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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어디서 살 것인가] 지리·인심·생리·산수 모두 갖춰야 '사람이 살만한 땅'

▲ 경남 함양 거연정.

- 동양 사람들이 보는 좋은 땅 "하늘은 맑고 빛이 있고 들 넓을수록 터는 더욱 좋고 달·별빛이 항상 환하게 비치고 바람·비, 기후가 알맞으면 더 좋다"

 

- 서양 사람들이 보는 좋은 땅 "생태적으로 건강 동풍을 받을 수 있는 곳, 주민들 쉽게 탈출할 수 있는 수원의 공급이 원활한 곳"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림 같은 강가에 작은 집을 짓고 말년을 지내고자 생각했다. 그 강이 섬진강이 될지, 아니면 금강이나 한강 그리고 낙동강이 될지 모르지만 답사 때마다 눈 여겨 보았던 여러 곳 중에서 한 곳이 나의 말년을 의탁할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그 계획을 완전히 접고 다른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나는 죽는 날까지 떠돌 것인데 아무리 그림 같은 좋은 집이라도 집은 머물러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며칠씩 떠나 있으면 누가 그 집을 관리하고 사랑해 준단 말인가?

 

온 나라에 좋은 벗, 즉 도반(道伴)들을 많이 사귀어두고 그 다음에는 경치 좋고 땅의 기운이 좋은 절의 주지스님을 많이 사귀어두자. 그러면 답사 때마다 그 집이나 절에서 묵게 된다면 내가 집을 관리하지 않아서 좋고 지인이나 도반들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서 좋으니 1석 2조가 아니고 1석 5조쯤 될 듯 싶다. 그게 요즘 열병처럼 유행하는 웰빙(well-being)이 아닐까? 모든 길이 로마도 통하듯 요즘에는 모든 것이 웰빙으로 통한다고 한다. 웰빙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고 삶을 즐기는 것이며, 그것을 이루어 가는 모든 행동양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진정한 웰빙이란 무엇보다도 ‘어디에 살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재산을 불리거나 시류를 따라가는 것만이 아닌, 피로한 몸과 정신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어디에다 어떻게 지을 것인가?

 

공자는 〈논어〉에서“인후(仁厚)한 마을에서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 인후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하였다. 군자는“살만한 마을을 반드시 가려서 택한다”고 하였다. 또 이익은〈택리지〉서문에서 “대저 의복과 식량이 모자라는 곳이나 토기(土氣)가 사그라진 곳, 무력(武力)이 승한 곳, 시기와 혐의가 많은 곳 등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이런 몇 가지를 가리면 취하고 버릴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 임실 오수의 연지.

그렇다면 이중환이 생각한 ‘사람이 살만한 땅’은 어떤 곳이었을까?

 

사람이 살만한 곳을 고를 때는 첫째로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 그 곳에서 얻을 경제적 이익 즉 생리(生利)가 있어야 하며, 다음 그 고장의 인심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지리는 비록 좋아도 그곳에서 생산되는 이익이 모자란다면 오래 살 곳이 못 되고, 생산되는 이익이 비록 좋을지라도 지리가 좋지 않으면 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된다. 지리도 좋고 생산되는 이익이 풍부 할지라도 그 지방의 인심이 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게 되고, 가까운 곳에 소풍할 만한 산천이 없으면 정서를 화창하게 하지 못한다.(〈택리지〉‘복거총론’)

 

이중환은 사람이 살만한 곳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지리, 인심, 생리, 산수 등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토대로 조선전역을 사람이 살 만한 곳과 살 만하지 않은 곳으로 나누어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지(福地), 덕지(德地), 길지(吉地), 피병지(避病地), 피세지(避世地), 경승지(景勝地) 등으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지리’의 내용을 살펴보자.

▲ 전남 곡성 태안사 가는 길.

