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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방학, 공부에서 벗어나 책 속 관계의 장으로

“야호, 방학이다!” 우리 친구들은 이렇게 환호성을 울리며 여름방학을 맞을까? 아니면 더 빡빡해진 학원 일정에 한숨짓고 있을까? 일찍 온 장마와 폭염, 기록적 폭우에 다시 폭염으로 이어지는 여름도 중턱, 슬금슬금 도내 초중고교 방학이 시작되고 있다. 책마을해리도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대단한 여름’ 속에서 우후에 솟는 죽순마냥 비 끝에 더 기세등등 키를 높이는 풀들을 깎으며 새로운 손님맞을 준비에 구슬땀이다. 일년내내 문 열고 책 손님을 맞는 책마을해리에 새로울 손님이란, 여름 책학교와 함께하는 어린이, 청소년 게다가 청년 들이다. 방학, 익숙한 학제에서 놓여나 새로운 경험을 길어올리는 시간이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낯선 관계의 장을 스스로 열고 확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내 여러 기관에서도 다채로운 매체 체험, 진로체험, 예체능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편집자 입장에서 올여름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 만나는 책과 생태공간, 사람을, ‘읽고 쓰고 책으로 펴내는’ 책학교에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읽고 쓰는 일은, 인류가 이렇게 번듯한 문화의 틀을 갖추도록 매개해온 원리다. 문자체계, 활자를 통해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그 누군가의 세계와 새로운 관계맺기다. 그 과정을 통해 현실 세계의 다양한 관계에 내 목소리로 내 표정으로 대응하게 되니 말이다. ‘어린이 청소년 시기를 <책>과 보내자’는 제안은 숏폼 콘텐츠가 난무하는 세상에, 더욱 유효하다. 지난 10년동안 책마을해리를 통해 대략 5천여 작가들이 태어났다. ‘내(우리)가 책을 펴낸다’는 것은 내가 듣고 말하고 읽고 경험한 것들의 총합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우리)’가 태어난다, 낳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삼복더위에, 무언가를 낳는 일이 무척 고될 터다. 그 고된 펴내는 일은, 새로운 읽는 감각을 낳는다. ‘함께 펴내기’는 더욱 그러하다. 또래와 함께 펴내는 일은 감각을 공유하고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의 또래 친구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으로 펴내는 일을 통해서다. 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책을 읽으며, 그 안에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아준 누군가의 감각을, 같은 것을 보았으나 나와 다르게 보아준 누군가의 감각과 마주하게 한다. 나의 감각이 ‘함께 펴낸 책’을 통해 모두의 감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인류가 오랜 시간 그렇게 문명을 일궈온 것처럼. 얼마 전 전주고등학교 친구들은 지역 선배들을 인터뷰해 어르신 자서전 <마음은 여전히>를 펴냈다. 우리 근대를 관통해 살아온 그분들 삶을 글로 챙겼고, 책마을해리와 편집작업 함께하며 어렵사리 낳은 책이다. 이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라구한 교장의 글이 인상적이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생애는 각기 다르지만, 그 삶의 깊이를 담아낸 이 책이 전해주는 울림은 한결같습니다. 기억은 희미해질 수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있다는 것. 그 소중한 사실을 우리 아이들이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이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한 친구들이 제각각 글에 담은 누군가의 삶에 공감하는 연습, 모두의 감각으로 확장하는 연습의 흔적을 말이다. 우리 친구들의 여름을, 도내의 크고 작은 도서관, 책방, 학교 안팎에서 읽고 쓰며 공감의 힘을 키우고 나누는 자리로 안내하자. 마침 책마을해리에서는 어린이 청소년만이 아니라, 방학 휴가 앞둔 청년들을 위한 출판캠프도 열어두고 있으니. △이대건 대표는 도서출판 기역 대표로 활동하며, 지역 이야기를 찾고 정리해 지역 안팎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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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21 18:22

[문화마주보기] 고천문(告天文)

정치 현실과 경제 안팎이 어서 안정되기를 원하는 시절에, 세상이 휘황찬란하게 변했을지라도 가진 자 중심의 패러다임은 여전한 이 무더운 시절에, 하늘님 쇤네가 아뢰나이다. 6·25전쟁 발발한 직후 전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사람들이 여기 황방산에서 떼죽임당했나이다. 골령골에서 거창에서 금정굴에서 노근리에서의 학살과 똑같이 한국인 수백 명이 아군의 총에 사살당했나이다. 경상대학교 교수 신경득은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2002.6. 살림터)에서 “6월 27일부터 7월 20일경까지 전주형무소 인근 공동묘지와 솔개재, 황방산 부근에서 학살했고, 남원으로 후퇴하기 직전 유치장에 구금된 예비검속자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이뤄졌다.”라고 밝혔사옵니다. 이 참상을 최초로 보도한 ‘민주조선’(1950. 8. 21)은 전주에서 학살당한 사람이 4, 500명이나 된다고 적었나이다. 만물을 살피시는 하늘님 학살 주범은 경찰과 헌병과 방첩대로 알려졌사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황방산에 몇백 명이 더 묻혀 있는지도 알 길이 없나이다. 전주시에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네 차례, 황방산 유해 200여 구를 발굴했지만, 끝내 신원을 밝힐 수 없었나이다. 하지만 이분들은 못된 세력의 밑씻개 노릇을 거절한 사람들로 이해되옵니다. 군경이 남원으로 후퇴하면서 기록을 불태워버렸다지만, 당시 전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미군정 및 이승만 세력과 싸우다 빨치산이 된 분들,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에 참여했던 분들, 보도연맹과 관계된 분들이 학살당했다는 증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나이다. 2003년 『말지』 5월호에 황방산의 떼죽음이 알려진 뒤 전국에서 수많은 유족이 여기를 찾았사옵니다. 학살의 진실을 알고자 ‘전주형무소유족회’와 ‘진실화해위원회, ‘4•3희생자유족회’ 등이 활동 중이옵니다. 그러나 황방산은 말이 없나이다. 양민들이 가장 많이 희생당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효자동 황방산 자락. 여기에 건물들을 지으려고 땅을 팠을 때 드러났다는 엄청난 유골들- 70년이 넘도록 캄캄하게 버려졌던 유골들을 햇살 바른 곳에 모시고 진혼제를 올리기는커녕 누군가 한곳에 몽땅 암장해버리고 그 장소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하니, 손이 뒤로 묶여 죽어간 분들의 넋에 기대어, 하늘님 쇤네가 아뢰나이다. 강대국들의 잇속에 말려 분단을 당한 한국, 여기서 시작된 불행은 한민족이 한민족에 수십만 명 참살당하는 저주로 치달았다고 명백히 밝히소서. 자신들 뜻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를 죽인 정권, 그 독재정권의 민주 시민으로 살라고 삶을 강요당했던 후손들의 세월도 맑게 펴주시고- 평등 세상을 못 보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의 진실을 만천하에 펼치소서. 대한국민의 본래이신 하늘님! 모두가 피해자라는 허망한 말속에 황방산의 떼죽음을 다시 암장하려는 세력을 꾸짖듯 연일 뙤약볕이 따가웠나이다. 자본과 문명의 노예가 된 빈약한 지식을 내치듯 소주 한잔 올리오니 여기서 참살당한 분들의 숨결까지 마디마디 흠향하소서. 황방산뿐만이 아니라 이 땅 곳곳에서 학살의 진실을 캐는 역사로부터 한국의 미래가 비롯된다는 진리를 확인케 하소서. △이병초 시인은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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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4 18:36

