다. 그린세대의 이유 있는 외침, 그 시작은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였다. 툰베리는 2018년 8월 스톡홀롬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정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는 청소년들의 열띤 호응에 힘입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기후파업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문화예술인들 중 그린세대들과의 연대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 들고자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세상 곳곳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며 산을 다니면서 생태정화 활동과 함께 재능기부를 실천하는 미술가가 있는가 하면 환경노래를 작곡해 보급하는 음악가도 있다. 필자가 이러한 기후변화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8년도와 2003년도에 알라스카 한국문화의 해를 맞아 기념공연에 참가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필자가 이끌던 錦林(비단숲)예술단의 작품은 자연환경에 대한 만물의 생성, ‘생동...林’이었다. 공연 후, 주최 측의 초대로 참가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빙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아름답고 신비로움에 빠져있던 순간, 빙하 덩어리들이 녹아 떨어져 내려 모두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해를 우려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우려는 지금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과 강, 바다, 습지 등 우리의 산하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더 나아가 핵이나 오염, 지구온난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린세대뿐 아니라 모두가 나서야 하지만 기업들의 RE 100 ‘재생에너지 (Renewable Energy)100%' 참여와 문화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인 과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가희 아트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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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07 13:44

지역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 방향

2000년대 초 시작된 급격한 출산율 저하,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로시간제 도입에 따라 노동인력 부족과 인건비 부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사람 구하기가 어렵거니와 비용부담으로 가족이 직접경영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문이나 배송 같은 비핵심 업무는 온라인이나 비대면 방식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을 필두로 매장내 주문은 이미 비대면주문 방식인 키오스크로 전환된 지 오래고 거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스마트 폰을 이용한 온라인 모바일 주문이 일상화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기기에 익숙지 않은 준비되지 못한 기성세대에게는 또 하나의 디지털 격차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디지털 기술로 기존의 경제사회 전반의 프로세스, 문화, 경험을 개선하거나 새롭게 창출하는 과정이며, 기존의 프로세스를 재구성함을 의미한다. 한편 상업적 거래에 있어서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거래를 디지털커머스라고 부른다. 새로운 기술 트랜드에 익숙치 않는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주문과 배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플랫폼기업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지역의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수익의 몫은 크지 않는 듯하다. 전주, 군산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배달앱을 통한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여 주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상공인 스스로 디지털기술을 적용하여, 홍보, 주문, 판매, 배송 등을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여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1인 미디어를 활용한 모바일 마케팅이 지역의 소상공인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소상공인 입장에서 콘텐츠 제작 환경 구축이 쉽지 않고, 제작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주역 맞은편 첫마중길 인근에 전북AR․VR거점센터(JVAR)라고 있다. 주로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1인 미디어 또는 컨텐츠 작성에 필요한 교육과 AR,VR 제작시설, 편집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전주시는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옛 청소년자유센터를 개조하여 농식품, 패션, 지역특화상품 등 분야별 실시간 컨텐츠 제작 및 온라인 주문에 필요한 독립적인 지원센터를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실시간 방송을 위한 전문 스튜디오,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각종 음향 및 영상제작 시설, 교육장, 커뮤니티 환경을 갖추고 지역의 소상공인의 온라인 판매활동을 지원한다. 지역의 방송, 결제, 배달서비스 기업과 협업하여 소상공인의 애로를 해결하는 원스톱서비스 제공도 추진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신산업 기업 유치, 창업 및 벤처 활성화에 열심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일은 기존산업의 디지털혁신이다. 1인 미디어를 활용하면, 지역의 소상공인은 지역의 특산품이나 제품의 판로를 대면방식에서 온라인으로 확장이 가능하고, 또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 해외까지 판매를 확대할 수 있다. 문제는 소상공인 스스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 스스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의 비즈니스를 새롭게 전환하려고 하는 실행능력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디지털커머스 지원센터를 통하여 지역의 대부분의 생산을 책임지는 소상공인 및 소기업의 디지털전환이 가속화 되기를 기대한다. /이영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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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21 14:11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이 지나고서도 한 동안 꽤나 춥더니만 엊그제부터 진짜 봄인 듯 날씨가 포근해졌다. 요즈음이야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지만 10여 년 전만해도 입춘날이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즉 “봄이 들어서는 날을 맞아 크게 길상하시고, 온 세상에 양기가 차오르는 봄에 경사스런 일이 많으시기를.”이라는 뜻의 ‘춘련(春聯)’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습속이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담은 춘련을 써 붙였다. 두 구절이 짝을 이루는 시문을 ‘대구(對句)’라고 하며 이런 대구를 쓴 서예작품을 대련(對聯)이라고 한다. 대련은 건축물의 기둥에 써 건 주련(柱聯=영련楹聯)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주련의 기원은 ‘도부판(桃符板:부적을 그린 복숭아나무 판자)’에 있다. 중국 사람들은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 예로부터 출입문 양편에 복숭아나무 판자를 붙여두고 잡귀를 검열하여 출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귀신인 ‘신다(神茶)’와 ‘울루(鬱壘)’의 상을 그리거나 이름을 써서 부적처럼 붙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도부판이다. 후대에는 귀신 형상 대신 길상어(吉祥語:길하고 상서롭기를 축원하는 말)를 붙이게 되었으며, 특히 입춘날에는 춘련을 써 붙였는데 춘련을 달리 ‘춘첩자(春帖字)’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 5대10국 시절, 후촉의 황제였던 맹창(孟昶)은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신년납여경, 가절호장춘(新年納餘慶, 嘉節號長春)”이라는 춘련을 써 붙였다. “새해에는 넘치고 남는 경사를 맞아들이고, 좋은 절기에 긴긴 봄을 노래 부르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듬해 송 태조 조광윤에 의해 맹창의 후촉은 망하고 조광윤의 부하인 여여경(呂餘慶)이 새로운 통치자로 부임했다. 곧 ‘여경(餘慶)’을 맞아들인 꼴이 되었으니 맹창이 써 붙인 “신년납여경(新年納餘慶)”이란 말이 어처구니없게도 딱 들어맞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광윤의 생일을 ‘장춘절(長春節)’이라고 부르며 축제를 벌였으니 “가절호장춘嘉節號長春”이란 구절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맹창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써 붙인 춘련의 효험은 100% 증명된 셈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춘련의 효험을 믿으며 춘련뿐 아니라, 주련도 걸기 시작했고, 방안에도 대련 작품을 제작하여 걸었다. 본인이 쓰면 맹창과 같은 꼴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집에 걸 춘련이나 주련은 대부분 남에게 부탁하여 썼다. 물론 반성과 각오를 다지는 글은 스스로 서예작품으로 써서 걸기도 했지만 복을 비는 춘련은 대부분 남의 글씨로 써 붙인 것이다. 맹창 이후, 송나라 때에는 춘련이나 주련을 거는 습속이 성하였고, 원나라 명나라 때에는 춘련이 세시 풍속으로 정착하였으며, 주련은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청나라 때에는 춘련과 주련뿐 아니라, 서예작품인 대련도 크게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기에 이미 이러한 춘련과 주련 문화가 있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현판(懸板:집의 이름을 써 붙인 판)과 주련이 한옥 건축의 한 양식이 되어 한옥을 지은 다음에는 현판과 주련을 걸어야만 건축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겼다. 현대에도 춘련도 써 붙이고, 한옥이면 당연히 현판과 주련을 걸며, 양옥이나 아파트에도 대문 양편에 주련 한 폭쯤 걸고, 집안에 대련 서예 작품 한 점이라도 건다면 우리의 생활이 한층 더 뜻깊고 아름다워 질 것이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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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14 14:17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

