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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공감으로부터 시작된 기획, 공동체와 함께 자라는 커뮤니티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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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특정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커뮤니티 아트를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공감’이다. 필자 역시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 어르신들을 만나기 이전에는 ‘노인은 이런 활동을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선입견으로 기획을 시작한 바 있다. 이는 경험하지 않은 대상을 정형화하는 대표적인 오류로 실제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정되어야 할 접근이었다.

 만약 마을에서 먼저 벽화를 요청하지 않았고, 벽화를 꺼려했던 예술가들이 마을의 요구에 맞춰 기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았다면, 이전에 매스컴에서 접했던 타 마을의 예술적 성과를 마을에 그대로 적용한 성과 중심의 단발적 프로젝트로 귀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화예술의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예술을 통해 확장하는 문화민주화(文化民主化)를 실현하는 것으로도 의미는 있겠지만, 주민이 예술의 능동적 창작자로 자리매김하는 문화민주주의(文化民主主義)로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기획자가 자신의 기획만을 고수하고 공동체에 대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과 위주의 프로젝트를 이끌고자 하였다면, 용평마을에서 어르신들이 보여준 문화예술에 대한 자율성과 창의성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획의 전환점은 종종 작은 순간, 찰나에서 시작된다. 첫해에는 “팔십 평생 붓을 처음 잡아봤다” 는 어르신들이 개별젹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인상 깊었고, 두 해째에는 그림들이 점차 서사성를 보이며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어르신, 우리만 보기 아깝네요. 어디 김제회관 하나 빌려 전시회라도 열까요?라 칭찬하는 필자의 말에 ”우리라고 전주에서 전시 못혀?“라고 웃으며 답한 어르신의 말은 다음 해 전시 기획의 씨앗이 되었다. 계획으로만 염두에 두었던 전시는 어느 기회를 만나자 실제로 실현 되었고, 방바닥에서 그린 그림이 전시장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어르신들은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내일 모레 죽는 날 받아 놨다” 고 말하던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꿈들이 서서히 피어나게 되었다. 

무언가를 가능하도록 이끄는 일은 참여 구성원인 어르신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획자는 프로젝트에 적절한 전문 예술가를 연결하고, 예술가들이 금전적 보상 외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소명과 비전을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언젠가 함께 하면 좋겠다”는 한마디에서 시작된 인연은 “어느 날 눈 떠보니 광활에 있더라”라는 고백으로 이어질 만큼 예술가 스스로 공동체에 마음이 묶이며 그 일부가 되어간다.

시간과 함께 축적된 공동체에 대한 이해는 예술가로 하여금 ‘공동체와 상호 교류하는 기획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으며 자문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예술가인 우리가 공동체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예술이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주체화하는 데 어떤 기여를 줄 수 있는가”로 자리 잡았다.  

공감에서 시작된 기획은 공동체의 삶 속에서 자라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낸다. 새로 배우는 것이 두렵다는 어르신들의 일상은 달라지고 어르신들의 내면에는 변화를 받아들일 기초가 세워지고 있다.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누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그 질문이 진심으로 시작되는 순간, 커뮤니티 아트는 비로소 사람과 삶을 물들이는 예술이 된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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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커뮤니티 아트 #상호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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