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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계곡에서 꼬리명주나비와 함께 춤을!

“꼬리명주나비다!” 짧은 외침에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C의 발가락이 훤히 드러난 샌들 위에 앉은 나비를 보기 위해 달려들었다. 나비골로 불리기도 했던 신흥계곡에서 오래전에 사라져 그 이름만 남아 있던 꼬리명주나비다. 꼬리명주나비와의 첫 만남은 순간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져 살짝 도취에 빠지게 했다. 병든 세계의 축소판에서 외상을 겪는 동무들이 이뤄낸 작은 꿈 앞에서 미친 듯이 행복했다. 놀라운 것은 이 나비가 자신의 온몸을 사방에 드러내어 작은 날개를 팔랑거리며 이리저리 사람들 사이에 오가며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것. 그날은 신흥계곡 토요걷기 158주 차가 되는 3주년을 기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고, 사람 친화적인 나비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비-효과’를 뽐내고 있었다. 토요일마다 산이 뭉개지고, 계곡이 훼손되는 현장을 보며 걸을 수밖에 없던 동무들은 욕망의 자본주의를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궁리 끝에 떠오른 것이 나비였다. 사라진 꼬리명주나비를 복원하여 사람들을 유혹해보자. 욕망과 돈의 기분에 따라 갈팡질팡해지는 시대에 나비는 사람들의 정서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곤충이지 않을까?. 또한 운이 좋으면 나비가 불러오는 그 ‘나비효과’라는 것이 신흥계곡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나비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농약이 닿지 않는 하천을 주변에 두고 자주 살펴볼 수 있는 특정한 장소에 쥐방울덩굴을 심었다.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만 먹는다) 지지대를 세워주고, 보듬어 주니 쥐방울덩굴이 잘 자랐다. 마침내 ‘애벌레 이주 대작전’을 진행했다. 부디 애벌레 중 한 마리만이라도 ‘걷기 3주년’ 되는 토요일에 우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진행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수컷 꼬리명주나비 한 마리가 날라와서 우리를 그토록 매혹했던 것. 마침내 전설로만 듣던 꼬리명주나비를 신흥계곡에서 보는 순간 인간을 자연 속에서 하나의 종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함을 느꼈다.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영영 ‘인간으로서의 실수’로 머물 수밖에 없을 테니까. 8월의 어느 날 폭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신흥계곡은 바람골로도 불릴 만큼 바람이 많다. 걱정되어 꼬리명주나비고치 105개를 유리온실로 옮겼다. 밤새 무섭게 폭풍이 몰아친 다음 날 온실에 가보니 수십 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막 고치에서 나온 나비는 그야말로 기진맥진하여 동그랗게 날개를 만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축축했다. 날개가 마르기 시작하자 천천히 펴면서 위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 올라가더니 마침내 비상하는 나비가 되었다. 이제 세상을 향해 짧지만 아름다운 삶을 시작하는 것. 이 놀라운 광경에 꼼짝 못 하고 바라만 보았다. 나는 나비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아직은 검은색을 띠지 않으니 열심히 노력하면 되돌릴 수 있어요.” 함께 신흥계곡을 걷던 황대권 선생님은 짙은 녹색의 해캄을 보며 말했다. 바람은 차갑고 계곡을 물들였던 낙엽은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걷기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자 해캄은 계곡 바닥에 들러붙어 검은색이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지구에 우리가 다시 매혹되어야 지구를 파괴하려는 우리 자신의 행위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다.”(토마스 베리)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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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7 16:44

문화적 가치의 보존

원주시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아카데미 극장이 지자체에 의해 철거 되었다. 많은 영화인들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원형이 유지된 단관 상영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곳에는 새로운 복합 문화단지가 조성된다고 하는데 아카데미 극장의 문화적 가치나 의미는 경제 논리에 의해 그냥 사라져도 된다는 발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 땅에서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상영한 <단성사>를 지키지 못하고 사라지게 한 업보라는 생각도 든다. 프랑스의 경우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에 만든 <열차의 도착>이나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이 1902년에 만든 최초의 SF 영화 <달세계 여행> 등 초창기 영화부터 최근의 영화까지 작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언제든지 옛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1919년에 만들어진 김도산 감독의 <경성전시의경>이나 <의리적구토>는 물론이고 그 유명한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다 사라지고 없어졌기 때문이다. 상영됐던 영화는 필름에서 나오는 납 성분을 추출하기 위해 태워져 버렸거나 밀짚모자의 패션용 태두리가 되기 위해 커팅 되어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6.25전쟁으로 많은 작품들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 보존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다행히 현재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작품들을 수집, 보관, 복원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는데 예산 부족으로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어 아쉬움은 남는다. 얼마 전 김민기 대표가 운영하는 학전 소극장이 내년 3월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원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극장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학전이 갖는 상징성은 너무나도 크고 소중하다. <지하철1호선>이라는 뮤지컬을 통해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조승우 등의 배우들이 성장했던 장소이고 김광석을 비롯한 한동준, 동물원 등 라이브 무대를 거쳐 간 뮤지션들이 즐비했던 곳이다.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이 겹치며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던 모양인데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학전이라는 곳과 김민기 대표를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한동준과 동물원의 박기영이 학전에서 콘서트를 하며 그곳을 찾게 되었고 거기에서 김광석과 친구가 되고 김민기 대표께도 인사드리게 되었다. 작고 불편한 좌석이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지척 거리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러한 추억을 경험한 관객들은 어림잡아 천만 명은 되리라 본다. 이들의 추억과 경험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될 위기가 온 것이다. 20년 전 학교에서 백암아트홀이라는 공연장을 지으면서 김민기 대표께 자문을 요청 드린 적이 있다. 김대표께서는 극장을 보시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주셨는데 화장실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 화장실은 지금의 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규정 면적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지 관객의 편의까지는 생각지 못한 불찰을 단번에 파악하신 거였다. 이 때 이런 지적을 받지 못했으면 극장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나의 경우처럼 알게 모르게 김민기 대표의 도움을 받은 분들이 굉장히 많다고 알고 있다. 학전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문화적 가치의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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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0 17:03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

가까운 과거에 형성된 도시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고 이를 활용하여 도시공간의 재생, 활성화를 추진하는 여러 정부 부처의 사업 중 문화재청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지정과 활성화 사업이다. 일반적인 문화재청 사업이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현상 보존 중심의 사업이지만 이 사업은 상대적으로 유연성을 갖는다. 물론 국토교통부나 문화관광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비해서는 해당 도시공간을 문화재로 등록한 후 국가 예산을 투입하여 보전 및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성격은 다소 다르다. 문화재청이 개별 건축물과 같은 독립된 개체 단위의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운영해 오던 근대 문화재 제도를 면 단위로 일정 영역의 공간을 대상으로 확장한 개념이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근대기에 형성된 우리의 생활 공간 중에서 건축 유산을 포함하여 보존된 근대 문화유산이 집적되어 밀도가 높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일정 영역의 공간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다. 또한 공간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개별 문화유산을 동시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하고 잠재적 가치가 있는 대상을 역사문화자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2018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서 전라북도 내에서는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과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선정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두 공간은 그 성격에서 서로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군산과 익산은 그동안 문화재청에 의해 선정된 타 지자체인 영주, 목포, 통영, 영덕, 판교, 진해 등과도 명확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장소이다. 먼저,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갖는 특성과 가치를 간략히 살펴본다. ‘솜리’는 과거 이리(裡里)의 옛 이름으로 근대 이전 한적한 마을이었으나,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과 전주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시장과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동이리역(東裡里驛)이 생기면서 솜리시장(현재의 남부시장 주변) 일대가 번화하였고 1919년에는 솜리시장에서 4.4.만세운동이 있었다.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광복 이후 형성된 주단거리, 바느질거리 등 삶의 모습과 당시의 건축물이 집중 분포되어 있어 과거 이리 지역의 역사문화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어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에서는 여러 시기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이 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구 이리금융조합과 구 대교농장 사택을 포함하여 195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지어진 2-3층 규모의 상가 및 주택 복합 용도의 건축물은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광복 후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접했을 것 같은 모습과 규모의 건축물로서 그 대중적이며 낯설지 않은 모습 자체가 그 시대가 갖는 가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근대기와 관련된 건축유산이나 생활유산의 많은 부분이 일제강점기와 관련되어 있고, 문화재로 보호받는 유산 또한 그 시기와 관련된 것이 다수인 것과 달리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20세기 중반 우리 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건축 및 생활유산이 밀집된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 및 건축자산진흥구역과 연계된 영역으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 향후 사업의 성과가 기대되는 지역이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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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3 17:28