이번 설날에도 판소리 <흥보가>를 여러 번 들었다. 명절이면 가장 많이 듣는 레퍼토리인데, 아마도 흥보가 아내와 함께 탄 박속에서 돈과 쌀이 나와서, 음식도 풍성하게 차리고 비단옷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결말 때문인 듯하다. <흥보가>는 형제간의 우애 문제를 다루면서 조선 후기 서민 사회의 궁핍한 정황을 살갑게 그려내고 있는 예술 작품이다. 흥보의 착한 성품과 놀보의 심술궂고 악착같은 성품을 대조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긴장감과 흥미를 이끌어간다. 흥보는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대가로 박씨를 얻는다. 그렇게 열린 박에서 돈과 쌀이 나오고, 비단과 기와집이 나와서 흥보네 가족은 행복하게 살게 된다. 한편 형인 놀보는 일부러 제비다리를 분질러서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지만, 악행을 저지른 것 때문에 오히려 봉욕을 당하고 재물을 빼앗기게 된다. 권선징악의 환타지구조에 충실한 작품이다. <흥보가>는 「흥보 매품을 파는 대목」, 「가난타령」, 「돈타령」 등 눈대목을 통해서 가난한 서민들이 고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흥보가 타는 박에서 밥과 옷과 집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민중들의 의식주에 대한 꿈을 환상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흥보가>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것이 「돈타령」이다. 흥보는 박속에서 꾸역꾸역 나왔던 돈을 들고 춤추며 「돈타령」을 부른다. 노랫말은 돈의 생김새, 돈의 권능, 돈의 효과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이라는 구절에는 돈에 대한 적극적 평가가 나타난다. 돈에 의하여 만사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지배 양반들은 손에 돈을 만지지도 않는다고 위선을 떠는 데 반하여, 민중들은 그것의 중요함을 솔직하게 구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돈타령」은 화폐경제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다른 전승에 의하면 이 부분은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못난 사람도 잘난 돈’은 이해가 되는데, ‘잘난 사람도 못난 돈’이 되는 이유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잘난 사람’은 야유의 표현일 듯하다. 진짜 잘난 사람이 아니라 돈 있다고 으스대며 거드럭거리는 이들을 ‘잘난 사람’이라고 총칭했다. 그러니까 졸부들이 으스대며 쓰는 돈이야말로 못난 돈이 되는 것이다. 흥보네 가족은 박속에서 나온 돈과 쌀로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가 되었다. 궤짝을 비워내도 거듭 거듭 나오는 돈과 쌀은 무한대에 가까운 우리의 욕망을 표상한다. 그런데 부자가 된 다음 흥보가 보여준 태도에서, 나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풍성한 리더십을 찾아낸다. 흥보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박흥보를 찾아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민을 줄란다”고 노래한다. ‘기민(飢民)을 준다’는 것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어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행위다. 부자가 된 흥보는 가장 먼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전통사회에서 흉년이 들 때면 부잣집에서는 곳간을 열어,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서 모두 함께 살아남았다. 지금 우리 주변은 2년 넘게 지속되는 역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의 일상을 빼앗기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가장 쓸쓸한 설날을 보냈고 있을 이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에게, 흥보는 돈과 쌀을 나눠주겠다고 자기 집으로 부르고 있다. 그야말로 ‘잘난돈’이고, 이런 태도야 말로 공동체를 유지해나가는 힘이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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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07 19:08

문화강국 KOREA,  세계가 한국을 주목 한다

심가희 아트네트웍스 대표 세계인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2020 두바이 엑스포에서는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한국의 날과 한국주간을 맞아 특별행사가 열렸다. 16일 열린 한국의 날은 세계엑스포 참가국별로 열리는 국가의 날 공식 행사로서 두바이 엑스포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알 와슬 프라자(Al Wasi Plaza)에서 개최됐다.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대표로 문승욱 산업부장관, 정의용 외교부장관, 유정렬 코트라사장 등 우리 측 인사 50명과 2020 두바이 엑스포 정부대표인 나흐얀 UAE 관용공존부 장관 등 두바이 측 인사 50명이 참석했다. 문화공연에는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 K타이거즈, UAE 현지 인기그룹인 한국 아이돌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출연해 전통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눈길을 모았다. 문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과 사막의 기적을 실현한 UAE는 번영의 길을 함께 열어가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에 한국의 혁신기술과 문화가 힘이 되길 바라며, UAE와 함께 세대와 국경을 넘어 함께 회복하며 함께 도약 할 것을 역설했다. 나흐얀 UAE 관용공존부 장관(두바이 엑스포 총괄책임) 또한 연설을 통해 우리 꿈에는 한계가 없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면서 마음의 연결, 미래창조라는 엑스포 주제로 세계를 연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관은 2020 엑스포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신기술을 보여주고 있고 4차 산업 혁명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며 두바이 엑스포를 넘어 한국과 특별한 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격상시켜 상생과 번영을 도모하고자한다고 했다. 우리정부는 두바이 엑스포 내 한국관 건립을 위해 총 471억 예산을 투입해 192개 참가국 중 5번째 큰 규모를 자랑한다. 두바이 엑스포 한국의 날 부대행사로 마련된 K-Pop 콘서트는 두바이 엑스포장 내 가장 큰 야외공연장인 쥬빌리 공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공연에는 한국관 홍보대사인 가수 스트레이 키즈를 비롯해 싸이, 선미, 여자아이들, 골든차일드, 포레스텔라 등 6팀이 출연해 6천여 명의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현지 대학마다 한류클럽소속 학생들은 한글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관객들은 모두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번 2020 두바이 엑스포에는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도 한국의 날과 한국주간에 맞추어 참석했다. 새만금 개발에 총력을 다 하고 있는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들은 192개국이 참가한 두바이엑스포를 방문해 각 국가관을 둘러보며 최첨단 기술과 세계문화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엑스포에서의 다양한 컨텐츠를 체험하며, 새만금 문화엑스포 추진계획과 새로운 문화 컨텐츠 개발을 구상하였다. 또 하나의 기적! 새만금의 기적을 기대해본다. 필자는 두바이엑스포를 보며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문화의 힘이다! 예전에는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만 했지만, 이제는 안으로의 세계화가 필요한 때이다. 정부는 2023년 새만금세계잼버리 대회 등 대규모 국제 행사나 전시회를 메타버스 이벤트로 개최할 방침이다.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눈을 크게. 더 멀리, 시선을 높이 두어야 한다. 한국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컨텐츠 개발로 더욱 찬란한 문화강국을 이루어야 한다. /심가희 아트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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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4 19:48

