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작은 돛단배처럼 던져진 생 거센 물결과 싸우는 갈매기 바라보며 절망서 벗어나 새로운 삶 살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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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섬의 노을. | ||
내가 처음 바다를 본 것은 내 나이 열다섯 살, 초가을이었다. ‘토끼와 발맞추고 사는 심신산골’ 진안이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환멸을 느낀 나는 출가를 결심했다. 어렵게 도착한 화엄사에서 두어 달을 지낸 어느 날이었다. 스님이 방안에서 나를 불렀다. “얘야, 힘들지 않느냐.” “예 힘들지 않습니다.” 한 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 계시던 그 스님이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너를 예의 주시해 보았는데, 너는 아무래도 절에는 맞지 않고 세상에 나가서 사는 게 좋겠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길,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바지라고 찾아온 곳에서 나가야 되다니,내 생각은 아랑곳 없이 스님의 말은 이어졌다.
“물론 네가 큰마음 먹고 찾아와 두어 달 동안을 머문 이곳에도 길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나 생김생김이 제각각 다르듯이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단다. 네가 건너가야 할 수많은 길이나 강(江)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데 있는 것 같다…그리고 세상에선 누구나 혼자란다. 그 혼자의 길을 가거라, 가서 세상의 바다를 헤엄쳐 보아라.”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나는 절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구례구 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여수에서 그 푸른 바다를 본 뒤 배를 타고서 부산에 도착하여 다시 생각하자.”
열차로 여수까지 내려가 하룻밤을 역 건물에 기대어 지내고 그리고 아침에 바다를 난 생 처음 보았다. ‘바다에서의 아침은 세상의 처음을 보는 것과 같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과 같이 푸른빛으로 신비롭게 펼쳐진 바다, 파도는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일렁이고 있었다.
고려 때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푸른 물이 하늘에 닿은 듯, 하늘에 물에 닿은 듯, 엷은 구름이 안개인 듯, 안개가 구름인 듯”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바다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 넓은 바다에서도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고, 그리고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때 나를 주눅 들게도 했지만, 일면 설레게도 했다. 그 순간 ‘역경에 처했을 때 가슴이 뛴다.’고 말한 니체의 말을 이해했던 것은 아닐까?
하여간 여수항에서 갯바람 속에 섞여 있는 비린내를 맡으며 바다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라서 나는 순간순간 나 자신에 회의했고, 그래서 여수에서 한려수도를 지나 통영으로 가는 뱃전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다.
“저는 수없이 자살하려고 했지만 삶에 대한 미련이 더 컸어요. 이 어이없는 약점은 아마도 우리 인간들의 가장 운명적인 특색인 것 같아요. 언제든지 내 버릴 수 있는 짐을 줄곧 지고 다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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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사포 해수욕장. | ||
볼테르가 〈깡디드〉에서 토로한 것처럼 ‘그러나, 그러나’ 하고 머뭇거리다가 바다에 용기 있게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통영에 닿았다.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라고 백석 시인이 노래했던 아늑한 항구, 그 통영에서 떠올랐던 생각이 “좀 더 좀 더 살아보자.”였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노래했던 발레리의 마음도 내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충무에 도착하자 배에 오른 사람들이 “충무 김밥 있어요,”하고 지나갔고 나는 그곳에서 충무김밥이라는 것을 최초로 맛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대책도 없고, 희망도 없는 나를 살게 했던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이지만, 젊다는 것은 진정한 천국과도 같다.”고 썼던 워즈워스의 아름다운 시 한 소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뒤로도 나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시도해보지도 못한 채 책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군대에 입대해 중부전선의 철원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군대를 제대 한 뒤 절망적인 상황이 극에 달했다. 배운 것도, 기댈 것도 없는데, 망망대해에 작은 돛단배처럼 던져진 생, 이렇게 사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그 자괴감, 그때의 내 상황이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과 비슷했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고 참고 견디는 것이 보다 고상한 정신인가, 아니면 바다처럼 많은 고통을 두 팔로 견뎌내고 그것들을 대결로써 끝장내는 것이 보다 고상한 정신인가?”
내 운명은 평탄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쓰고자 했던 글은 쓰여 지지 않았고, 이도 저도 안 되던 시절, 배를 탈까도 싶었다. 허만 멜빌의 소설〈모비딕〉에서 에이허브 선장처럼 흰 고래를 찾아서가 아니고 오직 푸른 파도에 온 몸을 내 맡기고 큰 바다를 떠돌다보면 이어도 같은 이상향이 보이지 않을까 마음먹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백경을 찾아 헤매는 에이허브 선장이 “이것은 잡을 수 없는 삶의 망상이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 당시 나의 꿈들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저렇게 흘러 내 본래의 꿈을 허우적대며 따라가는 상황으로 전개되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의 꿈은 내세에나 가능하게 되었다.
꿈꾸던 것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어떤 것들이 소리도 없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일종의 암시이기도 하다.
그 뒤로도 어딘가 빈 듯, 가슴이 허전할 때마다 내 발길은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모성적(母性的)상징 가운데 가장 크고 변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라는 말은 진실이다. 바다는 언제나 타향을 헤매다 돌아온 자식처럼 다시 찾아간 나를 변함없이 맞아 주었다. 바다는 가끔씩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할 때도 있지만 항상 바람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박한 몇 척의 배에 매달린 깃발들이 흔들리고, 내 마음도 더불어 흔들리고, 흔들리는 수평선 너머 우리가 알지 못할 세상도 흔들리고 있었다.
