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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공산품이 아니다

1994년, 영화 쥬라기 공원 1편의 흥행 수입이 자동차 150만 대 수출과 맞먹는다는 소식은 당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1944년 경성정공(기아자동차의 전신) 설립을 시작으로 각종 정부 지원과 노동력,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연간 수출 150만 대를 돌파하기까지 약 30년이 걸렸다. 이에 비해 기획부터 개봉까지 약 3~4년이 걸렸던 한 편의 영화가 같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놀이’, ‘취미’로 여겨졌던 영화, 만화, 게임 등이 거대한 글로벌 비즈니스이자 경제 성장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통해 콘텐츠산업 육성 정책이 추진되었다. 2022년 기준 한국 콘텐츠 산업은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7위 규모로 성장하였고, ‘K-콘텐츠’라는 빛나는 브랜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창작자를 하청업체처럼 대하거나 창작물을 공산품처럼 취급하는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작품 심사 평가를 받는 자리에서 “기업의 이익을 위해 매절 계약을 해야 하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귀를 의심했다. 매절 계약은 정말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계약 사항이다. 업계의 큰 아픔인 검정고무신 저작권 분쟁을 통해 창작자의 권익 보호와 불공정 계약 관행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음에도 창작자를 생산 라인의 가장 아래 사람인 양 여기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는 정반대다. 콘텐츠 제작의 가장 최초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창작자이다. 창작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콘텐츠 산업이다. 이들을 하청이나 대체 가능한 부품처럼 대한다면, 결국 만나게 되는 창작물 또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설사 좋은 작품이 나왔대도 거기까지이다. 기업이 창작자와 나누지 않고 독차지한다면, 그 작품을 만든 창작자는 더 이상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돈’만 생각한다면 창작자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좋은 창작물은 돈만 많아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실패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창작은 일반적인 노동과 다르다.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한 줄의 글이나 형상을 잡아내지 못하면 새하얀 백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창작자는 게으르다는 오해를 쉽게 산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시도와 수정, 고민, 폐기, 또다시 수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것이 창작물이다. 창작자들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는 창작물에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 부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정한 업무량과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반적인 노동과 달리, 창작은 아무리 노력해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거나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제는 창작자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다. 콘텐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공산품 제조와는 다른 접근과 인식이 필요하다. 한편, 몇몇 심사장에서 심사 매너 관련 안내문을 배포하는 사례가 들려오고 있다. 창작자를 존중하고, 심사자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지양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노력이 부디 더 많은 심사장에서 보편화될 수 있길 바라본다. “한 달에 5만 원은 벌겠느냐”고 묻는 심사위원은 이제 그만 만나고 싶다. 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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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7 18:25

서래선림(西來禪林)-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내소사의 진입로에 있는 전나무숲 중간쯤에 지장암이 있다. 그 암자는 해안 큰스님이 살아계실 때만 해도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고 했다. 암자라기 보다는 그냥 독립된 선방禪房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대학에 낙방하여 내소사에서 재수하고 있었는데 전나무숲을 오가며 지장암의 입구에 작게 쓰여 있는 ‘西來禪林’이라는 팻말이 매우 궁금했다. 서쪽에서 온 참선 숲? 그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서래선림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이 닭장을 나온 어린 수탁 한 마리의 일탈한 인생 시작이었음을 그때만 해도 알 지 못했다. 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의 선전 포스터를 볼 때마다 나는 서래선림을 떠올렸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다는 것은 그가 서쪽인 인도에서 온 것이고, 붓다의 법을 전파하러 중국으로 간 것이다. 고은의 『선(禪)』이라는 소설을 보면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야기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내서 재미있다. 소설을 보면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갈 때 해로를 통해 베트남으로 상륙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뱅골만을 벗어날 즈음에 이동 중인 수많은 철새 떼가 폭풍을 피해 달마 일행의 배로 내려앉는 일이 생긴다. 달마는 그 새 떼를 쫓거나 죽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선원들이 그 말을 잘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 배에는 수백 마리의 새들이 죽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달마는 “저 새들은 늙어서 기력이 다해 죽은 것이다.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무언가가 마음을 깊게 질러와 잠깐 호흡이 멈춰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나이 때문에 어떠한 일을 타자로부터 제재 받기도 하고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점점 무기력해지고 죽음의 그늘이 가까이 드리워진다. 이게 일반적인 ‘늙음’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다만 늙었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은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면서 늙음에 종속되지 않는 생명과 한 존재의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하바드 출신 명상의학자 디팩초프라에 의하면 ‘노화’란 하나의 개념일 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오로지 자신의 생명을 끝까지 발현하다가 소멸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영장류만이 유일하게 생각하는 힘이 있어 늙음이나 죽음 따위를 가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 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스스로 늙었다거나 죽을 때가 다 되었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갈 뿐이다. 죽는 그날까지 생명을 발현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의 이상향을 향한 새들의 자유로운 날갯짓은 늙음과 무관하며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각설하고 나는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보다는 서래선림에 빠져 살았다. 해안 큰스님께서 우리말로 옮겨 놓은 ‘반야심경’을 끼고 살며 큰스님의 상좌인 혜산스님, 철산스님, 동명스님과도 가까이 지내며 살았다. 급기야 나는 서래선림 코 밑에 있는 민가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러고 얼마 안 있어 큰스님이 입적하셨다. 그러자 그 많던 사부대중이 모두 떠나고 나만 남았다. 아니, 일지스님이 절을 지키기 위해 서래선림으로 돌아오셨고 그때부터 서래선림의 시절은 가고 지장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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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0 18:46

관계인구의 실효성

산업혁명 이전에는 태어나거나 시집간 마을에서 거의 한 평생을 살았다. 마을 내에 거주 공간, 일하는 공간, 제3의 공간(휴식, 연대, 어울림의 공간)이 밀집되어 있어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마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산업의 형태가 바뀌고, 교통, 인터넷 등의 기반시설이 발달하면서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마을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거주 공간, 일하는 공간, 제3의 공간을 분리해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굳이 힘들게 맞지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지 않아도 된다. 도시일수록 거주공간, 일하는 공간, 제3의 공간은 더욱 분리된다. 이는 다양한 자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에서의 나는 다르다. SNS상의 부캐도 당연한 시대이다. 이러한 변화를 마을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면 사람들은 더 이상 연대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취향이 맞는 콘텐츠, 사람 등과 연결되기 위해 제3의 공간을 선택하고, 아낌없이 소비한다. 그 장소가 마을이 아닐 뿐이다. 우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연결되고 싶으며, 스스로 선택한 일, 커뮤니티라면 거리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정책 용어가 관계인구이다. 관계인구는 어떤 지역에 거주하지 않지만 관계되어 자주 방문하거나 애정하는 사람으로, 인구감소지역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관계인구는 일본에서 최초로 사용된 용어로 농산어촌의 산업, 상업, 생활 등이 도시에서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역에 거주여부와 상관없이 관계성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인구감소시대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관계인구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곳도 많다. 이는 관계인구라는 단어 중 관계가 아닌 인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인구라는 단어 자체가 특정의 행정구역 내의 사람 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결과치나 통계에 집착하게 되어 인구 부풀리기로 이어진다. 이는 예전에도 진행된 일이다. 우리지역의 관계인구가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첫째, 관계인구라는 단어에서 인구가 아닌 관계에 집중하고 지역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전업, 부업, 취미로 타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지역에서 쉬기 위해 빈번히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로 이주했지만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어떠한 사유로 우리 지역과 관계되었을까? 그들이 일하는 공간, 제3의 공간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그들은 지역과 어떤 관계망을 가지고 있는가? 행정구역과 관계된 사람은 거의 없다. 부모님, 친구, 카페, 자연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관계망을 크게 관계를 이끌어 내는 사람과 콘텐츠, 안내하는 사람, 관계된 사람 등으로 나누어 관계망을 그려보자. 관계망이 완성되면 가장 중요히 여겨야 하는 요소는 우리 지역에서 관계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관계인구들이 우리의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역할의 그룹이 필요한가를 고민해보는 것이다. △정수경 대표는 어반베이스캠프 대표이사, 커뮤니티 서점 경원동# 운영하고 있으며 웃음소리 넘치는 즐거운 도시 조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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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3 17:13