어떤 방법으로 지리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인가. 제일 먼저 물이 흘러나오는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 들판의 형세를 본다. 다음에는 산의 생김새를 보고, 다음에는 흙의 빛깔을, 다음에는 앞에 멀리 보이는 높은 산과 물, 즉 조산(朝山)과 조수(朝水)를 본다.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엉성하고 넓기만 한 곳은 아무리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골라서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산중에서는 수구가 닫힌 곳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들판에서는 수구가 굳게 닫힌 곳을 찾기 어려우니, 반드시 거슬러 흘러드는 물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높은 산이나 그늘진 언덕이나, 거슬러 흘러드는 물이 힘 있게 가로막았으면 좋은 곳이 된다. 막은 것이 한 겹이라도 진실로 좋지만, 세 겹이나 다섯 겹이면 더욱 좋다. 그런 곳이라야만 온전하게 오랜 세대를 이어나갈 터가 된다.

 

사람은 맑고 밝은 기운을 받아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맑고 밝은 빛이어야 하고, 만약에 하늘이 조금만 보이는 곳은 결코 살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들이 넓을수록 그 터는 더욱 좋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와 달과 별빛이 항상 환하게 비치고 거기에다 바람과 비 등의 기후기 알맞고 더운 기후가 고른 곳이면 인재가 많이 나고 또 병도 적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리의 내용은 현대지리학의 본질적 물음, 즉 “인간집단이 생활을 위해 어떻게 공간을 간직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와 너무도 흡사하다.

 

다음은 한영우(韓永愚)교수가 말하는 지리학의 개념이다.

▲ 낙동강 봉화 분천 부근.

지리학은 땅에 이치가 있다고 보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치가 바로 생명체이론(生命體理論)이다. 땅을 생명체로 보는 것은 모든 우주만물을 생명체로 보는 우주관과 관련되어 있다. 크게 보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하늘, 땅, 인간이 모두 유기적 생명체를 이루고 있으며, 작게 나누어 보면, 땅 위에 있는 모든 산과 물 그리고 인간도 유기적 생명체요 작은 우주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생명체로서의 의지와 이치를 가진다. 하늘의 큰 의지와 원리를 천리(天理)라 한다면, 땅의 원리와 의지가 지리(地理)다.〈생명체이론〉

 

당나라 복응천(卜應天)이라는 사람이 지은 풍수서인 〈설심부(雪心賦)〉에서는 “지리란 조리, 즉 문리와 맥락의 이치를 갖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한 지리와 지맥을 구분하고 있는〈지리대성산법전서(地理大成山法全書)〉(상해 九經書局)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지리란 산천의 험함과 평탄함을 살려 성곽과 고을과 마을을 설치하여 나라를 세우고, 한편으로는 도로와 촌락의 균형과 멀고 가까움을 살펴 출입에 용이하도록 하며, 땅의 높낮이를 알아 도랑을 파고 개천을 뚫어 관개에 도움이 되게 함을 말한다. 한편 지맥이란 땅의 음양과 그 흐름을 관상(觀相)하여 크게는 도읍을 지어 나라를 세우고 작게는 집을 짓고 산소를 축조하여 복됨과 길함을 맞아들이는 일이다. 따라서 지리는 백성의 후생을 돕는 일이고 지맥은 사람의 명운을 관장하는 일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미수 허목(許穆)은 지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조선의 지역적 특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는‘지승(地乘)’이라는 글에서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의 풍기(風氣)의 특색을 논하면서 “우리나라는 중국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오행(五行)의 목성(木性)을 가졌다. 그래서 사람이 어질고 예의가 바르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목성이 인(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풍기와 성음(聲音), 그리고 요속(僚屬), 기욕(嗜慾)이 중국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백리마다 풍속이 다르고 천리마다 노래가 다르며, 남방에는 새가 많고 북쪽에는 짐승이 많다고 하면서 나라의 크기는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지역적 다양성은 중국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문장가이자 혁명가인 허균(許筠)은 “대장부는 천하(天下)에서 가장 넓은 집에 사는 법”이라고 하면서 세상 자체를 집이라 여겼는데, 그 역시 좋은 땅을 고르는 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가 지은 〈한정록閑情錄〉에서 좋은 땅에 대한 견해를 다음과 설명하고 있다.