걸어가며 부르는 노랫가락도 흔들리고, 흔들리는 것들 외에 그 어떤 것도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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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산 적벽강. | ||
그렇다. 나는 사고(思考)를 시작하면서부터 흔들리는 것들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길을 걸으며 ‘길을 잃었고, 길은 잃을수록 좋다’는 하나의 명제를 터득했다.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고,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흔들림 없이 견고해지 않는 다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흔들리는 바다를 바라볼 때 문득 떠오르던 시가 박재삼 시인의 〈바다에서 배운 것〉이라는 시였다.
“고향 앞바다에는, 꿈이 아니라고 흔드는, 수만 잎사귀의 미루나무도 있고, 미칠만하게 흘러내리는, 과부의 찬란한 치마폭도 있고, 무엇도 있고, 무엇도 있고, 바다에서처럼 어리벙벙하게, 많이 있는 것은 없는가…”
그 시를 가슴 아리게 읊조리며 바다가 보이는 산길을 걸었다. 바다 멀리 수평선을 넘어가는 한 척의 배, 그 사이에 일렁이는 물살이 마치 들녘에 어른거리는 아지랑이와 같이 보였다.
매 순간 쉬지 않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움직임, 그 움직임을 따라 끝없이 변모해가며 파도는 포말 져 부서져 내리는데, 지금의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때 나에겐 스피노자가 말했던 “울지 마라, 화내지 마라, 체념하라”라는 암담한 절망감이 한 시도 떠나지 않았었다. 그것이 극에 달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찾았던 곳이 바로 제주시 사라봉 아래 자살바위였다. 바다는 나의 절망 나의 체념을 다 받아줄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자살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상황을 나는 다음과 같이 썼었다.
푸르디푸른 젊은 시절, 제주도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있는 사라봉에서 시퍼렇게 입을 벌린 듯 일렁이는 바다를 보았지. 오랜 세월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꽃잎처럼 몸을 날렸다는 일명 ‘자살바위’ 사라봉 깎아지른 절벽 아래 파도는 그침이 없이 반복적으로 철썩거리고 있었지. 그곳에선 단 한번 몸을 던지면 자유(自由)가 되는 경이(驚異)를 느낄 수도 있었지, 하지만, 하지만 하면서 망설이다 돌아서던 그 사라봉.
그러나 용기가 없기도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 때 죽어야 될 운명은 아니었던지, 나는 마지막 순간에 뛰어내리지를 못하고 항상 자취집으로 되돌아갔다.
검푸른 바다에서 나만 그런 자살의 유혹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소설가 이문열도 세상에 절망하여 동해 바닷가 한적한 대진 항에서 생을 마감하고자했다. 하지만 거센 물결과 싸우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자전적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중 ‘그해 겨울’에 그 순간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중략)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바다는 끊임없이 살아서 소리친다. ‘강하게 살아남으라, 한 치의 타협도 없이’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내 지른다. 파도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복음서나 다름없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바람과 파도는 항상 유능한 항해사의 편이 된다.” 고 말했다. 스윈번 역시 〈이별의 발라드〉라는 글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바다가 주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나를 키운 것은 바다, 초록빛 거품이 이는 영불해협에, 내 마음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견고하게 맺어져 있다. 나를 위해 바다는 너그러운 가슴을 벌리고, 그지없이 장중한 사랑의 노래를 시작하며, 태양이 빛을 아주 마음껏 뿌리도록 명령하고, 그토록 기분 좋은 격렬한 나팔소리를 나를, 위해 울리게 하는 것이다.”
바다는 그런 곳이다. 세상의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이는 곳, 언제나 새로움만 가득한 곳, 그래서 가끔씩 삶이 쓸쓸하거나 허전할 때 바다로 나간다.
수천 년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파도소리로 들리는 바다, 그 바다에서 부서지고 부서지면서도, 계속 달려드는 파도의 움직임과 포효, 그리고 매일 장엄하게 뜨는 일출을 볼 수도 있는 바다로 나간다.
망연히 바라보는 망망한 물결 사이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경이롭다 못해 처연한 시간을 바다 한가운데에서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바다는 매 순간이 ‘연속적인 기적’이고, ‘전쟁터’이자,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며, ‘생각의 산실’ 이라는 것을.
가끔씩 나는 생각했다. 진리는 ‘변화’라고, 그렇다면 그 진리에 가장 합당한 것이 무엇일까? 항상 머물러 있지 않고 흔들리는 바다야 말로 우리가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그 진리가 아닐까? 그러나 부조리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흔들리기를 원하지 않고 평온하게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
알프레드 드 비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사랑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여야 할 것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가고 오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고, 그 이치에 따라 만물은 오고 만물은 돌아간다.
그렇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 누구라도 정지된 시간을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시간은 손을 꼽을 만큼 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나날을 끊임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바다는 다음과 같이 속삭인다.
“잠시 참으면 바람이 평온해지고, 물결이 고요해진다. (忍片時平浪靜 )
한 발 물러서면 바다가 열리고 하늘이 맑아진다. (退一步海開天空)”.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나면 격포나 군산으로 가고는 했다. 바다에 도착해서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항상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중에 한 구절이 예리한 비수처럼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오! 이처럼 바다가 보고 싶었을까!”
문화사학자·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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