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
홀로 걷는 숲길,
그 길은 명상의 길이요 사유의 길이며 비움과 텅 빔의 길이다.
숲길은 생명의 존엄과 가치에 눈을 뜨게 하여 공동체 정신을 회복시켜 준다고 숲길재단의 도법스님이 설명한다. 깊이 병든 공동체 정신을 되살려 내는 방법으로 숲길을 처방했으면 좋겠다.
그 숲길에서 우리는 꺼질 듯 무거운 발 거름으로 유월을 걷고 있다. 유월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과 원한을 심어준 통곡의 골짜기다. 250만의 원혼이 59년 세월의 간극을 넘나들고 있는 비극적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막 국상을 치루고 야릇한 마음으로 유월을 맞이했다. 여느 유월과는 감회가 다를 수밖에 없다. 김정일의 핵장난이 끝나지 않은 전쟁을 상기시켜 주는 것도 모자라 그날의 악몽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살림살이의 어려움은 피난살이 부산을 떠올리고도 남을 만하다. 우리는 생각하고 다짐할게 있다. 진정 이 나라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고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세계사적 비극을 부끄러워하자는 다짐을 해야 한다. 너와 내가 아니고 좌와 우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여야 한다.
정치적 포퓨리슴이 싫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돌을 던지지나 않았는지 야릇한 죄책감마저 드는 마음으로 많은 국민들이 국상기간을 지났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는 그래서 결코 최후의 사태가 아니며 중대한 전환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며 미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진면목이요 소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누가 이를 짓밟았는가? 아이러니 하게도 그를 좋아 했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었다고 하면 비약일 런지. 어쨌던 인물을 거부하고 영웅을 부정하는 우리문화의 치부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이 있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개혁주의자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인간적인 결함과 실정을 들춰 내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숨 막힐 듯 답답한 이 유월, 깊은 화평의 숨 쉬며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싱그러운 물줄기 되어 마음과 마음들에 빗발쳐 왔으면 좋겠다. 자연에 순응하듯 넓은 마음으로 모두에게 포근함을 전해주고 서로 서로 양보하며 더부러 살아가는 모습의 유월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임시 국회를 비롯하여 많은 행사와 일들이 한꺼번에 몰리게 된 유월, 우선 정치적인 싸움판이 더욱 거셀 수 있는 유월이지만 만일에 그 묵은 때가 조금도 벗겨지지 않은 몰골을 보인다면 이 나라 이 국민은 구제 받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인 호재로 야당이 더욱 극렬한 야성으로 바뀌는 일이며 예를 들어 DY의 정치적 진로를 두고 지방 정치무대가 난장판으로 두 동강이 나는 일이며 내년으로 닥친 지자체 선거의 발 빠른 과열, 그리고 단순 추모열기로 재연될 수도 있는 사회 갈등과 혼란들이 그렇다. 젊음의 열기와 함성이 성난 고함으로 변질 되고 스스로 몸을 태워 헌신하던 촛불이 불순한 횃불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길만이 길이라 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삶의 희망이 있고 삶의 경이로움이 있다. 홀로 걷는 숲길의 여유 속에서 위대한 유월을 만들어 가자.
/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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