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01:52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외부기고

문화의 시간

image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체계이다.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자.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거부하고, 헝클어트리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구성원이 공유하게 되었을 때, 그 현상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문화 활동가들이 문화사업으로 결과를 얻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이래서다. 가까운 사이라도 마음을 얻으려면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문화사업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니 오죽할까. 문화의 시간은 이렇듯 길다.

정책의 시간은 다르다. 회계연도와 관련하여 대개 1년이 주어진다. 짧게는 2~3달에 성과가 나와야 한다. 지자체 역점사업이더라도 길어야 4년이다. 기초를 다지고 주민을 설득해 무언가 성과를 보이려는 순간,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사업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완주군에 정신장애인 문화공동체가 있다. 구성원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려고 2019년에 문화사업에 참여하였다가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사진교실을 진행하면서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독자적인 완주형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정신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자리이다. 

5년의 시간이 정신장애인 자조모임을 완주형 매드 프라이드 축제로 만들었다. 사적인 공동체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발전하였고, 구성원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시선을 바꾸는 활동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바뀌는 효과가 나타났다. 매드 프라이드 축제만으로 완주군은 문화다양성을 실천하는 도시가 되었다. 정작 구성원들은 이 사실을 모를 수 있으나, 그저 좋아서 한 활동이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성과는 5년 동안 단계별로 지원하는 문화도시만의 독특한 사업체계 덕이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사람을 발견하고, 역량을 키우고, 연대하고, 콘텐츠를 발굴하고, 사회화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수행하는 연차별 사업평가에서도 느리지만 하나하나 기반을 다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지방선거 이후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문화 현장에서는 오랫동안 공들여온 사업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며 걱정한다. 수장이 바뀌면서 담당자도 바뀌고, 사업이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큰 문제는 문화사업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겨우 심어놨는데 수장이 바뀌어 이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 현장에서는 문화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이 늘 부딪힌다. 행정이 공공예산을 투입하고 성과가 나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지만, 문화사업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일하는 이들이 조급하지 않도록 말이다. 문화 활동가들은 공공예산이 투입된 만큼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성과가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여야 한다. 행정을 설득하려면 말보다 구체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문화사업 최소시간 보장제’ 같은 법을 만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일이다. 현재 제도로도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수장이 바뀌어도 정책 기조가 확 바뀌지 않으면 된다. 순환보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문적인 문화 행정인력의 배치가 그 방안이다. 사회복지 행정인력처럼.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세길 #문화마주보기 #문화의 시간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