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호(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장)
녹음(綠陰)이 우거진 여름에는 풀벌레가 가득하고 내장산 가을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운 겨울설경이 펼쳐지는 정읍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내장산 국립공원 초입에 남쪽으로 입암산을 내다보고 있는 정읍시 신정동 일대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 한국생명과학연구원 정읍분원,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방사선 융합기술(RFT, Radiation Fusion Technology)을 연계한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주변지역의 토지매입이 진행 중에 있다. 전북도와 정읍시에서 투자한 RFT 실용화 센터가 금년 말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연구소 안에 설립될 예정이다. 연구소에서 얻어지는 연구결과와 새로운 기술이 창업기업이나 기존 산업체에 이전되어, 기업이 실질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마케팅 전략을 기반으로 상용화하는 과정, 대량 생산, 그리고 광고, 판매, 유통 등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한 여러 분야의 성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RFT 실용화 센터는 기술을 이전받은 창업기업이나 기존 산업체가 입주하여 연구원과 함께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incubator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연구소와 기업이 쌍방향으로 긴밀히 협력하고 측정·시험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강소(强小)기업을 일으키는데 꼭 필요한 지원조직이다. 'RFT 비즈니스 밸리 조성 사업'이라고 불리고 있는 첨단 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계획되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유성에서 신탄진으로 향하는 호남고속도로와 국도 주변인 대전광역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려는 연구와 기술개발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던 국내 최초의 대단위 연구단지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이주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28개 출연기관, 15개 국공립기관, 6개 교육기관과 함께 약 900여 개의 기업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초창기의 대덕연구단지는 넓은 들녘에 몇 몇 정부출연연구소와 연구소원을 위한 아파트, 무척이나 넓어 보였던 한가로운 도로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 대전광역시 인구는 약 150만 명이지만, 당시 대전에 거주하던 인구는 50만이 채 안되었다. 외국(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거나, 학위를 취득한 젊은 과학자들을 높은 연봉과 아파트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대덕연구단지에 유치하였지만, 그들의 자녀를 키우는데 필요한 학교와 병원 등 주변 생활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교육 관계자와 함께 학부모의 노력으로 대덕연구단지 내 초·중·고등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대전 시내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연구단지 내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세월이 지나 연구단지가 제 모습을 갖추면서 외부에서 유입되었던 연구원들과 대전지역 주민과 서로 보이지 않는 질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가 확대되고 교통이 편리해 지면서 연구단지와 대전 시내의 구분도 없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대전광역시 안에 살고 있으며, 모든 생활환경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내장산과 입암산으로 둘러싸인 정읍시 신정동 일대에 조성중인 연구소와 첨단 산업단지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지금은 초창기의 대덕연구단지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전략적인 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규모이기에 보다 짧은 기간 내에 완성되리라 생각된다. 대덕연구단지는 정부출연연구소나 대기업 연구소를 중심으로 조성되고 처음부터 기업을 유치하지는 않았지만, 점진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려는 기업이 900여 개나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었다. 정읍 또는 내장/입암 연구단지(가칭) 조성 계획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 보다 더 많은 연구소가 유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기간 동안 많은 연구소들의 연구 활동이 진행된다면, 자연스러운 기업 유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연구소 퇴근시간 무렵,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몰(日沒)을 바라보면서 이 연구단지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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