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전북대 영문학과 교수)
신종플루 호들갑에 소리축제마저 추풍낙엽이 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의 가수 수잔나와 우리 심수봉이 함께 엮어갈 이색 무대에 대한 기대도 허한 한숨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 공연 보여주겠다고 외교사절까지 초청했는데 닭 쫓던 견공신세가 되어 그 뒷수습에 지붕 쳐다볼 여유조차 없다. 새로운 축제 장소로 지목되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한옥마을의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으며 지역 문화예술계도 때 아닌 찬바람에 진짜 감기 조심해야 할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백신조차 없는 홍두깨 독감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을 축제 관계자들에 비하랴! 시작 자체가 늦어진데다가 예산확보마저 매끄럽지 못해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소리축제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밤을 낮 삼아 준비해온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그 참담함을 생각하면 서운하다거나 유감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다. 더구나 이미 맺은 수많은 계약의 해지 및 정산 등 미묘하고 선례도 없는 일을 아무런 전망도 없이 추슬러야 하는 번잡함이라니!
그렇다고 도깨비 같은 신종플루를 탓하거나 방역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급하게 위협공문을 내려 보낸 정부를 비난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다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저앉아 탄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이번의 '해프닝'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을 지혜를 차분히 모아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요구되는 것이 조직의 안정화이다. 공연중심 축제의 경우 양질의 프로그램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지속적인 홍보와 마케팅이다. 이는 안정적인 조직을 기반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올 소리축제에 대해 염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시간에 쫓기면 수준 높은 연주자들도 섭외할 수 없고 최고의 홍보수단인 입소문을 기대할 여지도 없다. 더구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조직의 불안정속에서는 축제 성패의 핵심고리라 할 수 있는 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열정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올해 준비과정의 소중한 체험, 그 실행착오까지를 계승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롭게 조직 꾸리느라 다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축제 조직원들이 어렵게 구축한 소중한 인적네트워크도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견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번 일이 도로(徒勞)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소리축제 자체가 소중해서 만이 아니다. 축제가 결국 지역의 문화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면 이를 이끌 전문인력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소리축제가 이 지역 소리문화 활성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면 올해의 경험이 결코 '없었던 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누가 참신하고 독창적인 공연기획을 무릅쓰겠는가? 어느 기획자나 연주가가 아무런 보상 없이 그 위험만 감수하려 하겠는가?
수개월동안 밤잠 설치며 연습해오고도 아직 대사 한마디 치지 못한 배우를 무대에서 내려오게 할 수는 없다. 기왕에 기회를 다시 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장기적 전망 속에서 내년을 준비할 수 있으며 뒤치다꺼리 하느라 진이 빠진 이들의 지친 마음에 작으나마 위로의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실망으로 축 늘어진 지역주민들의 어깨에도 희망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것이다.
해괴망측한 신종플루와 이에 대한 당국의 섣부른 조처가, 우리 소중한 소리축제에 오히려 탄탄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백신으로 기여하는 반전의 묘미, 이 가을에 기대해 본다!
/이종민(전북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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