국립예술단도 지·방·이·전 하자!

정부 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하면 인재가 지역으로 가지 않아 큰 위기를 맞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많았다. 국민연금기금용본부의 경우 인재 확보가 어려워 투자 실적을 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기사도 났었다. 그 유명한 워런 버핏의 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 본사는 수도 워싱턴이나 경제 중심인 월스트리트에 있지 않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다. 지방이전을 우려한 논리대로라면 워런 버핏의 회사는 진즉 망했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진행 중이다. 어느 기관이 어느 지역으로 갈지 초미의 관심사다. 지자체는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수도권에 남아있던 공공기관은 사정이 다르다. 이전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느긋한 공공기관이 있다. 국립예술단이다. 국립예술단도 지방이전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방이전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면, 국립이라고 하나 실제는 민간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아니므로 이전할 필요가 없단다. 국립예술단의 역할은 예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으므로 지역균형발전이 목적인 지방이전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유가 여럿이나, 왠지 명쾌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은 수도인 서울에 있어야 한다, 말이 된다. 「표준어 규정」 제1장제1항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다. 국립예술단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 예술을 대표하니까 수도에 있어야 한다? 유럽 각국을 대표하는 예술단이 모두 수도에 있지 않다. 순수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사람이 가장 많은 지역에 있어야 한다? 예술의 대중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국민은 서울 외 지역에 살고 있다. 지역으로 가면 우수한 단원을 선발하지 못한다? 인재는 여전히 공공기관을 제1의 취업대상지로 삼는다. 국립예술단이 서울, 그것도 강남에 몰려 있다는 사실도 심각한 문제이다. 예술의전당 사장조차 말한 바 있다. “강남부자를 위한 극장”이라고. 그 장소에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예술단이 상주해 있다. 모두 문체부 소속 기관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주로 공연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대부분 강남에 사는 이들이다. 국회 김승수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문체부 소속 8개 국립예술단이 2023년에 무대에 올린 공연 1,040회 중에서 서울에서 891회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비율로 보면 85.7%이다. 2021년에 75%, 2022년에 70%였으니 서울 집중화가 더 심해진 셈이다. 국립발레단 소개 글에 나와 있는 “국내 발레의 대중화라는 큰 의무를 위해”라는 문구처럼, 모든 국립예술단이 대중화를 외치는데 실제는 그 말이 무색하다. 공론화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국립예술단은 지방이전 대상이 아닌 이유라도 명쾌하게 들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지방시대’인데 여전히 예술 관람에 있어 지역은 변방이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듯 국립예술이 서울에서 창작되는 예술이면 몰라도, 국립예술단의 지방이전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자체는 프로스포츠단을 유치하는데 사활을 건다. 국립예술단이 내려온다고만 하면 프로스포츠단 이상의 유치 경쟁이 불을 뿜을 것이다. 주민의 열렬한 환영 역시 당연하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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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6 18:49

신흥계곡에서 만난 ‘오래된 미래’

추색 깊은 천변을 같이 걷던 J가 고개를 돌려 계곡물 속에서 피라미들만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한다. “스무 가지도 넘는 물고기가 살았던 곳인데…” 말없이 나는 한 소녀를 떠올리며 걷는다. 사라진 물고기에 마음을 두고 그리워하는 J는 어스름한 저녁 양파망에 반딧불이를 잡아넣고 입구를 단단히 쥐고 여름의 계곡을 내 달리던 소녀였다.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발하는 다발을 손에 쥐고 이 별과 저 별 사이의 공간을 빛으로 연결하며 어둠 속을 향해 질주하는 유쾌한 소녀였다. 세속의 피로를 반짝이는 양파망과 함께 통과하는 짧은 그 순간 이 작은 물질감이 부리는 행복을 온몸으로 누렸을 신흥계곡 거주민(소녀)의 여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분명 거기 그 장소에 있었는데, 사라져버린 원본은 J의 기억을 넘어 전설이 되어 신흥계곡 위로 흘러 다닌다. J는 절대로 원치 않겠지만, 반짝이는 양파망을 들고 달리던 마지막 인간인 것 같다. 신흥계곡 거주민으로 사는 ‘지금’은 과거로부터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타고 이곳에 도래해 있는 것이고, 다시 지금의 이 시간은 축적되어 미래로 향할 것이다. 지줄거리며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싸늘했고, 햇볕에 달궈진 바위는 따뜻하여 아이들은 항상 그곳에서 놀며 가차 없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처럼 아이들이 자라는 자연과 환경 역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로 향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 오래된 미래가 여기, 신흥계곡에서 가능할까. 지금의 계곡을 언제까지 계곡이라 부르는 게 가능할까. 이제 계곡은 수초와 해캄으로 뒤덮여 흐르는 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다 못해 군데군데 마치 동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라져 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세속이 농담처럼 느껴진다. 세속의 농담 속에서 황폐해지고 그 전망조차 불투명해진(원시에 가까운 가장 아름다운 신흥계곡의 한 구간에 도로를 내겠다고 덤벼 망가트리는 행위를 보고 ‘인간이라는 실수’를 목격하기도 했다.) 신흥계곡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계곡이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온갖 무력감에 지쳐갈 무렵 신흥계곡에 가야 시대의 제철지가 발견되었다. 이 지역을 기록하는 눈 밝은 황재남 사진가가 가던 길을 놓쳐 잘못 든 길에서 잠시 쉬다 제철 슬러지 더미를 발견했던 것. 가야문화와 제철지에 대한 이해가 있던 사진가는 이를 가야문화연구소 곽장근 교수에게 보이고 마침내 몇몇이 답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건강한 곳(제철지)은 없다. 완주의 복이다. 마치 유적공원을 조성한 것 같다.”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종횡무진 가야의 제철지에 대한 설명을 마친 곽교수의 결론이었다, 그러면서 물길이 제철지와 가까워 내년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숨어 있다가 하필 이 불완전한 시기에 나타난 것일까. 이제는 버틸 수 없는 기미를 알아채고 지금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아닐까. 천년을 숨어 있던 가야의 제철지 앞에서 대책 없는 감격을 느끼면서도 두려웠다. 발견으로 나타난 역사적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가 슬금한 지혜를 제대로 부리지 못한다면 어찌 되는 걸까. 그래서 세속의 농담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고집하며 걷는다. “깨어 있는 눈빛과 따뜻한 발목 살아 있음이란 그런 것이었나”(권경인)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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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30 15:22

