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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회비와 국립대 경쟁력

서거석  전북대학교 총장

 

국·공립대학들의 기성회비가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는 만큼 학생들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부 훈령에 따라 1963년부터 49년간 기성회비를 받아온 국·공립대학으로선 여간 당혹스러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학생 단체는 곧바로 기성회비 반환청구소송 운동을 대규모로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기성회 회계와 국고의 통합 운영을 골자로 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논의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들은 국·공립대학이 부정과 편법의 온상인양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며 기성회비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식이다.

 

섣부른 판단은 경계해야겠지만 기성회비 반환청구 소송이 지난 10년간 거둔 기성회비를 모두 반환하라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공립대 등록금의 85%를 차지하는 기성회비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부정하는 것은 아예 대학 문을 닫으란 의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도 이번 판결이 가져올 후폭풍을 의식해서인지 기성회비 반환 책임은 대학이 아니라 기성회 측에 있다는 설명 자료를 급히 배포했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설명 자료를 배포하면서까지 대학의 반환 책임이 없다고 해명했다고는 하지만 기성회비에 대한 대대적 손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국·공립대학들의 기성회비 징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애초 국가가 부담해야할 국·공립대학의 재정을 기성회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떠넘긴 원죄가 정부에 있으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결자해지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국·공립대학의 재정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마당에 국·공립대학은 물론 전체 대학들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이 협의회는 지난 2일 총회를 열고 정부가 연간 국립대학에 8000억 원을 투입하면 기성회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은 물론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고, 거의 모든 국·공립대학이 지역에 있기 때문에 지역의 경쟁력까지 키울 수 있어 국가 균형발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동안 국·공립대학들이 매년 기성회비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단적인 예로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예산 가운데 40개 국립대 재정 지원에 투입된 돈은 3조 7000억 원으로 미국 하버드대의 1년 예산 4조 2000억 원보다도 5000억 원이나 적었다. 우리 정부가 국내 총생산 대비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0%)의 절반 수준(0.6%)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정부 지원이 얼마나 부족한지 확연히 보여준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고등교육 예산을 2배 가까이 늘려 OECD 국가들과 그 수준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고등교육 예산을 일시에 5~6조 원 이상을 확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1조7500억 원의 '국가 장학금' 재원 마련에서 보여주었듯이 국·공립대 반값 등록금 실현과 기성회비 문제 해결에 소요되는 8000억 원 정도의 예산 확충은 정부가 의지만 가지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반값 등록금' 논의가 종결되기도 전에 기성회비 문제마저 불거졌으니 이틈에 학생들의 부담도 확실히 줄이고, 국·공립대학의 경쟁력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지역 균형발전까지 이끌어낼 수 있도록 재정 지원 확대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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