문화예술교육의 확장, 고령화시대에 커뮤니티 아트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

2007년, 선배들 따라 처음 접했던 문화예술교육은 나에게 실천하는 예술운동으로 다가왔다. 당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현장 그 자체였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피부로 느끼게 하였던 선배들 따라 마주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이유로 문화향유의 기회가 제한된 참여자를 위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던 참여자를 만나는 경험은 다른 사람이 아닌 여느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편견을 중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별다른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마치고 난 후 소감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쥐어짜도 나오지 않았던 말들은 경험의 축적 속에서 체화되어 이제 와 현장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배운다는 속담처럼 선배 예술가들과 함께 했던 경험은 예술이 사회를, 지역을, 공동체를 변화하는 도구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문화예술교육은 우리 사회에 그늘이 드리워진 곳,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곳을 예술로 조명한다. 나아가 문화예술 향유의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목적을 넘어 전시를 통해 유연한 목소리 내기, 사회적 발언의 기회를 마련한다. 이랑고랑의 창의적 나이듦 프로젝트의 기획 동기는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출발했다. 고령화, 지방 소멸, 노인 부양, 노인혐오로 이어지는 사회적 위기 가운데 공동체로써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사회 품격을 높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이라 여겼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우리는 왜 나이가 드는 것을 염려하고, 동안이란 단어에 기뻐하며 안티에이징의 상술에 넘어갈까? 이에 대한 근본적 원인은 첫째, 현재 노인의 삶이 젊은이들에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노인이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2016년 나를 포함한 예술가와 문화기관 담당자 4명이 모여 비영리단체 이랑고랑을 설립한 후 2020년 법인을 설립하여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 현재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소셜벤처로 활동하고 있다. 총 8명의 예술가 집단으로 영화, 사진, 연극, 성악,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랑고랑은 밭의 이랑과 고랑을 합친 말로 누구에게나 내재된 예술의 씨앗을 틔우는 밭이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진행중인 본 프로젝트는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의 평균나이 85세 할머니들 1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그림 그리기, 연극, 노래, 시니어 모델 화보 촬영 등 맞춤형 예술경험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노년층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 중심의 창의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의 체험 위주, 결과 중심의 프로그램들은 개인의 창의력 발상을 저하하고 수동적 노인을 양산한다 지적하고 참여자들이 능동적인 참여형태를 가지며 잠재적 역량을 키워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죽는 날 받아놨다 말하며 밥 먹고 몰래 잠들다 저세상 가는게 소원이라는 어르신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살아서 만나는 천국’이라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이유, 고령화를 대비하는 중요한 사례로서 6년차를 맞이하는 이랑고랑의 예술적 실천을 앞으로의 칼럼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황유진 대표는 김제시 청년정책 위원장, 한국기초조형학회 학술연구분과 부회장, 전북특별자치도 도시재생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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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0 16:55

전북은 콘텐츠하기 좋은 도시일까?

매년 1월말 프랑스 서남부 소도시 앙굴렘에서는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이 열린다. 도시 전역에 걸쳐 수백여개의 행사가 진행되며, 매년 약 2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 프랑스는 1960년 대부터 만화를 제 9의 예술로 인식해 국가적 자산으로써 연구와 보존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머리가 희끗한 노년층의 독자들도 긴 줄을 서서 만화책을 구매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사인을 받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인지라 부럽기까지 하다. ‘만화의 수도’라 불리기까지도 하는 앙굴렘이 태생부터 콘텐츠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건 아니다. 주요사업이던 목축, 낙농업이 1970년대 들어 사양길에 접어들며 지역침체를 겪으며 비상회의를 열기도 했단다. 한편, 당시 프랑스는 수많은 만화잡지와 전문지가 창간되는 등 만화의 황금기가 찾아왔는데, 이때 앙굴렘에서 열렸던 작은 만화전시회에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을 계기로 1974년 축제를 개최, 1980년 대에는 대통령 약속을 통한 중앙정부지원을, 1990년대에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프랑스 5대 국제문화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전라북도와 비슷한 170여만 명 인구의 푸아투-샤랑트 주에 속하는 앙굴렘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2시간 반 거리에 위치해있다. 서울에서 2시간 반 거리의 군산에서 만화출판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구도심의 지역 공동화 현상을 목격할 때면 앙굴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으로 몰리지만, 삶의 만족도는 낮은 시대. 2023년에만 10만 명의 인구가 탈서울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 서울 주변으로 이주했다지만 더러는 지역을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지역소멸이 화두이지만 콘텐츠업은 서울을 떠나서도 성장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전북은 콘텐츠하기 좋은 도시일까? 전주시가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3년간 200억 원이 투입되고 미래문화콘텐츠 거점과 도내를 연계하는 'K-컬처 광역 여행벨트'가 구축된다고 한다. 또한 2023년에는 전주책쾌, 그 이듬해에는 군산북페어가 개최되었는데, 그간 다양한 북페어에 참가해왔지만 이 두 개의 독립출판페어는 그 어떤 북페어에도 뒤지지 않을 독보적인 열정과 전문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산업에 있어 학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웹툰만화콘텐츠학과가 전주대학교에서 다시금 생겨났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 앞으로 발전 될 전북의 콘텐츠 산업계가 무척 기대된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함께 하길 바란다. 한편 개선되길 바라는 점도 적어본다. 5년간 수도권에서 경상도까지 여러 기관의 콘텐츠지원사업을 받고 정산해보았지만, 전북 기관의 요청 서류가 가장 많았다. 콘텐츠 만드는 시간도 부족한데, 계속 되는 서류와 보고서 제출로 힘이 빠질 때가 많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사업이 가히 참고할 만한데, 생략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류를 생략했으며, 창작 고료 항목으로 바로 집행이 가능하게끔 설계 되어있다. 심사위원 성비에도 아쉬움이 있다, 약 8명의 심사위원 중 여성이 한두명 정도를 만날 수 있었다.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제작자라면, 단지 심사위원 성비만으로도 불리한 입장이 될 수 있다. 그간 간담회 때나 설문조사를 통해 ‘서류 좀 줄여달라’, ‘성비를 맞춰달라’ 말해왔다. 2025년에는 개선이 되어 콘텐츠하기 더욱 좋은 도시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전정미 대표는 만화로 지역을 조망하는 프로젝트 <지역의 사생활 99>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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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3 19:01