영화의 날

신입생들과 첫 수업을 하는 날이면 최초의 한국영화를 아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을 던져본다. 연극, 영화, 방송을 전공 하겠다는 학생들임에도 의외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몇 안 된다. 하물며 “영화의 날”을 아는 학생은 30년 교직 생활 동안 손에 꼽을 정도인데, '영화의 날'은 바로 다가오는 10월 27일이다. 이 날이 '영화의 날'이 된 이유는 1919년 10월 27일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란 극장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리적 구토>란 작품은 연극 공연 사이에 보여지는 연쇄극 형태의 영화이기 때문에 최초의 한국영화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며 오히려 같은 날 <의리적 구토>에 앞서 먼저 상영된 <경성전시의 경>이 최초의 한국영화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경성전시의 경>은 <의리적 구토>와 함께 촬영된 도시 풍경을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기록영화란 이유로 최초의 한국영화 논의에서 소외되곤 한다. 한국에서 영화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싶은 마음에 1919년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만 기록영화라는 이유로 <경성전시의 경>이 최초의 한국영화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러운 심정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란 작품은 1분 남짓의 기록영화이지만 세계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1919년 보다 시기는 조금 늦지만 최초의 한국영화로 보아야 한다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1923년 <국경>이란 영화는 <의리적 구토>를 만든 김도산 감독이 제작중인 극영화였는데 영화 막바지 촬영 중 감독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영화가 완성되지 못해 최초의 한국영화 논의에서 제외 됐었다. 하지만 1923년 1월 11일자 동아일보에 “최초의 활극영화 <국경> 단성사 상영중”이란 광고가 발견되며 온전한 형태의 극영화로 최초의 한국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당시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미 계약된 광고가 실렸을 뿐이라는 주장들이 나와 논의에서 한걸음 물러선 모양새가 됐다. <국경>과 같은 해 4월 3일에 상영된 <월하의 맹서>란 작품은 윤백남이 각본과 감독을 맡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배우 이월화가 주연을 맡은 극영화로 최초의 한국영화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으나 조선총독부가 저축을 장려할 목적으로 제작해 무료로 상영한 프로파간다적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영화로 볼 수 없다는 의견들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같은 해 12월에 상영된 <춘향전>이란 영화는 당시 조선 최고의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도령 역을, 조선 최고의 기생이었던 한룡이 춘향 역을 맡아 흥행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영화였으나 일본인이 감독, 촬영, 제작을 맡아 한국영화로 볼 수 없다는 의견들이 많다. <춘향전>의 성공에 자극 받은 국내 영화인들이 단성사 사장인 박승필을 설득해 만든 <장화홍련전>(1924)은 제작, 각본, 감독, 촬영, 출연 등 모두 한국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민족주의적 견지에서 최초의 한국영화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작품이라 최초의 한국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경우이기도 하다. 이번 주 금요일 '영화의 날'에는 내가 생각하는 최초의 한국영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어보고 영화관에 찾아가 한국영화 관람으로 이 날을 기념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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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3 15:44

지자체 문화유산 정책의 일관성

최근 몇몇 다른 지역의 기초 지자체에서 지자체장이 바뀐 이후 선임자의 문화유산 관리 정책을 정반대로 뒤집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직접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자체장으로서 자신을 지지해준 지역민들의 요구와 이익에 맞추어 맞춤형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지자체 재정이 낭비되고 지역민들의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문화유산 정책 변화가 충분한 논의와 시민사회의 합의를 통해 진행되기보다는 지자체장의 의지를 신속하게 실현하기 위한 편의적인 행정이라면 더욱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모 지자체에서는 최근 새로운 시청사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고 지난 1965년에 지어진 구 시청사 건물을 철거하였다. 낡고 오래된 건물 대신 넓은 새 건물을 지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철거한 구청사는 20세기 중반 활동했던 우리나라 중요 건축가의 의미 있는 작품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이전 지자체장 시절에 구청사를 보존하면서 그 주변에 신청사를 짓는 국제현상설계를 마친 건축물이었다.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해외 건축가의 작품이 당선되었고 실시 설계까지 마무리되어 착공을 앞둔 상태였다. 새 지자체장에 의한 정책 변화로 수십억의 혈세와 구 시청사 건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또 다른 지자체에서는 오래된 극장을 둘러싸고 극장을 보존하려는 시민단체와 철거하려는 지자체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1963년에 개관한 이 극장은 민간 소유주에 의해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지역민들의 오랜 추억과 애환이 담긴 장소로서 지역 시민사회의 자발적 보존 운동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시에서 극장을 매입하였고, 보존 및 활용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리모델링 예산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철거가 결정되었다. 최근 지자체에서 철거를 시도하면서 시민단체와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동산 성격을 갖는 근대 건축 유산의 경우 철거 후 개발을 통한 이익 실현을 위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검토되거나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철거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근대 건축 유산의 가치를 폄훼하는 다양한 논리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후화되어 위험하다거나, 활용이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다거나, 또는 혐오감을 조장한다는 식의 논리이다. 앞에서 예를 든 지자체에서 철거된 시청사는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그 시청사가 일본 건축의 잔재라는 비난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근대 건축 유산은 그 가치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이 되는 문화유산화 과정 중에 있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과 가치 평가가 공존하고 있으며 상호 대립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적 과정을 통해 해당 유산은 우리 공동체의 의미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적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성급하게 가치를 폄훼하여 문화유산을 훼손하고 멸실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직접 선거에 의한 정당 중심 지방자치제가 갖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문화유산 정책의 일관성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부분이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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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6 15:35

문화직렬을 만들자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전문 분야가 있다. 관광이 그 하나이다. 연구자가 이론과 사례를 살펴보고 관계자를 만나며 사업을 발굴해 제안하면, “외국을 많이 다녀봐서 잘 아는데, 그건 틀렸어. 이렇게 해야 관광객이 많이 와”라는 말을 하는 이가 있다. 이 말을 듣는 관광전문가는 속이 터진다. 한국인 모두가 한식 전문가가 될 수 없듯이, 아무리 친숙한 분야라도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전공을 하고, 현장에서 십수 년 동안 터득한 전문성은 만만치 않다. 내공이 있다. 문화도 쉽게 생각하는 분야 중 하나이다. 주식 투자하고, 경제 신문을 구독한다고 금융정책을 담당할 수 없다. 문화 분야는 그렇지 않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정말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화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사업 책임자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축구를 많이 보고 이론에 빠삭해도 막상 경기를 뛰면 동네축구가 된다. 어떤 분야이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장 관계자와 함께 ‘빌드업’을 한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이유로, 공연장을 자주 간다는 이유로 기존 사업을 뒤집고 자기 브랜드사업을 밀어붙이는 건 위험하다. 십수 년 동안 다져온 빌드업이 사라지고 뻥축구로 돌아갈 수 있다. 빌드업이 대세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심사숙고해야 한다. 더 많은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내가 가본 여행지나 관람한 공연이 맘에 들었다고 “이거 합시다”라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왜 이 사업을 했는지, 주민과 관계자는 어떻게 빌드업을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게 행정이다. 사업이 즉흥적으로 추진되지 않도록 조언하는 빌드업 파트너가 문화행정 공무원이다. 그런데 행정도 전문성이 부족하다. 문화사업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니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결과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효과가 더 중요하다며 문화 분야 특성을 겨우 이해시켜놓았으나, 순환보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바뀐 공무원이 문화를 얼마나 이해할지는 복불복이다. 오랜 시간 함께 협력하고 성과를 만들어 갈 전문적인 문화 전담 공무원이 필요하다. 전문임기제공무원, 이른바 어공을 채용하기도 하는데 행정 경험이 없는 어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문화행정 전문가와 그냥 예술인은 다르다. 게다가 임기제공무원 한 명에게 모든 걸 기대하기도 어렵다. 문화직렬(職列)이 신설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직렬이란 직무 종류가 유사하고, 책임과 곤란성의 정도가 다른 직급의 군을 말한다. 현재 행정직군에는 행정, 직업상담, 세무, 관세, 사회복지, 통계, 사서, 감사, 방호 등 9개 직렬이 있다. 문화예술과 콘텐츠산업을 포함하는 문화직렬을 행정직군에 신설하고 전담 인력을 선발할 것을 제안해본다. '제주특별법'에는 '지방공무원법'에도 불구하고 도조례로 공무원의 직군·직렬을 통합하거나 신설하는 특례가 있다. 제주도의 행정직군 직렬은 행정, 세무, 전산, 직업상담, 감사, 교육행정, 사회복지, 사서, 속기, 방호 등 10개이다. 제주도에도 문화직렬은 없으나 직렬을 지역에 맞게 바꾸는 권한을 가졌다는 게 중요하다. 문화계는 오래전부터 문화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행정, 전문가, 관계자가 함께 빌드업하는 사업체계를 꿈꿔왔다. 이제는 지방시대, 문화직렬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제주도에만 있는 직군·직렬 특례를 '전북특별법' 2차 개정안에 담는 게 그 출발이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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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09 16:29

