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시인)
며칠 후면 다시 설이다.
요즘은 양력을 쇠는 집안도 있고 좀 귀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시피, 큰 명절인 설을 맞는 예전의 마음과 모습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객쩍은 노릇일 것이다. 흩어진 핏줄들이 큰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덕담을 주고받는 정겨움의 이면에는 귀성으로 주어진 연휴를 공일삼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여피족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니 말이다. 교통난을 구실로 역귀성 하는 가족도 부쩍 눈에 띄는 걸로 봐선 명절도 이미 여러모로 시류에 점염되어
가고 있음을 굳이 역설할 순 없음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맘때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철새들처럼 삶의 어딘가에 쌀자루마냥 놓여 있던 고향을 떠올리며 잠간 생업을 놓는다.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쯤 저쯤 막히는 길쯤은 넉넉히 돌 줄도 알며 빠듯한 가계 한 귀 나마 쪼개어 들고 찾아온다. 오래 겨웠던 그 어떤 허물도 잘름잘름 앞세울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모성적인 명절을 지키려는 우리네 삶의 흔적들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설은 객지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기 보다 아직 거기 남아있는 이들에게서 한결 소담한 모습을 지닐지도 모른다. 섣달그믐, 헛간에 까지 구석구석 내걸던 등불은 꺼진지 이미 오랬다. 여럿이 돼지를 짜 잡고 따로 설빔을 마련하는 예는 눈동냥하기 여간하지 않게 됐지만 대목장을 받으러 가는 품이나 대문 밖까지 비질자국을 놓는 모습은 여전히 눈에 익다. 으레 그래왔듯 떡시루를 얹고 산적을 꿰는 정성이 어디 조상들만을 위한 것이겠는가. 아직은 흔한 그런 모습에 고물처럼 묻어있는 건 필경 기다림과 같은 것일 것이다. 자식형제들도 과객일 수밖에 없는 이만한 세월에 모처럼 모여 장만한 것들을 나누고 남은 건 딸려 보내기도 하는 마음이 기다리는 자의 설이다. 밤새 컴퓨터에 매달리는 아이들이야 격세지탄이라 치고, 타분한 윷가락 대신 화투장을 두드린들 뭐 어떤가. 모든 것이 바랜다하더라도 기다림이 남아있는 한 마당 쓰는 소리가 들리고 까치는 날아와 울 것이다.
꼭이 그렇게 받은 날이 아니어도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훔치고 싶은 곳들도 있다.
일전에 정읍 어딘가에 있는 산외라는 곳엘 간 적이 있다. 높고 낮은 산들을 비집은 길, 한꺼번에 내린 눈을 치우기엔 햇발이 좀 짧은 산길 깊은 곳에 엎딘 여느 마을이었다. 입소문에 의하면 질 좋은 한우고기를 싼 값에 떼 주고 즉석에서 요리도 해주는 곳이었는데 벽지임에도 찾는 이들이 의외였다. 집어보니 그만한 육질은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씹을 수 있는 것이어서 가격논리 만으로 그 곳까지 찾아든 사람들을 돌려세우기엔 뭔가 서먹한 구석이 있었다. 살점만이 아니라 숲가에 묻은 잔설과 퀭한 산바람을 함께 집어보고 싶었거나 어릴 적 침침한 불빛을 얹혀 달아주던 동네 푸줏간을 떠올리며 길을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치제가 시행된 후, 여타의 지역들이 앞 다투는 일 가운데 하나가 <축제> 라 불리는 놀이문화 짓기이다. 다분히 인위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애쓴 흔적이 엿보이기도 하는 그것들에게나마 한 순간 위안받을 수 있다는 건 다행이자 씁쓸함 일 것이다. 다만 일과성의 것이 아닌 시골장터 같은 모습으로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 그것은 착각일까? 축제>
기다림과 돌아옴이 속속들이 버물려 맛 들리던 명절처럼 나날이 낯설어가는 우리네 기억들이 잠시나마 이물 없이 들러오고픈 그런 것들이 점점 더 그리워진다.
/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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