[문화마주보기] 존재를 체험하는 영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입니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온 첫 해 한 신문기자로부터 들었던 질문이었다. 당시에는 내 삶에 연결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답을 했다. 지금 답을 한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인용해 보고 싶다.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의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책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렇듯, 좋은 영화는 관객을 대변하는 데에서 그치지않고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기존의 생각을 깨버린다. 그리하여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른 삶을 보게 하는 것, 즉 한 사람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 예술과 삶을 관통하며 도끼로 부수는 듯한 혁신을 이루어 온 인물이 있다.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은 도시인의 고독감을 표현한 <애정만세>, <하류> 등의 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 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수상했고,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최초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2013년 그는 베니스영화제에서 <떠돌이 개>를 공개하고 심사위원 대상을 차지했지만 기자회견에서 돌연 더 이상 상업적인 방식으로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다음 행보는 붉은 법의를 입은 승려가 맨발로 도시를 느리게 걷는 영화, ‘행자 연작’이었다. 행자 연작은 우리에게 중국 소설 『서유기』의 캐릭터로 알려졌지만 실존 인물이었던 삼장법사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감독은 기차도 버스도 없던 시절 오직 불경을 구하고자 죽을 각오로 사막을 건넌 삼장의 정신에 감명받았고, 자신 또한 늘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난 영화 만들기를 각오했다. 많은 예산과 최고의 스태프 같은 성공법칙을 내려두고 최소한의 자원으로 삼장의 정신을 컨셉화 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단편부터 장편까지 총 10편의 영화 속에는 붉은 승복을 입은 행자가 타이페이에서부터 홍콩, 도쿄, 마르세유, 워싱턴 등 도시를 어떤 대사도 없이 지속적으로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은 화면의 시작점에서 끝까지 움직이는 배우를 보고, 시간이 남기에 그를 둘러싼 환경도 관찰하게 된다. 머리 속은 ‘내가 무엇을 봐야하는가’부터 온갖 잡생각을 거치지만 여전히 행자는 걷고 있기 때문에 ‘나는 왜 이토록 생각이 끊이지 않는가’로 이어져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사유를 영화보기로 증명한 것이지만, 행자 연작은 서양 철학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사유의 시간을 넘어 나의 생각과 존재함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응시의 순간에 도달하게 한다. 발걸음의 반복이 마술처럼 우리의 내면을 열어젖히고 상념없이 화면 속의 세상을 보게 한다. 나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세상이라는 이미지를 편견없이 보는 순간에 다다르게 된다. 존재감의 초월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가 바로 행자 연작이다. 차이밍량과 전주의 인연은 뜻 깊다. 그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삼인삼색' 이라는 영화제작 기획을 통해 디지털 영화를 처음 만들었고, 그의 단편 <신과의 대화>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세계에 알린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해 필자는 조심스럽게 전주에서 행자 연작을 찍어보면 어떻겠냐 감독에게 제안했고 그는 기쁘게도 이를 받아들였다. 내년 독립영화의 집 터를 비롯해 전주 곳곳을 붉은 옷의 행자가 걸을 것이다. 차이밍량이 이끄는 사유와 응시의 체험이 전주의 아름다움을 통해 일어날 것이다.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스위스 바젤영화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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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07 17:43

[문화마주보기] 공연법 개정안이 던지는 과제와 가능성

지방의 문예회관이 지역 예술 생태계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발표한 [2023 전국문예회관 운영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 공연장의 평균 가동률은 44.1%에 불과하다. 전북특별자치도의 가동률은 50.1%로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이 또한 기초예술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지표다. 가동률이 낮은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2023년도 윤석열 정부의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관련 예산 축소는 기획력과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이어지며, 단순 공연유통사업 위주의 구조는 공연장의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 운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초예술이 구조적으로 소외되고 공연 콘텐츠의 유통망이 부족한 현실, 그리고 지방으로 이관된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의 불안정성은 중장기적 기획 자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2024년 11월 22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의원(국민의힘)이 대표 발의한 공연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중요한 정책적 변화를 제안한다. 공공 공연장의 연간 가동률을 70% 이상 유지하고, 이 가운데 30% 이상을 순수예술 공연으로 편성하도록 한 내용은 예술 창작 기반을 강화하고, 문화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긍정적인 계기가 되며, 신진 예술인들에게 폭 넓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기준이 자칫 실적 중심 행정으로 흐르며, 예술행정의 핵심 원칙인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과 충돌할 소지가 있어서 공연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책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지방으로 이양된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다시 국비사업으로 환원시켜, 기초예술 콘텐츠 개발이 제도적으로 안정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관객 개발과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에 기여했던 대표적 소외계층 사업인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을 복권기금 중 공익사업으로 다시 편입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 유통사업을 동시에 운영하여 실질적인 가동률을 높여 지속성과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지역의 문화 특성을 반영한 교육·체험형 콘텐츠 기획을 강화하고, 전국 평균 15년 이상 노후화된 공연장의 무대 및 음향·조명 시스템도 함께 현대화해야 한다. 공연장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신진 예술인에게는 창의적 창작의 출발점이 되고, 지역민에게는 정서적 회복과 문화적 감수성을 확장하는 구심점이 된다. 따라서 공연법은 예술 생태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유연하게 설정되어야 하며, 이에 따른 기준과 규칙도 지역의 현실을 반영한 집행기준과 시행령을 통해 실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는 제도 이전에 사람의 문제다. 법이 사람을 향하지 않을 때, 문화는 고립되고 예술은 침묵한다. 공연법 개정이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문화 생태계의 회복을 위한 언어가 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무대 뒤에서 질문을 이어가야 한다. △김수일 실장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심의·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수일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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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30 18:57

[문화마주보기] 그려내는 마음을 기다리며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라”라고 말하며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나아가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 이랑고랑 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능동적인 주체의 성장을 독려해 왔다. 본 칼럼에 소개되는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에서 진행된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는 ‘어르신들의 예술 경험이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를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얼마 전, 1932년생 곽귀선 어르신이 예술가들과의 절연을 선언하셨다. 미술 수업 중, “내가 죽으면 내 그림 보고 그려. 사람은 죽으면 영원히 가는데, 그림은 여기 있구나.” 라는 명언을 남기신 지 일주일 만이었다. 어르신 댁으로 모시러 갔을 때, 어르신은 침대에 뒤돌아 누워 수업에 참여할 의지가 없어 보이셨다. 그림 도구를 챙겨 집에서 혼자 그려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밤을 꼬박 새우셨다고 한다. 그림은 마음 저편에서 그려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려 놓은 두 장의 그림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는 일이 고통스러워 이제는 예술가 선생님들조차 보고 싶지 않으시다고 했다. 흰 도화지의 공포, 예술가가 느끼는 창작의 고통까지 경험하는 어르신을 보며, 필자는 미술 경험이 노인의 주체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르신들이 그림 앞에서 느끼는 혼란과 절망감에 대해 우리는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술 수업을 계기로 흰 도화지를 만났을 때,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나 그림에 재능 있는 줄 몰랐다.”라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는 못 그린다.”, “따라 그릴 밑그림이 없냐.”라고 말하신다. 예쁘게 그리는 결과를 상상하며 예술가의 스타일을 배워 그림 그리기를 빨리 익히고 싶은 참여자의 욕구(needs)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함께 교육하는 예술가에게 어르신들의 그림에 최소한의 개입만 할 것을 당부한다. 잘 그린 그림은 형태를 정확히 그리는 그림보다 작은 것 하나를 그려 넣더라도 표현된 내가 있는 그림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떤 색을 쓸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불확실한 상황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기 서사가 담긴 독자적인 양식이 구축된다. 때문에 수업에 꼬박 참여하는 1938년생 박점순 어르신도 손이 떨려서 그림 선이 삐툴빼뚤하다며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시지만 점순 어르신의 그림에는 어르신의 일상이 담겨 있다. 십자가의 좌우 대칭이 안 맞다며 자를 찾으실 때에는 “어르신, 자대고 그린 그림은 멋이 없어요. 지금 이 그림은 어르신 밖에 못 그려요.”라며 만류한다. 선생님을 잘못 만나 아흔이 넘어 손이 떨리는 한계를 이겨내고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들은 ‘보는 것’에서 인식하는 단계로 넘어가 일상을 다시 보는 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세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어떤 것을 창조하거나 기여하는 것, 둘째는 경험적 가치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사랑을 경험하는 것, 셋째,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기이다. 오늘도 자신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고요한 밤을 견디는 어르신의 손끝에서 한 사람의 서사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린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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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23 19:15