신흥계곡, 도라지밭 옆에서

어느 봄날이었나, 아니 여름날이었나, 길게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잡념을 추스르느라 나비 한 마리 눈길을 끌지 못했는데, 마짐바위에 이르자 문득 그 잡념이 소슬하게 가셨다. 무심하게 하천에 눈길을 돌리다 작고 동그란 까만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수달이었다. 수달은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이 물 위에 평화롭게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그렇게 누워있었다. 순간 그 천연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서 있었다. 이후 신흥계곡에서 수달을 본 적이 없다. 신흥계곡은 점점 변해갔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기가 꺼려질 정도로 해캄과 수초로 덮여 버린 곳을 수달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듯하다. 다시는 그 천연한 귀여운 모습을 보던 계곡으로 되돌리기는 더더욱 어려울듯하다. 다만 내 머릿속에서만 수도 없이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수달과의 만남은 속 깊이 커나가는 아픈 기억이 되었다. 작년 7월,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신흥계곡 상류에 있는 신흥골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좁은 오솔길이 깊숙이 나 있었지만, 인적이 없는 울창한 검은 숲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얼마 걷지 않아 가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감으로써 안쪽으로 깊숙이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그랬던 신흥골에 난리가 났다. 깊숙한 좁은 오솔길은 사라지고 포클레인과 트럭이 오가고 있었다. 두려움을 줄 정도로 원시림 같았던 검은 숲이 속절없이 훼손되고 있었다. 태풍과 소나기가 쏟아지던 7월 장마 중에 깊은 산골 숲속에선 산을 뭉개고 길을 내고 그 길 끝에 3m는 족히 넘는 축대를 쌓아 거대한 인공의 섬을 만들었다. 그 섬을 만든이는 도라지밭이라 우겼다. 섬이든 도라지밭이든 그 앞에서 미래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마치 ‘위험사회’의 바벨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벨탑은 무너지기 위해서 쌓는 것이 아닌가! 동식물과 인간으로 구성된 지구 속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저 벌거벗은 모습이야말로 실제 나의 모습 같아서 두려웠다. 마짐바위 옆 개울에서 천연하게 나를 바라보던 수달의 모습 같아서 두려웠다. 나무가 베어지고 동물들이 사라지는 곳에서, 나 자신은 희생자라 느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따라서 가장 어리석은 시대”(웬델)에 살고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시대인지라 산골이라 하여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이후 가끔씩 동무들과 도라지 한뿌리 없는 도라지밭으로 걷는다. 불법으로 조성된 도라지밭은 1년이 훨씬 지나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큰비에 이미 위험을 예상했던 것처럼 벌거벗은 주변은 이리저리 골이 파여 어수선하다. 어찌하여 이들은 이토록 잔인하게 자연에 상처를 입히고 위협을 가하는 것일까? 소문은 무성하나 “다만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걸어가는 일”(권경인) 뿐이어서 걷는다. 태양은 빛나고, 훈풍이 살살거리는 완벽한 날이었다. 깊은 산속 도라지밭 옆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에 이끌려 모두 양말을 벗고 그 쨍한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느리지만 숙지게 걸으면서 여기까지 온 동무들이다. 평평한 바위를 찾아 잠시 머무르니 머릿속까지 얼얼해지며 마음이 움직인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아주 단순한 행위가 지금 여기 있는 동무들을 ‘우리’라는 연대의식으로 묶어 놓았다. 아,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이었구나! “개인은 자신의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그가 바로 장소이다.”(에드워드 랠프)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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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5 17:38

팁 문화 무엇이 정답일까?

요즘 팁 문화 도입에 대한 온라인 설전이 뜨겁다. 카카오 택시가 그 불씨를 키웠다고 볼 수 있는데 강제가 아니니 괜찮다는 의견은 소수인 것 같고 이것을 시작으로 미국처럼 될 수 있으니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 같다. 미국은 보통 웨이터/웨이트리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팁이 거의 필수이지만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는 팁을 주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었다. 코로나 이전 팁의 규모는 보통 음식 값의 10%가 일반적이고 조금 더 주면 15%, 20% 정도였는데 요즘은 팁의 규모가 많이 커져 기본이 15%, 20%이고 서비스에 만족 했을 시 25%, 30%까지 표기되어 나온다. 식당 메뉴 가격을 보고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팁이 추가되는 순간 싼 게 아니었다는 걸 바로 느끼게 되는 게 팁의 무서움이다. 요즘엔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본인이 직접 음식을 가져와 먹고 치우기까지 하는데도 키오스크에서 팁을 선택 해야만 하는 레스토랑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 이것 때문에 최근 미국에서도 팁 문화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영화 속 장면에서도 팁 문화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데,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2년에 만들어진 <저수지의 개들>이란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창고의 개들>이 맞는 번역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저수지의 개들>이 돼버렸다. 어쨌든 세계적인 명장 쿠엔틴 타란티노의 감독 데뷔작인 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팁”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나온다. 모닝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한 일행 중 한 명이 내가 계산 할 테니 나머지 사람들이 1달라씩을 팁으로 내라고 한다. 모두가 테이블 위에 1달라씩을 내어 놓는데 그 중 한 명인 스티브 부세미(미스터 핑크 역)가 나는 팁을 내지 않겠다고 한다. 일행들이 웨이트리스가 얼마나 친절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팁을 내라 하지만 스티브 부세미는 “팁을 줄 만큼 특별히 친절하지는 않았다. 여기에 오랜 시간 앉아 있었는데 커피 리필을 세 번 밖에 안 해줬다. 여섯 번은 해줘야 팁을 주는 거 아니냐?”라고 받아치고 일행들이 웨이트리스가 최저임금으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고생하는지에 관해 한목소리를 내면 스티브 부세미는 “맥도날드 직원들도 똑같은 최저임금으로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왜 그들에게는 팁을 안주는 것이냐”며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논쟁이 계속 이어지다가 음식 값을 내고 온 일행이 팁을 내라고 윽박지르자 결국 마지못해 팁을 내기는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다음 작품이었던 깐느영화제 대상작인 <펄프픽션>이라는 영화에서 팁을 내지 않으려고 했던 스티브 부세미 배우를 웨이터 역할로 출연 시켰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역으로. 영화상에서는 계산하는 장면이 안 나와 스티브 부세미가 과연 팁을 받았을지 안 받았을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정황상 못 받았을 것 같기는 하다. 이렇듯 미국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팁에 관한 논쟁이 이어져 왔고 최근 까지도 그 논쟁은 이어지고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식 팁 문화는 한국 실정에서 그리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개인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을 때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계산대 위 불우이웃돕기 모금 통도 최근 들어 팁 모금 통으로 바뀌는 추세던데 이것도 팁 보다는 예전처럼 더 어려운 분들에게 쓰였으면 좋겠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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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8 16:36