호랑이는 있다 함부로 날뛰지 말자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이 적지 않다. 민화 속의 호랑이들은 익살스런 표정이 많아서 무섭기보다 오히려 친숙한 감이 든다. 유명한 호랑이 그림으로는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호랑이를 그리고 스승인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삼성미술과 리움 소장)와 임희지(林熙之1765~1820)가 대나무를 그리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린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개인소장),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만 그린 「맹호도(猛虎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맹호도」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가 쓰여 있다. “영맹마아숙감봉(獰猛磨牙孰敢逢), 수생동해노황공(愁生東海老黃公). 우금발호횡행자(于今跋扈橫行者), 수식인중차안동(誰識人中此顔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납게 이를 간 이 호랑이에게 맞설 자 누구이겠는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동해의 노황공도 이 호랑이를 보고선 겁을 내겠네. 오늘날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세상에는 이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고 엄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 누구일까?” 위풍당당한 호랑이에 걸 맞는 시 한 수를 써넣음으로써 명작이 되었다. 우리의 옛 그림은 이처럼 그림과 시가 한 화면에서 만나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풍미와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명화에 쓰인 이런 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후 미 군정청에서 법률로 제정하여 시행한 ‘한글전용법’을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한글날을 기해 공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국어기본법의 근간이 되어 우리의 문자생활을 제한하고 있다. 미 군정청은 한국에서 한자만 말살하면 한자로 기록해온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그 자리에 미국의 문화를 이식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한글전용법을 서둘러 시행했는데 우리는 얼결에 그런 어문정책에 호응해 버렸다. 게다가 일부 교육정책 입안자와 친미적인 사람들은 실은 어렵지도 않은 한자에 대해 어렵고 불편하다는 왜곡선전을 계속함으로써 한자를 도태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2000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온 문자인 한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국민이 되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문자를 읽지 못하는 국민이 문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의 문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로 대분하는데 소리글자도 많은 장점이 있지만 뜻글자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양자의 장점을 다 살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발달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얼결에 미국문화에 경도됨으로써 한자문맹을 자초했다. 한자를 안 가르친 탓에 학생들은 한글로 쓰인 책을 읽기는 해도 속뜻을 몰라 문해력이 형편없이 저하하였고, 사회는 단어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며 날뛰는 무리들이 많다보니 걸핏하면 말꼬리를 잡는 시비가 벌어지곤 한다. 특히 정치판은 온통 말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명화 속의 호랑이처럼 위엄을 갖춘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발호하고 횡행하는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인물이 없는 줄로 알고 더욱 날뛴다. 임인년 새해에는 살쾡이나 여우 무리들이 호랑이 무서운 줄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자교육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아울러 바란다.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강암연묵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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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9 13:55

메타버스 시대 살아남기

이영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원장 최근 많이 듣는 신조어중의 하나는 메타버스일 것이다. 유명 소셜네트워크 기업이 사명을 메타플랫폼으로 바꾸었다니 미래 유망 투자처로 한두번은 들었을 것이고, 한 정치인이 매주 타고 다니는 버스를 매타버스라 해서 귀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듯하다. 메타버스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와 우주 또는 세상을 의미하는 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1월초 개막한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2)의 주제가 일상을 넘어서였는데, 메타버스가 올해의 새로운 트랜드로 추가되었다. 한편 인류 역사를 보면 펜더믹이 있을 때마다, 인류는 지혜를 발휘하여 혁신기술이 나오고 삶의 방식도 급격히 변하였다고 한다. 혹자는 인류역사가 코로나전(BC)와 코로나후(AC)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간의 행동반경은 급격히 좁아졌지만, 상상력의 범위는 획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상상력의 산물이 메타버스다. 온라인상에서 단순한 재미꺼리나 게임으로 시작된 서비스가 이제는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상거래까지 가능하게 됨으로서, 새로운 라이프를 꿈꾸는 세대를 열광하게 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19는 전통적인 문화산업에는 부정적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관객중심의 공연전시산업은 타격이 컸다고 한다. 2021년 상반기까지 문화예술분야 공연, 전시 취소로 인한 관람수입은 급격히 줄었고, 하반기 들어서 상당부분 회복 되었다고 하나, 12월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찬물을 끼얹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필자는 과거 인터넷 보급과 이를 활용한 국가정보화 사업을 하면서, 신기술이 인간의 관습까지 바꾸는 것은 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경험한 바 있다. 반면 한번 익숙해지면 되돌아가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화충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다가 2년이 흐르면 적응을 마친다고 한다. 코로나가 우리나라에 첫 발견된 지 1월 말이면 만 2년이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싫든 좋든 2년 동안 우리의 생활방식도 거리두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듯하다. 젊은 직원들과의 회식문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집단문화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아니면 화상회의가 더 편하고, 경제적이다. 대학에서의 수업도 상당부분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다. 대신 시간이 나면 가상세계(메타버스) 환경에서 그동안 못했던 체험이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거나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현장 공연전시문화는 어떻게 될까? 메타버스 환경에서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감동을 준다면 공연전시 시장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 실시간 공연에 메타버스 환경을 접목시 서로 다른 공간에서 협연도 가능하고, 온라인 관객 확대도 가능하다. 문화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도 인공지능,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시 쉽고 빠르게 제작이 가능하게 된다. 그만큼 편리하게 컨텐츠의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 제작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높다. 놀랍게도 팬데믹은 기존 시장의 변화 이외에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가속화 할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년후 우리의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메타버스 시대에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미래의 주역이 될 MZ세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에 열광하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이다. /이영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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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7 19:20

