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영(전주대 교수)
미국 제44대 대선에서 역사상 최초로 흑인 버락 오바마(Barak Hussein Obama)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미국이라는 제국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인들이 지배해 온 사회에서 비록 백인의 피가 섞였지만 흑인의 후손이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미국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말해 준다.
오바마의 당선을 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각이 났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긋지긋했던 전라도 몰매의 역사가 떠올랐다. 영남 정권에 의해 조작된 터무니없는 호남인의 품성론은 비호남인들에게 오랫동안 먹혀들어 갔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런 의식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정치권은 여전하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소위 '고소영 내각'에서 볼 수 있듯이 현 정권은 영남 편중 정권이다. 과거 영남 정권과 다르다면, 영남 출신이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집중된다보니 영남지역과 대립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수도권을 위해 지방을 희생의 제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모든 시대에 모든 사회는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정치적 속죄양 집단을 만들어 냈다. 독일은 유대인, 미국은 흑인, 일본은 조선인, 우리나라는 전라도 사람들을 속죄양으로 삼았다. 모든 문제는 이들 때문이며, 따라서 이들은 차별, 감시, 통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지배자와 속죄양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이다. 모든 사회의 약자들은 식민통치의 대상이었다. 장기간의 통치는 피지배자들의 의식조차 분재처럼 변형시킨다. 그리고 분열시킨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지배자의 생각에 자신을 맞추어가며 적응해왔다. 만일 지배의 부당성에 맞서 저항하면 죽음과 파멸로 내몰리기 때문에 스스로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 사는 길이었다. 살기 위해 서로 분열하고 경쟁해야 했다. 호남인으로서의 의식이 전혀 없는 올림픽 스타들의 부모 또는 조부모의 연고를 내세워 전북인의 쾌거라고 떠들었던 언론의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양극화가 심회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시대에서도 이러한 왜곡된 통치와 의식은 지속되고 있다. 자신이 노동자, 서민이면서도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흉내를 내려고 한다. 본인이 열심히 하면 부자의 대열에 들 것처럼 착각한다. 환란 이후 우리 사회에 널리 펴졌던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로 받아들여졌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왜곡하고 현실의 모순을 은폐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환각제였다. 부자는 가만히 있어도 훨씬 더 부유해지고 그들을 좇던 중산층도 갈수록 서민층으로 전락하고,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서민들은 살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는데 더욱 살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부자 되라는 그 말에 위안을 느끼며 산다. 이 얼마나 허위인가?
과거 알제리 독립운동에 나섰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저작을 통해 식민지 흑인들의 정신적인 분열과 자기 주체성을 상실하고 부정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시하여 동양인들에 내재하고 있는 서구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일갈한다.
우리 지역의 객관적 지위와 조건에 따라 주체성을 가지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나 수도권이 우리의 전범(典範)은 아니다. 호남인은 대한민국의 흑인이었다. 황색이면서도 백인과 동일시하는 정부에 돈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내부적으로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찬영(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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