깨달음의 시

인디언들은 1월을,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호숫물이 어는 달, 등 부족에 따라 다르게 불렀나 보다. 우리 부족은 저마다의 해맞이로 시작하니 1월은 ‘새로운 해가 뜨는 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작만이 아니라 늘 새로움과 설렘으로 일상을 맞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지난해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진동과 혼란이 진행 중이지만 이 또한 ‘새로움’을 창출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인도에서는 이 ‘새로움’을 얻기 위해 시바 신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인도는 세상의 모든 자연과 자연의 법칙까지도 신이라고 해서 많은 신들이 있는데 그중 브라마는 창조의 신이고 비슈누는 유지의 신이며 시바는 파괴와 소멸의 신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파괴의 신인 시바를 가장 많이 찾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조되면 그것을 유지하고 또 그것이 다 하면 파괴와 소멸을 통해 다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자연과 우주의 순환구조 속에 있다. 사는 동안 남녀노소, 빈부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은 찾아오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파괴하고 싶고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게 된다. 시바 신으로 인해 현재의 고통과 절망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상을 살아가는 힘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백지와도 같은 깨끗한 이 한해를 어떻게 채워나갈까, 하는 새로움에 설렘까지 더해 분주해진다. 그런데 한해의 벽두에만 이 새로움과 설렘을 맞는 것은 좀 아쉽지 않은가. 똑같은 해가 매일 뜨는데 왜 새해의 벽두에만 그 맛을 봐야 하는가. 진부하기만 한 하루를 매일 새롭게 맞을 수는 없을까. 어느 선사가 쓴 ‘깨달음’이란 시가 있다. 깨닫기 전에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다 깨달은 후에도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다 이 시를 보면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얻은 후에나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그래서 깨달음은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일상의 현실에 있다는 것과 그 일상을 새롭게 보고 또 새롭게 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 것이 먹고살기 위한 일상이요,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지치고 힘든 현실을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은 고통이 아니라 마냥 신기하고 즐거울 것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바깥나들이를 하면 아이들은 쉴 틈 없이 질문을 한다. 어른들에겐 진부하고 힘든 이 세상이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게 새롭고 궁금한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의 천진함으로 늘 자연과 세상을 새롭게 보고, 매일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은 자의 일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마음의 여유도 없이 비상계엄 해제 이후 아직도 안정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이런 정국이 얼마나 더 지나야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으나, 오래지 않아 어떻게든 진정되면 어떤 ‘새로움’이 다시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대통령으로 행정부가 꾸려지고 국민을 배신하지 않은 2/3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국민의 정서에 부응하는 많은 개혁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시바가 지금 우리의 혼란을 파괴하여 소멸시키고 있으니 머잖아 ‘새로움’의 세상은 시작될 것이다. △박두규 시인은 <남민시(南民詩)> 창립동인이었고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지냈으며 '생명평화결사'와 문화신문 '지리산 人'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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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6 18:46

새해에는 철 좀 들을까요?

새해가 밝았고, 누구나 똑같이 나이를 먹었다. 한 살 더 먹었으니 철이 좀 들려나? 언제 철 들래? 이 말은 왠지 공자님도 들었을 것 같다. 철(鐵)을 먹으면 철이 들까? 우스갯소리지만 묵직한 철을 먹으면 사람도 좀 무게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바람일 것이다. 철 드는 법은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지만, 철(鐵)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 주변에 가까이, 그리고 많이 있다. 2023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철강 생산량이 세계 6위이다. 영토면적으로 109번째인 우리나라에서 철강 생산량이 6번째라고 하니, 철이 우리의 산업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발달도 도구의 재료를 기준으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으며, 아무리 실리콘·탄소섬유와 같은 신소재가 개발된다고 해도 철 만큼 인류 발달에 큰 변화를 준 물질은 아직 없다. 기원전 2000년경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발명된 철(鐵)은 실크로드를 따라 고조선시대 한반도로 들어왔다. 압록강유역을 중심으로 철기유적이 확인되며, 이후 한반도 철기문화는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유입되는데, 북한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철기문화가 시작된 곳이 어디일까? 한강 유역의 서울일까? 천년 고도 경주일까? 남한지역에서 처음으로 철기문화가 싹 튼 곳은 바로 전북혁신도시 일대이다. 전북혁신도시가 어떤 곳인가? 준왕이 남래하여 마한이 시작된 곳, 세계 최고의 정교함을 자랑할뿐더러 21세기 첨단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청동거울이 가장 많이 제작·사용된 곳, 기원전 2~3세기 한반도 수도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적이 밀집된 곳이다. 선진문화와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청동기가 제작되고, 철기문화가 발전한 것이다. 전북혁신도시는 대한민국 철기문화의 발상지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금속문화의 메카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완주 갈동유적에서는 발굴된 유물이 2건이나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리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이 보물로 지정된 예는 갈동유적이 처음이며, 한 유적에서 2점 이상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왕릉급 무덤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만큼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찬란한 문화유산은 얼마나 보존되고 알려져 있나? 혁신도시로 선정된 10개 지역 가운데 전북은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이 개발되었으며, 그 면적은 무려 3백만 평에 달한다. 그러나 전북혁신도시를 아무리 둘러봐도 문화유산을 알리는 전시관이나 박물관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K-컬쳐가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 문화유산에 너무나도 인색하다. 어디 이 뿐인가? 2022년 전라북도는 지정유산 1,000건이 넘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당시 기사를 보면, 특별기획전과 문화유산을 활용한 상품개발 등 다양한 기획과 마케팅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뭐가 얼마나 달라졌나? 현재 우리지역은 가장 위험한 문화재만 엄선하여 보수만 하는 수준이다. 중환자실만 운영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종합병동과 같은 실정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예산 부족이다. 20여년 넘게 거의 동일한 예산으로 늘어난 문화유산을 관리하기는 불가능하며, 활용이나 조사·연구는 꿈도 못 꾸는 게 전북특별자치도 K-문화유산의 현실이다. 이러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호미나 가래 모두 철로 만드니, 새해에는 여하튼 모두 철 들고 볼 일이다.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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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30 17:18

