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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역사공부, 진정한 미래학 - 이영호

이영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얼마 전 <제3의 물결> 로 잘 알려진 미국의 앨빈 토플러 초청강연이 있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개 강연 후 미래학자는 늘 이야기 하던 ‘미래에 집중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과거에 매이지 말라’ 그간의 자기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그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확신까지 강조하여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위압적인 언설은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과거를 벗어던질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들렸고 나아가 과거에 대한 관심까지도 가로막는 지침처럼 들렸다. 무책임한 미래학자의 충고는 자칫 우리들의 과거 돌아보기, 진실-역사공부마저 무가치한 것으로 내쳐지고 있었다.

 

우리의 역사 공부는 남아돌아갈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다. 식민지사관을 떨쳐 내기 시작한 80-90년대의 우리사회와 학계의 역사공부는 말 그대로 피나는 싸움이었다. 어렵사리 시작된 과거사 해명이 과거 세력의 방해로 아직도 종종걸음이다. 본격적인 20년 전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도 이제 시작이다. 미진한 부분이 많다. 5.18 민중항쟁의 역사를 그르치려는 군부쿠데타의 과거 세력들이 온존하고 있다. 흐려진 역사는 아이러니의 현실을 생산한다.

 

용서하려는 사람은 모든 증오를 극복하고 용서하려는데 마땅히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 없다는 것이다. 요식행위와 같은 재판은 끝이 났고 이제는 죄책도 용서 받을 일도 없이 대적죄인들은 대낮에 행보하고 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독제가 저질은 범죄적 역사 역시, 용서받을 자를 찾을 수 없다. 피맺힌 울음을 울고 있는 무죄한 피해자들은 용서하려는데 용서 받을 자를 도대체 찾을 수 없다. 현대사의 죄인들에게 내린 요식행위의 감옥살이는 ‘하늘의 용서’까지 받게 한 꼴이 되어 ‘신의 은총’ 속에서 날마다 행복을 누리게 하지 않았나. 용서할 마음이 준비된 피해자들! 한에 한이 맺히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 현대사가 끝내지 못한 또 다른 역사적 죄악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영화 <밀양> 에서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씨가 토해낸 부르짖음이다.

 

일본의 지식인들과 일본정부는 아직도 그들의 반인륜적 과거역사에 대하여 한치의 죄책도 뉘우침 없이 적반하장의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록보존의 왕국이다. 모든 기록을 파악하고 있는 일본은 바로 자신들의 이 과거사로 인하여 죽을병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화살을 자신의 아킬레스 근에 깊숙이 꽂았다. 그들의 아킬레스 근은 바로 그들 문화의 골수인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자신을 숨기는 본성을 지닌다. 그래서 수치심을 감추려고 온갖 수치스런 일을 저지르고 오히려 당당해진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는 수치심은 타인을 제거하며 결국 자신을 제거하게 된다. 사회심리적 악순환의 원형이다. 자신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악랄했던 과거를 뉘우칠 수 없다면 그들 자신의 문화적 원형인 수치심으로 인한 자기파괴와 <일본침몰> 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용서받을 준비가 된 세상에서 용서하는 세상이 창조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발전 원동력이다. 반인간적 과거사에 연루된 세력들이 진정한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될 때 우리는 희망이 예상되는 정치사회 역사의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있을 것이다. 가라지를 뽑지 못한 밭에서는 만족할 추수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 역사 현실이다.

 

미래학자의 반절만의 진실교훈보다, 불편하지만 드러낸 진실을 목격해야하는 과거역사-공부야말로 우리사회를 건강하고 편안하게 빚어가는 진정한 미래학이 아닐 수 없다.

 

/이영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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