호랑이는 있다 함부로 날뛰지 말자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이 적지 않다. 민화 속의 호랑이들은 익살스런 표정이 많아서 무섭기보다 오히려 친숙한 감이 든다. 유명한 호랑이 그림으로는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호랑이를 그리고 스승인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삼성미술과 리움 소장)와 임희지(林熙之1765~1820)가 대나무를 그리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린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개인소장),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만 그린 「맹호도(猛虎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맹호도」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가 쓰여 있다. 영맹마아숙감봉(獰猛磨牙孰敢逢), 수생동해노황공(愁生東海老黃公). 우금발호횡행자(于今跋扈橫行者), 수식인중차안동(誰識人中此顔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납게 이를 간 이 호랑이에게 맞설 자 누구이겠는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동해의 노황공도 이 호랑이를 보고선 겁을 내겠네. 오늘날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세상에는 이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고 엄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 누구일까? 위풍당당한 호랑이에 걸 맞는 시 한 수를 써넣음으로써 명작이 되었다. 우리의 옛 그림은 이처럼 그림과 시가 한 화면에서 만나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풍미와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명화에 쓰인 이런 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후 미 군정청에서 법률로 제정하여 시행한 한글전용법을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한글날을 기해 공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국어기본법의 근간이 되어 우리의 문자생활을 제한하고 있다. 미 군정청은 한국에서 한자만 말살하면 한자로 기록해온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고 그 자리에 미국의 문화를 이식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한글전용법을 서둘러 시행했는데 우리는 얼결에 그런 어문정책에 호응해 버렸다. 게다가 일부 교육정책 입안자와 친미적인 사람들은 실은 어렵지도 않은 한자에 대해 어렵고 불편하다는 왜곡선전을 계속함으로써 한자를 도태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2000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온 문자인 한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국민이 되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문자를 읽지 못하는 국민이 문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의 문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로 대분하는데 소리글자도 많은 장점이 있지만 뜻글자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양자의 장점을 다 살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발달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인데 얼결에 미국문화에 경도됨으로써 한자문맹을 자초했다. 한자를 안 가르친 탓에 학생들은 한글로 쓰인 책을 읽기는 해도 속뜻을 몰라 문해력이 형편없이 저하하였고, 사회는 단어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며 날뛰는 무리들이 많다보니 걸핏하면 말꼬리를 잡는 시비가 벌어지곤 한다. 특히 정치판은 온통 말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명화 속의 호랑이처럼 위엄을 갖춘 인물들이 많다. 그런데 발호하고 횡행하는 사람들은 자신 외에는 인물이 없는 줄로 알고 더욱 날뛴다. 임인년 새해에는 살쾡이나 여우 무리들이 호랑이 무서운 줄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자교육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아울러 바란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강암연묵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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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0 19:17

임인(壬寅)년을 생각한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2022년이 되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경계 표식을 위하여 선을 그어두고 기억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서양의 시간인식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예수의 탄생을 기원으로 삼아 2022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순환적인 시간인식을 갖고 있다. 사람의 생애를 60으로 삼고, 이것의 순환을 시간인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60년을 기준으로 삼아 시간이 끝없이 순환되는 것이다. 임인(壬寅)은 60갑자 가운데 39번째를 말하는 숫자로서, 올해는 특히 검은 호랑이해를 상징하여 기억한다. 임인년의 기록 가운데, 지금부터 180년 전 조선 말 가객 안민영의 금옥총부(金玉叢部)의 사연이 흥미롭다. 안민영은 임인년(1842년) 가을에, 주덕기를 데리고 운봉으로 명창 송흥록을 찾아왔다. 그때 송흥록의 집에는 신만엽・김계철・송계학 등 여러 명창들이 있었는데, 그들 일행은 함께 송흥록의 집에 머무르면서 수십 일을 실컷 놀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왕 송흥록이야말로 당대를 대표하는 명창이었지만, 그의 집에 함께 있던 명창들도 역시 19세기 중반 판소리 문화의 핵심에 있었다. 주덕기는 창평군 출생으로, 송흥록과 모흥갑의 고수로 활동했는데, 판소리에 전념하기 위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서 소나무를 베어가면서 독공을 하여 명창이 되었다. 김제철은 충청도 출생으로 석화제 스타일을 개발했으며, 신만엽은 여산 출생으로, 가녀리게 소리한 것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이들은 수십일 동안 판소리와 가곡을 부르고 춤을 추면서 최고의 공연을 질탕하게 즐겼다. 안민영의 기록에 의해 180년 전 임인년의 명창들이 소환되는 이 추억이 흥미롭다. 안민영은 남원・진주 일대 지방에 묻혀있는 뛰어난 명인・명창・명무를 발굴하여, 대원군의 거소인 운현궁으로 데리고 왔다. 안민영의 안목으로 선택된 명인과 기생들은 대원군의 운현궁에서 당대 최고의 공연을 펼쳤다. 대원군은 조선의 예술가를 후원하는 패트런이었고, 그로 인하여 조선풍류를 선도하는 새로운 무대가 완성되었다. 180년 전 임인년에 안민영이 조선의 스타들을 끌어 모아 운현궁에서 경연을 벌였던 일은,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풍류대장과 같은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국악 명인이 모여 경연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디션의 심사위원들은 빼어난 실력과 감식안을 갖춘 이들이다. 그런데 국악인인 경연자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내로라하는 심사위원들이 입을 쩍 벌리며 그들의 기량에 연신 감탄하고, 다물지 못했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DNA 속에 오래 담겨왔던 국악의 저력이, 이 경연대회를 통하여 발휘되었고, 그 신명에 온 국민이 놀라며 경탄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풍류대장에 참가한 우리시대의 예술가들이 모두 국악방송 경연대회를 통하여 배출된 인재라는 사실이다. 국악방송은 일찌감치 인재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고,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재들을 키워왔다. 그들의 기량이 정점에 올랐을 때, 때마침 생겨난 경연대회를 통하여 제대로 평가받는 무대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민영의 임인년을 되새기는 매우 흥분되는 새로운 임인년을 맞이하고 있다. 국악방송은 최근 K-MUSIC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이 변화의 흐름을 이끌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새로운 국악의 도약을 위하여 임인년에 안민영이 했던 프로젝트를 되새겨야 한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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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3 19:44