희극적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

희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처지를 과장하거나 비하한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재물보다 더 크고 많이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를 ‘자기 과시자(alazon)’라 하고, 실제보다 자신의 능력, 처지를 자꾸 축소하려 드는 경우를 ‘자기 비하자(eiron)’라 한다. 이 둘은 섞이기도 하고 겹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여서 종종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조롱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허풍을 떨거나 엄살을 피우면서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지금 온 세상이 한숨 쉬며 목도하고 있는 이 희대의 코미디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일단 상대의 능력을 과장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축소한다. 대명천지 이십일 세기에 종북 주사파가 판을 치고 있다고 믿는 것이 모든 사달의 출발이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 건전한 비판이나 이유 있는 반대가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린 악마 탓으로 보이니 할 일은 병든 말이라도 잡아타고 돌진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번 그 생각에 사로잡히고 나면 건전한 토론과 설득, 타협을 통해서 이견을 해소하고 국민의 여론을 얻어서 상대의 논리를 제압하는 일까지는 생각도 못 한다. 상대의 위협을 과장하고 자신을 왜소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에이론의 모습이다. 게다가 과신하면 안 될 스스로의 능력을 느닷없이 과신한다. 마치 전지전능한 왕조시대의 망령이라도 쓰인 듯이 계엄령이라는 칼을 들고 쾌도난마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군대도 언론도 선량한 국민들도 계엄포고령 앞에서 모두 두 손 들고 납작 엎드려서 일순간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알라존의 전형이다. 결국 대통령으로서 능히 할 수 있는 정치적, 법적 장치와 권한은 지극히 작게 여기고, 해서는 안 될 능력 밖의 일을 능히 할 수 있다고 믿은 게 그의 희극적 결함이다. 여느 희극이라면 주인공이 이처럼 허풍과 엄살을 반복하는 동안 관객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요절복통 재미를 느낄 터,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오싹하도록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걸 어쩌랴. 희극은 어떻게 흘러가고 끝나는가? 희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취약한 처지로부터 벗어나고 더 나은 권력과 재물을 얻기 위해서 종종 간사한 계략(trick)을 쓴다. 이 간사한 계략 때문에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 모두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고 주인공의 의도는 거의 성사될 뻔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늘 사필귀정, 간계는 폭로(revelation)되고 주인공은 뒤늦게 뉘우치거나 징벌을 받으면서 세상은 다시 평화를 찾는다. 12.3 내란이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애당초 있지도 않은 적의 위협을 과장하여 비상한 상황임을 선포하고 본인에게 불리한 여러 정황들을 모면해보고자 국가의 안위를 걸고 넘어지는 간계를 꾸렸으니 이길 리 없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영문도 잘 모르는 부하들을 억지로 동원했으니, 그 추악하고 얄팍한 본질이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대부분의 희극에서 주인공은 뒤늦게나마 뉘우친다. 자신의 오판과 잘못된 신념에 대해 사과하고 벌을 달게 받는다. 하지만 끝내 뉘우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본인은 물론 그 간계에 동원된 숱한 주변인들, 지켜보던 이들까지도 다치거나 죽는다. 이게 비극적 결말이다. 비극에서는 철저한 몰락 직전에야 간신히 깨닫는 걸 두고 ‘때늦은 알아차림’이라 한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이번 희극의 주인공은 뉘우칠 가망이 없어 보인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겁만 주려고 잠깐 군대를 동원해 봤을 뿐이라는데, 이 희대의 해프닝, 허술하기 짝이 없는 코미디가 비극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과연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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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3 18:10

옴니보어, 내면세계 인식과 심미적 도구로 기능한 전통음악에 관심 가지길

매년 트랜드 코리아를 발표하는 김난도 교수는 2025 트랜드 코리아의 10가지 키워드 중 첫 번째 키워드로 옴니보어(omnivore)를 내세웠다.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이어 주요 트랜드로 자리할 옴니보어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소비 패턴이 다양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정한 한 분야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클래식·트로트·재즈·국악 등 전혀 다른 종류의 다양한 분야에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즉 집단의 차이에 집중하기보다는 개인의 차이가 커지는 현상이 트랜드로 자리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제고해 보고자 한다. 우리 음악에 대한 생경함과 동시대적 이질감에서 느껴지는 괴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국악에 내재한 전통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우리 안에 아직도 부지불식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처방도 요구된다. 전통음악은 일반적으로 정악과 민속악으로 대별 된다. 정악의 한 갈래인 풍류음악은 조선후기 중인과 사대부 중심의 지식인 계층이 즐긴 음악이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목적보다는 자신의 정서와 내면세계를 가꾸기 위한 인격 수양의 도구로 기능하였다. 세련된 기교보다는 품격을 중시하며 글을 지어 시를 노래하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절제미와 아정함을 중시하여 느림의 미학과 음률의 담백함을 추구하였다. 대표적인 음악으로 시조·가곡·가사류의 성악곡과 영산회상 같은 기악곡이 있다. 이러한 풍류음악을 즐긴 이는 순헌왕후의 아버지 김조순, 문인이자 화가인 강세황, 단원 김홍도, 월하탄금도 작가 이경윤, 담헌 홍대용 등으로 그들이 남긴 시문이나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유교사회에서는 육예(六藝)의 하나로 사대부들에게 음악을 배우게 하였는데, 특히 풍류음악의 대표 악기로는 공자가 배웠다는 거문고를 꼽는다. 한편, 판소리, 산조, 민요 등의 민속악은 고대 제천의식에서 행해졌던 가무(歌舞)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천제에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인 제사장은 춤과 음률로 소통하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 각 지방색에 독특한 형태로 남아 있다. 전북지역은 호남좌우도 풍물굿, 전주풍류, 판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음악은 과거 급제자의 축하공연인 삼일유가, 순회공연을 다녔던 협률사 등의 음악활동과 교방·권번 등의 교육활동을 통해 전승되었다. 이러한 전통예술분야에 기반한 도립국악원은 13개 과목을 교육하고 있고 나아가 창극단, 관현악단, 무용단의 예술단을 운영하며 도민을 대상으로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통음악은 내면에 침잠하고 집중하는 자기중심적인 음악과, 심미적 정서적 도구로서의 음악이 양립하고 있어 그 독특함이 다르게 존재한다. 이는 악곡의 생성 근원과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전통음악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는 단초로 작동될 것이다. 오늘날 문화 향유와 여가 활동을 위해 일반대중들은 생활예술을 즐기고 공연공간을 찾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 한다. 또한 일시적인 관람으로 만족하지 않고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선택 체험하는데 전통사회에서의 음악의 근원적 생성 배경과 향유방식을 이해하고 우리의 음악을 접한다면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유니크한 옴니보어가 되지 않을까 한다. 노복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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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6 19:24

