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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봄은 봄인데 봄이 아니다 - 임명진

임명진(전북민예총 회장·전북대 교수)

경칩(驚蟄)이 지나면서 날로 봄볕이 다냥해지고 있다. 머잖아 움과 싹이 돋아나고 꽃들도 다투어 피어나리라. 농부들은 농사 준비로 분주하고 학생들은 새 학년 설계로 바쁘다. 봄을 희망의 계절이라 하는 데에는 그 분주함 속에 희망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과 희망! 참 잘 어울리는 조합임에 틀림없다. 뉘라서 이 봄에 희망을 품지 않으랴?

 

하지만,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쿠나"(단가 [사철가] 중에서)라는, 봄철에 더 진하게 인생무상을 느낀다는 사설도 있으니, 봄은 단순히 희망만을 안겨주는 계절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역시 봄이 그만큼 더욱 희망찬 계절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걸로 풀이된다. 또 조선 시대에 '추옥(秋獄)'이라는 형사 제도가 있었다 한다. 봄철에 사형이 확정되었을지라도 그 처형을 낙엽 지는 가을로 미루어 시행하는 걸 가리킨다는데, 비록 사형수일지라도 사람의 생명을 자연의 순환과 질서에 배치되지 않게 처리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제도라 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에 있어 봄은 불가피한 절망일망정 연기할 수 있다면 연기할 만큼 그렇게 희망찬 계절이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그런 봄이 왔다. 이 봄에 우리 모두 새로운 희망으로 올 한해를 설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농부는 한 해 농사에, 학생은 새 학년 학업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이 봄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국가 차원으로 시선을 돌리면 새 정부가 이 초봄에 출범하였으니 여러모로 희망이 넘쳐나야 할 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부들은 올봄 들어 더욱 영농의욕을 잃고 있고 학생들은 교육정책 변화에 더욱 불안에 떨고 있다. 연일 욱일승천하는 유가와 국제 곡물가로 농자재와 비료와 사료 값이 연달아 치솟고 있어 이 봄에 농민들은 쟁기질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춘광에 언 땅은 녹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쟁기보습은 아직도 녹을 못 벗고 있다. 학생들은 당장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한 눈치보기에 바쁜 새 학기를 보내고 있다. 학부모들은 이 봄날에 자녀들의 영어학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부들과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서 희망 대신에 의욕상실과 불안이 늘어나는 봄철이다.

 

농민의 생활은 우리의 뿌리이고 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따라서 이들을 의욕상실과 불안으로 내모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고 우리의 미래를 불안의 시대로 조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실용'을 앞세운 무한경쟁으로는 농민들의 사기와 학생들의 희망을 북돋을 수 없다. 오히려 '농사 지어봤자지'하는 자조나 '자식들 미래를 어떻게 한다지' 하는 불안을 더 키울 것이다. 더구나 그 '무한경쟁'이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을 뒷전으로 내몰 경우, 소득 양극화의 심화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를 자본의 맹수만 살아남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할 것이다.

 

행여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일말의 불안이 '봄의 희망' 속에 가려있는 것 같다. 이를 봄의 시샘만으로 치부할 수도 없어 언짢다. 그래선지 훈풍이 감도는 이 봄 날, 자연의 섭리나 인생무상을 노래한 선조들의 여유로움이 일면 부럽기도 하다.

 

/임명진(전북민예총 회장·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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