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영(변호사·참여자치연대 대표)
요즘 전라북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내년 예산편성에 앞서 설문조사를 하거나 전문가 의견청취, 예산학교, 공청회를 여는 등 여러 방법으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 수준 높은 주민 참여형 예산제도 시행을 위해 이제는 주민이 직접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내실 있게 운영할 때다.
주민 참여 예산제는 주민들이 낸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집행부와 의회에만 맡겨두지 않고 주민들이 예산 편성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제도다. 수요자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직접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의 꽃이라 불린다.
이 제도는 브라질에서 처음 실시된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광주광역시 북구가 2003년 처음 도입하였다. 참여정부 당시 지방예산 편성시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방재정법에 근거를 마련한 이래 우리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주민이 직접 참여해서 결정하는 것은 의회의 심의, 의결권과의 충돌, 인기영합적인 예산편성, 주민간의 갈등 유발, 효율적인 예산 편성을 저해한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주민의 참여를 확대하면서도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안을 찾아 시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그간 시행해 온 주민참여형 예산제도는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참여 구조가 부족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내 대부분 지자체들이 인터넷 설문조사, 전문가 의견청취, 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예산편성에 반영하고, 군산시 등 도내 7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것은 나름의 성과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도내 대표적인 지자체인 전주시의 경우 아직도 설명회나 설문조사를 통한 의견수렴 정도이지 주민들 대표가 예산위원으로서 직접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관련 공무원과 협의하여 예산안을 결정하는 주민참여구조가 없고, 관련 조례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에 대해 전주시의 적은 예산 규모, 주민간의 갈등 유발, 주민의 전문성 부족이나 조례 제정이 의회와의 권한 갈등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주민의 직접 참여구조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예산 규모가 적더라도 얼마든지 직접 주민이 참여하는 구조를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예산에 대한 전문성 부족은 예산학교를 통한 교육이나 예산에 대한 정보공개를 함으로써 이를 보완 할 수 있다. 예산순위에 대한 다툼이나 비효율성에 대해서는 시정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 시정 및 예산에 대한 정보공개와 전문적인 지식의 향상, 타협과 조정을 통해 점차 극복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조례 제정도 주민의 의사를 예산 편성과정에 반영하는 것이므로 의회의 예산 심의권, 의결권을 직접 침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보완해 주는 효과가 있다.
작년부터 조례를 제정해 주민참여 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익산시의 경우에 올 9월 초에 있었던 예산학교에서 지난해 예산편성시 시민참여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되었고, 시민참여위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이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비단 익산시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일회성이 아닌 연초부터 꾸준한 예산관련 교육이 필요하고 그럴 때 내실 있는 주민참여가 가능하다.
지방자치나 민주주의는 한 순간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주민의 참여와 훈련을 통해 발전한다.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통로를 만들고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한 자치단체 장과 의회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안호영(변호사·참여자치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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