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국(전자부품연구원 전북본부장)
전북일보 칼럼연재 / 전자부품연구원 전북본부장 신 진 국
지구가 45억년동안 진화를 거듭하여 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어 내었듯이, 이 세상 만물은 스스로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발전하고 있으며, 이를 진화라 부른다. 과학과 기술의 진화 경로를 보면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화, 생활의 편리성을 극대화시킨 자동화, 산업의 틀을 바꾼 정보화로 진화해왔다. 정보화 기반의 지식 산업 시대로 급속히 이행하던 우리 사회의 다음 역은 어디일까? 답은 융합화(fusion)다. 학문 간의 벽을 넘는 단순한 융합을 넘어 환경, 문화, 인간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믿으라는(believe) 말 속에 거짓(lie)이 들어있듯, 융합이라는 말 자체에는 극복의 대상이 들어 있다. 융합이라는 개념을 존재하게 하는 벽, 경계, 구분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융합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왔던 융합의 장벽들이다. 그렇다면 경계란 무엇일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경계는 나와 남의 경계이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남일까? 소립자론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이러한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원자를 궁극까지 쪼개면 소립자로 통칭되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소립자의 평균 수명은 10-23초이다. 이 짧은 시간에 생성되었다가 소멸하며 한 소립자의 생성과 소멸은 다른 입자의 생성?소멸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 삼라만상이 다 소립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렇듯 찰나지간에 서로 연결되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1초 동안 300조번이 더 바뀌었는데, 과연 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너와 나'라는 경계가 존재하고 있는가? 소립자론적 세계관으로 보면 이렇듯 세상 모두가 그 경계가 없이 대자연의 한 부분으로 스스로(自) 그렇게(然) 존재하고 끝없이 순환하고 있을 뿐이다. 삶도 죽음도 자연의 일부이듯이.
이래서 융합이라는 말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던 벽을 인간이 만들어두고 이를 넘었다하여 융합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자연은 경계가 없었다. 인간의 편의상 물리와 화학으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으로, 자신의 호불호에 맞는 많은 분류로 자연 현상에 의미 없는 금을 긋고 부질없는 이름을 매겨두었을 뿐이다. 생일과 장례식도 세상의 경계에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 경계를 크게 기념하고 축복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에지(edge)있게' 경계에 존재한다.
최근 맞대결 구도를 보이고 있는 갤럭시 S와 아이폰 4G의 예를 들어보자. 자식을 위해 매를 드는 심정일 뿐, 갤럭시를 나무라는 것도 아이폰을 옹호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갤럭시 S와 아이폰 4G의 대결은 마치 이번 지방선거와 많이 닮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갤럭시 등 타 제품은 특정된 무엇인가를 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면 아이폰은 이것을 매개체로 다양한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일종의 통로이자 창이다. 그렇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소통의 힘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진정한 동력이다. 기계적인 성능만을 강조하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 제품과 이를 통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추종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새로운 가치관 메이커의 격돌이다. 일방통행과 양방 소통의 묘한 유사성이 지난 2일의 지방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아이폰의 기술적인 DNA는 바로 '소통'이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와 소통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걸 읽었을까? 연구실 책상에만 앉아서 대중을 이롭게 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 때 고립의 미덕이었던 깊숙한 연구실의 과학자마저도 이제는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는 못 사는 시대이다.
천안함과 지방선거 이후 남과 북으로 강남과 비강남으로 나누어진 것이 많다. 국민을 뭉치게 하는 것이 축구뿐이라면 좀 슬픈 일이다.
둘로 나눈 국민을 통합해야할 책무가 정치인들에게 있다면, 경계의 진리에서 융합 기술로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들 기회가 과학자들에게 있다. '통합과 융합', 모두 소통의 문제이다. 소통하고 융합하자. 여기는 융합의 대명사, 비빔밥의 본 고장이지 않은가.
/신진국(전자부품연구원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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