수선(修繕)은 멈추지 않는다

2018년 우리 사회의 균열을 드러낸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미투운동.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방치되어온 구조적 불평등이 표면 위로 떠오른 일이었다. 그것은 권력과 젠더의 문제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고질적인 사회문제이기도 했다. 우리 전북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유와 창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예술계는 이상적 이미지 뒤에 감춰져 있던 권력 구조와 불평등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 틈새를 드러낸 것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그들의 고백은 단순히 사건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를 드러내고 고통을 나누며 더 나은 현장을 모색하기 위한 담론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20년, 전북지역 내 광역‧기초문화재단, 전북대학교, 여성단체 등 민관학이 협력해 ‘전북성평등네트워크’가 출범하였다. 이 네트워크는 전북 문화예술계의 문제를 기록하고, 공론화하며,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여정을 기록한 전시가 전주한옥마을에 자리한 하얀양옥집에서 열렸다. ‘2024 전북 성평등 문화예술 아카이빙展: 수선(修繕)’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의 발자취와 노력을 담아낸 전시다. 이 전시는 단순히 기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부서지고 잊힌 것들을 다시 꿰매고 다려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전시의 네 가지 섹션은 ‘터짐’, ‘고침’, ‘다림’, 그리고 ‘되살림’으로 나뉜다. 성평등의 길 위에서 맞닥뜨린 상처와 고통은 ‘터짐’으로, 그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노력은 ‘고침’으로, 연대와 협력의 실천은 ‘다림’으로, 지속가능한 변화를 향한 희망은 ‘되살림’으로 표현되었다. 각각의 섹션은 단순한 문구와 사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문화예술계 성평등 실천의 여정을 상징하며, 이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연대와 노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수선’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망가진 물건을 고치는 행위를 넘어,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깊은 울림을 준다. 찢어진 옷을 꿰매는 일이 그렇듯, 사회의 균열을 메우는 일 역시 쉬운 과정이 아니다. 이는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길이다. 특히 지역사회라는 특수한 맥락 속에서 관계의 촘촘함과 이해관계의 복잡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은 더 큰 도전을 의미한다. 전북의 문화예술계에서 성평등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은 단순한 용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상처를 드러내야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과, 그 고백에 손을 내밀고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북에서 시작된 이 작은 네트워크의 움직임은 거울을 닦고 다시금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기 위한 시도였고 그러한 의미에서 ‘2024 전북 성평등 문화예술 아카이빙展: 수선(修繕)’ 은 지역 문화예술계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성평등을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균열은 여전히 남아있고, 새로운 상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꿰매고 다려내는 과정은 어렵지만, 그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전북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이 더 큰 물결로 확장되고, 우리가 수선한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길 바란다.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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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9 10:23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너무나도 유명한 백설공주의 한 문장이다. 동화책에 등장하는 거울은 신기하게도 왕비와 대화를 나눈다. 거울은 왕비에게 공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공주가 살아 있는 것도 알려주는 마법의 물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거나 미래를 알려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거울을 사용했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거울은 재질에 따라 돌에서 청동, 청동에서 유리로 바뀌었는데, 가장 오래된 거울은 기원전 6천년 경 튀르키예 무덤에서 발견된 흑요석 거울이다. 이후 기원전 3천년 경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청동거울이 출현하게 되고, 16세기 과학의 발달로 유리거울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인류가 가장 오랜 기간 사용한 거울은 바로 청동거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거울도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고조선시대에 제작된 다뉴뇌문경이다. 앞면은 매끄럽게 갈아서 거울면으로 이용하였고, 뒷면에는 신령스러운 힘을 상징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겨 넣었는데, 그 문양이 번개 같다고 해서 뇌문(雷文), 고리가 2개 이상 달려 있어 다뉴(多鈕)라는 명칭이 붙었다. 다뉴뇌문경은 점차 문양이 복잡해지고 선이 가늘어지면서 기원전 2~3세기에 정문경(精文鏡)로 발전한다. 정문경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거울이 있으니,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일명 국보경이다. 직경 18㎝의 공간에 무려 1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개의 동심원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이 불과 0.2~0.3㎜에 불과한데, 더욱이 이 문양을 거푸집에 새기고 청동으로 주물을 부어 만들었으니 그 기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 이 거울이 발견되었을 때 오죽하면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위조논란까지 있었겠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숭실대 국보경은 출토양상을 전혀 알 수 없다. 논산훈련소에서 군인들이 땅을 파다 발견하였는데, 이후 여러 곳을 떠돌다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구입했다고 전해질 뿐이다. 어떻게 땅 속에 묻히게 되었는지? 묻힌 곳은 무덤인지? 정식조사를 거치지 않았기에 알 길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족보가 없는 셈이다. 당연히 학술적인 가치도 반감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거울은 국보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최첨단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데 전북혁신도시에서 국보경보다 더욱 세밀한 청동거울이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었다. 현재 국립농업과학원이 조성되기 전 완주 신풍유적이 조사되었는데, 이 유적에서 무려 10점의 정문경이 확인되었다. 국내에서 그동안 발견된 정문경 수량이 60여점 정도인데, 신풍유적에서만 10점이 출토된 것이다. 이후로 당연히 신풍유적 일대는 한반도의 테크노밸리로 불리고 있다. 이미 2천 2백년 전부터 첨단산업이 발달한 혁신도시였던 것이다. 신풍유적에서 출토된 거울 가운데는 완형도 있지만, 깨진 상태로 발견된 거울도 많다. 일부러 거울을 깨뜨려 무덤에 넣은 것은 신풍유적만의 독특한 매장풍습으로, 말 그대로 파경(破鏡)이다. 파경은 이혼과 연관되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성계는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꾸고서 조선의 왕이 되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나들이가 쉽지 않은 요즘, 국립전주박물관 1층에 전시되어 있는 신풍유적 거울을 다시 한 번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신령한 기운을 받아 보면 어떨까? 왕이 되지는 못해도 로또번호라도 하나 나오지 않을까?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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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2 17:31

새 생명의 경이, 그리고 공동체의 책무에 대하여

쌍둥이를 낳은 조카 덕분에 이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기의 향기를 맡았다. 백일도 안 된 어린 생명체들의 경이로움, 앙증맞은 이목구비로 부지런히 숨을 쉬고 세상을 관찰하며 젖을 빠는 모습이 한동안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답다. 어른 손가락 두어 마디 크기의 손발을 버둥거리며 옹알인지 울음인지 소리를 내는 일은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세상에 알리고 인정과 도움을 받으려는 본능적 행위일 터, 그 낱낱의 동작들에도 우리는 놀라고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새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그래서 어디서나 날이 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이 경이로운 순간을 마냥 찬탄하고 즐거워만 할 수 없으니 어쩌랴? 저 어린 것들을 돌보고 키우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의 양과 질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갑자기 숨이 막힌다. 산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나라에서 데려다 다 키워서 돌려줬으면 좋겠다며 농담인 듯 농담 아닌 호소를 한다. 그거 ‘가까운 옛날에 세상의 절반쯤이 탁아소라는 이름으로 실험해본 방식인데, 그 시절이라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발언이기도 한데’ 하다가 이어지는 생각들-. 유발 하라리는 비슷한 종들 가운데 유독 인간이 저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은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라고 썼다.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뛰기도 하는 다른 종들은 그만큼 개체의 독립성이 강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가족과 사회가, 그를 통한 소통과 진화가 인간을 여러 종들 가운데 으뜸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류의 어린 생명체들은 참으로 연약하다. 그래서 잘 먹이고 잘 입혀 세심하게 양육하는 일이 필요하다. 새 생명에 대한 놀람과 환희보다 더 길고 무거운 것이 곧 양육의 문제이다. 아이를 낳기 꺼려하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에는 출산 그 자체보다 이 길고 무거운 양육과정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압박의 문제, 그 중 훨씬 비중이 큰 게 후자인가? 그래서 출산과 동시에 일억원을 준다는 회사의 신입사원 지원율이 네 배 다섯 배 오르는 것인가? 하지만 그 방식이 궁극의 답이 될 수 없음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경제적 지원으로 아이를 더 낳게 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공허한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일과 양육이 서로 맞서지 않고 편안히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닐까? 자기 피붙이가 아니면 좀처럼 아이의 향기를 맡아볼 수 없게 된 세상, 온 가족과 아이돌보미까지 달라붙어야 간신히 양육이 가능한 세상은 아무래도 비정상이다. 밭매다 애 낳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면, 지금의 양육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냉정하게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답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어디서든 스스럼없이 이웃의 아이도 안아볼 수 있었던, 아니 안아서 같이 키우던 시절의 사회학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데서부터 출발하면 어떨까? 내 핏줄 내 자식이어야만 양육과 돌봄의 대상이라는 생각은 곧 무한경쟁시대의 강퍅함이 빚어낸 가족이기주의의 한 단면이다. 이 극단적인 가족이기주의를 완화하는 게 멀지만 가야 할 길이다. 하나 더, 이 나라의 급격한 고도 산업화 이후 점점 더 늘어온 노동시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른 오후가 되면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축제를 즐기고 이웃과 여가를 나누는 선진국들의 모습에서 배워올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여전히 감수하고 있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일상을 변혁하지 않는다면 그밖의 모든 논의는 결국 공염불일 것이다.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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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5 18:42