[문화마주보기]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지역 북페어

2020년 전주새활용센터에서 열렸던 인디마켓 ‘장’은 난생처음 참가했던 지역북페어였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 우리 지역 서점과 출판사, 창작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던 소중한 기회였다. 배포받은 참가팀 식권을 들고 2층으로 내려가면 주민분들이 해주신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영혼마저도 가난할 때 건내받은 끼니는 그저 뱃속만 채우는 것이 아님을 아는 행정가나 기획자는 얼마나 있을까. 그 후 3년 뒤 2023년 ‘전주책쾌’가 열렸다. 전주시, 전주도서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립출판서점 기획자들이 만들어낸 민관협력의 파격적인 북페어였다. 연꽃 가득한 호수 위 연화정 도서관에서 펼쳐졌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 뒤에는 운영진들의 숨은 헌신이 있었다. 수많은 장서들을 순식간에 옮기고, 셀러들을 위한 모자 134개를 손수 제작하고, 갑작스러운 에어컨 고장에도 놀라운 대응력을 보여줬다.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셀러들에게는 매일 김밥과 간식이 제공되었다. 많은 셀러들이 감동하며 SNS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제2회 전주책쾌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과 연결된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열렸다. 옛 농협원예공판장을 리모델링해 더 넓고 쾌적했다. 1회 때 선비 분장을 하고 흥을 돋구던 청년 예술가가 2회 때는 도깨비로 변신해 어린이들과 함께 전통놀이를 하고 폐회 직전까지 남은 선물을 주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올해 진행되었던 제3회 전주책쾌는 기존 예산보다 반 이상 줄어든 열악한 상황 임에도 총 관람객 수가 1,000명 가까이 늘어난 7,800명, 타 지역 방문객은 11% 증가한 48%가 다녀갔다 한다. ”내년에도 또 했으면 좋겠다“ 남부시장 상인들도 매출이 올랐단다. 여행매거진 <책쾌맥>도 런칭되기도 했다. 2024년에는 ‘군산북페어’가 열렸다. 군산북페어는 군산시, 군산도서관, 소통협력센터 군산, 군산서점연합단체 군산책문화발전소가 함께 했다. 참가신청 방식부터 놀라웠다. 긴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포트폴리오 PDF 제출이 필요없었다. SNS주소 정도만 입력하면 끝나 무척 편리했다. 군산북페어가 열린 곳은 故김중업 건축가의 유작으로 알려진 군산회관(구 군산시민문화회관)이었다. 건축사적 가치가 높음에도 오랜 방치, 철거 위기와 '흉물'이란 오명을 딛고 사회실험과 베리어프리 입구를 만드는 등 갖은 노력 끝에 재탄생 된 곳이다. 개막 30분 전부터 관람객들의 긴 줄이 이어졌고, 총 6,600여 명이 다녀갔단다.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재즈바에서 열린 네트워킹 파티에서는 우리 지역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만났다. 꿈만 같았다. 군산북페어와 전주책쾌가 성공한 이유는 지역과 사람을 아끼고 오래된 것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 대전 유성호텔, 강원 아카데미극장처럼 철거 된 오랜 공간들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크다. 아직 전북은 오래된 공간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많은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 돼 있지만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지역 청년들에게 든든한 희망의 한면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전주 청년몰의 구호를 무척 애정한다. 더 많은 지역 창작자들과 상인들이 적당히 벌어 잘 살 수 있을 때까지, 이 따뜻한 북페어의 불씨가 계속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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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6 18:50

[문화마주보기] 두려움이라는 껍질

사람들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두려움이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 생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두렵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사람도 잃을 게 하나 더 있다. 그게 바로 목숨이다. 목숨, 태어나는 순간부터 목에 숨이 붙으면서 인생이 시작되고 그 목의 숨을 부지하려고 한 생을 바둥거리다 그 숨이 떨어지는 순간 생이 끝난다. 다시 말하면 숨을 붙이는 순간 두려움이 시작되고 그 두려움은 숨이 떨어져야만 끝난다. 그렇게 두려움은 죽음의 다른 이름이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살아있는 내내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 그리고 이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포장하고 있는 두려움의 껍질 중 하나가 ‘늙음’이다. 하지만 늙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의사이며 명상가인 디펙초프라는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그렇지 않은데 인간만이 노화현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신경계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늘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천 년 된 은행나무는 스스로 늙는다거나 그래서 죽게 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두려움이라는 정신적 작용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의 공포 없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웃으며 즐겁게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듯이, 말하자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소풍을 끝내고 즐거웠다며 하늘로 가는 어떤 시인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인생이라면 정말 행복하지 않겠는가. 늙는다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의 정신적 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명상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에 끌려다니는 사고에서 벗어나 역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이끄는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과 느낌으로 자신의 신체 상태를 바꿀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라고 한다. 노화현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신경계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정신적 상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명상은 바로 이런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계기로 아난다마르가 수행공동체를 접하게 되어 십여 년 명상을 해오고 있는데 명상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이 필요한 것이어서 그것만으로도 의식이 고양되어 삶의 강한 자신감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명상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면 몸속에 있는 각각의 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의 세포들은 우리의 생각들을 낱낱이 엿듣고 있어서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내 몸이 시간과 함께 쇠퇴해 간다는 생각 대신 시시각각 새로워진다는 신념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인체는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는데 피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롭게 교체되고 위벽은 5일마다, 간은 일주일마다, 골격은 3개월마다 새롭게 바뀐다고 한다. 그러니 몸은 매일 새로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며 삶은 현재에 고도로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에 근접한 것이기도 하다. 존재의 근본을 덮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껍질을 벗을 수 있는 것은 부귀영화를 뒷받침하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정신, 마음 하나에 달린 것이다. 불가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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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9 18:41