문화유산 관리의 민주화

문화유산은 과거에 오래되었거나 아름답거나 중요한 예술가가 창조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고 국가의 통합을 위해 문화유산이 갖는 국가적 가치가 강조되었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관리는 현상 보존 중심이었고 법률에 의해 규제되는 전문가의 결정에 따른 '위로부터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문화유산 개념이 확장되고 문화유산의 가치 평가 기준에서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문화유산의 보존 및 관리 방식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문화유산의 지역적 가치,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치에 주목하면서, 점에서 선, 면으로 문화유산의 인식범위도 확장되고 있다. 사람과 문화유산, 장소를 하나로 묶는 통합적 접근 및 관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즉 문화유산이 성립되고 존재하는 맥락을 중시함에 따라 유형적, 무형적 요소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으며, 개별 문화유산과 해당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경관적 요소를 모두 고려한 총체적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 문화유산 관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통합적 문화유산 관리 방식으로의 인식 변화는 문화유산 관리시스템 내에 민간 참여와 민관 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또한, 사회경제적 기능을 중시하고 변화를 관리하는 문화유산 관리 개념으로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문화유산 그 자체의 보존에서 더 나아가 목적성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활용을 강조하는 기능적 문화유산 관리로 전환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가치라는 보다 큰 틀에서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유산 보존 및 관리 경향의 변화는 문화유산 관리의 민주화와 문화유산 전문가의 다변화로 표현될 수 있다. 이제 문화유산 관리와 관련된 많은 결정 사항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었고 ‘아래로부터의’ 결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유산의 개념적 범주가 주변 환경까지 확장되면서 문화유산의 보존 및 복원을 통해 해당 지역이 활성화되는 긍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국가 및 지역의 자산으로서 지역 축제나 관광 등을 통한 지역 일자리 창출, 문화유산 보존을 통한 문화유산의 자산가치 상승 등의 형태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에서도 문화유산을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의 주요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지역 사회와의 협력, 지역의 경제적 재생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사회 및 경제 영역과 같은 새로운 전문가와 관련 지식 및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이에 따라 문화유산 전문가의 활동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서는 역사학자, 고고학자, 건축가, 조경가, 보존전문가가 별도의 부서에서 또는 별도의 법률을 통해 문화유산 관련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을 통해 통합적인 보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의 개념과 가치, 관리 경향의 변화는 문화유산에 대한 기존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 중심의 문화유산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있지만, 지역적 고유성, 문화적 다양성과 같은 개념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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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1 15:32

문화의 시간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체계이다.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자.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거부하고, 헝클어트리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구성원이 공유하게 되었을 때, 그 현상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문화 활동가들이 문화사업으로 결과를 얻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이래서다. 가까운 사이라도 마음을 얻으려면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문화사업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니 오죽할까. 문화의 시간은 이렇듯 길다. 정책의 시간은 다르다. 회계연도와 관련하여 대개 1년이 주어진다. 짧게는 2~3달에 성과가 나와야 한다. 지자체 역점사업이더라도 길어야 4년이다. 기초를 다지고 주민을 설득해 무언가 성과를 보이려는 순간,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사업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완주군에 정신장애인 문화공동체가 있다. 구성원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려고 2019년에 문화사업에 참여하였다가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사진교실을 진행하면서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독자적인 완주형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정신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자리이다. 5년의 시간이 정신장애인 자조모임을 완주형 매드 프라이드 축제로 만들었다. 사적인 공동체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발전하였고, 구성원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시선을 바꾸는 활동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바뀌는 효과가 나타났다. 매드 프라이드 축제만으로 완주군은 문화다양성을 실천하는 도시가 되었다. 정작 구성원들은 이 사실을 모를 수 있으나, 그저 좋아서 한 활동이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성과는 5년 동안 단계별로 지원하는 문화도시만의 독특한 사업체계 덕이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사람을 발견하고, 역량을 키우고, 연대하고, 콘텐츠를 발굴하고, 사회화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수행하는 연차별 사업평가에서도 느리지만 하나하나 기반을 다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지방선거 이후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문화 현장에서는 오랫동안 공들여온 사업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며 걱정한다. 수장이 바뀌면서 담당자도 바뀌고, 사업이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큰 문제는 문화사업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겨우 심어놨는데 수장이 바뀌어 이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 현장에서는 문화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이 늘 부딪힌다. 행정이 공공예산을 투입하고 성과가 나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지만, 문화사업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일하는 이들이 조급하지 않도록 말이다. 문화 활동가들은 공공예산이 투입된 만큼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성과가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여야 한다. 행정을 설득하려면 말보다 구체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문화사업 최소시간 보장제’ 같은 법을 만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일이다. 현재 제도로도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수장이 바뀌어도 정책 기조가 확 바뀌지 않으면 된다. 순환보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문적인 문화 행정인력의 배치가 그 방안이다. 사회복지 행정인력처럼.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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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4 18:22

걷기, 다시 신흥계곡으로

갑자기 흙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오면서 후두둑 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느긋하게 천변을 산책하다 깜짝 놀라 함께 온 강아지 두 마리와 정신없이 달리는데, 소나기가 계속 뒤를 따라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릴 따라붙은 소나기 때문에 신흥계곡은 검은 바닷속이 되었다. 나는 깊은 바닷속 풍경 앞에 모종의 두려움 섞인 경이로움에 꼼짝 못 하고 현관에 서 있었다. 리호이나키였나, 한 장소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의 영기에 사로잡혀, 거기에서 두려움과 공경심,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던 이가.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계곡물 속에 자유로이 유영하던 물고기, 새우, 다슬기, 가재 등 온갖 수생물이 점점 사라져가고, 자연의 풍광은 쓸쓸하고 황량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신흥계곡이 점점 무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곡을 먹어 치운 자본의 욕망이 그려놓은 지금의 풍경이 신흥계곡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위기이다. 지금의 이 풍경에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영영 풍경의 기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걷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 지난주에 161회를 걸었으니 그간 흔들렸지만, 오래 걷기에 필요한 근기나 결기는 입증되지 않았나 싶다. 소수였기에 ‘지는 싸움’일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걷기는 “신흥계곡을 모두의 품으로”라는 구호를 가슴에 안고 현실의 벽 앞에서 속절없이 주저앉는 대신 출구가 돼 주었다. 욕망의 기분에 이끌려 호락호락 호출당하지 않고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득하게 따라 걸으면서 주고받은 충만한 대화는 연대의식을 솟아오르게 했다. 비록 사소해 보이지만 걷기는 동무들을 신흥계곡으로 매주 불러들였고, 신흥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자본제적 체계 밖으로 나가는 길을 함께 모색하게 했다. 언제쯤 발전이나 개발에 식상해하며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다 쓰지 않고 남겨둘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동선과 속도를 벗어난 사라진 기원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걷기는 우리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주었다. 걷기를 시작한 후로 위기 상황이 아닌 적이 없었지만, 사회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자본의 탐욕은 무시간과 탈역사로 터질 듯 채워져 있으니, 그 속을 느리게 걸으며 바람과 구름, 금낭화와 찔레꽃, 하늘을 나는 새가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느끼며 어떤 삶의 양식을 몸에 익혔다. 조금씩 탈자본주의적 시간성과 역사성을 회복하여 둔해져 버린 감수성을 벼리고 비틀거리면서 지속할 수 있었던 어떤 삶의 양식, 그것이 바로 걷기였다. 신흥계곡에 살면서 갖게 된 기이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가끔 어떠한 장소가 오히려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자신을 열어 보이는데, 그때 느끼는 그 친숙함은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러한 설명할 수 없음은 마치 이곳에 우연히 그러니까 아주 우연히 들어간 복덕방에서 그곳에 놀러 온 아저씨와 몇 마디 나누다가 그 아저씨의 소개로 이사 오게 된 이 사건이 사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신흥계곡이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걷는다. “내가 위태로운 길 진물 나게 걷는 동안 그대는 다만 무사하신가”(권경인)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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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8 16:06

