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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그대 눈길이 머무는 곳에

김영수(천주교 전주교구 천호성지 관장)

"치치치! 레레레! 비바 칠레!"

 

산호세 광산의 영웅들이 감격 속에 외치던 환호소리가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칠레 코피아포 산호세 광산 붕괴 사고로 700미터 땅 속에 갇힌 서른세 명의 광부 전원이 69일간의 죽음의 밤을 이겨내고 어둠의 터널을 뚫고 세상 안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 품에 안긴 순간 위대한 인간 승리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칠레 전역에 울려 퍼졌고, 이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도 함께 환호하며 무려 70일에 걸친 인류 최대 감동과 기적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칠레는 지난 2월 대지진으로 수 백 명의 사망자와 200 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당시 거리에는 약탈자들이 넘쳐났다. 쓰나미를 예고하지 못한 정부는 비난의 돌팔매를 맞아야 했고 나라 전체에 천재지변과 인재지변의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광산 붕괴사고로 매몰된 33인의 광부가 생존해 있다는 기적 같은 소식은 칠레인들을 단결시키는 구심점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망의 나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동료들을 희망의 길로 이끌었던 60세 최고령 작업반장 우르수아씨의 빛나는 지도력과 뜨거운 동료애로 생사를 함께한 사람들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협동, 그리고 신속하고 치밀한 구조활동이 속속들이 전해지면서 온 세계는 그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원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귀환소식은 단순히 위기의 순간에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사람 안에 간직된 사랑과 진실의 차원이 얼마나 깊고 고귀한 것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감동적인 기적의 소식을 들으며 한 치도 안 되는 현실의 늪에서 허구한 날 진흙탕 싸움이나 벌이고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준 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따뜻하고 깊은 인간성을 지닌 지도자, 서로를 배려하는 동료애와 작은 일도 함께 할 줄 아는 공동체조직, 생색내기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체제가 만들어 낸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이번 칠레 광부들의 기적을 보면서 한 가지 섭섭한 것은 이렇게 인류를 감동시킨 귀중한 사건을 접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세계 여러 방송들은 구출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연 이틀을 쉬지 않고 모든 정규방송을 멈추고 광부들의 구조장면을 생중계하였다. 국가적인 차원의 사건이 아닌데도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중계하며 인간승리의 감격을 함께 나누었다.

 

영국 국영방송 BBC의 한 관계자는 귀환장면을 방송하면서 '인류에게 이번만큼 생생한 감동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며, 인간과 삶에 관한 살아있는 체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날 전북에서 발간되는 어떤 신문에도 칠레의 기적에 관한 속보는 커녕 인류 기적의 감동을 다룬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계 속의 전북을 꿈꾸며 창의적인 도시를 일구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의식이 향하는 곳에 눈길이 머무는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경도되지 않고 세상을 더 멀리 우러르기 위해서는 먼저 더 깊은 의식을 다져야하는 것이다. 전북일보에 칼럼을 쓰는 전북인으로서 창간 60주년을 맞는 전북일보의 시선이 우리의 눈길을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 김영수(천주교 전주교구 천호성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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