 

생활의 방도를 세우는 데는 반드시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해야 하는데, 지리는 물과 땅이 서로 잘 통하는 곳을 제일로 치기 때문에 산을 등지고 호수를 바라보는 곳이라야 가장 좋다. 그러나 지역이 넓으면서도 가장 긴속(緊束)한 곳을 필요로 하니, 대개 지역이 넓으면 재물과 이익을 많이 생산할 수 있고, 지역이 긴속하면 재물과 이익을 모아들일 수 있다.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은 지리가 ‘먹고 사는 일’에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지리는 물과 땅이 탁 트인 곳을 최고로 삼으며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널찍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체로 땅이 넓은 곳은 재리가 생산될 수 있고, 짜임새가 있는 곳은 재리가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암의 〈택경(宅經)〉에 나오는 “산 하나 물 한 줄기가 다정하게 생긴 곳은 소인이 머물 곳이고, 큰 산과 큰물이 명당 터로 들어오는 곳은 군자가 살 곳이다”고 한 대목을 받아들여서 요즘의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좁다란 계곡 아름다운 경치의 장소에 달랑 제 식구 한철 보낼 수 있는 별장 터를 잡아놓은 사람들은 택경이 지적한 대로 소인배에 지나지 않으니 서둘러 원래 땅으로 복원시켜야 군자 근처에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일부지역에 있는 호화주택들은 우선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요, 풍수사상의 입장에서도 큰 잘못을 저지른 땅 위의 구조물들임을 말해두고자 한다.

 

한편 서양 사람들이 보는 좋은 땅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이상적인 도시를 잡을 때 보아야할 네 가지 조건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곳, 둘째는 동풍을 받을 수 있는 곳, 즉 동쪽을 향한 경사면이거나 겨울에 북풍을 피할 수 있는 남향, 셋째는 군사적인 이유로 외부인은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거주민들은 쉽게 탈출할 수 있는 곳, 넷째는 수원의 공급이 원활한 곳.

 

그런 곳에 터를 잡고 살면 사람도 자연을 닮을 수 있을 것이리라. 그래서 소설가 이병주(李炳注)는 “산하의 정을 사람은 닮는다”고 하였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지은 신영복 역시 감옥에서 출소한 뒤 “고향에 돌아와 맨 처음 느낀 것은 사람은 먼저 그 산천을 닮는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풍수서〈청오경〉에서는 “눈으로 산천의 형세를 관찰하고 마음으로 바람과 물의 이치를 잘 생각해야 음양조화를 깨달아 좋은 땅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중환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땅’을 찾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수라는 것은 물 너머의 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작은 개울물과 작은 시냇물은 거슬러 흘러드는 것이 좋다. 그러나 큰 시냇물이나 큰 강이 거꾸로 흘러드는 곳은 결코 좋지 못하다. 큰물이 거슬러 흘러드는 곳은 집터나 묘지를 막론하고 처음에는 비록 흥할지 몰라도 오래가면 패망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곳은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흘러드는 물은 반드시 산맥의 방향과 음양의 이치에 합치되어야 한다. 또한 꾸불꾸불하게, 길고 멀게 흘러들어 오는 것은 좋은 것이고 한 줄로 활을 쏘는 듯한 곳은 좋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장차 집과 정자를 지어서 자손에게 대를 이어 전할 계획을 세우려면 지리를 살펴서 지어야 할 것인데, 이 여섯 가지가 살 곳을 정할 때 신경 써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택리지〉‘복거총론’)

 

그런 까닭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산천이 아름다운 곳에 터전을 삼고 말년을 지내는 것이었다. 현대인들도 그들과 같이 말년을 보내기 위해 그림 같은 강변이나 계곡에 별장이나 펜션을 마련한다.

 

그런데, 스스로가 정한 삶을 추구하고, 삶을 즐기기 위해 시골에다 별장을 지은 사람들의 고충이 한 둘이 아니다. 새 집 지었다고 친구들이 찾아오면 집 청소해야하지, 고기 사다 놓아야하지, 그들이 머물다가 떠난 뒤에는 청소해야지, 몇 달 동안 그런 난리가 없다. 그 뒤로는 고적한 적막감, 다시 두고 온 도시가 그리워진 사람들은 일 년을 못 넘기고 도시로 되돌아간다. 그런 폐단을 막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 인생 말년에 집 짓는 것이라고 한다면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

 

문화사학자·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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