변했으면 하는 교통 문화

12년 전 방문 교수로 이타카라는 미국의 아주 작은 대학 도시에서 생활 한 적이 있다. 미국 시골에서는 차가 없으면 모든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에 미국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16살, 17살 나이의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안전 교육을 받는 경험을 했는데 교육 중에 내가 느낀 우리와 가장 다른 교통 문화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이었다. 미국에서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 어김없이 스탑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스탑 표지판 앞에서는 무조건 차가 멈춰서야 하고 먼저 온 순서대로 한 대씩 교차로를 통과해야 한다. 동시에 차가 멈춰 섰을 경우에는 우측에 위치한 차가 우선권을 가지고 먼저 출발하면 된다. 한번은 내 차와 맞은 편 차가 동시에 교차로에 멈춰 선 적이 있었다. 이 경우는 정면 대치라 두 차 모두 오른 쪽 차량이 될 수가 있다. 나는 이방인이기도 하고 나름 양보 한다고 앞 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는데 앞 차가 갑자기 나에게 하이 빔을 날린다. “아니 저자식이... 내가 양보 해주는데 그냥 갈 것이지 매너 없이 하이 빔을 날려?” 나도 분노의 대응으로 하이 빔을 날려 주었다. 그랬더니 앞 차가 또 나에게 하이 빔을 날린다. 우리는 서로 하이 빔을 마구 날렸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두 총잡이가 총질을 하듯이 말이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어제 있었던 이 매너 없는 운전자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학생들이 웃으며 나에게 말 해 준다. “이럴 때 하이 빔은 내가 양보 할 테니 당신이 먼저 가세요란 뜻이에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갑자기 상대방 운전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상대방 운전자는 서로 양보하겠다는 아름다운 경험으로 생각했을 터이니 마음의 빚은 생기지 않았다. 하이 빔 사용에 대한 극명한 문화 차이는 나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은 사실 처음에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차량 한 대 안 보이는 교차로에서도 무조건 멈춰서야 하고 다시 출발 하는 게 낭비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연속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세상에 이런 비효율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이유로 스탑 표지판을 무시하고 그냥 통과하는 차들이 종종 눈에 뜨이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어김없이 숨어있던 경찰차가 나타나 딱지를 뗀다. 미국에서의 이런 운전에 익숙해질 무렵 한국에 귀국해서 운전을 할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지날 때였다. 주변을 잘 살피며 서행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선의로 양보를 하면 상대방 차들이 그냥 오리 떼 마냥 줄줄이 지나간다. 한 대씩 차례로 보내주는 경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내 뒤차는 왜 거기서 양보해 가지고 우리 쪽이 못 가게 하냐며 경적 음과 함께 하이 빔으로 항의 표시를 한다. 여·야, 아군·적군이 있듯이 도로에서도 생판 남남이지만 네 편·내 편이 생성된다. 도로교통법 26조를 보면 대로 우선, 우측 차량 우선, 직진 우선 등 신호등 없는 교차로 통행 방법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사고 예방 보다는 사고 발생 시 과실 비율을 나누는데 사용되는 용도로 느껴진다. 요즘 한국의 교통 문화도 보행자 보호 위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데 다른 나라의 합리적인 교통 문화는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교통 문화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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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1 15:34

문화유산 개념의 확장

올해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정책 환경의 변화와 유네스코 등 국제 추세에 맞추어 ‘재화’의 의미를 담는 문화재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유산’으로 명칭을 변경, 확장하고 세계유산과 유사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세부 분류체계를 갖춘다는 취지이다. 이 법에서는 ‘문화유산’을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이라 정의하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헤리티지(heritage)라는 단어의 의미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사적 차원에서 출발했다. 즉, 개인이나 가문을 상징하거나 가치 있는 물건이 대대로 내려온 상태를 의미했다. 이후 민족국가(국민국가)가 성립되며 문화유산의 민족적 또는 민족주의적 가치가 부각되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공공의 문화유산 개념이 성립되었다. 문화유산은 민족,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의미 있는 특정한 과거를 환기시키고 공동의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는 유형의 증거로 이해되었다. 공동의 기억 저장 창고와 같은 문화유산은 공동체의 가치 확립에 도움을 주고 그 상징처럼 역할하였다. 민족국가가 성립되는 시기 서구에서 문화유산은 국가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하여 국가의 자부심을 확립하고 국가 구성원들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아름답고 찬란했던 황금기’를 창조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기억이 결집된 이러한 문화유산에는 궁전이나 박물관과 같은 유형의 유산뿐 아니라 국기나 국가(國歌)와 같은 무형의 유산도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네스코의 활발한 활동에 의해 문화유산은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유산의 범주가 개인, 국가, 인류로까지 확장되면서 ‘문화적 산물’로서의 개념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문화유산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만들어져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산물로 인식되어 그 의미가 고정된 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문화유산은 현시대의 해석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동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정부, 전문가, 시민, 이해관계자 등이 특정 대상에 대해 갖는 집단 기억과 가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들 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문화유산은 현재 우리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해석에 따라 변화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문화적 산물로 인식하기 보다는 문화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에 대한 이러한 동적 인식을 ‘문화유산화(heritagization)’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문화유산화는 현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과거를 선택하고 이를 대표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어 그 특정 과거와 관련된 많은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이 취합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과 사회적 쟁점, 정치적 분쟁이 수반된다. 국가나 공동체의 기억 및 정체성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러한 사회 정치화 과정 속에서 재해석되며 재평가되는 것이다. 이제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이기 보다 현재를 사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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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7 17:37

인정만 하면 된다. 그뿐이다.