[문화마주보기] 참여자의 대상화를 경계하고 연대하는 기획의 철학

일방향의 기획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는 어떤 철학을 품고 기획을 설계해야 할까?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에서 진행되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는 그 철학을 구체화한 실험의 장이었다. 명확하게 설계된 계획도 현장에서는 늘 수정된다. 참여자의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이전의 앎과 현장의 상황들은 항상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수정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현장의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내고 어떤 문제점을 인지했음에도 애초의 계획대로만 밀어붙인다면, 이 프로젝트는 ‘누구를 위한 과정이었나’ 자문하게 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과 만나 협업을 이루는 일은 날씨의 변화처럼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변화를 이해하고 현장의 상황에 맞춰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에서야말로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이 싹튼다. 용평마을 주민들과의 만남은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양적 접근에서 예술이 참여자에게 얼마나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로 기획의 방향을 전환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용평마을의 1941년생 라순애 할머니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서예 도구를 유품처럼 고이 간직하고만 있었다. 미술수업을 받고 나서야 화선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미술수업에서 라순애 할머니가 마치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듯 그림 솜씨를 뽐낼 수 있었던 것에는 그 화선지가 큰 역할을 하였다. 1년이 지난 후에나 어르신이 화선지에 그린 100여점이 넘는 습작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비록 그 3년간의 열정이 현재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 해 누가 그들의 가슴에 예술의 불씨를 당겼는가 깊이 되새기게 되었다. 그림을 가르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자주 받지만, 우리가 한 것이라곤 예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리고, 창작의 동기가 되는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전수한 것 뿐이다. 때문에 함께 마을로 들어가는 예술가분들에게 그림을 그려주지 않을 것, 기술을 알려드리지 않을 것을 여러 차례 당부하였다. 어느 날은 90에 가까운 어르신이 화가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리기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 달라 조르는 아이 같은 모습이 포착 되었다. 그와 같은 수업의 풍경 속에서 예술을 시작하는 데에는 늦음이 없고, 표현과 열정에는 나이가 없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령화 시대에 도래한 오늘날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에서 진행하는 커뮤니티 아트는 노인을 사회적 약자라는 연민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다. 삶 속에서 실천하는 변화의 구호인 창의적 나이듦(Creative Aging)을 메시지로 무력한 노인이 그림을 그리네가 아닌, 꿈꾸고 표현하는 삶을 사는 노인의 열정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참여자의 문화를 향유를 넘어 예술단체와 함께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만들어가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버렛 로저스의 혁신의 확산 이론에 따르면 한 사회에서 새로운 관념이 자기확산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보통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한다. 2020년에 시작한 마을의 노인공동체와 예술가가 함께 가고, 멀리 가고, 천천히 가는 공동의 움직임은 문화가 사회 변화를 도모하는 진정한 방식이 아닐까. 노인 스스로 능동적 변화에 참여하여 능력있는 삶의 주역으로 마주하는 연대의 퍼포먼스가 용평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어져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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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6 19:09

[문화마주보기] 죽음 먹으며 피어나는 창작자의 자리

1980년, 유네스코는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 를 통해 예술가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고 생계와 지위 보호의 필요성, 직업훈련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최초로 문서화하였다. 프랑스는 1936년부터 이미 비정규직 예술계 종사자들을 위한 앵테르미탕 제도(Intermittents du spectacle)를 도입해 일정 시간 이상 일하면 실업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독일은 1983년부터 예술사회보장기금 KSK(Künstlersozialkasse)을 통해 프리랜서 예술가와 언론인들이 의료, 연금, 요양보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험금을 나눠서 부담한다. 캐나다는 1992년 예술가 지위법(Status of the Artist Act)을 제정해 고용된 예술인들에게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하며, 룩셈부르크는 1999년 예술인들을 위한 특별재정지원제도(special system of time based financial assistance)를 제정하고 문화예술사회보장기금을 통해 최저소득에 미달하는 예술인의 생계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과연 예술을 지속하고 싶은 곳일까? 초기 창작자나 어려움에 놓인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환경은 어떠한가?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등으로 알려진 조각가 故 구본주는 200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몫숨을 잃었음에도 배상금 소송에서 ‘정서적 불안정으로 자살한 무직자’ 취급을 받았다. 이는 예술인의 노동과 가치에 대한 법적 논쟁을 거치며 예술인 복지제도 개선을 위한 문제의식을 촉발했다. <절룩거리네>로 인디 차트 5주 연속 1위에 선정되는 등 청년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던 음악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故이진원)은 ‘음원=공짜‘소비자인식, 불법다운로드, 저렴한 스트리밍 서비스 구조 속에서 생활고를 겪다 2010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예술인의 생존권과 음원수익 배분의 구조적 불공정성에 대한 논의와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환기시켰다. <격정 소나타>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故최고은은 2006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뒤 5편의 영화를 계약했지만 모두 제작 불발이 되었다.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넘겨도 영화가 다 완성되어야만 완불 되는 구조적 문제, 그리고 생활고와 지병으로 2011년 숨졌다. 그의 죽음은 같은 해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15년 연달아 고시원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연극배우 김운하(故 김창규), 배우 故 판영진의 죽음은 예술인 복지법이 비출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그후, 2020년 드디어 예술인 고용보험이 도입되었다. 이를 반기며 지난 5년간 계약 작가에 대한 고용보험 취득신고를 해왔다. 총 61건의 신고, 38명의 등록작가 중 15%에 해당되는 6명의 작가가 실업급여를 받았다. 왜 15%뿐일까, 2016년 기준 프랑스 앵테르미탕에 등록된 예술가 중 42%가 실업급여를 받았다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꾸준히 예술인고용보험에 가입되지 못하거나 실업급여자격 증명을 위해 고용보험센터에서 고갈되는 창작자의 한탄을 듣는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변의 목소리를 듣는다. 죽음의 자리에 늦게 도착하는 제도의 모습은 더는 없길 바란다. 그 피가 우리의 것이 아니길 더더욱 바란다. 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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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19 19:06

[문화마주보기] 풀잎의 겸손

한세상 살면서 훌륭한 참스승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 아직도 살아계시는 세 분의 스승이 계시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외사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내치지는 않으니 고마울 뿐이다. 이 세 분은 살아오며 인연을 맺은 후 마음속으로 늘 본받고 배우고자 애썼던 분들이고 지금도 그러하다. 교사로 지내던 때에 만났던 정해숙 선생님,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 과정에서 만났던 칫따란잔아난다 다다지, 그리고 자기 수행과 사회적 실천이라는 삶의 균형감을 가르쳐주신 도법스님이 그분들이다. 이 세 분의 스승 모두 겉으로 보여주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겸손이다. 그분들의 겸손은 사람들을 만나 그저 자신을 낮추는 그런 겸손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그런 겸손도 아니다. 내 말을 아끼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그런 겸손도 아니며 위선과 가식이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는 겸손과는 다르다. 그분들의 겸손은 상대방이 없어도 스스로에게 하는 겸손이다. 자기 자신을 모시는 겸손이고 생명이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까지도 모두 모시는 겸손이다. 세상을 살며 누구에게나 삶의 상처처럼 얻게 되는 작은 가식과 위선까지도 벗어나 본래 모습 그대로 숨 쉬는 겸손이다. 평생을 수행자로 사시면서 저절로 그러하듯 생겨난 겸손이다. 청화스님이라고 계셨다. 불가 쪽에서는 살아계실 때 많은 사부대중이 따랐던 큰스님인데 정해숙 선생님은 이분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 청화스님이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수행자가 겸손 빼놓으면 뭐 남는 게 있겠나’라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정말 오랜 수행으로 내공이 깊어진 자의 겉모습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다만 누가 보아도 그냥 평범하면서 겸손하게만 보일 것이다. 길가 어느 구석에 놓여 있는 돌멩이 같은 그런 평범과 겸손 말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모시는 세 분의 스승님들이 그렇다. 그분들은 삶 자체가 수행이기도 하신 분들이고 각자의 분야에서 높은 수행과 함께 세상일을 거침없이 해오신 분들이다. 그런 그분들의 겸손은 오랜 수행 속에서 얻은 ‘탈 에고(脫 ego)’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풀잎처럼 겸손하라’(Ánanda Vacanámrtam Part 9)는 말이 있다. 아난다마르가의 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설명이 없어도 느낌이 강하게 오는 아포리즘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풀잎을 땅이라는 근원(본성, 진리)에 뿌리내리고 지상의 모든 것을 받아내는 존재로 읽었다. ‘풀잎처럼 겸손하라’는 그런 겸손을 말하며 그것은 결국 모든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탈 에고(脫 ego)의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안에서 에고를 지워내고 ‘참나’(true self)에 이르게 된다면 저절로 ‘풀잎처럼 겸손’해질 것이다. 청화스님은 아마도 이 ‘풀잎의 겸손’에 닿은 수행을 이루셨을 것이다.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비속(非俗)이나 비범(非凡)의 무엇을, 어떤 성취를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끝없이 생겨나는 집착과 그 에고(ego)를 지우는 일이고, 한 생을 살며 매일 군살처럼 달라붙는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며 풀잎처럼 근본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바로 스승들의 그 겸손에 이르는 일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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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12 18:10