전라감영 활성화를 위한 현대적 활용 모색

지난 11월 11일 전주 전라감영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라감영 접빈례(接賓禮)’다. 외교관인 조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가 1884년 전라감영을 방문하였을 때 전라 감찰사 김성근(金聲根, 1835~1919, 1883년 2월~1885년 1월 재임)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전라감영 접빈례는 이를 토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풍남문에서 가마를 타고 전라감영에 도착하였는데 이날은 취타대와 전주기접놀이 보존회가 전라감영까지 퍼레이드를 펼치며 조지 포크를 맞이하였다. 이어 감찰사격인 도지사가 전라도 방문을 허가한 호조(護照)를 수여하고 참석한 기관장들은 포크의 방문을 환영하는 축사를 진행하였다. 이에 포크의 답사가 이어졌다. 관찰사와 육방권속이 함께 촬영한 것처럼 당시 사용했던 유리건판 방식을 그대로 활용하여 참석한 기관단체장들은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어서 춘앵무·무고·살풀이의 무용과 판소리 공연으로 축하연을 펼쳤다. 이는 당시 4인의 무희들이 춘 무고(舞鼓) 춤을 사진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당시 교방청 예인들의 성대한 공연프로그램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고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숙소에는 꽃 화병을 놓고 술잔에 국화꽃을 띄우는 등 전라감영에서의 손님 접대와 전라도 음식, 교방청 예인의 축하연을 두고 조지포크는 타 지역에서 경험하지 못한 격조 있는 대접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파견한 보빙사의 통역장교로 조선인들과 처음 대면하였고, 거북선을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하였으며 팔만대장경 등 조선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제너럴셔먼호 배상 청구의 부당성을 반박한 미국 정부 외교관으로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고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조선 근대 외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조지포크의 기록은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라감영과 전주의 사회문화, 예술에 대한 최초 사료로서 근대문물의 수용 과정도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가치가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그의 기록이 휴민트(humint)적 산물이라는 점은 아쉬움이 있다. 전라감영은 건축물의 복원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전주시는 2020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전라감영을 복원했다. 전라도의 수도가 전주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다시금 새기고 동시에 풍패지관(灃沛之館, 조선왕조의 발원지)과 한옥마을을 연계한 관광 거점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이다, 전북의 정체성을 제고하기 위한 야심찬 사업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북은 지자체 중 가장 큰 규모의 도립국악원과 무형유산을 최다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전주대사습, 전주세계소리축제 등으로 어느 지역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전통문화적 기반이 탄탄하다. 이러한 문화적 자산을 토대로 접빈례 행사를 연례적으로 지속하여 전라감영의 문화상품으로써 전북 고유의 문화콘텐츠로 작동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는 전라감영이라는 공간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현대적으로 활용하여 전북의 문화적 정체성과 우수성을 알리고 확산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노복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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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8 19:02

살아있는 예술, 살아있는 유산

하얀양옥집(구, 도지사관사)에 간만에 지역 어르신 두 분을 모셨다. 바로 무형유산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님과 소목장 소병진 선생님. 전주 한옥마을 관람객이 가장 많은 가을의 시작 즈음, 전북도가 주최한 한인 비즈니스 행사와 맞물려 기획된 전시 <손끝의 결>에서 두 분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25일간 열린 이 전시는 8,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두 장인의 작품은 지역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이미 여러 차례 전시된 바 있지만, 색지와 나무라는 전혀 다른 재료로 동일한 가구를 만드는 이들의 작품을 나란히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전통이라는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을 지켜온 두 분의 희노애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민들과 함께 듣는 시간이 이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김혜미자 선생님은 한지가 주는 섬세함과 따뜻함을 이야기하며 자연 재료가 지닌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소병진 선생님 역시 나무가 주는 단단한 구조와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를 설명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 온 나무가 지닌 내적 힘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의 작업은 단지 전통 공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지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살아있는 예술'이었다. 김혜미자 선생님은 한지를, 소병진 선생님은 나무를 다루며 오직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그저 손끝의 기술이 아니다. 기술과 손재주를 넘어 전통을 지키겠다는 신념이자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이 깃들인 정신의 산물이다. 또한 이 두분을 통해 전통이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의 유물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사실도 새삼 상기하게 되었다. 유홍준 교수는 전통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전통은 그저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며, 그 안에 미래를 여는 길이 있다." 고. 하지만 우리는 흔히 전통을 ‘옛것’으로만 여기곤 한다. 그러나 전통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말처럼 단절된 과거의 흔적도 아니다. 전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우리 삶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더해주는 힘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전통을 고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그 안에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인간의 기쁨과 슬픔이 응축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로 자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전통을 그냥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전통'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전통을 단순히 박제화하지 않고,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레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이 살아있는 유산으로 우리와 함께 성장하고 시대를 아우르는 힘을 가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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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1 19:16

만경강은 오늘도 흐른다

펄 벅,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그리고 한강! 얼마 전 꿈에 그리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나라 문학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석하기 어렵고, 우리말의 맛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워 노벨문학상은 우리끼리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사그라들기 일쑤였는데,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놀라고 감격스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한강 작가의 소식을 듣고 생뚱맞게도 만경강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한강을 통해 만경강이 떠오르는 건 작금의 우리지역 문화의 힘이 못내 맘에 들지 않는 극성스러운 전북인이라서 그런가보다. 만경강은 남한에서 6번째로 긴 강이다. 장수 팔공산 자락에서 발원한 금강과 섬진강이 여러 지역을 지나 서해로 남해로 흐르고, 남원 봉화산에서 발원한 남천은 임천과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지만, 만경강은 오롯이 전북에서 발원하여 전북의 소하천을 한데 모아 새만금을 통해 서해로 흘러가는 전북의 대동맥이다. 다행히 4대강 사업에서는 비껴나갔지만, 일제강점기 인공제방을 쌓고 구불구불 흐르던 강을 반듯하게 만들면서 수탈의 역사와 함께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만경강이라는 이름도 일제강점기에 처음 생겨났으니, 이중환의 택지리에는 사탄(沙灘),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사수강(泗水江), 동국여지승람에는 고산천을 안천(雁川), 전주천을 남천(南川), 하류를 신창진(新倉津)으로 불렀다. 또한 대동여지도에는 삼천과 합류한 전주천을 횡탄(橫灘)으로 기록하고 있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물이 보다 빠르게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만경강유역에 기록된 10여 개의 포구와 나루터는 강을 따라 얼마나 많은 물자가 오고갔는지를 짐작케 한다. 만경강의 역사를 굽어굽어 올라가면 4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만경강은 전북의 역사 뿐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에서도 굵직한 획을 남기고 있다. 우리민족의 근간을 이룬 농업은 청동기시대 수전농경이 발달하면서 본격화되는데, 청동기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밀집된 곳이 바로 만경강유역이다. 농자천하지대본, 전북의 뿌리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음이 여러 유적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전북혁신도시 일대는 고조선 준왕이 내려와 마한이 시작한 곳이며, 청동기 제작기술이 발전하고 신소재인 철(鐵)이 등장하여 초기철기문화를 화려하게 꽂피운 곳이다. 이후 마한세력은 전주 탄소산단부터 완주 수계리와 상운리 일원에 1,400여기 이상의 주거지와 수백여기의 고분군을 조성하면서 거대한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백제의 고도인 금마 역시 만경강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으며, 견훤은 만경강을 중국과 소통하는 관문으로 삼았다. 조선에서는 태조 이성계의 고향 전주에 흐르는 강을 한(漢)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고향에 흘렀던 사수(泗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만경강처럼 고대역사가 지속적으로 중심권역을 형성하면서 발전한 곳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만경강의 역사를 담아내는 노력을 우리는 얼마나 했던가? 목천포에 있는 만경강문화관에 만경강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지만, 대부분 수탈의 역사이다. 만경강 역사 4만년 가운데 수탈의 역사 40년은 0.001%이다. 우리는 99.999%의 찬란한 만경강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 더 늦기전에 만경강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 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를 희망해 본다. 오늘도 흐르는 만경강처럼, 그 눈부신 역사처럼, 하나 되어 나가는 힘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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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4 16:39

