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전주박물관장)
고려는 통일신라부터 내려온 오랜 불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화려한 미술품을 남겼다.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고려 불화(佛畵: 불교 관련 그림)와 여러 공예품-도자공예, 금속공예, 칠기공예 등이 있다. 특히 공예품들은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되고, 감상용이나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탓에 당시의 사상과 철학, 관습, 사용하는 이의 취향, 장인(匠人)의 감성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려의 대표 공예품인 청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고려 청자에는 불교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푸른 비취를 모방한 유색[釉色: 비색翡色]이 아름답거니와 보살과 동자 등의 형태, 연꽃과 연봉오리와 연꽃 줄기 등의 장식들에서 청자는 불교와 깊게 관련된다. 다양한 불교적 요소로 장식된 세련된 청자들은, 왕실용임을 과시하듯 왕의 무덤에서 속속 출토되었다. 아울러 절터에서도 다량 발굴되었다. 이 발굴품들 중에는 청자로 된 각종 불교 법구와 절의 이름과 용도가 표시된 청자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청자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쯤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 말인 9세기 후반 만들어진 것과 비교하면, 청자의 시작은 중국보다 2천 년 정도 늦다. 그럼에도 고려 청자는 아름다운 색과 형태 등으로 같은 시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매우 갖고 싶어 한 귀중품이었다.
고려 청자의 대표적 가마로 최근 부안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세련된 청자들이 부안에서 대량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종전에 청자 가마로 전남 강진을 우선 꼽았음은 굳이 부인할 필요 없다. 그런데 부안과 강진 청자를 보면, 거리상 꽤 떨어진 두 곳에서는 서로 비슷한 청자를 생산했음을 알게 된다. 아마도 고려시대에 유행한 청자 스타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안 청자와 강진 청자를 구별하는 일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부안 청자가 특별한 것은 그 제작 시기에 있다. 즉, 고려가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강진 청자가 세련기로 진입하는 11세기경부터 부안에서도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안 가마가 문을 닫는 시기는, 고려가 쇠망하기 약 50년 전이다. 이는 고려가 쇠망할 때까지 계속 청자를 제작한 강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래서 강진에서는 완전히 퇴락한 청자들도 대량 발견된다. 이에 비해 부안에서는 고려가 쇠망할 무렵의 청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부안의 장인들은 청자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나보다.
부안 청자는 왕실 청자로서, 귀족 관료의 청자로서, 대 사찰의 청자로서, 그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은근히 뽐낸다.
중국과 일본에서 부러워한 고려 청자. 고려 청자 중에서도 왕실 청자로 우뚝 선 부안 청자. 부안 청자는 강진과 함께 고려 청자의 유행과 변화를 이끌어간 그 시대의 원동력이었다.
고려의 왕실 청자는 부안이 강진과 함께 이룬 한국의 국보, 보물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북에서 고려의 왕실 청자들을 만날 수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고려 왕실 청자들을 모아 6월 1일부터 약 한달 간 전시한다.
/김영원(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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