[문화마주보기] 쇼핑난민과 이동판매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주시의 고령화율은 18.6%로, 나라 전체의 평균보다는 그 수치가 낮다. 그러나 행정동별로 고령화율을 살펴보면 20개 행정동이 20%를 이미 초과하고 있으며, 풍남동, 노송동, 중앙동, 완산동, 진북동, 동서학동, 서서학동, 평화1동은 30% 중후반의 초고령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에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과제 중 하나로 쇼핑난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쇼핑난민은 2008년에 출판된 일본의 책 "쇼핑난민 -또 하나의 노인문제 (買物難民-もうひとつの高齢者問題)"에서 소개된 단어이다. 저자는 스기타 교수로, 두부조차 사기 어려운 어머니의 삶 등을 소개하고 있다. 쇼핑 난민은 신선한 재료, 식료품, 일용품 등을 파는 상점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거동, 교통이 불편하여 상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령인구를 의미한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쇼핑 난민을 「집에서 점포(육류, 생선, 채소·과실 소매업, 백화점, 종합 슈퍼, 식료품 슈퍼, 편의점이 포함)까지 이동거리가 500m 이상이고, 자동차 이용이 곤란한 65세 이상 고령자」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쇼핑난민의 발생 원인은 소비자 감소로 인한 식료품점의 채산성 악화와 폐업이다. 그렇기에 쇼핑난민이 지방 소도시, 농어촌 과소지역에서만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농어촌 과소지역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식량난민이 증가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아직 상점이 위치하고 있더라도 고령의 나이로 거동이 어려워 가게를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인구 중에서도 75세 이상 고령인구의 쇼핑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쇼핑난민을 조사한 데이터를 찾기는 어렵지만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에 활동제약 인구를 조사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0년에 726만 명이었던 활동제약 인구는 2020년에 1,691천 명까지 증가하였다. 연령별로 비교했을 때 60세 이상 고령자 중 활동제약 인구는 2,230천 명으로 18.5%가 활동에 제약이 있다. 60대는 8.3%인 반면 70세 이상은 30.6%로 그 수치가 급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쇼핑난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에서는 민간이 운영하는 이동형 슈퍼가 활성화되고 있다. 버스, 소규모 트럭을 개조해 지역을 방문해 판매하는 리테일 산업으로, 편의점, 무인양품 등의 대기업도 해당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 흐름의 대표주자는 도쿠시마루다. 도쿠시마루는 2012년 창업 초기부터 쇼핑 난민이 되고있는 시니어층이 타깃으로 만들어진 이동형 슈퍼로, 창업 후 8년만에 일본 모든 지역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도쿠시마루의 특징은 지역과의 상생이다. 물류는 지역슈퍼마켓과의 연계를 통해 확보한다.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위해 많이 팔지 않는다. 이들은 주 2회 같은 곳을 비슷한 시간에 방문하고, 판매물품을 기록한다. 방문의 규칙성과 기록을 통해 소비자가 지난 방문 때 구매한 식품들을 다 소비하고 구매하는지 등을 확인한다. 고령인구의 경우 1~2인 가구가 많기 때문에 호객행위를 통해 구매행위를 독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는다고 한다. 이렇게 쌓인 신뢰관계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를 넘어 소비자의 건강과 삶을 지키는 지역의 지킴이로서 도쿠시마루가 작동하게 한다. 전주시의 쇼핑난민 현황과 대안은 누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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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28 16:53

삶의 기대감을 만드는 예술의 힘, 커뮤니티 아트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는 ‘예술이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면, 삶은 예술적 형태로 격상될 수 없다‘고 말하며, 예술과 삶의 일치를 강조했다. 2020년부터 김제시 광활면 용평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초고령자 대상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는 일상 속 예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인의 사회적 고립과 세대 공존에 대안을 제시한다. 2018년, 104세의 나이로 조력 죽음을 선택한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 100세를 넘긴 뒤에는 삶에서 더 이상 기쁨을 얻지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연구, 강의, 봉사 같은 사회적 의미와 연결된 역할이 줄면서 존재의 목적이 약화됐고, 목표감의 상실은 삶의 만족도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화를 질병이 아닌 자연적 한계로 바라보며 “건강이 점점 나빠져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안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조력 죽음을 택했다. 그의 말은 우리가 고령자의 삶을 ‘연장’이 아닌 ‘의미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는 “내가 여기에 필요하다”라는 경험의 결핍을 쉽게 마주한다. 김제시 용평 마을에 사시는 1932년생 곽귀선 할머니는 “고민은 나 세상 가는 거. 그게 고민이야. 나이가 많은 게 저녁 먹고, 그냥 아무도 몰래 조용히 가는 게 그게 소원이여.”라고 말한다. ‘내일모레 죽을 사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어르신들에게서 삶의 기대감은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곽 할머니는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징그럽게 좋아했어. 얼마나 좋아했으면 화장실 가서도 하고 그러겠어. 그렇게 노래를 좋아했어. 지금은 싫어.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다 잊어버리고 하나도 몰라. 아주 바보 되어버렸어.”라고 말했다. 글을 모르시기에 귀로 익혔던 노랫가락은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이랑고랑은 2023년, 역할을 필요로 하는 그림자 연극을 기획했다. 어르신들의 인생사를 재구성한 ‘광활한 사랑’은 정확한 대사보다 자신의 차례를 기억하고 감정을 발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지나간 세월은 언제나 만족스러웠다는 말로 함구하는 어르신들의 속내를 끌어내기 위해 타로 카드를 활용했다. 타로카드를 다룰 줄 아는 예술가는 없었지만,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게 하는 장치였다. 어떤 카드가 나와도 꿈보다 해몽으로 해석하니, 어르신들은 저마다 이 집 용하다며 웃음 지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연극 대본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 윤리적 고민 끝에 완성된 대본을 받은 어르신들은 내용보다 대사의 분량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곽 할머니는 동년배 할머니를 딸로 생각하며 “오냐”라고 읊어야 하는 대사 웃겨 몇 번을 다시 찍었음에도 “겁나게 재밌었어. 이번 여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라. 기분이 참 좋았어. 이게 누구 덕분이여?”라고 말했다. 슈타이너는 예술과 삶을 교배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자신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용평 마을에서 펼쳐지는 프로젝트는 고령자가 존중받는 주체로 다시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삶이 길어지는 시대, “나는 아직도 필요하다”라는 감각이 있다면, 노년의 하루가 기쁨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되새겨준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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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21 18:29

만화, 좋아하세요?

