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길 전발연 부연구위원·문화관광팀
문화복지정책과 관련해서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와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라는 두 개념이 있다.
'문화의 민주화'는 그림, 창극,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같은 고급예술을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급함으로써 소수 상류계층의 전유물이던 고급예술을 가능한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대하는데 목적이 있다. '문화민주주의'는 고급과 저급의 이분법을 반대하며, 모든 사람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해 스스로 예술을 향유하고 창조할 수 있도록 참여에 주목한다.
두 개념 모두 인권으로서 문화권(cultural rights)을 뿌리로 하지만 지향점은 다르다.
'문화의 민주화'는 비평가 등에게 미학적 질을 인정받은 고급예술을 중심에 두고, 이를 생산·소비하는 예술기관을 중요한 정책파트너로 삼는다.
정책대상도 관객보다는 예술가를, 아마추어보다는 전문예술인을 우선한다. 생산과정보다 예술작품 그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고, 원형을 후대에 보존·전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형문화재 전승제도, 문화바우처, 찾아가는 예술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민주주의'는 아마추어예술, 지방예술, 실험예술, 대중예술까지 포함하며, 대안문화, 비기구화, 비집중화란 특성을 갖는다.
예술의 '질'보다 정치적·성적·민족적·사회적 형평성을 우선 고려한다.
아마추어와 전문예술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며, 예술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지향성도 보인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생활문화동호회 지원, 문화의집 조성 등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복지정책은 '문화의 민주화'에 가깝다. 문화바우처 예산을 대폭 늘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소득층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유럽 국가들은 1970년대부터 '문화민주주의' 전략을 전면적으로 도입, 문화의 참여권을 강조하고 있다. OECD가 조사한 행복순위에서 스웨덴(3위), 노르웨이(5위), 덴마크(6위) 등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랑스테드(Jorn Langsted)는 '문화의 민주화'가 '모든 사람을 위한 문화(culture for everybody)'라고 한다면 '문화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한 문화(culture by everybody)'라면서 문화수용자의 주체적 측면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문화복지를 위해 건물을 짓고 찾아가서 보여주고 돈을 주면서 극장으로 이끌었다면, 이제는 지역주민이 스스로 문화창조 활동을 향유하도록 환경을 만드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고창농악경연대회는 더 없이 좋은 사례다. 가을이면 읍·면을 대표하는 16개 농악단이 한 자리에 모인다. 프로는 없다. 모두가 평범한 아마추어들이다. 농악경연대회가 열리는 1박 2일 동안 마을주민 천여 명이 함께 하면서 응원도 하고 축제도 즐긴다.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이를 매개로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문화자치'의 모델로서 고창농악경연대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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