야누스의 달 1월(January)을 맞이하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임인년(任寅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코로나가 몰고 온 암운 탓이리라. 해마다 이맘때면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었다. 벽걸이 달력의 12월과 내년 1월을 한꺼번에 훑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야누스를 생각한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와 함께다. 영화는 간접화법으로 야누스에 대해 설명한다. 1월(January)이란 단어의 어원이 야누스야. 야누스 신의 이름에서 온 거지. 야누스는 앞뒤로 얼굴이 하나씩 있어. 늘 양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괴로워하지. 1월은 새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지난해를 바라보기도 해. 영화의 배경은 야누스 섬이고, 섬 위에 우뚝 솟은 등대는 불빛으로 형상화된 앞뒤 얼굴로 양쪽 바다를 비춘다. 여전히 삶을 이어 가야 하기에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도 항해하는 배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영웅 톰(마이클 패스벤더 분)은 야누스라는 이름을 가진 외딴섬 등대지기를 자원한다. 보급선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그에게 어느 날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 분)이란 여인이 나타나 결혼에 골인한다. 꿈같이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자벨은 두 번의 임신에 두 번 다 유산하는 아픔을 겪는다. 어느 날 파도에 이끌려 한 척의 쪽배가 섬에 당도한다. 배에는 젊은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아이가 타고 있다. 상부에 보고하려는 톰에게 이자벨이 매달린다. 그냥 키우자는 것이다. 부부는 자기들이 출산한 것처럼 아이를 키운다. 몇 년 후 육지에 간 둘은 아이 친엄마인 한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톰은 이자벨에게 말하지 않고 아이 딸랑이를 한나의 집에 슬그머니 놓고 나온다. 이게 증거가 되어 투옥된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살아있는 한 절대 용서 못 해. 이자벨은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는 섬에 도착할 때 사체였어요. 이 한 마디면 톰은 풀려나겠지만 이자벨은 말하지 않는다. 부부의 고뇌가 깊어진다. January는 야뉴스에 관한 것이란 뜻의 라틴어 야뉴아리우스Januarius에서 왔다. 야뉴스는 문의 신이다. 안쪽과 바깥쪽을 동일시하는 신은 한 손에 열쇠를 들고 있다. 열쇠는 문을 열고 잠그는 기능이 있다. 예쁜 아이지만 우리 아이가 아니야. 보고하고 정당하게 입양 받아 기릅시다. 톰의 제안에 이자벨은 누가 무인도 등대에 아기를 보내?라며 고집을 피웠다. 이때부터 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된다. 한쪽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일그러진 양쪽 얼굴. 언제부터인가 표리부동과 이중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슬픈 야누스. 로마인이 가장 숭배했다는 야누스 신은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신적 지주였다고 전해진다. 영화 <쿵푸팬더>에서 쿵푸 마스터인 국숫집 아들 팬더 포와 우그웨이 대 사부가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다. 시푸 사부에게 지친 포가 쿵푸 그만두고 국수나 팔러 갈까 봐요.라고 하자 대 사부가 말한다. 포기냐 전진이냐, 국수냐 쿵푸냐. 너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집착하고 있구나.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오늘은 선물이지. 선물을 소중하게 다루렴. 포는 쿵푸 최고수가 되어 악을 타도한다. 잔잔한 쪽빛 바다만 희구하는 나의 집착이 희망으로 부푼 마음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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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7 19:24

힘을 든 미련한 사람

송준호 우석대 교수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이 미련 곰탱아!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몰렸다. 서른 살 조금 넘어 보이는 청년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씩씩대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시선을 의식하고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화급히 찔러 넣었다. 열차에 올라 빈자리에 앉았는데 아까 청년이 외쳤던 말이 귀청을 서성대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미련 곰탱이는 짐작컨대 그의 절친이거나 가까운 후배 아닐까.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일 수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일이나 어떤 사람을 깨끗이 잊어버리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걸 알고 답답한 마음이 앞서서 자신도 모르게 공공장소에서 그토록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호기심이 슬그머니 발동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곰탱이를 검색해 보았다. 행동이 느리고 둔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예문을 보니 청년의 표현대로 그 앞에 하나같이 미련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검색창에 미련을 입력해보았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찾아냈다. 한자말 미련(未練)은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그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이 집착(執着)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곰탱이 앞에 쓰는 순우리말 미련은 stupidity, silliness, asininity 같은 로마자로 뜻 풀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 셋 모두 어리석음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모양이 같은 한자말과 순우리말 미련의 조합이 이토록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굼뜨면 사람한테 대고 뒤에 곰탱이까지 붙여 쓸까만, 복잡하게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미련한 사람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청년이 아까 소리친 대로 깨끗이 잊지 못하는 사람이,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인 것이었다. 가운데 번호 하나가 어긋나는 바람에 1등 당첨을 놓친 복권이든, 오래전에 조용필이 외쳐 부른 <허공> 한 대목처럼 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든,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미련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토록 아깝거나 후회막심해도 지나버린 날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 복권이든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이든 곁에 없는 시간에 더 이상 가슴 태우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그리하여 앞에 놓인 시간에 눈빛을 반짝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었다. 하긴 이것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아는 체를 좀 했더니 웬걸, 못말리는 아재 개그 본능이 발동한 거냐면서 누군가 나를 놀려대는 것이었는데, 다른 누군가는 이런 말을 슬그머니 들이미는 것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할 때가 있지 않으냐고,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건 바로 힘을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을 기꺼이 내려놓으면 힘들지 않아도 된다고, 정 내려놓기 싫거든 가까운 사람하고 나눠 들면 된다고, 그러면 적어도 힘을 절반으로 덜 수 있을 것 아니겠냐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로 미련한 사람인 거라고.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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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0 19:24

객미(客味), 손님 맛이라니?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12월 중순, 지금쯤은 대부분의 가정이 김장도 마쳤을 것이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말이 있다. 천자문의 한 구절이다. 가을 추, 거둘 수, 겨울 동, 감출 장. 가을철에 거둬들여 겨울철엔 잘 저장한다는 뜻이다. 겨울철의 저장을 대표하는 일이 바로 김장이다. 그래서 혹자는 김장의 어원이 침장(沈藏:담글 침, 저장할 장) 즉 담가서 저장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즈음이야 농사기술과 자연저장 기술이 발달하여 겨울철에도 싱싱한 채소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아직 냉장고 보급률이 낮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은 겨울철 먹거리를 장만하는 필수행사였다. 많은 양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 시골에선 김치나 동치미 항아리를 땅에 묻기도 했다. 잘 익은 김치는 겨울철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김치 그대로도 먹고, 찌개나 볶음도 해먹고, 전도 부쳐 먹었다. 이렇게 김치를 다양하게 조리해 먹으면서 그 맛을 평할 때면 다른 지방은 몰라도 전라도에서는 개미가 있다 혹은 계미가 있다는 말을 하곤 하였다. 어떤 이는 갱미가 있다고도 한다. 물론 김치뿐 아니라 어떤 음식이라도 맛이 있을 때면 으레 이런 표현을 하곤 하였다. 무슨 의미일까? 우선 바른 말부터 찾자면 개미도 계미도 갱미도 아니고 객미이다. 한자로는 客味라고 쓰며 각 글자는 손님 객, 맛 미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만 풀이하자면 손님 맛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예술은 전통적으로 상외지상(像外之像), 운외지운(韻外之韻), 미외지미(味外之味)를 숭상해 왔다. 外는 밖 외라고 훈독하고, 之는 흔히 갈 지라고 훈독하지만 의라는 뜻으로 많이 쓰는 글자이다. 따라서 外之는 밖의라는 뜻이다. 像은 형상 상이라고 훈독하며 韻은 운 운이라고 훈독하는데 시나 음악의 운율, 사람이나 예술작품의 멋스러움인 운치(韻致)를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상외지상은 형상 밖의 형상이라는 뜻이고, 운외지운은 운치 밖의 운치라는 뜻이며, 미외지미는 맛 밖의 맛이라는 뜻이다. 시나 그림이나 음악에 직접 표현된 형상이나 운치나 맛 말고 그 이면(裏面) 즉 행간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형상과 운치와 맛을 그렇게 표현해온 것이다. 배추에 소금, 젓갈, 고춧가루 등을 넣고 버무려 담은 것을 일정기간 발효시킨 후에 맛 봤더니 배추 맛도 아니고 젓갈 맛도 아니며 소금 맛은 더욱 아닌 제3, 제4의 오묘한 이면(裏面)의 맛이 난다. 정말 감칠맛이 난다. 바로 그 맛을 일러 전라도 사람들은 손님 맛 즉 객미라고 표현한 것이다. 음식을 이룬 주체(주인) 즉 사용한 재료는 배추, 젓갈, 고춧가루 등인데 그 주체의 맛은 어디로 가고 제3의 손님 같은 맛이 난다고 해서 객미라고 표현한 것이다. 참으로 맛깔 나는 멋진 표현이다. 판소리를 가르치는 스승들도 이면(裏面)을 무척 강조했으니 이 또한 객미에 다름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맛과 멋만이 아니라, 숨어있는 깊은 맛과 멋을 더 중시한 것이다. 오늘 날 국어사전은 객미를 객지에서 겪는 고생의 쓰라린 맛으로만 풀이하고 있다. 삭막한 현실의 반영이다. MSG로 위장한 사특한 맛이 아니라 곰삭은 김치 같은 객미를 느끼고 창조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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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3 15:22