가을이면 서로 다른 종교인이 손을 잡고 걷는다. 종교 간 화합을 말하는 세계종교문화축제, 총을 겨누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걷는 모습에 세계가 놀란다. 누구는 이게 다른 이를 포용하는 전북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런데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이른바 4대 종교 외에 다른 종교인도 참여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왕이면 무슬림 손도 잡으면 좋지 않을까? 이게 진정한 화합이지 않나? 전주국제영화제를 부르는 다른 말이 있다. ‘영화표현의 해방구’.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이 불허된 영화, 소수를 다룬 영화를 어떤 검열도 없이 당당하게 스크린에 올리는 영화제, 그래서 많은 영화인이 전주국제영화제를 칭찬한다. 누구는 이게 전주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2018년 전주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던 섬뜩한 피켓을 모두가 기억한다. 전주에서도 스크린을 벗어난 표현은 자유롭지 못하다. <문화혼종성>을 펴낸 피터 버크 교수는 이질적인 문화를 접하는 사회는 용인, 거부(저항·정화), 분리, 적응이라는 네 가지 특징을 보인다고 말한다. 자기 집단에 위험을 느끼는 문화는 철저하게 거부하거나 분리하지만, 위험이 적은 문화는 용인하거나 이질적인 문화에서 필요한 부분을 자기 문화에 맞게 변형하여 적응시킨다는 게 피터 버크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와 다르거나, 소수인 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문화별로 다르다. 앞에서 살펴본 두 사례처럼, 어떤 문화는 용인하나 어떤 문화는 철저하게 분리하거나 내친다. 같은 소수문화라도 소수집단 간 ‘차별의 차등화’가 나타나고, ‘소수문화집단 내 소수자 문제’도 심각하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성소수자처럼 같은 소수자라 하더라도 차별의 무게가 다르다. 소수문화의 차별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민사회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비혼공동체를 단순한 ‘여자들 모임’으로 치부하며 “남자들 모아서 집단 미팅하자”라며 건네는 농담, 성소수자의 강간을 ‘교정’강간이라며 합리화하는 태도 등 특정 소수문화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아시아 관광객은 반갑지만 아시아 무슬림은 내키지 않는다. 선별적 포용과 배제, 정책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전북연구원 조사(2020년)에서 사회적 소외도가 큰 범주 1위는 성적지향이었다. 그런데 정책적 시급도를 묻는 말에는 장애문화가 1위로 조사되었다. 중요도가 높다고 응답한 성적지향과 종교는 오히려 정책 시급도가 낮아졌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고 혐오표현이 일상적인데도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책 뒷순위로 미뤄두는 정부의 한계가 지역에서도 나타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인식은 문화정책에 반영된다. 성적지향이나 특정 종교의 표현과 관련된 사업은 지자체에서도, 지자체 출연 문화기관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소수자는 구성원이 적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복적인 차별과 배제를 받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분배의 정치’가 아니다. 자기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를 원한다. MZ세대의 다름을 인정하듯, 우리 이웃인 그들의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그뿐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여러 문화가 적응되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이것이 2014년에 법률로 제정되고 2019년에 도조례로 제정되었으나 아직 갈 길이 먼 문화다양성이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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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31 14:56

여기, 신흥계곡에서

그걸 한번은 봤어야 한다. 수백 마리의 나비 떼가 현관 앞을 마치 자기 집인 양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그 나비들이 추는 춤을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봤어야 한다. 어느 봄날 현관을 나서는데, 수백 마리의 뿔나비 떼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검은 눈이 휘날리는 사위로 분분히 털어내며 흩어지는 형국이었다. 그 기세가 자못 하늘과 땅을 뒤덮을 정도였다. 나는 모종의 두려움 섞인 경이로움에 꼼짝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검은 눈에 현기증 났던 감동을 몇몇 마을분과 나누니, 한 어르신이 그러신다. “나는 어떨 때는 유리창에 나비가 커튼처럼 달라붙어서 빗자루로 쓸어내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길게 돌아오던 산책길 천변에 마치 카펫처럼 새까맣게 펼쳐져 있는 나비들을 보았다. 그러다 나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6~7년 전부터는 뿔나비를 한두 마리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하늘을 뒤덮을 듯 흩날리던 나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라져버린 나비에 대한 부채감을 눈곱만큼이나마 가지게 되면서 나비가 살던 이 신흥계곡이라는 장소는 단지 물리적 입지도 추상적 개념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장소는 인간과 나비가 생활하는 ‘생활세계’임을 깨달았다. 인간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나비가 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가, 나비를 떠나게 하는 장소상실의 곳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장소상실이 우리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 나비는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저마다 주변의 장소와 오랜 시간을 통해서 얻은 친밀감으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자본제로 여기면서 단순한 위치로 환원시켜버린 이곳 어디에선가 지금도 장소를 빼앗기거나 장소에서 뿌리 뽑힌 뭇생물들이 항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항의를 외면한다. 장소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무지하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이 존재들로 가득 찬 실재임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생활세계’인 장소를 훼손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학교에서 오는데, 나비들이 내 앞에 양탄자처럼 깔려 있어서 내가 공주가 된 기분이었어요.”라며 마치 꿈으로부터 끌려 나온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아이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어 떠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나비골로 불리고 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인간 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를 보여준 나비를 떠올렸다. 꼬리명주나비를 선택했다. 아주 우연한 선택이었다. 그 우연성은 차라리 운명적이었다. 어떤 필연적인 선택보다 강렬하게 하나의 목적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닭울음과 산그늘로 이어지던 시골의 시간은 아니더라도, 여기 신흥계곡에 나비만큼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이키겠다는 위험한 희망을 품었다. 꼬리명주나비의 유일한 식생인 쥐방울덩굴을 심고, 열심히 가꾸었다. 이제 쥐방울덩굴이 어느정도 무성해졌다. 며칠 전 애벌레를 이주시켰다. 굼뜨게 움직이던 애벌레를 손가락으로 잡으니 그 말랑거리면서 부드러운 벨벳 같은 촉감이 낯설었다. 이 낯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희망을 품고 쥐방울덩굴잎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붙여놓고, 매달아 놓았다. 애벌레의 이주는 단순한 재배치만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어렵게 배운 희망을 향해, 꿈틀거리는 애벌레와 함께 느리게 걸어가련다.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이선애 활동가는 젊은 날 '사진가'로 살겠다며 세상을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던 일을 접고, 지금은 자신이 밟고 있는 땅으로 시선을 두며 완주 신흥계곡 안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열심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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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4 16:21

