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엽(필.애드 대표)
피천득은 그의 수필 "조춘"에서 십년이나 입어 정이 든 외투지만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없이 기쁜 일이라고 했다. 우리네 소박한 심성을 생긴 대로 표현한 글이다. 삼월 삼질이 지났는데 봄을 물고 온다던 제비는 강남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봄을 맞이할 수 있을런지 기약이 없다. "TS 엘리엇"은 이런 일들을 짚어 사월을 황무지 같고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가보다. 겨울이 지나 새봄이 오면 만물은 긴 잠에서 깨어나 재생과 부활의 기쁨에 젖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순리이건만 새봄이 왔는데도 새로운 생명을 피워 내지 못하고 깊은 악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우리 사는 세상이 황무지 같고 잔인 하달 수밖에.
아침에 일어나 밝은 태양을 볼 수 있고 별빛 달빛 흐르는 밤을 즐기며 스치는 바람에 향을 맡으면서도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춘궁(春窮)을 겪고 있다. 마음의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다. 서정과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춘궁은 참아서 이겨내면 되고 보릿고개는 허리띄 졸라서 넘으면 된다지만 절망이 끝을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4월이다. 시를 통하여, 그림을 통하여 잃었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춘궁을 통하여 인내의 기쁨을 맛보고 보릿고개를 통하여 절제의 미덕과 여유를 배워야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인고의 아픔을 통하여 행복을 찾아 가는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메테르링크"가 행복을 간직한 파랑새를 머리맡에 숨겨 두었던 것처럼 파랑새는 분명 우리 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천진스러운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머리맡에서 찾은 행복이 곧 우리 것일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
4월은 희망이 있고 생명이 있고 부활을 꿈꾸는 달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려 준 축복이요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을 보라. 자살 이혼 출산으로 계산한 가족통합지수는 OECD나라가운데 꼴찌요 어머니가 공부하란다고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를 법에 신청한 딸이 있는가 하면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권은 이조 사색당쟁의 뺨을 치며 민의의 전당을 격투기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등학교 출신의 한 기업가는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정관계 검찰 경찰 등 내노라 하는 어르신들을 떡 주므르듯 데리고 놀았다. 교육자들은 논문표절과 이념투쟁으로, 연예인들은 끊이지 않은 충격 스캔들로, 산업현장은 막장 정치 투쟁으로, 가치관이 실종되어버린 말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주이야기는 더더욱 빼놓을 수 없다. 18대 총선에서 역대 최고의 치욕을 연출한 지역답게 다시 치루는 재선거판도 역시 역대 최고의 아수라장이다. 빚이 산더미 같다는 전주시가 금쪽같은 외화를 뿌리며 김연아의 눈물 어린 국위선양의 그 현장에서 추태를 벌린 얘기는 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양반의 고장이었던 전주의 추락은 도대체 누가 주도를 했으며 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무슨 일로 하여 추락이 이어질 것인가 걱정 되고 무섭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솔로몬의 지혜마저 무색해질까 겁난다.
아무쪼록 간절히 바라옵건대 우리 모두가 죄인이오니 그리고 죄를 모르고 산 바보이오니 이 모든 일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악몽의 나날들을 까맣게 잊을 수 있는 내일이 되도록 은총을 주소서. 그리하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괴로워한 시인의 마음에 위로를 보내도록 하여 주소서.
/안홍렵(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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