[문화마주보기]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며칠 전, 남고산성 길을 갔다. 학교 때 간 이후, 수십 년 만의 일이다. 올해 유난히 가을볕이 길고, 어딜 가나 나무의 낯빛이 무르익었다. 세상은 또 찬란한 이파리의 춤을 보여준다. 이 지역 도민이면서도 남고산성이 있는 줄도 모르고, 역사에 관심도 없다는 해설가의 말에 공감했다. 자신만의 왕국에 갇혀 살면서부터, 기계가 친구이고, 허상이 실제가 되는 시대의 불균형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달, 14일부터 25일까지 전 세계 감사 챌린지(challenge), 캠페인 기간이었다. 날마다 다른 테마로 12일간 계속 되었다. 고대명상에서는 가슴에 자비심이 피어나는 것을 12장의 연잎으로 상징한다. 어머니, 아버지, 파트너, 형제자매, 친구, 자녀, 동료, 내 몸, 지구, 도전, 스승, 신 등에 대한 돌아봄이다. 그들에 대해 감사했던 기억을 떠올려 감사함에 흠뻑 젖고, 그들의 웰빙을 빌어주는 과정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늘 들었으나 진심어린 감사는 쉽지 않다. 우리는 각자 이 행성에 발을 디딜 때부터 이 몸과 함께 왔다.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매 순간 성장하면서 자녀 친구 동료 파트너 스승 등과 한 써클로 삶의 과정을 진행 중이다. 부모와 이웃과 주변이 없다면 나도 없다. 웃고, 싸우고, 떠들고, 뒹구는 매 순간마다 그들과 함께 한다. 그 중 우리를 품고 있는 지구는 우리의 지지자이자 양육자이다. 우리의 존재와 웰빙은 지구의 웰빙에 달려 있다. 지구는 모든 강 바다 사막 산 계곡 숲 동물 및 수백만의 생명체이다. 바다와 숲이 숨쉬기를 멈춘다면 우리의 숨도 멎는다. 지구가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굶어죽을 것이다. 강이 불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도 바싹 말라버릴 것이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려고 잠깐 멈춘 적이 있는가? 지구의 날숨은 우리의 들숨이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지구에게 나는 무엇 한 가지라도 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질병이나, 삶의 위기에 처했을 때, 감사노트를 써보는 것도 좋다. 그날그날 그저 주어지는 선물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매일 써나가다 보면 실제 어떤 어려운 일이 풀리기도 한다. 감사함이 많은 사람에게는 기적이 자주 일어난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환자에게 3일간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만 소리 내어 말하게 한다. 놀랍게도 치유가 일어난 사례가 많다. 기적은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 삶의 궁극적 기적은 흔들리지 않는 평화, 삶의 어떤 조건에서도 평화로운 상태로 사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기적은 분리가 없는 밝은 삶의 방식,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의식, 이것이 원래의 당신이며, 진정한 인간의 유산이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은 사랑하는 사람과 낯선 사람 모두를 향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나와는 다름에 짓눌리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가슴이 열리면, 이유 없는 사랑이 피어난다. 살아있는 순간들,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기쁨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혼자 있는 나를 상상해보라. 당신 둘레의 사람들이 없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은 내게 큰 선물이다. 나를 아프게 하는 그 모든 것도 나를 성장시키는 스승이다. 매 순간 세상이 내게 쏟아 붓는 선물을 바라보라. 이따금이라도 나의 존재는 이 세상에 선물이 되는가 하는 관찰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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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6 14:57

영화 '데몰리션'과 마음에 쓴 가면 벗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열풍이 거세다. 늘 보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 대중의 취향은 무엇을 향하는가. 나의 시선은 주로 가면(假面)에 머물렀다. 의미를 알고 싶었다.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게임의 공정한 진행과 비밀 유지를 위해 썼다.라고 말한다. 지옥에서는 가면 쓴 사람들을 VIP라 칭한다. 우리가 아는 가면은 두 종류가 있다. 보이는 가면과 보이지 않는 가면. 다시 말해 얼굴에 쓰는 가면과 마음에 쓰는 가면. <데몰리션>이란 영화가 있다. 마음에 쓰는 가면 벗는 과정을 조명하는 영화다. Demolition은 파괴, 해체라는 뜻이다. 가면(假面. Persona)은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 의무, 약속 그 밖의 여러 행동양식을 뜻한다. 내가 나로서 있는 게 아니라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벗어야 할 것이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란 젊은이가 있다. 장인 회사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하는 촉망 받는 사람이다.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장례식 다음 날 정상 출근한다. 장인과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서 생뚱맞은 말로 분위기를 망치는가 하면 장모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다.라고 말한다. 아내가 절명하던 날 병원에서 초콜릿을 사려다 자판기 고장으로 25센트를 날린 것에 분노한다. 자판기 회사에 장문의 항의 편지를 쓴다. 내용은 항의 반, 신변잡기 반이다. 왜 이럴까 이 사람. 영화의 설명은 이렇다. 친밀한 사람 하나 없이 감정을 억압하며 살았고, 내면의 충동에 따라 매사를 결정했다. 핸드폰 음성사서함을 비우지 않아 아내가 메시지를 남길 수 없는 상태였고, 집 냉장고는 고장 난 채 방치되었다. 회의 시간에 란 곡이 슬프냐고 물어 주변을 뜨악하게 만들고, 무엇인가에 과몰입하여 눈앞 대상도 인식하지 못한다. 05:30에 일어나 운동하고 기차로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는 모범 샐러리맨인데? 마치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 같다.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무덤덤하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원숭이들이 털 손질〔Grooming〕하는 영상을 보며 싫다고 독백하다가, 결혼 초기에 장인에게 구박받던 기억을 끌어낸다. 원숭이 취급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이리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친구 중 가장 빨리 달리고 싶었던 심정을 밝히며 군중 속을 배회한다. 치유 과정은 은유로 표현한다. 〔〕안은 주관적 해석임을 양해 바란다. 고장 난 냉장고와 컴퓨터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해체한다〔비정상〕. 회사 화장실 고장 난 문을 분해하고〔감정 배설〕, 처갓집 전등을 해체〔장인과의 관계〕한다. 길을 가다가 철거하는 집을 보자 돈을 내고 부순다〔타인과의 불편한 관계〕. 급기야 사방이 유리로 된 자기 집을 사정없이 파괴한다〔꽉 막혔던 가정생활〕. 세상에, 자기 내면에 갇힌 사람. 돌파를 이렇게 형상화했다. 무엇인가를 고치고 싶으면 모든 것을 뜯어내야 해. 장인이 그렇게 말한 적 있다. 데이비스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자판기 회사 직원 카렌과 그녀의 아들이다. 항의 편지에 응답하며 인연을 맺었다. 아내가 잠든 곳에 다녀오다가 운전석 밑에 떨어진 메모지를 발견한다. 아내가 쓴 것이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장인과도 화해한다. 드라마 속 얼굴에 쓴 가면이 궁금하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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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9 16:43

