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지는 사람 없는 참사
안산은 온 도시가 슬픔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분향소 커다란 화면에는 앳된 얼굴의 영정 사진이 연이어 지나간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태풍이 분 것도 아닌데 이 많은 어린 학생들을 ‘고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일 밤 꿈을 꾼다. 슈퍼맨이 되어 배를 불끈 들어올리고 마징가Z가 되어 선체를 누벼 생존자를 찾아낸다. 그러나 깨어버린 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에 빠진다.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 다문다.
우리는 죄인이다. TV로 생중계되는 화면을 종일 지켜보면서도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 국민들은 묻는다. 세월호가 조난신호를 보낼 때 국가는 어디 있었는가. 학생들이 살려달라고 외칠 때 국가는 어디 있었는가.
헌법 38조에는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며 국가를 대표’하며 헌법 62조에는 ‘국무총리와 장관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은 공무원에게 책임이 있다고 질책하고 청와대 안보실장은 콘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하고 해경의 간부는 침몰 후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으면서도 이만큼 구해낸 것은 잘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사고 이후 말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저희들의 심정이다. 우리도 이 참사의 공범이자, 죄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 때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디 있었는가. 책임져야 될 정부는 무엇하고 있었는가. 국민들이 묻고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태풍이 분 것도 아니었다.
바다는 고요했고, 날씨는 화창했는데 엄청난 사고가 벌어졌다. 우리는 사고 이면의 구조적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국민의 공적이 되어 버린 선장은 1년 계약직이고, 선원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그들에게 배에 대한 애착이나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선주와 선장과 선원이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책임지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뚜렷하게 알고 있다.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도 가라앉았다. 경제활성화를 내세워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친 MB정부는, 18년 된 낡은 배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규제완화조치를 내렸다.
대통령은 책임을 지는 자리
'송파 세 모녀'와 같은 가난한 이웃의 비극은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학교 옆에 호텔을 짓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대통령은 가라앉는 배의 승객을 포기한 선장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대통령은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리다. 우리는 아랫사람을 질책하는 매서운 눈초리의 대통령이 아니라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세월호 구조작전은 탐욕을 방치하고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을, 정의가 넘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만드는 치열한 과정이어야 한다. 이 길에서 국민들이 야당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그것을 흔들리지 않고 용기 있게 맞서 싸워 이뤄내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호의 개조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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