만화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글을 쓰는 것도 고통이나, 그것을 다시금 이미지로 표현하며 한 번 더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일은 늘 어려웠다. 양서가 아니라며 태워지고, 빼앗기거나 눈 앞에서 찢기곤 했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Maus)』는 만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문학적으로도 인정받았음에도 미국 내 도서관 장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국내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여러 기관에서 상을 받은 작품임에도 만화란 이유로 도서관 장서에서 취소당하거나, 서점 입고가 어렵단 말을 듣는다.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엔 만화를 사랑하며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면 만화를 부끄러운 과거처럼 여기거나 심지어 담배처럼 끊자는 말을 한다. 우수한 성적과 좋은 대학, 훌륭한 취직자리를 위해 달려나간다. 좋아하는 만화를 하겠다던 동료들조차 ‘돈이 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골몰한다. 돈이 되면 존경을 한 몸에 얻는다. 수익은 기준이 되고, 작가별 등급이 매겨진다. 웹툰 산업의 황금기를 통해 상업적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시장에서 많은 작가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입지가 점점 줄어든다. 지난 11일~12일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는 독립출판만화행사 ‘칸새‘가 열렸다. 참여작가로부터 위탁받은 창작출판 만화책이 비대면 판매 및 전시되었다. 작년 4월에는 신촌과 홍대 사이에 있는 세모화실에서 시범행사가 열렸는데, 예상치 못했던 인파와 긴 대기시간이 화제가 되었다. 많은 창작자와 독자들이 이런 만화만을 위한 독립적인 행사를 얼마나 갈구해왔나를 느낄 수있는 현장이었다. 올해 칸새에서는 144권의 만화책이 전시,판매되었다. 참관객 표는 이커머스 플랫폼 TMM을 통해 판매되었는데, 3시간만에 800석에 달하는 표가 매진되고 전시된 만화책들이 완판되으며, 한켠에서는 문학동네와 쪽프레스의 출장 만화편집부 상담과 칸새 즉석 상담을 통해 창작에 대한 열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칸새는 ‘칸과 칸 사이‘를 뜻한다고 한다. 칸과 만화와 사람들. 서로가 서로의 칸을 들여다보며 이곳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소속감, 만화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에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4월 13일(일) 자정까지 온라인 판매를 진행했다. 슈퍼히어로 만화 제작에 모두 열을 올리던 시기, 실험적 만화 『쥐(Maus)』의 연재를 진행한 미국의 매거진 로우(RAW),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펴낸 프랑스 출판사 아소시아시옹(L'ASSOCIATION), 경쟁도 점수도 없다며 시장성 약한 게임이라는 비판에도 『동물의 숲』을 만들어내 많은 유저의 사랑을 받은 일본의 닌텐도처럼 좋아하는 것을 그려도 지속할 수 있고 응원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장(場)이 움트고 있음을 느낀다. 운 좋게도 마지막 날 오후 시간대 취소표를 구매해 방문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만화영화 주제가가 잔잔히 흐르고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벽에는 참여작가들이 만화원고용지에 그린 자기소개서가 붙어있었다. 어린 시절 멋 모르고 원고지와 펜촉을 들고서 만화 그리기에 도전했던 추억이 떠올라 한참을 서 있었다. 멀리 돌아온 기분이다. 결국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던 그런 만화를 만들고 싶었던 거 아니었던가, 그 마음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만화, 정말로 좋아하고 있던걸까. 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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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4 17:55

1m의 세상

바야흐로 텃밭을 일구는 계절이 왔다. 손바닥만 한 밭이니 괭이로 파고 호미로 골라서 파종하거나 모종을 심는다. 그리고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퇴비만 뿌려 밭을 일구다 보니 지렁이를 자주 보게 된다. 괭이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땅속에 있는 지렁이를 놀라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렁이 편에서 보면 날벼락을 맞은 셈인데 어느 때는 땀도 좀 식힐 겸 지렁이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몸을 감출 때까지 앉아 쉬며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지렁이나 나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한 목숨이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지렁이가 하루 종일 꿈틀거리며 생명 활동을 하는 땅속 반경이 1m라고 해도 내가 하루 종일 이곳에서 밭을 일구며 보내는 삶의 반경과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저는 부지런히 저의 세계를 살았다 해도 겨우 1m의 땅속 반경을 기어다닌 것이고, 나 또한 열심히 나의 세상을 살았다 하지만 우주의 한 점인 지구별의 어느 귀퉁이에서 평생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스스로의 하루를 살다가는 객(客)일 뿐이다. 참으로 이런 허접하고 싱거운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도 마음은 충분히 여려져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아등바등 죽네 사네 하며 한 생을 살고 있지만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우주의 지구별에 잠깐 손님처럼 왔다가 하룻밤 머물고 가는 것이다. 지렁이처럼 평생 1m의 어두운 땅속 세상을 꿈틀거리다 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마음도 어느 정도 편해지고 정말 복잡하고 힘든 세상살이가 조금 가벼워지면서 주변의 풍광 또한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아무런 뜻도 없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물이나 공기와도 같은 처지가 되어, 그 뜬구름 같은 생각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벅차올라 눈앞에 펼쳐진 이 구체적으로 눈부신 봄날이 그렇게 경이로울 수 없다. 마른 가지를 비집고 올라오는 초록빛 새잎의 현실에 눈물이 나고, 온 세상을 초록 바다로 만들어 출렁이는 봄 산을 보면 이 비루한 몸뚱어리가 숨 쉬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고마울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이 이 정도 차오르면 푸르릉 날아오르는 감나무의 새 한 마리만 봐도 괜히 서럽고 아무에게나 무엇에게나 손과 발이 다 닳도록 수없이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마움도 어쩌다 제 감정에 겨워 세상이 만만해지니 그러는 것이리라. 일상 속 또 다른 일상을 보는 일이 항상 그런 것이다. 그래도 사실 나는 늘 그 일상으로 건너가고 싶다. 텃밭의 지렁이가 되어 아무런 뜻 없이 종일토록 1m의 세상을 기어가고 싶은 것이다. 살아야 이승이고 죽으면 저승일 뿐이라는 말이나,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이런 심정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찰나의 한 生인데 권력과 부와 명예를 좇으며 불안하고 분노하며 고통스럽게 보내는 것보다 눈앞의 눈부신 봄날, 존재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설레는 마음으로 살기에도 부족한 세월이 아니겠나. 글을 보내는 오늘, 그렇게 기다리던 윤가의 파면 소식이 왔다. 별의별 추측과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는 불신의 사회, 억지와 비상식의 나라가 되어 대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지혜롭고 용기 있는 국민 덕분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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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7 17:18

우리 가족, 마을의 자연재해 대피 규칙 정하기

꺼지지 않는 산불을 보면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우리 가족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만날 장소가 바로 생각나시나요? 오늘은 개인과 마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제일 기초적인 매뉴얼 "우리 가족, 마을의 자연재해 대피 규칙 정하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우리 가족 피난 장소 정하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통신이 끊기면서 가족끼리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지, 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가족의 피난 장소 정하기"를 캠페인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집 주변이나 아이들의 학교가 있는 근처의 피난소를 지자체가 나누어 준 피난안내지도에서 찾아 피난 약속장소로 결정하고, 해당 약속장소의 이름, 위치를 현관문에 붙이거나 각자의 지갑에 보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용카드 크기의 "피난 카드"를 배포하여 이름, 주소, 피난 장소 외에도 생년월일, 긴급연락처 등을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피할 상황이 설마 오겠어?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딱 한번 피난 장소를 가족들과 약속해 공유해보시는 것을 어떨까요? 피난카드에 적는 긴급 연락처는 같은 지역에 사는 가족보다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친척의 연락처를 적는 것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재해 시에는 지역 내 통신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서 거리가 가까운 가족끼리 연락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00고모에게 전화한다"라는 룰을 정해서 00고모가 각자 오는 연락의 네트워크 역할을 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 피난 타임라인 정하기 피난장소를 정하였다면 가족 간의 역할 분담과 타임라인을 정합니다. 비가 어느 정도 왔을 때 대피해야 하는지, 며칠 전부터 어떤 준비를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룰을 정하는 것입니다. 지진이 왔을 때 누가 무엇을 사서, 혹은 누구를 픽업해서 피난소로 집합해야하는지 등을 정해두면 더욱 좋습니다. # 피난 장소까지의 동선 확보, 방재 마을 만들기 피난 장소와 타임라인을 정했다면 가족과 함께 집, 학교, 회사에서부터의 동선을 조사해보세요. 특히 아이들을 부모님이 픽업하기 위한 피난 동선을 꼼꼼하게 정해, 이동 동선 상에서 물건이 떨어지거나 쓰러질 위험성이 많은 곳들을 피할 수 있도록 체크해야 합니다. 해당 동선은 아이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동선과 상황을 알수록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선 조사를 기반으로 일본의 많은 동네들이 위험요소를 없애기 위해 주민들이 함께 블록 벽을 생울타리 벽으로 바꾸거나 자판기를 고정하고, 공원 등의 공공 공간들을 만들어 피난 장소들을 늘리는 등의 방재 마을 만들기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딱 한 번이라도, 장난이라도 말해두어라 가족끼리 딱 한 번만 이야기해보시길 권유해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자연재해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한 번이 당신의 가족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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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31 18:19