덤으로 얻은 날

송준호 우석대 교수 가는 곳마다 명언이라는 이름의 짧은 몇 마디 말을 적어 붙인 작은 팻말이 즐비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 아닐까. 짧은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지 말고 그 안에 담긴 귀한 뜻을 차돌처럼 새겨 실천하라는 뜻이리라. 어떤 가치 있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 날, 그날은 잃은 날이다. 어느 휴게소에 들렀다가 눈앞에 적혀 있는 이 명언을 읽었다. 그런데 다른 것과 달리 이 말은 어찌 된 일인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버스에 올라서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짧은 문장에 날이라는 체언을 세 번이나 썼기 때문이어서는 적어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내야 가치 있는 행동을 한 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좀 뜬금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맘에 쏙 드는 원고에 마침표를 찍은 날?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해서 큰 진척을 이룬 날?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내온 친구하고 소주 한잔 나누면서 유쾌하게 화해한 날? 영어 단어와 숙어를 100개 이상 새로 외운 날? 적어도 책 한 권은 몰두해서 읽은 날? 여덟 시간 넘게 편의점 알바를 해서 학과 MT 경비를 스스로 마련한 날? 하다못해 단풍구경이라도 가서 맘에 쏙 드는 셀카를 스무 장 넘게 찍은 날? 이런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날인가? 어떤 행동의 가치는 또 누가 정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는 인생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가치 있는 행동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하루종일 삼시세끼 밥이나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소파에서 뒹굴었다면 그건 정말 가치 있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 날일까? 아무 의미 없이 허비해버린 잃은 날이라고 함부로 단정해도 되는 걸까?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느 한가한 일상에 상상을 입히고 거기에 <일기>라는 제목을 얹어 안도현 시인이 쓴 짧은 시다. 이게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올해 최고의 시에 선정되었단다. 그건 이 땅에서 글깨나 쓴다는 이들은 적어도 날아가는 기러기의 숫자나 헤아리면서 한가하게 보낸 하루도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다는 데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는 뜻이리라. 차창 밖으로 눈부시게 펼쳐진 단풍꽃을 바라보면서 좀 전에 읽은 명언의 가치 있는 행동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나는 그걸 이렇게 바꿔보았다. 국화꽃의 속눈썹을 다듬어주었든, 무당벌레의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주었든, 길고양이하고 오랫동안 눈을 맞추었든, 예쁜 들꽃 이름 하나를 새로 알았든, 거칠어진 손마디를 매만지며 제 어머니로 살아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든, 문어다리를 얇게 썰어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든, 아니면 언젠가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교수님이 쓰신 글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라고 말해주어서 이렇게나마 계속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고마운 그이와 늦가을 어느 날 저녁밥을 함께 먹었든 살아가면서 무언가 처음 해본 일이 있는 날, 그날은 덤으로 얻은 날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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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2 16:39

낙엽 쓸기의 현실과 낭만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가을의 끝자락에서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다 졌고 듬성듬성 몇 나무가 마지막 정열의 단풍을 불태우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이는 낙엽의 양이 며칠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낙엽이 한창 지던 때 이른 아침 산책길, 아파트 경비원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마치 흥부 내외가 돈 궤와 쌀 궤를 쏟아 부을 때처럼 쓸고 돌아보면 낙엽은 도로 수북이 쌓였다. 아침 식사 후, 출근길에 보니 경비원은 아까 그 자리에서 또 낙엽을 쓸고 있었고, 어둠발이 내릴 무렵 퇴근길에 봤더니 경비원은 오전에 쓸던 그 자리를 여전히 쓸고 있었다. 비오는 날 나무에 물을 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을 고생스럽게 하고 있는 경비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건넸다. 놔뒀다가 3~4일 후에 한꺼번에 쓸어내시지 그러세요? 경비원이 답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낙엽이 조금만 쌓여있어도 관리소장한테 주의를 받습니다. 내가 되물었다. 아니, 가을에는 낙엽이 날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밟기도 해야 주민들 정서에도 좋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 텐데요 제가 관리소장께 2~3일 만에 한 번씩만 쓸자고 건의해 볼까요? 감사한 말씀입니다. 아마 관리소장도 2~3일 만에 한 번씩 쓸자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일부 주민들로부터 강한 항의가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쓸어내기로 방침을 세운 거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주민이 항의를 한다고요? 그럼요, 화단에 떨어진 낙엽도 안 긁어내면 청소를 안 했다며 항의하시는 주민도 있습니다. 그랬었다. 낙엽이 쌓이는 걸 두고 보며 가을 정취를 느끼다가 한꺼번에 쓸어내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낙엽을 지저분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 빨리 청소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음날 오후, 아파트 다른 동 앞을 지날 때 다른 경비원이 낙엽을 쓸고 있기에 내 딴에는 노고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애쓰십니다.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쓸어내면 될 텐데 매일 쓸어내시려니 힘드시지요? 경비원이 말했다. 아니요, 그때그때 쓸어내야 합니다. 저는 쌓여 있는 나뭇잎을 보면 제 마음까지 심란해져요. 개운하게 쓸어내 버려야지! 그랬었다. 비질이 힘든 게 아니라, 쌓여있는 낙엽을 두고 보는 것이 더 어렵고 심란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의견이 다르니 아파트 단지 내에 쌓이는 낙엽은 그때그때 쓸어낼 수밖에 없다. 쌓아둔 채 2~3일만이라도 낙엽의 정취를 느껴보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을이 깊어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 단지나 동네 골목은 획일적으로 그때그때 낙엽 쓸기를 해야 한다. 언젠가는 쓸어낼 것 그때그때 깨끗하게 쓸어내자는 의견 앞에서 낙엽을 밟아보자는 낭만적 이야기는 발붙일 곳이 거의 없는 것이다. 김일로 시인은 떡이 좋다는 소리가 진동하는 자리에서 꽃도 좋다는 이내 말은 실낱같은 모기 소리.라고 읊고서, 이 시를 다시 7자의 한시(漢詩)로 바꿔 병화일치하세월(餠花一致何歲月)이라고 썼다. 어느 세월에나 떡과 꽃이 일치할까?라는 뜻이다. 낙엽을 깨끗이 쓸자는 건 쓰레기를 치우자는 현실적 요구이다. 낙엽을 밟자는 것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인 낭만이다. 현실과 낭만이 일치하는 아름다운 세월은 언제나 찾아올까? 낙엽이 말하는 것 같다. 돌아갈 흙이 없어 귀찮은 존재, 쓸려서 실려 나가는 도시가 슬퍼요!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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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15 16:35