노벨문학상 보유국의 품격과 할 일

한강의 시선은 깊다. 그는 동시대의 아픔, 가까운 지난 시대의 아픔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여느 작가들과는 그 결을 조금 달리한다. 그의 시선이 남달리 깊다는 것은 곧 그가 견뎌오고 있는 시대의 아픔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드러낸다. 역사적 참상을 전달하되 그 참상의 외면에 집착하거나 분노하고 호소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참상의 내면, 어찌하여 일이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는지에 대하여 그는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며 거기 연루된 모든 인간 군상들의 내면 그 깊은 속을 더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희생자들, 희생당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곡진하게 드러낸다. 그가 보내는 애도의 시선은 그래서 누구보다 깊고 간절하다. 애도의 우물이 있다면 그가 마침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그 우물의 맨 밑바닥에 잠겨있는 눈물 한 방울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우리 문학이 지난 몇십 년 간 이룩해온 빛나는 리얼리즘의 성취를 넘어선다. 그런 점에서 4.3이나 광주를 이야기할 때 그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우리는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에 빠져 있는 작가가 아니다. 좌와 우의 상호 정당성 따위를 논하지 않고도 우리가 들여다 봐야 할 진실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그의 문장들은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만든 이 세상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연약한가? 이 유리그릇같은 세상에 우연히 찾아오는 폭력의 유혹들은 얼마나 강렬하고 치명적인 것인가를 말한다. 물론 그의 작품들이 모두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입은 인간들을 그린다. 그 인간들은 때로 일그러진 욕망에 사로잡혀있기도 하고 물리적 장애에 직면해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일상의 이면에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 상처들이 존재하는지 그는 천착한다. 그리고 그 연약한 존재들의 곁에 서서 그 목소리를, 눈길을 받아내려 한다. 어떻게 하면 그 아픈 존재들의 아우성을 더 정확하게 받아 그려낼 수 있을까가 그의 필생의 고민인 듯 보인다. 이런 그가 큰 상을 받았다. 그가 받은 큰 상은 그래서 한국문학의 경사를 넘어선 하나의 거대한 진보이다. 당연히 이 기구한 근현대사를 견디고 있는 한민족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이 더 안타깝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무지, 예술의 본질과 그 효용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대놓고 드러내는 이들의 발호가 지금도 심심찮게 이어진다.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를 못 벗어나는 이들, 좌와 우, 가해와 피해, 진보와 보수의 진영 놀음에 갇힌 저 외눈박이들이 참으로 처량해 보인다. 이런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런 몰상식의 어법들을 그냥 간과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바탕에는 문학, 문화예술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자행되어 온 출판산업진흥이나 학교문화예술 강사들에 대한 지원금 삭감 움직임에 개탄한다. 이게 다 우리 시대의 문학, 연극, 영화 등 거의 대부분의 예술 행위가 좌파들의 놀이터라는 인식, 그 뿌리깊은 피해의식과 선입견 탓이다. 이런 생각이 이어지면 아무리 빛나는 경사도 그 빛이 바랠 수 있다. 예술을 지원하고 그 토양을 장기적으로 비옥하게 만들 사명을 지닌 정부 기관 관계자들의 맹렬한 자기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라의 품격과 할 일을 생각할 때이다. 곽병창 극작가·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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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8 19:29

가치지향에 대한 탐구로 지속 가능 소통구조 마련

지난 10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가 선정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출판계·서점가·공공도서관 등 관련 업계는 연일 밀려드는 주문과 문의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이기도 할 것이다. 근자에 들어서 스포츠 분야에서는 물론 음악, 영화 등 세계무대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생산해 내고 있는 가운데 문학 분야까지 합류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웅비하는 자긍심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에 대해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의 비극을 인류의 경험으로 승화시킨 점과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인한 표현을 담고 있다는 점에 대해 높게 평했다. 사이토 마리코는 최대위기에도 인간 존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찬평했다. 이렇듯 한강 작가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인간에 가해진 폭력에 천착하며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유진오닐의 말을 인용하며 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아닌 인간과 신의 대화여야 한다며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는 한강 작가의 문학관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가치지향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 세계에 대한 관심은 또 하나의 상수로서 작용한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점도 말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지구의 지배종인 인류를 위해 존재함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당대의 사회문화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지향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창작 작업을 하는 분야에서의 작품 활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스토리를 추상화시키고 그 패턴을 찾아 연결시키면서 하나의 통섭적 사고를 통해 수행하는 방법이 지배적이다. 이는 동일한 생각일지라도 각 개별자가 가진 역량에 따라, 또는 관심분야에 따라 문학, 건축, 미술, 무용, 음악 등으로 표현되며 각 분야에서 그들이 가진 메커니즘을 통해 구현된다. 즉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신이 가진 경험치나 능력치를 통해 표현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관에 대한 깊은 고민은 개별자의 능력과 경험보다는 인류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전제되었을 때 훨씬 가치롭게 구현될 것이다. 우리는 시대와 인류의 마음을 캐내야 비로소 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소설가는 글로, 가수는 노래로, 화가는 그림으로, 배우는 몸짓과 표정으로, 연주가는 악기로 대중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각각의 표현법은 달라도 인류 보편적 삶과 가치지향은 어쩌면 같은 곳을 향해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분야든 유행과 트랜드만을 쫓다 보면 대중의 찰라적 요구와 관심은 충족될지라도 이는 지속 가능한 가치지향을 추구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실험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며 많은 에너지를 쏟아 도전을 지속할 필요성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방향이 본질적으로 자기복제는 아닌지, 어떠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지속적으로 나가야 할 방향인지에 대한 자기검열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를 상승시키는 작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복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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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1 18:21

