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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인신구속제도의 변화를 기대하며

고영한(전주지방법원장)

근년에 있어 우리 나라 형사사법에 있어서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불구속 수사·재판의 확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에만 해도 수사 초기의 피의자 구속은 확정판결 이전의 예비적 징벌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억울한 구금은 한 사람의 운명을 치명적인 실패로 가져갈 수도 있으므로, 인신구속제도의 운용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7년에 구속 전 피의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2007년에 구속적부심사에서의 보증금납입조건부 석방결정제도(일명 기소 전 보석제도)가 도입되면서, 불구속수사 원칙과 피의자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법원의 실무관행이 변화하였고, 이에 발맞추어 수사기관에서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수사기법 개발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일련의 제도의 뒷받침에 의한 불필요한 구속의 억제는 수사단계에서의 구속자 수 감소와 법정구속비율의 증가로 나타났다. 일례로 전주지방법원 관내의 지난 3년간의 구속자 수만 보더라도, 수사기관에서의 구속자 수는 2008년 1,619명에서 작년 1,019명으로 감소한 데 비하여, 총 구속자 중 법정구속의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41%에서 46%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상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경우는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뿐이므로, 영장전담법관은 수사기관의 청구가 있을 때 영장을 발부하든지 기각하든지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피의자가 구속될 경우 범죄를 직접 저지르지 않은 피의자의 가족이 길거리로 나앉을 처지라거나 한두 달의 구금 때문에 한 학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학생 신분인 경우 판사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께서도 지난달 26일 있었던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하신 바 있지만,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도입이 고려되어 왔고,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올 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등에서도 자주 논의대상이 되어 오고 있다.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는, 일단 구속영장을 발부하되 주거제한, 피해자 접근 금지, 출석을 담보할 만한 보증인, 보증금 납부 등 일정 조건을 붙여 피의자가 그 조건을 이행하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나 재판을 진행하고, 이를 어기면 이미 발부된 구속영장의 효력으로 즉시 수감되는 제도이다. 구속영장 청구에 대하여 발부냐 기각이냐 양자택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법관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영미법 국가는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 체계를 가진 독일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정도로도 출석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나, 돈 있는 사람만 석방되는 이른바 유전무죄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법원의 현행 보석 실무례에서도, 서약서 제출, 주거제한, 피해자 또는 참고인에 대한 접근 및 통화금지, 출석보증서 제출, 법원의 사전허가 없는 출국금지, 관련사건의 방청금지 등 다양한 조건을 붙여 보석결정을 하고 있고, 미국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IMF 총재도 가택연금을 조건으로 석방된 사례도 있는 등 보석조건부 영장제도가 오로지 보석보증금 하나만으로 석방하는 제도는 아니며, IT 산업의 발달로 휴대전화나 e-mail 등 문명의 이기가 없으면 생활하기 어렵고 소재 추적의 방법이 다양해진 오늘날에는 피의자가 함부로 위와 같은 조건을 어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법제도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사법절차의 확보라는 피의자 구속제도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신체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신구속제도가 나아갈 것을 기대해 본다.

 

/ 고영한(전주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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