OTT 시대에 영화관은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올봄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기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관객들이 영화관에 찾아와 줄 것인가”였다. 코로나 시절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대신 집에서 OTT로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라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의 물음이었다. 내 대답은 “많이 찾아주실 것”이었고 다행히 코로나 이전 가장 성대하게 열렸던 20회 영화제의 관객에 근접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아직까지도 영화관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영화제의 경우 일반 영화관처럼 티켓 값을 올리지도 않았고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작품들을 상영하였기 때문인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 장소에서 다수의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의 경험이 바로 영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 안에서 자유로운 복장, 편안한 자세로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는 OTT의 편리함이 크다고 해도 영화관에서 관객들과 함께 경험하는 영화의 본질은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영화는 뤼미에르형제가 1895년 그들이 개발한 시네마토그라프로 관객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상영한 단편영화들이다. 시기적으로는 에디슨이 1891년 개발한 키네토스코프가 빠르지만 이것은 영화를 한 사람만 볼 수 있는 거라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즉 영화란 혼자 보는 것이 아닌 집단의 관람 형태라는 것이다. 영화는 OTT 이전에도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었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TV의 등장에는 큰 스크린과 블록버스터 영화로, 비디오 테이프와 DVD의 등장에는 멀티플렉스 복합상영관으로 이를 이겨냈다. 집 안에서 편하게 혼자 즐길 수 있는 형태의 것을 영화관에서 집단의 관객이 감정을 공유하는 형태가 이겨낸 것이다. OTT의 도전도 영화관이 극복해 낼 것이다. 폰이나 TV로 음악을 듣거나 축구나 야구를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콘서트 장에 가고 축구장이나 야구장 혹은 거리 응원에 나서는 것은 혼자만의 관람이 아닌 집단의 관람이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고 뒤를 이어 <범죄도시3>이 천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몰이를 해주었지만 아직 영화관들이 코로나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는데 첫째는 너무나도 올라버린 티켓 가격이고 둘째는 그 가격에 걸맞은 영화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파산 직전까지 간 영화관들이 코로나 시기임에도 영화관을 찾아와 주는 충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려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가격이 올라도 영화관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예측은 틀리지 않았고 영화관들은 숨을 돌리게 되었다. 문제는 충성 관객이 아닌 일반 관객들이다. 이들이 영화관을 찾아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좋은 영화가 상영된다면 관객들이 다시 영화관을 찾을 것인데 문제는 티켓 가격이다. 한번 올려버린 가격을 내리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이 때 코로나 전에 <신과함께>의 제작자 원동연 대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제작비 100억짜리 영화나 1억짜리 영화나 티켓 값이 똑같아. 100억짜리 영화는 티켓 값을 만오천원 정도 받고 1억짜리 영화는 오천원 정도 받으면 안 되는 걸까? 50억짜리 영화는 한 만원 정도 받고” 티켓 값을 내리기 힘들다면 원대표의 제안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 위원장은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로 백암아트홀 대표이사∙극장장을 역임했으며 방송∙시나리오 작가, 공연기획∙제작, 영화투자∙제작 등의 활동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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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7 18:02

도시 공간의 문화적 가치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도시 공간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가치를 갖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특히,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심의 좁은 길과 낡은 건물로 이루어진 공간은 하루빨리 현대식 건축물로 대체되어야 할 쓸모없는 공간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고도성장기를 거쳐오는 동안 우리는 구도심에서 별다른 가치를 찾지 못했고 시원하게 넓은 자동차 도로와 반듯하게 정돈된 아파트 단지로 대표되는 신도심의 편리성과 기능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살아왔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까운 과거에 형성된 도시 공간에 대해 어떤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최근까지 쉽사리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서울 사대문 안의 조선시대 궁궐이나 전주 경기전처럼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명확한 공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론이 없지만 근, 현대기에 조성된 도시 공간이 갖는 가치는 그동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충분하게 인식되지 못하였다. 최근에야 가까운 과거에 조성된 도시 공간이 갖는 가치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낡고 침체된 도심에서 일정 영역의 도시 공간이 갖는 유·무형의 자산을 활용하여 도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도시재생을 통해 근대기에 형성된 도시 공간이 갖는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1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기능적 편리성과 단기간의 부동산 가치 상승의 효과는 있으나 도시 공간이 갖는 누적된 시간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전면 철거 후 재개발에 비해 도시재생은 보다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도시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기에 형성된 도시 공간에서 우리 민족 문화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정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공간에는 변화무쌍했던 근대기의 시간을 지나면서 만들어진 그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생활 문화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것은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닌 어쩌면 부끄럽고, 감추고 싶고, 잊고 싶은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과거 그 시간을 살아온 적나라한 우리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도시 공간에 남은 흔적은 지역 공동체가 갖고 있는 누적된 생활 문화의 일부이다. 국토교통부의 ‘건축자산진흥구역’이나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도 도시 공간의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는 정책이다. 여러 정부 부처에서 도시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은 도시 공간의 고유한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조급하고 천편일률적인 사업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의 건축자산진흥구역은 예산 투입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지고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여전히 개별 문화재 중심의 활성화 사업으로 진행되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도시 공간이 갖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가진지 이제 10년 정도 지났다. 여러 정부 부처에서 관련된 정책과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점이나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도시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주목하게 하고 이를 보전하고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이 올바르게 자리 잡고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만큼 우리 주변의 도시 공간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송석기 교수는 근대도시건축연구회 부회장, 한국예총 군산지회 부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3.07.10 17:04

센터장님, 잘 계시죠?

‘토사구팽’은 전쟁터나 선거판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국비를 유치하는 공모에서 진두지휘하던 전문가가 공모가 끝난 뒤 행정에서 손절 되곤 한다. 많은 국비를 지원하는 사업공모가 없던 문화계에서는 이런 일이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그런데 200억 원이 투입되는 문화도시 사업이 등장하면서 용병, 손절, 토사구팽이 문화계에서도 흔한 말이 되었다. 문화도시는 법으로 지정받는다. 두 단계를 거치는 지난해까지의 문화도시 지정 절차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경쟁을 뚫고 예비도시로 지정되더라도 1년 동안 지자체 예산으로 예비사업을 진행한 뒤, 다시 예비도시 간 경쟁을 이겨내야 본도시로 지정된다. 절차가 까다로운데도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 가까이가 지정 공모에 참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삼수, 사수 끝에 예비도시로 지정받은 도시가 한둘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하면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은 사람과 재정을 투입한다. 문화적 자부심이 큰 도시일수록 문화도시를 희망하는 요구가 크고, 지정은 당연할 걸로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 높은 관심, 심지어 단체장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으니 '지정은 영웅, 탈락은 역적'이 된다. 재수 끝에 예비도시 지정에서 탈락한 뒤 실패의 책임을 떠안은 채 도시를 떠난 이들이 적지 않다. 문화도시의 영웅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영웅 대접은 법적 지정을 축하하는 자리까지이다. 전쟁이 끝나면 용병이 홀연히 사라지듯, 공모사업을 진두지휘한 전문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은 도시가 많다. 전북만이 그런 게 아니다. 전국이 그렇다. 선정과 탈락, 두 가지밖에 없는 사업공모와 선정 이후 사업실행은 분명 다르다. 공모에서는 짧은 시간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문화도시 사업에서는 긴 호흡으로 도시를 바꾸는 역량이 중요하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영웅보다 여러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며 함께 가는 덕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정 이후에 역량이 있는 문화도시센터장으로 바꾸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센터장이나 사무국장이 행정과 마찰을 겪으며 스스로 물러나거나 지방선거 뒤에 바뀐 지역도 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예비사업을 진행한 문화도시센터장은 긴 호흡의 도시 바꾸기를 꿈꾸며 2년 동안 사활을 걸고 문화도시를 준비한다. 지정 이후에는 5년 청사진을 그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받은 결과가 용병 대접이라면, 이게 토사구팽이지 않을까. 2년 동안 주민과 함께 문화도시를 학습하고 사업을 구상한 사람이 바뀌면 5년을 위한 예비기간 2년이 사라진다. 리더가 바뀌면 방향도 바뀌는 법, 이게 더 문제일 수 있다. '용병문화'는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한때 널리 쓰인 말이다. 금융기업은 눈앞의 수익을 좇아 경쟁기업보다 연봉을 더 주고 사람을 채용한다. 돈 버는 데만 이들을 활용한다고 해서 용병문화라 불렀다. 이 용병문화는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성과주의적 용병문화, 사람의 사고를 바꾸는 문화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기는 용병이 아니라는데 결국 용병이 되는 현실,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용병 취급하려면 성공보수라도 주던가!”라는 그들의 외침이 이해된다. “ㅇㅇㅇ 센터장님, 잘 계시죠?”, 전국의 문화도시센터장과 만나거나 통화할 때 건네는 안부가 왠지 서럽다. 누구라도 문화쪽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행정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장세길 연구위원은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1년부터 전북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현재 전북학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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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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