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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철이 소리하다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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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대 국악방송사장

토요일 국립극장에서 윤진철 명창의 완창 <심청가> 공연이 펼쳐졌다. 이 공연은 오후 세시에 시작해서 여덟시까지 꼬박 다섯시간을 채웠다. 윤진철은 격조있고 우아한 소리를 연행하면서, 청중을 상대로 우스갯소리를 통해 소리판을 사로잡았다. 윤진철의 목소리는 수리성으로, 단단하고 질러내는 상청도 추종을 불허하지만 중하성의 연행도 아주 멋들어지게 풀어내는 당대의 소리꾼이다. 그의 목소리는 극적인 대목을 제대로 연출하여 맛있게 표현하며, 특히 찐한 진계면을 실감나게 노래하는 것이 최고 장기이다.  

윤진철 명창은 언제나 자신의 소리에 온갖 정성을 다한다. 나는 윤진철이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소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렇게 소리하다가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그는 높이 질러내는 소리를 내기 위하여 특별한 기교를 갖고 있다. 단전에 힘을 모으려고 몸을 앞으로 수그려 잔뜩 웅크린 자세를 보이다가, 몸을 펼치면서 터트려 질러낸다. 그렇게 질러내는 고음에 나는 여러번 진저리 쳤다. 윤진철은 그가 이번 무대를 혹시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방울의 기운도 남기지 않고 모두 소모해버리는 진정한 소리꾼이다.  

그런데, 윤진철 명창이 소리를 하다가 울었다. 심청이 인당수로 떠나기 전날 밤의 정황을 그려내는 노래, ‘눈어둔 백발부친’을 부르다가 울었다. 행선날을 하루 앞두고, 죽음을 마주한 심청이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부르는 처연한 대목이다. 처음에 울먹울먹하다가 아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듯 노래를 이어갔다. 노래부르다가, 문득 병원에 계셔서 면회도 어려운 어머니 생각과 겹쳐서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소리를 제대로 이끌고 갔다. 판소리가 울음소리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 소리는 오장육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통곡처럼 다가와서, 나도 안경 너머로 눈물을 닦아내다가 아예 안경을 벗고 그냥 따라서 울었다.  

윤진철의 진정성을 따라서 관객들도 동조해가면서 흐느꼈다. 흔히 인터미션이 지나면 관객 일부가 빠져나가 객석이 비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한 사람도 나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광대 윤진철이 소리를 마치자, 당연하게도 모든 관객들이 윤진철을 향해 일어나 환호작약하면서 박수를 쳤다. 이런 찐팬들이 있다면 소리꾼은 얼마나 신이 날까. 공연을 마치고 나가는 관객들이 나를 향해 말한다. “역대급 공연이었어요”, “이런 공연은 10만원으로 봐도 안 아까워요.” 어떤 분이 나를 향해, “아까 우시던데요!”라고 놀렸다. 그래서, “선생님도 우셨잖아요?”하니까, “어떻게 아셨죠. 펑펑 울었어요.”라고 대답하고 산뜻하게 극장을 나선다. 소리판은 마치고 그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윤진철 명창은 지금까지 48년 소리하면서 이렇게 일순간에 관객이 기립박수를 치는 것은 처음 경험이라고 기뻐했다. 

그런데 좋은 공연을 본 다음 날인 지금, 나는 몸이 몽둥이로 마구잡이로 맞은 듯 뻐근하다. 예전부터 좋은 소리를 들으면 다음날 몸살이 날 듯 아프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잘 들어맞았다. 좋은 소리를 듣고서, 다음날 몸이 기운을 잃고 멍하니 있게 되는 현상을 ‘소리몸살’이라고 부른다. 소리를 부른 사람에게도 몸살이 오지만 관객도 광대가 부르는 다섯 시간의 소리 흐름을 따라 마음을 죄었다 풀었다 하느라고 저절로 굳게 되는데, 그 몸살이 여태까지다. 그러나 이런 유쾌한 몸살이라면 얼마든지 아파도 좋다. 그걸로 다른 설움을 풀게 되니까. 

/유영대 국악방송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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