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진(전북대 교수·전북민예총 회장)
무자(戊子)년 쥐의 해에 소 이야기를 하려하니, 쥐새끼처럼 찍찍거려야 할지 황소처럼 영각을 해대야 할지, 어찌얄지 모르겠다. 만물에는 각기 고유의 덕목이 있으니 소라서 예외일 수 없다. 쥐라는 놈도 밤새 바스락거리면서 늘 바지런하게 살라는 교훈을 주는데 항차 소에 관해서랴?
여러 동물 가운데 사람과 가깝기로는 개나 소가 비견할 것이되, 개보다 소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개의 충성보다는 소의 우직함을 높이 사리라. 춘원(春園)의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자다. 부처요 성자다"(수필 「牛德頌」중)는 언사에서는 다소의 과장이 느껴지지도 하지만, 또 그의 "사람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가 창생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과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같은 글)이라는 대목은 퍽 공감을 자아낸다.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어라''소더러 한 말은 안 나도 처더러 한 말은 난다' 같은 속담에서도, 또 우리나라 곳곳에 '소 타령' '소 노래''소몰이 노래''소모는 소리' 등의 민요가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는 데에서도 소의 다양한 덕목을 상고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소의 덕목을 말하기로는 한국의 고전 『三國遺事』 '眞表律師' 편을 따라올 게 없을 것이다. 진표가 계법과 진생(眞?)을 받아 득도한 후 금산사를 창건하고 이내 속리산으로 행하는 도중 우차를 만났는데 소들이 율사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니, 우차 주인이 괴이하게 여겨 율사에게 까닭을 물으니 율사가 답하되 '이 소들은 내가 계법 받은 걸 알고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때문'이라 하니, 주인은 소만도 못한 자신의 신심을 부끄러이 여겨 스스로 머리털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그것. 이쯤이면 사람이 신을 향하여 고등으로 진화하여 소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니 어찌 소를 단순한 짐승으로 간주하랴? 그래서 불교의 십우도(十牛圖)이야기도 이런 '모를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덮을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우덕(牛德)을 찬하는 것은 췌언(贅言)일 뿐이다. 그럼에도 딱 하나만 보태자면 소는 반추(反芻)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비스듬히 누운 채 눈은 반이나 감고 느릿느릿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모습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상가를 닮았다. 위에 들어간 식물(食物)을 게워 다시 씹으면서 이미 행해진 자신의 행위를 다시금 반성하고 그 반성과 더불어 천하의 대소사를 숙고하는 사려 깊은 철학자의 모습이 거기 있다.
그런데 소가 단순히 사람의 먹거리로만 치부되고 마는 요즘, 사상가?종교가는 고사하고 노역의 동반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요즘, 소의 덕목을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우스운 꼴이 되었다. 더구나 쇠고기 파동으로 전국이 요동치는 판국에 우덕 운운하다니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꼴 만도 하다. 그러나 사람이 소를 몰라보고 우습게 보니 소가 고유한 덕목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니 소들 스스로 덕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이다.
유럽이나 미국 소들은 선진국 소답게 그런 포기를 일찌감치 선진적으로 개척해 온 같다. 특히 자국 소를 수십년간 국제간 통상압박의 수단으로 삼아온 나라에서 살아온 미국 소들은, 자신의 살점 뿐만 아니라 뼈까지 약한 나라에 팔아넘기려는 그 끈질김에 질려버려 처음에는 영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웃다가 종내에는 자꾸만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소가 미쳐가고 있는 세상, 남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 소도 우리가 천대하면 미칠 수 있다. 우리 고유종 칡소의 웅숭깊은 영각은 자주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웃지는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가 웃을 일이 없도록 소 같은 반추를 일삼아야 한다.
우선 당장 미국 쇠고기 협상부터 반추(反芻)해야 한다. 이 반추를 제대로 못하면 우리 소들이 우리를 두고 '소만도 못하다'면서 실소(失笑)를 할 것이다.
/임명진(전북대 교수·전북민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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