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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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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가까운 과거에 형성된 도시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고 이를 활용하여 도시공간의 재생, 활성화를 추진하는 여러 정부 부처의 사업 중 문화재청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지정과 활성화 사업이다. 일반적인 문화재청 사업이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현상 보존 중심의 사업이지만 이 사업은 상대적으로 유연성을 갖는다. 물론 국토교통부나 문화관광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비해서는 해당 도시공간을 문화재로 등록한 후 국가 예산을 투입하여 보전 및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성격은 다소 다르다.

문화재청이 개별 건축물과 같은 독립된 개체 단위의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운영해 오던 근대 문화재 제도를 면 단위로 일정 영역의 공간을 대상으로 확장한 개념이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근대기에 형성된 우리의 생활 공간 중에서 건축 유산을 포함하여 보존된 근대 문화유산이 집적되어 밀도가 높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일정 영역의 공간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다. 또한 공간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개별 문화유산을 동시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하고 잠재적 가치가 있는 대상을 역사문화자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2018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서 전라북도 내에서는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과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선정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두 공간은 그 성격에서 서로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군산과 익산은 그동안 문화재청에 의해 선정된 타 지자체인 영주, 목포, 통영, 영덕, 판교, 진해 등과도 명확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장소이다. 먼저,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갖는 특성과 가치를 간략히 살펴본다.

‘솜리’는 과거 이리(裡里)의 옛 이름으로 근대 이전 한적한 마을이었으나,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과 전주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시장과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동이리역(東裡里驛)이 생기면서 솜리시장(현재의 남부시장 주변) 일대가 번화하였고 1919년에는 솜리시장에서 4.4.만세운동이 있었다.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광복 이후 형성된 주단거리, 바느질거리 등 삶의 모습과 당시의 건축물이 집중 분포되어 있어 과거 이리 지역의 역사문화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어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에서는 여러 시기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이 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구 이리금융조합과 구 대교농장 사택을 포함하여 195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지어진 2-3층 규모의 상가 및 주택 복합 용도의 건축물은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광복 후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접했을 것 같은 모습과 규모의 건축물로서 그 대중적이며 낯설지 않은 모습 자체가 그 시대가 갖는 가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근대기와 관련된 건축유산이나 생활유산의 많은 부분이 일제강점기와 관련되어 있고, 문화재로 보호받는 유산 또한 그 시기와 관련된 것이 다수인 것과 달리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20세기 중반 우리 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건축 및 생활유산이 밀집된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 및 건축자산진흥구역과 연계된 영역으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 향후 사업의 성과가 기대되는 지역이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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