연결, 협력, 확장의 학교문화예술교육

우리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 문화, 일상 모두가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교육이다. 특히 예술교육이다. 우리의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학교에서 예술교육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초등학교까지는 필수 과목인 음악과 미술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선택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학생들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창의력을 키우고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감수성을 키우고 자기표현의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하게 그 시기를 보내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예술교육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결과 예술이 가진 본질적 가치가 학교 교육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예술은 그저 선택 가능한 과목일 뿐이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예술강사지원사업을 운영해 왔다. 이 사업은 학교 현장에서 예술 전문성이 부족한 교사를 대신해 전문 예술가들이 강사로 참여해 예술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미술과 음악뿐만 아니라 무용, 연극, 공예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들어 예술강사지원사업의 예산이 대폭 축소되었다. 2023년 예산은 574억 원이었으나, 2024년에는 절반 수준인 287억 원으로 줄어들며 강사료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의 5,000여 명의 예술강사들이 담당하던 수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대로 가면 예술가들의 일자리는 물론 학생들이 양질의 예술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될 상황이다. 예술교육은 단순히 성적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예술 과정을 통해 감정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예산 삭감으로 이러한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정부와 지자체가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예산을 재검토해야 할 때이다. 예술강사들이 공교육 내에서 예술교육 강화를 목표로 노력해온 만큼,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교육의 질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생계 문제를 넘어 미래 세대의 창의성과 문화적 역량을 위해 기성세대가 책임을 다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이슈를 넘어서, 지역사회가 함께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시도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 예술가들과 협력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여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창의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축적된 예술강사들의 경험과 역량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단순한 교과목이 아니다. 교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육이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결되고 학교와 예술가들이 함께 협력하여 학생들에게 더 넓고 깊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예술강사지원사업을 비롯한 여러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지역과 함께 지혜로운 대안을 만들어보자.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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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4 17:52

유적공원의 아우성!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서부신시가지 일대는 마전들이 넓게 펼쳐진 한적한 도외지역으로 황방산 자락에 막혀 길도 외통수였고, 시내버스 종점이 있던 곳이었다. 마전마을을 가려면 전주천을 넘어 들어가야 했는데, 비가 많이 오면 마전 일대에 사는 친구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먼저 집에 가곤했다. 수업 몇 시간 안하고 일찍 가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마전이 서부신시가지 개발로 말 그대로 천지개벽했다. 그 과정에서 전주의 고대 역사 한 페이지가 새롭게 쓰여졌으니, 바로 마전 고분군이다. 구릉의 능선을 따라 직경 20m 내외의 고분 5기가 줄지어 축조된 마전고분군은 경주의 대릉원과 같은 전주의 상징적인 유적이다. 무덤이 만들어진 5~6세기는 고구려에서 장수왕과 문자왕이 한반도 역사상 최대 영토를 일군 때이며,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한 후 동성왕과 무령왕이 백제중흥을 도모했던 시기이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마전고분이 당연히 백제 무덤으로 생각되지만, 고분 안에서 출토된 유물과 다양한 형식의 무덤은 백제가 전주 일대를 직접 통치하기 이전, 마한(馬韓)의 문화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마전고분군은 마한에서 백제로 넘어가는 우리지역 고대문화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렇게 중요한 유적이 발굴되자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지만, 신시가지 개발에 밀려 현지보존은 불가하였고, 이전복원이 결정되었다. 마전고분군을 이전해 놓은 곳이 바로 황강서원 옆에 조성된 문학대공원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현지보존하거나 이전복원한 유적공원이 제법 있다. 전주 송천동 자이아파트 앞에 위치한 송천어린이공원에는 만경강유역에서 처음으로 마한의 대규모 마을이 발굴되어 유적의 일부를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전북혁신도시 농업과학원 앞에 조성된 는들근린공원에도 혁신도시에서 발굴된 초기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찬란했던 문화유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보고자 공원을 찾아 간다면, 십중팔구는 유적을 제대로 분간조차 할 수도 없으며, 찾았다 하더라도 볼썽사나운 모습만 마주할 것이다. 하나같이 데크는 깨져 있고, 유적 안내판은 여기저기 파손되어 있으며, 사진은 색이 바래 있다. 유구를 보호하기 위해 씌워 놓은 유리는 부옇게 변해 내부를 볼 수도 없고, 공원(公園)이 아닌 공원(恐園)은 혹여 아이들이 다칠까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수백수천 년 전의 유적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드물고, 또 유적을 찾아내어 발굴하기도 정말 어렵다. 하물며 그 역사적 중요성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랴!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빛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상당수 유적공원은 설계된 지 족히 20년이 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금, 20년 전의 컨셉은 이제 낯설기만 하다. 물론 가끔씩 정비를 하고 있지만, 20년 전 설계 그대로 복구하는 것에 급급하지 유적을 활용하려는 새로운 방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주시 홈페이지에는 지역특색을 반영한 문화관광콘텐츠를 시대흐름에 맞게 산업화하여 경제발전의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고 적혀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죽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나들이도 가고, 동네 행사도 하고,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해서 모두가 같이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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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7 17:01

급변하는 시대, 시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길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뿐만 아니라 변화의 양상도 아주 다양해졌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더 빠르게 변화하여 미래에는 어떠한 변화에 발맞추어야 할지 고민한다, 반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서 유의미한 존재로 남아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1990년대를 전후로 PC 운영체제가 생겨났고 이후 인터넷, 윈도, 마우스 등의 낯선 장치와 도구들의 발명으로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첨단문명의 이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날마다 속도전을 치르며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야후의 검색엔진은 구글의 등장으로 무너졌고 이후 스마트폰,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 SNS, 인공지능 등이 우리 곁에 왔다. 농경사회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신기술과 신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전광석화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자동차,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 화성 식민지 건설을 꿈꾸게 하였다. 혹자는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시대에 대처할 방안으로 변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에너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형태를 바꿀 뿐 창조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분야에서 보존되는 에너지처럼 변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것에 몰입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분야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를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분야는 아마도 인류가 지속하는 한 유효하고 불변할 것이다. 인간 본성은 몇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고대철학을 현재에도 유의미한 대상으로서 탐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예술 분야를 깊이 들여다보면 특정 분야의 바이블 같은 텍스트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악곡, 기교, 창법을 토대로 그 기법이나 텍스트에 집중한다면 새로운 창작물이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을 할 때도 그 이상의 새로운 창작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도외시하고 동시대적 시류에 편승한 기법이나 유행에 몰입한다면 세대를 잇는 지속 가능한 명작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본과 전통적 텍스트에 집중할 때 우리는 한발 더 내디딜 수 있는 탄탄한 작품을 생산하여 미래에도 자연 도태되지 않을 명작으로 인류 문화에 풍요로움을 더할 것이다. 역사를 통해 자연 도태되지 않고 지금까지 인류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존재로 기능해 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실재한 대체 불가한 대상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인류 보편의 감성과 존재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들에 인류는 환호하고 관심을 갖는다. 인간 보편의 본성은 인종과 민족을 넘어 인류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문학, 미술, 음악, 영화분야 등에서 세계적인 명작들이 회자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 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으나 고유문화의 토종인자는 대체 불가한 유의미한 존재로 기능하고 있다. 억겁세월을 차곡차곡 쌓아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실재하는 문화전통의 텍스트들은 미래 시대에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최고의 자산으로 작동할 것이다. /노복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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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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