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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름 잡는 '번영세탁소'

넉넉하지 않지만 나눔을 실천하는 서민 기부자 많아

▲ 이 종 성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소년소녀가장 중·고생 교복 무료 세탁!!' 전북 군산시 문화동 군산상고 앞 사거리에 자리한 '번영세탁소' 문 옆에 붙여 놓은 종이 문구다. 이 문구는 세탁소 주인 고정곤(69) 씨가 7년 전부터 붙여 놓은 것이다. 고 씨가 다림질하는 책상 앞에는 '착한가게' 현판도 붙어 있다. 매달 수익금의 일부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증표다.

 

고 씨는 원래 양복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척이 운영하는 양복점에 들어갔다. 15년 동안 기술을 배운 뒤 군산시 선양동 상가에 작은 양복점을 열었다. 하지만 1980년대 기성복 바람이 몰아닥치자 종업원을 2명이나 두며 장사가 잘됐던 양복점 문을 닫아야 했다. 그 후 아내와 아들, 딸 네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어판장에서 일하며 어렵사리 빚을 내 지금의 세탁소 자리를 얻었다.

 

그런 고 씨가 소년소녀가정과 보육원 아이들 옷을 무료로 세탁해 주는 봉사를 결심한 것은 지난 2005년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 후 약을 먹고 얼마간 병세가 호전될 때였다. 다행히도 건강을 회복하자 세상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고 씨는 물질적으론 부족하지만 가지고 있는 기술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봉사와 기부를 시작하면서 건강도 좋아졌다.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봉사하고 기부한다는 말, 저도 건성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내가 해보니 그 말을 이해하겠더군요. 아마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가 봐요. 나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니까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의 아름다운 선행이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나눔을 실천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도와야겠다는 말을 한다. 옛말에 '광에서 인심 난다'고 했지만 꼭 경제적으로 넉넉해야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 씨와 같이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나눔을 실천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런 '서민형 기부자'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김제에서 진행된 지평선축제 기간 중에 각설이 공연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칠봉이 품바(본명 최경규)가 엿을 판매한 수익금을 소년소녀가정을 위해 써 달라며 사랑의열매에 기부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지평선축제 기간 중 각설이 공연 및 엿 판매 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지원해 달라며 기탁해 오고 있다. 또 축제 기간에 행사장에서 노점상으로 활동해온 25명이 뜻을 모아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달라며 성금을 기탁해 훈훈한 귀감이 되기도 했다. 전북 각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축제기간 모은 성금으로 자신들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저소득 조손가정에 지원해달라며 당부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서로 돕는 것은 우리 조상의 나눔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남도 지역에는 '세 덤이 있어야 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세 덤은 셋을 더한다는 뜻으로 밥을 지을 때 식구 수에다가 세 사람의 몫을 더하여 밥을 지어야 한다고 풀이될 수 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숟가락을 들고 이웃을 찾아가 밥을 얻어먹는 가정이 많았다.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어려운 이웃과 언제든 나누어 먹기 위한 아름다운 풍습이었던 것이다.

 

반드시 남보다 많이 가져야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정곤 씨의 번영세탁소도 사실 '번영'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 번영할지 알 수 없지만, 구겨지고 주름진 세상의 절망을 칼 주름 반듯한 희망의 내일로 세탁하는 그의 사랑은 더없이 영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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