공감으로부터 시작된 기획, 공동체와 함께 자라는 커뮤니티 아트

특정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커뮤니티 아트를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공감’이다. 필자 역시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 어르신들을 만나기 이전에는 ‘노인은 이런 활동을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선입견으로 기획을 시작한 바 있다. 이는 경험하지 않은 대상을 정형화하는 대표적인 오류로 실제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정되어야 할 접근이었다. 만약 마을에서 먼저 벽화를 요청하지 않았고, 벽화를 꺼려했던 예술가들이 마을의 요구에 맞춰 기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았다면, 이전에 매스컴에서 접했던 타 마을의 예술적 성과를 마을에 그대로 적용한 성과 중심의 단발적 프로젝트로 귀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화예술의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예술을 통해 확장하는 문화민주화(文化民主化)를 실현하는 것으로도 의미는 있겠지만, 주민이 예술의 능동적 창작자로 자리매김하는 문화민주주의(文化民主主義)로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기획자가 자신의 기획만을 고수하고 공동체에 대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과 위주의 프로젝트를 이끌고자 하였다면, 용평마을에서 어르신들이 보여준 문화예술에 대한 자율성과 창의성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획의 전환점은 종종 작은 순간, 찰나에서 시작된다. 첫해에는 “팔십 평생 붓을 처음 잡아봤다” 는 어르신들이 개별젹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인상 깊었고, 두 해째에는 그림들이 점차 서사성를 보이며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어르신, 우리만 보기 아깝네요. 어디 김제회관 하나 빌려 전시회라도 열까요?라 칭찬하는 필자의 말에 ”우리라고 전주에서 전시 못혀?“라고 웃으며 답한 어르신의 말은 다음 해 전시 기획의 씨앗이 되었다. 계획으로만 염두에 두었던 전시는 어느 기회를 만나자 실제로 실현 되었고, 방바닥에서 그린 그림이 전시장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어르신들은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내일 모레 죽는 날 받아 놨다” 고 말하던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꿈들이 서서히 피어나게 되었다. 무언가를 가능하도록 이끄는 일은 참여 구성원인 어르신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획자는 프로젝트에 적절한 전문 예술가를 연결하고, 예술가들이 금전적 보상 외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소명과 비전을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젠가 함께 하면 좋겠다”는 한마디에서 시작된 인연은 “어느 날 눈 떠보니 광활에 있더라”라는 고백으로 이어질 만큼 예술가 스스로 공동체에 마음이 묶이며 그 일부가 되어간다. 시간과 함께 축적된 공동체에 대한 이해는 예술가로 하여금 ‘공동체와 상호 교류하는 기획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자문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예술가인 우리가 공동체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예술이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주체화하는 데 어떤 기여를 줄 수 있는가”로 자리 잡았다. 공감에서 시작된 기획은 공동체의 삶 속에서 자라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낸다. 새로 배우는 것이 두렵다는 어르신들의 일상은 달라지고 어르신들의 내면에는 변화를 받아들일 기초가 세워지고 있다.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누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그 질문이 진심으로 시작되는 순간, 커뮤니티 아트는 비로소 사람과 삶을 물들이는 예술이 된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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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4 19:07

우리에게는 더 많은 노래가 필요하다

휘게(Hygge), 행복의 나라로 알려진 덴마크에는 함께 노래하는 문화 ‘펠레상(Fællessang)’이 있다. 전 세계적 재난이었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 고립된 상황에서도 덴마크 국민들은 각자의 창가에서 같은 시간, 같은 노래를 부르며 불안을 이겨냈다 한다. 상상만해도 놀랍고 부러운 광경이다. 이한나 작가의 저서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덴마크의 성인들을 위한 학교, '호이스콜레(Folkehøjskole)'에서 사계절을 지내며 접한 ‘펠레상‘을 일러스트와 사진,글로 담아내었다. 저자는 출간 이후 매 달 한 번씩 정기 싱얼롱을 열고 있다는데, 이번 달에는 군산회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한국에 이주한 지 30년이 되었다는 오오우치 가즈에씨도 함께 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본 노래 ‘후루사토’를 부르며, 일본인들이 봄마다 꼭 즐긴다는 사쿠라모찌와 일본 과자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베트남 교환학생과 캄보디아 가족 참가자들도 함께 자리해 다양한 고향 이야기와 노래를 나누었다.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정미조의 <귀로>를 들을 때는 ’좋은 노래구나’ 싶었는데 막상 가사를 직접 보며 불러보니, 어릴 적 뛰놀던 산골마을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곳을 갑자기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기억, 그리움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입장과 일치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덴마크는 이주자를 존중하는 사회지만, 라마단 계열의 외모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이삼 바치리(Isam Bachiri)는 여전히 “너희 나라는 어디냐?”라는 질문을 듣곤 한단다. <라마단 코펜하겐>은 덴마크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도 이러한 질문이 던져지는 현실을 담고 있는데, 이 곡이 덴마크 노래집 호이스콜레송북(Højskolesangbogen)에 정식으로 수록된 일은 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겠다는 선언과 같은 의미라 한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는, 소중한 누군가의 가족” 하림의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를 부르면서는 지난 겨울 김제에서 작업 중 세상을 떠난 몽골 출신 노동자 강태완씨를 떠올렸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해 자란 그의 모습, 미등록 이주 아동이란 이유로 오랫동안 법적 지위를 얻지 못했던 모습,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새벽부터 피켓을 들고 서 있던 그의 어머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한 달이 지나서야 회사는 공식 사과를 했고, 노동부는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난 금요일만해도 3건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있었다. 우리도 덴마크와 같은 ‘펠레상‘ 문화를 가질 수 있을까? 1980년대만해도 추임새를 넣으며 서로 흥을 북돋우는 노래 문화가 있었지만, 점점 개인화가 진행되며 이제 노래는 많은 이들 앞에서 부르기 어려운 것, 점수나 순위로 평가되는 경쟁의 문화로 변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러나 최근 탄핵집회 현장에서 세대를 초월해 각양각색의 빛나는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함께 불렀던 노랫소리에서 우리만의 ‘펠레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래는 우리를 연결하고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에게 더 많은 노래가 필요한 이유이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기에, 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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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7 18:19

삼독(三毒)

