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길…전발연 문화관광팀 부연구위원
주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말에도 밤낮없이 일만 하던 지인(知人)이 있었다. 그에게 휴식이란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잠, 아니면 술이었다. 그러던 그가 마흔을 넘기면서 달라졌다. 건강을 생각하며 시작한 수영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은 필자에게 "색소폰을 배우고 싶다"며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닌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통하는 한국남성의 전형을 보여줬던 그의 일상에 생활체육과 문화예술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혹자는 "생활이 넉넉해지니 색소폰을 배우려는 것이지 당장 배고픈데 무슨 예술이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예술은 여전히 "있는 사람"의 선택적 욕구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색소폰을 배우려는 지인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올해가 제일 힘들어. 작년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봐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두둑한 주머니에서 색소폰을 배우려는 욕구가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로위(Lowy)라는 학자는 문화적 욕구를 인간의 이차적 욕구로 규정한다. 하비(Harvey)라는 학자 역시 인간의 사회적 욕구에 의·식·주, 의료, 교육 이외에 레크리에이션을 포함시킨다. 이처럼 사회변화에 따른 욕구의 다양화와 삶의 질 추구로 인해 선택적 욕구였던 문화욕구가 필수적 욕구로 등장하고 있다. 색소폰을 배우려는 예술향유 욕구는 경제·교육수준과 상관없는 현대인의 당연한 욕구이자 권리가 된 것이다.
전라북도는 '문화복지' 강화를 2012년 주요사업으로 수립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와 달리 문화복지는 중산층 이하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로 통한다. 문화복지는 단순히 생활 속 예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북도민 모두가 색소폰연주자, 행위예술가, 서예가, 드러머, 기타리스트, 발레리나·발레리노, 연극인, 성악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민주주의', 바로 그것이다.
출발은 나쁘지 않다. 지나치리만치 양적성장에 집착했던 기존방식을 벗어나려 노력했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문화예산도 497여억 원(문화재, 문화·관광일반 제외)으로 작년보다 25.48%가 늘었다. 이 중에서 문화복지 예산은 15.6%(도서관사업 제외)다. 사업도 체계구축, 활동지원, 공간제공, 향유확대 등 다양하다. 특히 문화코디네이터 양성지원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시범사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괜찮은 사업도 적지 않다.
문제는 실천이다. 문화코디네이터는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군 공무원, 또는 예술단체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 문화동호회 지원 및 활성화 사업 역시 전담 조직을 꾸리지 않으면 기존사업에서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 부족한 공간 및 강사에 대한 지원, 문화동호회 참여 및 활동을 배가시키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문화예술의 거리 역시 '예술' 없는 거리가 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미약'해져버리는 일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러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말만 무성할 게 뻔하다"며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올해 문화복지 정책이 미약한 것은 분명하지만, 문화계가 주체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앞으로 창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놨기 때문이다.
△ 장세길 부연구위원은 전북문화저널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0년에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재)전북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에서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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