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꽃 이름 따위는 알아서 무엇에 쓴담? 돈벌이에는 보탬이 안 될 텐데."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3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제비꽃 이름을 안다고 한들 돈벌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데 최근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부를 쌓는 것보다 좋아하는 꽃 이름을 불러주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반론의 핵심은 이것이다. "GDP는 높아지는데 왜 우리는 더 불행해지지?"
지난 5월 11일 기획재정부는 기존의 GDP가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행복정도를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소득분배, 여가생활, 환경, 복지 등의 만족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UN이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요인 가운데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에 불과하며, 기초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소득보다는 공동체의 상황, 정신적·육체적 건강, 가치관에 의해 행복을 결정짓는다는 얘기다.
이제 더 이상 'GDP'는 행복의 척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삶의 질'이다. 전라북도가 삶의 질 정책을 세운 것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맞닿아 있다. 이미 전북도민도 삶의 질에 대한 높은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도내 대기업에 취직한 연구원들은 높은 급여를 받는데도 이직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전북은 삶의 질이 낮아서" 대도시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도민의 삶의 질을 일시에 높이는 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저소득층부터 우선적으로, 농촌부터 도시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전북도에서는 적은 예산으로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농촌공동체 활성화(슬로시티), 문화복지, 체육복지 등이 그것이다.
슬로시티는 지역성·전통성에 기초한 여유로운 생활을 통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존 개발방식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지역의 힘으로, 주민의 참여로' 극복하고 자립형 경제활동 구조를 만들어 가면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문화복지는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하고, 제대로 된 예능교육을 받기 힘든 것이 우리 농촌지역의 현실이다. 또 농촌 주택의 경우 욕실이 없거나 샤워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고, 공중목욕탕이 있는 면은 145개 중 45개 면에 불과하다. 이들을 위해 작은 영화관과 작은 목욕탕 등 '작은 시리즈'를 만들어 삶의 질을 키우자는 것이 기본 계획이다.
세 번째로는 체육복지다.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꼽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체육을 즐기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네 체육시설 확충, 동호인 주말리그 확대, 생활체육 전문지도자 배치 등으로 도민건강을 담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간 삶의 질 정책을 추진하면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삶의 질이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과 '삶의 질'을 선후의 문제로 따지다 보면 항상 삶의 질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다. 경제발전과 삶의 질은 결코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다. 전라북도가 아무리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든다 해도 삶의 질이 보장이 안 된다면 결국 또다시 낙후되고 말 것이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꽃 이름도 불러줄 줄 아는 사회, 이런 사회가 바로 버트런드 러셀이 말했던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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