한세상을 살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옥을 살다 간다. 어쩌면 죽어야만 그 감옥을 벗어날 수 있다. 한 生을 살며 오직 ‘나’라는 자신만을 살다 가는 것이다. 붓다는 모든 중생은 삼독三毒을 벗어나야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삼독이야말로 나의 감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니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그리고 스스로 갇혀 있는 나의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탐貪, 진嗔, 치痴 삼독三毒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탐이다. 잘못된 탐심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대통령직 파면을 자초한,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어떤 사람을 보면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살아야 한다는 존재 욕구를 본능적으로 갖는다. 사람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본능적인 존재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탐이 아니다. 탐은 이것을 이탈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무는 싹이 튼 그 자리에서 햇볕과 물과 바람만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한 생을 살다 간다. 이처럼 모든 생물은 그 한계를 넘지 않고 사는데, 인간만이 그 한계를 넘는 탐심을 가지고 있다. 작금의 자본주의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자본의 토대 속에서 과학기술문명이 진행되면서 많을수록 좋다는 물량주의, 빠를수록 좋다는 속도주의, 나와 나의 이익이 먼저라는 개인 이기주의 같은 자본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탐욕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현대인들의 탐욕은 생존경쟁의 삶 속에서 오히려 필요한 것이며 부끄러워할 무엇도 아니라는 듯 당위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탐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탐욕은 물질적인 탐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이 오히려 삶의 균형감을 더 잃게 한다. 힌두의 수행 계율 중에 ‘샨토샤’라는 것이 있다. 자신에 주어진 삶의 조건과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그것에 ‘만족하라’는 계율이다. 우리는 한 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어떤 삶의 조건에 갇히게도 된다. 멀쩡한 사람으로 살다가 갑자기 암 환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날 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것인데, 살아 있는 이승의 어느 순간에도 ‘만족하라’는 것이다. 살면서 나이를 먹고 어느덧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며 ‘무상無常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느껴본 자라면 이 말을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숨 쉬며 존재하기만 해도 고맙다고 느끼는 만족의 순간이 있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만족이 손에 잡히는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만족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으려면 불가능하지만, 정신적으로 접근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손쉬운 것이다. 이것은 포기하고는 다르다. 할 수 없으니까 그냥 현실에 만족한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탐욕을 절제하는 높은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탐욕에 대한 집착을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다. 담배를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쉽게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진리라는 것은 높고 어려운 것만이 아니라 단순하고 쉬운 것이기도 하다. 이 탐욕을 벗어날 수 있다면 비로소 한 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밖에 나와 그 넓은 새로운 세상을 살며 삶의 자유로움과 생의 기쁨과 존재의 고마움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삼독의 하나인 탐貪을 벗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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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0 18:40

디지털노마드 청년의 지역 정착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키워드

사람들은 거주지를 결정할 때 직장, 학교 등과 같은 일, 주거환경, 문화환경 등을 고려한다. 청년의 거주지 선택은 “일의 위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 왔다. 지방도시가 수도권과 비슷한 수준의 일을 제공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수도권으로의 청년 유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인 MZ세대(1981년~2009년 출생), 다가올 미래의 청년세대인 알파세대(2010년~현재 출생)의 등장으로 청년 유출을 그나마 줄일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MZ세대와 알파세대는 스마트폰, SNS와 함께 성장한 세대이다. 이들은 필요한 지식을 어른이나 학교에 묻지 않고 유튜브에 검색해 스스로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알파세대는 대학 진학에 대한 니즈가 낮다.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재택·원격근무를 하는 이들을 뜻하는 “디지털노마드”는 이제 흔한 용어이다. 배움이나 일이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게 된다면 일이 거주지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다소 감소할 것이다. 이러한 전망 하에 청년이 우리 지역에 계속 거주하게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공공임대주택, 코워킹스페이스, 일자리 제공 등 다양한 정책들이 떠오르겠지만 그 이전에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인식 개선 방법과 커뮤니티 지원방식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가야 한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고향에 남아 사는 것이 서울로 이주해 사는 것보다 뒤처진 삶이라고 주입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방에 남아 잘 살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에 관심이 적고, 돌아오는 청년들에게 박하다. 그나마 최근에 국가정책 등이 로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으나 소개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독립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로컬 창업가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떠나고 주관이 뚜렷한 몇몇의 사람만이 지방에서 살아남는다는 이미지를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창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노마드로 일하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행복하고 느긋하게 사는 삶 또한 포함한다. 우리는 다양한 삶을 소개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배움이나 일이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게 된다면 어떤 요인이 거주지 선택에 영향을 줄까? 개인적으로 “커뮤니티 접근성”이라고 생각한다. 알파세대로 갈수록 자신의 취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유무는 거주지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비슷한 환경이라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청년세대가 점점 더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은 여전히 연결되고, 소속되어지길 바란다. 다만 연결의 매개체가 마을, 공동체, 학교였던 옛날과 달리 취향과 관점의 알고리즘으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과 알고리즘이 맞고, 상호간의 존중이 바탕이 된다면, 커뮤니티로 연결된다. 커뮤니티가 성장하면 일로 발전하거나 서포트 네트워크로 성장하기도 한다. 서포트 네트워크(support network)는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으로, 지방에서의 거주 지속성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전의 방식을 고수해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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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3 18:55

창의적 참여로부터 출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커뮤니티 아트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 계급이 절대다수의 민중들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평범한 민중들이 지역 공동체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일상에 변화를 꾀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실천방식은 전문예술가와 주민 공동체가 상호작용하며 예술개념을 일상의 실천으로 확장시키는 ‘커뮤니티 아트’와 맞닿아 있다. 필자는 2020년부터 예술단체 이랑고랑 팀원들과 함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에서 초고령 어르신을 대상으로 커뮤니티 아트를 진행해왔다. 마을벽화 제작 의뢰를 계기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주민 스스로’라는 원칙에 주목하여 마을과의 협업으로 발전되었다. 벽화 원화를 제작하기 위해 마련한 미술수업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었다. 농사로 바쁜 주민들을 대신해 주로 80세에서 100세 사이의 어르신들이 참여했다. 팔십 평생 붓을 처음 잡는다는 초고령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 중요했다. 시작은 종이를 보지 않고 한번에 한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놀이부터 했다. 이 과정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 어떤 형태를 정확히 모사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눈으로 확인하며 그리지 않았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타나자 서로 그게 내 얼굴이냐며 웃음을 터뜨리며 예술가에 대한 경계심도 자연스럽게 허물어갔다. 재료에 익숙해지자 어르신들은 작물이나 익숙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물을 키워 본 오랜 농사경험이 그림으로 녹아들어 독특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로 표현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특정 예술 양식으로의 편향을 막고 가르침 보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어르신들의 서투름 속에서 나오는 특유의 그림체가 나오길 기다리는 과정은 예술가가 관찰자를 넘어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창의적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예술가는 어르신들이 스스로 그려내는 방식을 지지하고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때를 지나면 비로소 어르신들의 독창적인 보는 방식이 그림에 발현되는 예술적 참여의 가치를 목격하게 된다. 이랑고랑은 이러한 움직임을 확장하기 위해서 어르신들의 창작물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20년부터 그림 수업을 통해 양성한 어르신 한 분을 2023년 인턴과정을 거치고 정규직으로 고용하여 그림을 활용한 상품을 제작하고, 서울일러스트페어 참가를 위해 4박5일 출장에 동행했다. 구몬학습의 매거진과 전북특별자치도 도정 소식지 얼쑤전북의 표지 디자인에 어르신의 그림을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는 가림막 울타리 디자인 공모지원을 계획하거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영화제에 출품하는 등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초고령 어르신들의 아마추어 작가, 모델, 배우로서 잃어버린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지역사회에 기여할 기회로 이어진다.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나이 듦과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며 예술이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사회변화를 촉매하는 문화예술이 공동체의 복지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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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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