눈을 크게 떠라! 청소년들이여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여러분이 미래다. 코로나 확진자률, 사망률처럼 전 세계 청소년 자살률도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상위로 파악된다. 세계가 한류를 외치고 있고, 선진국대열에서 부상하고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될까? 청소년 펜데믹은 우울증과 불안감이다. 같은 시대, 같은 환경에서 사는데 자기 삶에서만 유독 희망이 없어 보인다. 빠른 속도로 지구 환경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식이 지구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데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경쟁에서 비교의식은 더 늘고, 직업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교육부분도 우왕좌왕이다. 무방비상태의 젊은이들은 미래가 깜깜하다. 스스로 도전을 포기한다. 자신이 겪는 우울과 불안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것이다. 나를 잉태했을 때 부모의 상태를 그대로 받는다. 혈액형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생각들도 물려받는다. 불안감은 기쁨이나 슬픔처럼 하나의 감정임을 알아야 한다. 나약한 상태일 때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에게서 불안감이 올라올 때마다 이건 이 시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해 보라. 처음엔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는 많은 내담자들이 순조롭게 이겨냈다. 내게 이런 것이 있구나! 알아차리며 지나갔다. 사람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무척 위대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몸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자신을 만드는데 무슨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나라는 이 몸은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인디언 추장과 주고받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디언 마을에 커다란 기지를 짓고 싶은데 땅을 팔 생각이 없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햇볕의 따스함과 강물의 반짝임과 맑은 공기를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짐승들의 소리와 풀벌레 울음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요즘 야생말과 독수리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독수리가 사라졌습니다. 숲이 사라졌습니다. 벌레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저 강물은 그냥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이 준 강물입니다. 저 비는 절로 오는 비가 아닙니다. 저 바람은 우리 할아버지의 입김입니다. 이 흙은 모든 미생물과 땅에 묻힌 우리 조상들의 집합입니다. 이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위 메시지는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중에 성취도 있고, 업적도 쌓인다. 성공이란 관계, 부, 건강, 지성, 기여 등이 고루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명예나 돈을 쫓다가 건강을 잃고, 사람을 잃게 되면 그건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청소년들이여, 주위를 둘러보라. 주변에는 지혜로운 친구가 더 많다. 우리는 자신만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떤 이는 농사지어 밥을 제공하거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를 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타인의 고통을 들어주고, 그들을 살리는 손을 가졌기도 하다. 이 보물을 발견할 틈도 없이 좌절하고 해치려하는가? 부모 세대처럼 지금이 전쟁 중이라면, 자신에 대한 고민은커녕, 싸움터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기념일에는 광복절도 있고, 곧 순국선열의 날도 다가온다. 우리는 왜 한없이 그들을 우러르는가? 조상들이 피를 토하고 뼈를 깎아 지켜낸 이 나라에, 우리는 숟가락 하나 얹어 기름지게 살고 있다. 청소년들이여, 부디 눈을 크게 떠라. /송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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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8 16:39

힐링 시네마, ‘연상적’ 영화 보기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연상적 영화 보기란 영화를 꿈이나 투사를 위한 도구로 가정하고, 영화 관람 후 자유 연상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중요한 타인에게 갖는 감정을 힐링에 활용하는 것이다. 영화 시작할 때 가끔 한 소년이 반달 아래쪽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이미지와 함께 Dream Works란 문구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사 로고인데, 영화를 통한 꿈 작업 의지를 이렇게 천명했다. 꿈은 무의식을 드러내고 억압된 자료를 규명하는 단서이기에 낚아 올려 의식화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영화가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꿈, 자유연상, 퇴행, 투사, 상징 등을 재료로 쓰고 있다. 영화가 가지는 재현성과 핍진성 또 정서적 통찰이라는 특장점과 잘 조화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 <몬스터 콜>에는 엄마의 불치병으로 인해 밤마다 꿈속에서 고통받는 코너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어느 날 그에게 주목 몬스터가 찾아온다. 다짜고짜 너의 진심을 알고 싶다.라고 말한다. 폭풍우에 지진까지 일어나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엄마 손을 잡고 울부짖는 꿈을 꾸다 깨는 코너다. 친밀감이 형성되자 코너가 울면서 말한다. 차라리 빨리 끝나라. 매번 꿈속에서 엄마 손을 놓았어. 연상적 영화 보기는 내담자의 방어 수준을 낮추고 안전한 퇴행을 돕는다. 내면 아이(Inner Child)도 만나게 해준다. 내면 아이란 성인이 된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존재한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존 브래드쇼는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방치하지 말고 의식 수준으로 초대하여 돌봐줌으로써 심리적 외상을 아물게 하고 성인 자아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상적 접근의 치유요인을 소개한다. 첫째, 의식화이다. 무의식에 갇혀있던 외상적 기억과 불안이 의식의 표면으로 나오게 되면 기억 자체가 재해석 되고 축소될 수 있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들어보면 자신의 상처와 외상적 기억이 무엇인지 모른 채 불안 속에 사는 경우가 있다. 영화 <연을 쫓는 아이>는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당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미르란 남자가 성인이 되어 내면 아이를 찾는 내용이다. 암울했던 시절 그와 함께 자란 핫산이라는 소년은 하인의 아들인데, 알고 보니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이복동생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도련님 노릇을 하며 함께 힘들게 살다가 헤어졌다. 핫산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미르는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핫산의 아들을 구한다. 탈레반이 점령한 그곳에 아미르와 핫산을 억압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둘째는 은유화이다. 연상적 기억을 통해 내담자가 언어 또는 시각적으로 표현한 여러 상징은 그가 토해낸 일종의 은유라 할 수 있다. 많은 영화 치료자들은 영화가 여러 가지 감각 양식으로 작용하면서 은유 혹은 상징이나 의미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피트니스에 열중하던 한 중년 여인은 몸이 쇳덩어리에 눌린 것 같아요.라고 했다. 예뻐지려고 운동하는데, 무거운 쇳덩이에 눌린 것 같아 우울하다는 것. 영화 <아이 필 프리티>를 본 후 자기감(Sense of Self) 회복에 도움을 받았다. 연상적 접근에서 스크린은 관객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동기 감정 양식을 촉발하는, 진한 정서와 감동을 주는, 강렬한 시청각적 자극을 주는 영화를 선택하는 게 좋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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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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