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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곡우(穀雨) 단상 - 이경재

'곡우에 가뭄이 들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는 속담이 있다. 봄비가 잘 내리는 시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니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뜻이다. 오늘은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다. 24절기 중 6번째로, 청명(淸明)과 입하(立夏)의 중간 쯤에 든다.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담그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옛날엔 부정한 일을 했거나 그런 일을 본 사람이 볍씨를 보지 못하도록 솔가지로 볍씨 담근 가마니를 덮어두는 풍습이 있었다. 한해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마음이 배어 있다.

 

이 무렵은 조기잡이가 성하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기이다.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 떼가 북상해 충남 격렬비열도 근처까지 올라와 조기잡이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잡히는 조기를 특별히 '곡우살이'라 한다. 살은 적지만 연하고 맛이 좋아 상품으로 친다.

 

전남·경남북·강원지역에서는 깊은 산속으로 곡우 물을 먹으러 가는 풍속이 있다. 자작나무·박달나무·산다래나무 등에 상처를 내고 통을 달아 며칠씩 수액을 받아두었다가 마신다. 수액이 나오는 원리는 일교차에 있다. 밤새 줄기 속을 채운 물이 낮이 돼 기온이 10℃ 이상 올라가면 부피가 팽창해 밖으로 나오려는 성질을 갖는데 이것이 수액이다.

 

들녁의 보리밭이 어느새 푸르러 있다. 나뭇잎도 하루가 다르게 연두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지만 농사일을 준비하는 농민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하다. 볍씨 담글 때의 조신한 마음은 온데 간데 없다. 쌀값이 크게 떨어진 데다 회복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곡종합처리장의 평균 쌀 출하가격은 13만9천원선이지만 농민이 내다 파는 쌀값은 12만원 대이다. 최근 5년래 최저점을 찍었던 2006년 이맘때의 가격까지 내려와 있다. 쌀 소비도 급감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78.8㎏이다. 쌀 한가마에도 못미친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량도 216g에 불과하다. 밥 한공기에 소비되는 쌀이 120∼130g이니 우리 국민들은 하루 두 공기도 먹지 않는 셈이다. 이젠 쌀 생산을 억제해야 할 판이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인데 때마침 봄비가 내렸다. 반가운 봄비이다. 헌데 풍년을 기원하는 곡우에 풍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니 농민의 마음은 여간 편치 않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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